※ 본 연재는 작가님의 요청으로 인해 상, 하 편으로 나누어져 업로드 된 글입니다.

 

 

영원이라는 이름 아래 (上)
W. flowergrassrain

 

 

그 날 새벽, 이 동네를 도망치듯 떠나면서 지훈은 이 곳에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아픔을 참으며 무릎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치료할 시간도 없어서 하루종일 욱신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오디션을 보면서 지훈은 이 동네로 다시 올 날만 기다렸다. 꼭, 잃어버린 그만큼 성공해서 잃어버린 모든 걸 다시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십 년만의 일이었다.

 

 

 

영원이라는 이름 아래 上

flowergrassrain

 

 

 

923

 

흘러버린 시간은 가장 익숙했던 것들이 가장 이질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만든다. 주택들이 빼곡했던 곳에 높은 아파트들이 생기고 작은 슈퍼였던 곳에는 편의점이, 판자를 놓고 떡볶이를 팔았던 곳에는 분식 체인점이 생겼다. 그리고 교복을 입은 채로 등 뒤에 아무렇게나 맨 가방을 덜렁이며 오르막길을 뛰어오르던 지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른다.

 

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고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연속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다리에 힘을 꽉 준 지훈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결국 지훈은 오르막길을 오르다말고 허리를 숙여 무릎을 부여잡았다. 많이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이 맘 때쯤이면 무릎이 아파왔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그랬다. 지훈은 익숙하게 무릎을 여러 번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동네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훈의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간다.

 

“……”

 

흘러가는 시간은 모든 걸 바꾸지만 동시에 모든 걸 바꾸지는 못 한다.

 

“…이게 아직 여기 있네.”

 

그래서 간판을 빛 바래게 할 수는 있어도 빨리 춤을 추고 싶어서 계단을 뛰어오르고, 새벽 늦게까지 밥도 챙겨먹지 않고 춤을 추던 소년을 지우지는 못 한다. 이렇게 과거를 마주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 때 꿈꾸던 모습과 다른 게 참을 수 없이 슬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지훈은 빛 바랜 간판 뒤로 움직이는 인영들과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에 웃었다. 그 때부터 현실과 기억간의 괴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저 시간에 따라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억에 의존한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지훈의 집이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시선을 옮기면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어김없이 그 모습 그대로, 지훈의 집이 있다. 여전히 무릎은 아팠지만 지훈은 좀 더 속도를 내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때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움직인다.

 

/

 

사람이 깃들지 않는 공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2층 계단에 줄 지어 서 있던 화분 대신 신발 밑으로 유리조각, 벽돌조각이 밟힌다. 지훈은 입술을 꾹 깨물고 조각들을 계단 끝쪽으로 밀어냈다. 계단 중간 쯤에서 고개를 들면 빨래집게가 잘 꽂힌 수건들이 나부끼던 옥상에 빨래 건조대만 위태롭게 서 있다. 한참이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그 옥상을 바라보다 지훈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열쇠로 현관문을 천천히 열며 지훈은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분명히 제 집인데 지훈은 꼭 낯선 사람의 집에 오는 것 같았다. 고향의 할머니집으로 간 엄마는 서울 집에 있는 건 다 그대로니까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지훈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한참 숨을 고르고 지훈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냈다. 불을 켜지 않은 집은 어두컴컴했지만 지훈은 불을 켜는 대신 눈을 여러 번 깜빡여 어둠에 적응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이삿짐 박스가 바닥에 널려있다. 그리고 정말 모든 게 그대로였다. 라면을 끓여먹었던 식탁,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누워서는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바라봤던 작은 소파, 낮잠을 잘 때면 큰 소리 때문에 잠이 깨서 한참이나 옆 모습을 보고 있게 했던 오래 된 냉장고, 가끔 놓고 가는 겉옷을 잘 개서 넣어뒀던 옷장. 엄마 말 대로 모든 게 그대로라서 그 속의 그 애도 그대로였다. 그대로라서 기억 속의 모습이 더 선명해진다. 29살이 되어버린 지훈이 17살 라이관린과 19살 박지훈의 환영을 본다.

