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행성에서의 불시착
W. 네온

 

 

“저, 여기가 어디예요?”

 

 

 

 

질문이 귀에 꽂혔을 때도 관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린을 지목한 여자는 그가 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관린에게 조르르 달려와 팔소매를 붙들었다. 그러곤 관린의 눈앞에 지도를 불쑥 들이밀었다.

 

 

 

 

“여기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아예 관린의 앞에 터를 잡은 여자는 지도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우주어로 쓰여 글자를 읽을 수는 있었지만, 옆의 조그만 기호들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런 데다 관린은 여지껏 본 적도 없는 종이 지도였다. 이 여잔 도대체 어느 행성에서 온 걸까 궁금해졌다. 난 이런 거 볼 줄 모른다고.

 

 

 

 

“죄송하지만,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관린은 삐딱하게 되물었다. 그게 좀 심하게 나갔는지, 여자는 당황한 낯을 하며 황급히 지도를 구깃구깃 접었다. 자기 생각에도 그 지도가, 심지어 우주 공용도 아닌 기호가 그려진 종잇조각이 창피했나 보다.

 

 

 

 

“여기, 19 캠퍼스를 지나면 우체국이 있다고 했거든요. 외성(外星) 우체국으로 가야 하는데 찾질 못하겠어요.”

 

 

 

 

“K 시뮬레이션실 있는 데서 왼쪽으로 돌아 나가시면 보일 겁니다. 그런데 외성이라니, 다른 행성에 친