 

지훈은 냉장고에서 조각 케이크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집이 불빛에 환히 빛난다. 꼬박 십 년동안 축하해줄 사람만 있고 축하받을 사람은 없는 생일이지만 지훈은 다시, 해 줄 수 있을 때 하지 못 했던 말을 한다.

 

“생일 축하해, 관린아.”

 

대답이 없다는 게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지훈은 여전히 잠시간 말 없이 가만히 있는다. 고맙다고 해 줄 것 같아서, 웃어줄 것 같아서 지훈은 그 얼굴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해 줄 수 있을 때 하지 못 해서 상상 속에서도 그 얼굴은 없다.

 

관린아, 나 오늘 이사했다. 웃긴 거 말해줄까. 이삿짐 도와주시는 분이 사람 사는 거 맞냐 그러더라, 이삿짐이 왜 이렇게 없냐구. 이사 비용 받는 거도 미안한 건 처음이래.

 

사실 있잖아, 짐도 별 거 없어서 내가 옮길 수 있었는데 자신이 없었어. 내가 이 집에 와서 이삿짐을 하나하나 옮기다보면 한 박스도 다 못 풀어내고 다시 도망갈 거 같았거든. 아까도 그만 두고 싶었어, 여기 너무 네가 그대로라서. 이제 여기에는 나밖에 없는데 그 때의 너는 그대로라서.

 

녹아내린 촛농이 케이크에 떨어질듯 위태롭다. 지훈은 일렁이는 불빛만 바라볼 뿐, 말이 없다. 입술을 꾹 깨무는 지훈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렇게 견뎌온 게 꼬박 십 년이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서 후회만 하며 시간이 흘렀다. 19살에 이 동네를 도망갔던 게 잘못이었을까, 어디에 숨어버렸냐는 문자에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을까, 군대가기 전 22살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잡는다는 문자에 휴대폰을 벽으로 던져버린 게 잘못이었을까.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 관린을 붙잡고 울어버릴 것 같은 게 싫어서 붙잡지 않았던 순간이 매 년 제 잘못을 깨달으며 시간에 부딪히게 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관린아,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한다는 그 흔한 말을 하지 못 한 게 이렇게 후회될 줄 알았으면 그 때 관린을 껴안고 수도 없이 말해줬을텐데.

 

“…보고 싶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질 줄 알았다면 그 때 잠들어있던 관린이 깨면 안 보고 있던 척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텐데.

 

“미안해, 관린아.”

 

그 때, 네 손을 놓지 말라던 너에게 내 손을 줬을텐데.

 

후, 촛불을 불자 다시 집 안이 어두워진다. 지훈은 가만히 식탁에 엎드려 머릿속으로 셀 수 없을만큼 그렸던 얼굴을 다시 떠올린다. 시간이 흘러 지훈은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는 29살이 되었는데 기억 속의 관린은 여전히 교복을 입은 17살에 머물러 있다. 지훈이 그 이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또 십 년 후에도 관린은 여전히 17살이다. 지훈은 17살의 관린의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대로 그 시간에 갇혀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때의 너를 한 번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 때의 너를 그렇게 떠나지 않고 네가 붙잡는대로 붙잡혔다면….

 

하지만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도 지훈을 울게 한다.

 

 

 

 

다시, 923

 

눈을 채 뜨기도 전에 무릎이 시큰거려서 잠이 깼다. 꼭 십 년 전에 아팠던 것처럼 아파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점점 정신이 들자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와도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은 없어서 지훈은 손을 옆으로 뻗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이 동네에 살 때는 병원을 가 본 적이 없어서 병원을 찾아봐야 했다. 반만 뜬 눈 사이로 먼저 보이는 건 9월 23일. 그리고,

 

라이관린: 형 미안해

라이관린: 그냥 내가 다 미안해

 

눈이, 번쩍 떠졌다.

 

그제서야 모든 게 이상했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람이 깃든 곳은 공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혼자 살았는데, 혼자 살아야 했는데. 어제 식탁에 엎드렸던 거 같은데 등 밑으로 푹신한 매트리스가 느껴진다. 고개를 옆으로 조금만 돌리면 책과 트레이닝복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책상과 책상에서 조금 빠져나온 의자가 있다. 춤추는 게 더 좋았던 열 아홉의 지훈에게 책상은 짐을 올려두는 공간에 불과했다. 분명히 잠에서 깬 건 맞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훈은 이게 꿈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얼얼하기만 할 뿐 변하는 건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앉자 등이 침대 헤드에 기대어진다. 집을 떠난 이후로 지훈은 매번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지, 침대를 사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십 년 전 열 아홉이었던 지훈의 방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지훈아, 일어났어?”

 

문을 두 어 번 똑똑 두드리는 저 목소리는 분명히,

 

“…엄마?”

 

엄마다.

 

“지훈아, 엄마 안 들어갈게.”

“……”

“밥은 먹고 가자, 응?”

 

꼭 만나지 못 하는 사람처럼 엄마의 목소리는 애절했다. 지훈은 이불을 손에 꼭 말아쥐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겨우 나무 문 하나를 높고 높은 벽으로 만든 건 열 아홉의 지훈이었다. 엄마와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엄마가 방에 들어오지 못 하게 했고 뻔히 밥을 차려놓은 걸 알면서도 그 옆을 쌩 지나갔다. 그 때 지훈은 몰랐다,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먹지 않은 상을 치우는 엄마의 마음을. 하지만 혼자 반도 먹지 못 한 밥상을 치우며 지훈은 매번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 외로웠겠구나. 그리고 엄마를 외롭게 만든 건, 나였구나. 그래서 이번에 지훈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었다. 문 앞에 있던 엄마는 지훈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무릎은 안 아파?”

 

그 때, 엄마를 그렇게 밀어낸 이유는 겨우 무릎이었다. 여름부터 무릎이 아파왔고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무릎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꿈이 전부여서 춤이 전부였던 그 때, 열 아홉의 지훈은 제 전부말고 다른 것을 볼 여유가 없었다. 지훈은 그 때는 보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앞치마에 묻어있는 물 자국과 제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손을 꼭 말아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그 때의 제 전부는 너무나 작고 또 작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지훈이 끝내 고개를 푹 떨군다. 엄마는 허리를 숙여 지훈의 무릎을 꾹꾹 누른다.

 

“지훈아.”

“……”

“춤 안 춰도 돼.”

 

그 땐 춤을 추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지훈은 그 소리 좀 하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춤을 잃어버려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지금, 지훈에게는 춤을 추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이 위로가 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춰 온 지훈을 평생 봐 왔고 춤 추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엄마가 하는 그 말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아서 숨어다녔던 지훈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엄마는, 지훈이 몰랐던 그 때에도 항상 지훈의 편이었다.

 

“엄마, 같이 밥 먹을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럴까? 라며 들뜬 목소리가 뒤를 돌며 밥솥으로 향한다. 이게 뭐라고 그 땐 못 했는지, 아니 안 했는지, 지훈은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열 아홉에 집을 나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한 채로 전역을 해서야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한 제 모습이 초라해 지훈은 고개를 푹 떨구고 말 없이 국밥만 계속 입으로 떠 넣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못 했다. 그 때도 지훈은 제 생각만 했다.

 

밥을 떠 온 엄마는 지훈이 세 숟가락을 먹을 동안 겨우 한 숟가락을 떴다. 지훈의 숟가락 위로 따뜻한 반찬을 올려주고 연신 지훈의 얼굴을 살폈다. 엄마, 맛있어. 그 말엔 웃었고. 엄마도 좀 먹어. 그 말엔 다시 지훈의 숟가락 위로 반찬을 올렸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 건지, 엄마라서 그런 사람이 된 건지. 스물 아홉의 지훈이 십 년 전의 엄마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숟가락을 놓고 지훈은 엄마의 숟가락 위로 반찬을 올렸다.

 

“엄마 안 먹으면 나 안 먹어.”

 

지훈의 투정어린 말에 엄마는 어색하게 숟가락을 입 속으로 넣었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세상에 ‘엄마’라서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은 없었다. 모든 건 조금만 손을 뻗으면, 조금만 용기를 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등교시간이 다가와 커튼을 걷어내자 굵어진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때린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지훈은 그 때는 그렇게 지겨웠던 이 작은 방을 벗어나기 싫어서 괜히 펴 놓은 이불을 만지작거리고 의자에 앉아보고 옷장 안에 옷을 뒤적거렸다. 책상 위에 널어놓은 교과서들마저도 소중해서 지훈은 하나하나 잘 챙겨서 가방에 집어넣고 가방을 둘러맸다. 방을 나서기 전, 지훈이 다시 뒤를 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중한 곳,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 눈 앞에서 좀 더 선명해진다.

 

“지훈아, 너 관린이랑 싸웠니?”

 

신발을 꿰어신는 지훈의 마이 어깨 부분을 엄마가 잘 잡아당기며 한 말이었다. 아 맞다, 관린이. 그제서야 지훈은 마이 주머니에 휴대폰을 꺼내든다. 9월 23일 그리고,

 

라이관린: 형 일어났어?

라이관린: 나 집 앞에서 안 기다리니까 제발 나와줘

라이관린: 기다릴게

 

지훈이 거실로 난 창으로 시선을 옮긴다. 비가 많이 오는데 관린이 메세지를 보낸 시간은 10분이 훌쩍 넘어있다. 그 때의 관린은 항상 지훈을 기다렸다. 지훈이 기분에 따라 관린의 옆에 바짝 붙어 걷기도 하고 관린보다 한참 앞서기도 하고 관린보다 한참 뒤떨어져 걸을 때도 관린은 지훈을 기다렸다. 그 때는 관린의 ‘기다릴게’라는 말이 참 쉽게 느껴졌다. 당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훈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나서야 기다린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9월 23일, 오늘은 두고두고 가장 후회할 날이니까.

 

“엄마, 나 용돈 조금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따위의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저, 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십 년동안 쌓아온 죄책감에 조금의 위안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시간 여행 같은 거라면 이 순간을 바꾸기만을 바랐으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뭐 사야 돼?”

“응. 관린이,”

 

목이 메인다. 그 날 아침에도 수십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하지 못 한 말이었다. 내년 생일에 챙겨줄 수 있을 줄 알고, 그 때는 더 멋있는 걸 해 줄 수 있을 줄 알고. 내년 생일을, 내후년 생일을, 십 년 뒤의 생일조차 챙길 수 없을 줄은 몰랐다.

 

“관린이 생일 챙겨주고 싶어서.”

 

말을 더 잇지도 못 하고 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왜냐면 엄마, 내가 이 날을 십 년동안 미치도록 후회하거든. 그래서 딱 한 번만, 이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 번만, 한 번만 챙겨주고 싶어서. 고개를 푹 숙인 지훈의 시선 끝에 지훈의 손에 포개진 엄마의 손이 보인다. 손 사이에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지훈아.”

“응.”

“모든 걸 힘껏 사랑해.”

“……”

“후회없이 힘껏, 사랑해.”

“……”

“알겠지?”

 

제 손을 꼭 잡은 엄마와 한참 눈이 마주쳤다.

 

‘지훈아, 그냥 살아. 살다 보면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때문에 살아갈 때도 와.’

 

옛날에 살던 동네로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땐 그 말이 꼭 붕붕 뜬 것처럼 느껴졌는데 엄마의 눈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엄마는, 십 년 전에도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 관린과 지훈이 어떤 사이인지, 어떤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지, 관린은 지훈에게 모든 걸 쏟는 반면에 지훈은 그러지 못 한다는 것도. 그러니까 지훈이 힘껏,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그 때, 엄마의 눈을 보면 제 마음이 보일까 눈을 피하기 바빴던 지훈만 몰랐던 거다. 멍하게 엄마를 바라보며 지훈은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지훈아, 내일도 꼭 엄마 밥 먹고 가.”

 

지훈이 말 없이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

우리가,

내일이 있을까.

 

“응, 내일 봐 엄마.”

 

관린의 생일이자 지훈이 떠난 날,

다 알면서도 없는 내일을 약속했다.

 

/

 

비가 세차게 떨어지는 계단은 미끄러웠다. 시큰거리는 무릎 때문에 지훈은 자꾸만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걷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내리막길 끝 골목에 하얀 운동화가 보이면 무릎을 잠깐 붙잡고 숨을 돌렸지만 하얀 운동화가 사라지면 다시 지훈은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혹시나, 다시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다시 보이는 하얀 운동화에 지훈은 심장이 쿵쿵 뛰어올라 주저앉을 것 같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수시 원서 접수가 한창이던 9월엔 관린과 많이 싸웠다. 그리고 9월 22일, 그 맘 때쯤 절정을 달하던 무릎보다 더 괴로웠던 건 지훈이 관린을 볼 때마다 느꼈던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내가 형 좋아해서 이러는 거 형도 알잖아.’

 

좋아해서 그렇다는 걸 알아버려서. 정작 고백을 한 건 관린인데 지훈은 제 마음이 들켜버린 것 같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미친 새끼. 니가 날 왜 좋아하는데.’

 

내가 널 왜 좋아하는걸까.

 

‘그리고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되는데.’

 

나는 왜 그걸 지금 알아버린걸까.

 

‘형.’

‘부르지마.’

‘……’

‘진짜 짜증나게.’

‘……’

‘니 마음 정리 안 하면 나 너 안 봐.’

 

질문과 종이 조각처럼 접을 수 없는 마음마저도 모두 제 몫이었는데 지훈은 혼란스러워서 그걸 관린의 탓으로 돌렸다. ‘좋아한다’는 말을 그렇게 짓밟았다.

 

그 때 관린은 어떤 눈이었을까. 상처받은 눈이었을까 아니면,

 

“무릎 괜찮아?”

 

지금처럼 그래도 사랑한다는 눈이었을까. 얼마나 기다렸는지 관린이 신고 있던 운동화 앞코와 교복 바지 끝단이 푹 젖어있었다. 그러고도 관린은 지훈의 왼쪽 어깨 쪽으로 제 우산을 기울인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했다. 관린을 만나면 왜 나를 찾지 않았냐고, 왜 나를 붙잡지 않았냐고 울면서 악다구니라도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껴안고는 보고 싶었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관린을 앞에 두고 있는 지금,

 

“…형.”

 

야, 너 진짜 맞지. 라이관린 너, …진짜 맞지. 지훈은 그저 눈 앞에 있는 관린이 진짜인지 확인할 뿐이다. 그 어떤 말도 하지 못 하고 지훈은 덜덜 떨리는 차가운 왼손으로 관린의 볼을 조심스레 만진다.

 

“형 손 너무 차갑다.”

 

관린이 제 볼에 얹어진 지훈의 손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 호호 분다. 빗속에서 한참을 기다리느라 제 손은 더 차가운데도 한참이나 따뜻한 입김을 분다. 관린을 만나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지훈은 관린의 머리꼭지를 보고 있자니 더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왜 이런 너를 더 사랑해주지 못 하고 너를 할퀴어야 했을까. 나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을 왜 당연하게 여겼던 걸까. 왜 나는 너처럼 너를 사랑하지 못 했을까. 지훈의 손은 점점 따뜻해지는데, 관린의 손은 여전히 차갑다.

 

“미안해, 형.”

 

관린은 호호 불던 지훈의 손을 잠시 꼭 말아쥐었다. 하지만 사람이 지나가자 관린의 손 안에서 지훈의 손이 스르르 미끄러진다. 매번 먼저 놓아버렸던 그 손을 다시 잡아주고 싶었다. 잡고는 절대 놓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었다.

 

“알아달라고 안 할게.”

“……”

“형도 그래달라고 안 할게. 미안해.”

“……”

“그러니까 형, 나 놓아버리지마.”

 

어떤 눈으로 관린을 봐야 할까. 아니, 어떤 눈으로 관린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고 싶었던 관린을 앞에 두고 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관린은 지훈이 떠날 걸 알았는지 수 십번 말했다, 놓지 말라고. 9월 23일에 도망을 간 건 지극히 충동적인 것이어서 지훈은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냐고 짜증을 냈다.

 

‘나는 형 절대 안 놓을게.’

 

그리고 지훈의 짜증에 대한 관린의 대답이었다. 그 때 관린은 잠시 지훈의 손을 잡고 꾹 쥐었다가 놨다. 결국엔 도망칠 거였지만 지훈은 말이라도 나도 놓지 않겠다고 말할 걸, 또 후회가 얹어진다. 지훈은 여태까지 관린의 그 말로 십 년을 버텨낼 수 있었는데 관린은, 만약 아직도 지훈을 생각한다면 뭘로 버텨내고 있는 건지. 아니, 그 전에 눈 앞에 있는 열 일곱의 관린이 외롭고 불안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서 지훈은 이번엔 따뜻해진 제 손으로 관린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자 관린이 지훈 쪽으로 더 우산을 기울였다. 관린의 한 쪽 어깨가 비에 젖어간다. 이름에 비를 가진 관린 앞에서 비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던 지훈 때문에 관린은 자꾸만 비에 더 젖어간다. 지훈은 오른손으로 관린의 기울어진 우산을 똑바로 씌워줬다. 맞잡은 손 위로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형, 비 맞잖아.”

“관린아.”

“형, 우산 좀.”

“관린아.”

“응, 응.”

“나도 너 안 놓을게.”

 

지훈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자 관린은 그제서야 지훈을 똑바로 바라본다.

 

“너 안 놓을게, 관린아.”

 

관린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얼굴 가득 웃는다.

 

“응, 형.”

 

대답하는 열 일곱 관린의 얼굴이 빛난다. 이렇게 쉬운 말에 이렇게 웃어줄 줄 알았으면 십 년 전에 말해줄 걸 그랬다.

 

“형 비 많이 맞겠다. 얼른 가자.”

 

그리고 정말로, 너를 놓지 않을 걸 그랬다.

 

/

 

열 아홉.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인은 아니었다. 끝인 동시에 시작이기도 한 나이였다. 뭐든 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뭐든 하지 못 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이 때 실패한다면 무릎이 꺾여서 다시는 못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아파오는 무릎에 병원을 가는 대신 압박 붕대를 칭칭 감았다. 잠 자는 시간을 빼고 매번 꽉 조여져 있던 다리는 잠을 잘 때쯤이면 피가 안 통해 저리기까지 했다. 어느 새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실패하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삼학년 교실을 채운 똑같은 교복을 입은 열 아홉들은 모두 그렇게 그 형태가 무엇이든 힘겹게 스무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2분단 중간 끝 쯤에 앉아 열 아홉을 바라보는 스물 아홉은 문득 생각한다. 그 때의 내가 정말 바라는 게 뭐였을까. 사람을, 감정을, 여유를 잃어가며 내가 그렸던 스무살은 도대체 뭐였을까. 그 때의 나는, 정말 춤을 사랑했을까. 그 때의 나는, 힘껏 사랑했던 열 일곱의 관린처럼 빛나는 사람이었을까. 모든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훈은 1교시를 알리는 종 소리를 들으며 엎드려 눈을 감았다.

 

4교시가 끝난 점심시간, 지훈은 근처 빵집 진열대 앞에서 바지 주머니 안의 오천원 짜리를 만지작거렸다. 처음 관린이 없는 관린의 생일 날엔 주머니를 털어 큰 케이크를 샀었다. 하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혼잣말도 못 하고 작은 자취방 한 켠에 케이크를 치워버렸다.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어 큰 케이크가 다 썩어버리자 그 이후로 지훈은 작은 조각 케이크로 생일을 챙겼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었는데 큰 케이크를 살 만큼의 돈이 부족해서 자꾸만 큰 케이크에 시선이 갔다.

 

라이관린: 형, 교실에 없네. 어디야?

라이관린: 나 6교시 체육이라서 형한테 축구공 빌리려고.

 

열 일곱은 숨기지 못 했고 그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래서 관린은 체육 수업이 있을 때마다 지훈의 사물함 한 켠에 있는 축구공을 빌리러 왔다. 농구를 하는 관린은 체육 창고에도 있는 빵빵한 축구공 대신 지훈의 바람 빠져버린 축구공을 빌리러 2층에서 5층까지 오곤 했다. 그렇게 와서 겨우 얻는 거라곤 지훈이 휙 던지는 축구공 뿐이었지만 관린은 웃었다. 그 때 지훈은 복도로 난 창문 틀에 턱을 괸 채로 저를 바라보는 관린의 시선을 피했다. 보고 싶었어, 그 말을 하는 게 쑥스러웠다.

 

[나 그거 체육 창고에 두고 왔는데. 내가 줄 테니까 이따 5교시 끝나고 만나.]

 

열 일곱의 관린과 다르게 스물 아홉의 지훈은 흘러버린 열 아홉을 다시 보내면서야 숨기지 않아야 하는 게 있다는 걸 안다. 보고 싶, 하지만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추고 지워낸다. 관린아, 보고 싶어. 다시 써 보지만 결과는 같다. 이미 써 내려 간 글자를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데,

 

라이관린: 아쉽다

라이관린: 형 보고 싶었는데

 

지훈이 열 아홉을 두 번 보내도 여전히 관린은 지훈보다 빠르다. 관린이 보낸 메세지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져본다. 관린은 늘 지훈보다 먼저 보고 싶다고 표현했고 지훈이 보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지훈을 보러왔다. 지훈이 망설이는 동안 관린은 망설이지 않아서 외롭지 않았던 지훈의 열 아홉. 하지만 그 반대였던 관린은 어땠을까. 지훈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메세지를 작성하고는 케이크 진열대에서 조각 케이크를 꺼내들었다.

 

[나도, 이따 보자.]

 

이제, 관린의 외로웠을 9월 23일을 바꿔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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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빗줄기가 많이 얇아졌다. 얇아진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체육 창고로 가는 길에 지훈은 울지 않으려고 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에 쥐어진 초코파이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정말 잘 챙겨주고 싶었다. 큰 케이크 대신 산 조각 케이크였지만 예쁘게 불도 붙여서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훈이 교실로 들어서기도 전에 지훈의 친구들이 케이크를 먼저 발견했다. 야, 박지훈. 이거 누구 거야. 말 안 하면 안 줘. 장난기 많은 열 아홉들은 그 케이크를 저들끼리 던지며 주고 받았다. 케이크가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지 말라는 말 조차 목구멍 뒤로 먹혀서 하지 못 하는 사이, 케이크가 친구의 손으로 닿지 못 하고 교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야씨,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케이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버렸고 몇몇 친구들은 지훈을 붙잡고 몇몇 친구들은 휴지로 케이크 잔해를 훔쳐냈다. 그렇게 지훈의 손에 남은 건 성냥과 초 뿐이었다. 그래서 지훈은 체육 창고 바로 앞에서 서성이기만 할 뿐 들어가지를 못 했다. 챙겨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 했다는 생각에 자꾸만 서러워서 지훈은 입고 있던 교복 셔츠 소매로 눈을 훑어냈다. 여러 번 훑어내서 눈 주위가 따가워질 때,

 

“형, 눈 빨개. 하지마.”

 

눈 위로 따뜻한 손바닥이 얹어진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면, 체육복 차림의 관린이 지훈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살 쓸고 있다.

 

“무슨 일 있어?”

“……”

“울 것 같이 왜 그래.”

“……”

“형, 응?”

 

6교시 시작 종이 울린다. 하지만 관린은 아랑곳 하지 않고 허리를 조금 숙여 지훈과 눈을 마주한다. 지훈은 그런 관린을 바라보다 관린의 손을 잡고 체육 창고 문을 밀었다. 등 뒤에서 체육 창고 문이 닫히고 체육 창고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 속에서 지훈은 관린을 볼 수가 없어서 관린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눈 감고 열까지만 세. 절대 눈 뜨면 안 돼.”

“응.”

 

관린은 이유도 묻지 않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관린이 지훈의 손을 잡은 채여서 지훈은 다시 한 번 관린의 손을 꼭 잡았다가 손을 풀어냈다. 지훈은 초코파이 봉지를 뜯어내 손 위에 봉지를 올리고 그 위에 초코파이를 올렸다. 초코파이 위에 초를 꽂고 남는 손으로 성냥에 불을 붙이고 초에 불을 밝혔다. 붉은 불빛이 체육 창고를 밝힌다. 그 불빛에 관린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3, 2, 1…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였다. 1을 세고도 관린은 눈을 뜨지 않았다. 지훈이 관린의 눈 위로 흩어진 속눈썹을 본다. 관린이 눈을 떠서 관린은 이걸 보면 어떤 표정을 할까. 기대감이 아니라 안타까움, 아쉬움,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한 데 뒤섞여 지훈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장, 십 년동안 혼자 챙겨왔던 생일을 생각했다. 9월 23일에 가장 중요한 건 지훈이 아니라 관린이었다. 그래서 지훈은,

 

“눈 떠, 관린아.”

 

관린은 속눈썹이 천천히 올라간다. 눈을 완전히 뜬 관린이 초코파이를 든 지훈을 바라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생일, …더 잘 챙겨주고 싶었는데,”

“…형.”

“케이크가, 케이크가 망가졌어.”

“……”

“…미안해.”

 

막상 관린이 눈을 뜨자 초라한 초코파이에 뭉개져버린 케이크가 겹쳐져 지훈은 울컥 눈물이 났다. 관린은 허리를 숙여 지훈과 눈을 맞추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훈의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괜찮아, 형. 따뜻한 손과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생일 축하해, 관린아.”

“……”

“열 일곱번째 생일 축하해.”

 

십 년동안 허공으로 흩어졌던 말은 더 이상 흩어지지 않는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웃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환해진 얼굴을 한 관린이 보인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상상할 수 없었던 관린의 얼굴을 본다.

 

“고마워, 형.”

 

너는, 이런 얼굴을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는구나.

 

“진짜, 진짜 고마워 형.”

 

이거면 됐다. 이게 꿈이든 꿈이 아니든, 니가 웃는 모습을 봤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관린의 생일을 혼자 챙기더라도 그 얼굴을 상상할 수가 있을 텐데 지훈은 환히 웃는 그 얼굴 앞에서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서, 이 순간에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형, 나 진짜 너무너무 행복한데 왜 울어.”

“……”

“너무 행복해. 최고의 생일이야.”

 

초라한 초코파이와 습기 가득한 체육 창고에서의 생일이 최고라고 말하는 너라서. 그리고 그 눈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지훈은 셔츠 소매로 눈을 꾹 누르고는 다시 관린을 마주했다. 이번엔, 지훈 역시 웃었다. 최고라고 말하는 관린 앞에서 웃어주고 싶었다.

 

“선물은 못 샀어. 다음 번에 꼭 사 줄게.”

 

지훈은 십 년간 관린의 생일을 혼자 챙기면서 다시 만난다면, 생일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답답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관린이지만 생일 선물을 준비해야 겠다고.

 

“선물 뭐 갖고 싶어?”

“나, 어…”

“다 사 줄게. 아무거나 말해도 돼.”

“……”

“진짜로.”

 

관린이 망설인다. 하지만 뭐든 해 줄 수 있었다. 정말, 뭐든 해 줄 수 있었다.

 

“난 형만 있으면 되는데.”

“……”

“그냥, 형이 매 년 생일 챙겨주면 돼.”

 

그 순간, 지훈은 그냥 관린을 안아주고 싶었다. 십 년동안 관린이 없이 살며 지훈은 그제서야 관린이 제 속에 얼마나 오래,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았는데 열 일곱의 관린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관린은 늘 지훈보다 더 크고 더 깊은 사람이었다. 깊은 사람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지훈은 그걸 몰랐다. 그 사랑이 한 때일까 두려웠고 한 번인데 흘러갈까 무서웠다. 그래서 잡지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훈은 다시 깨닫는다. 그저, 힘껏 사랑하지 않았던 게 비겁했던 것 뿐이라고.

 

“소원 빌고 불 끄자.”

 

같은 소원을 빌고 싶었다. 내년 생일도 함께 하게 해 달라고. 그 모든 것들을 다시 겪는데도, 관린이 옆에 있어준다면 아주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훈은 관린의 손을 쥐고 관린은 그 손을 꼭 잡았다.

 

“소원 빌면, 이뤄지는 거 맞지?”

 

관린이 장난스레 웃는다. 그건 스물 아홉의 지훈도 모르는 일이라 지훈은 희미하게 웃었다. 형만 믿을게. 이미 촛농이 뚝뚝 떨어져버린 초코파이를 보며 관린은 여전히 환하게 웃은 채로 눈을 감았다. 지훈은 꼭 잡은 손을 조금 풀어내어 관린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하나하나 맞추고 관린은 그 손을 더 꽉 잡았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따뜻한 손 때문에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지훈이 눈을 감았다. 내년 생일도, 내후년 생일에도 꼭….

 

“너네 여기에서 뭐 하니?”

 

초를 불기도 전에 체육 창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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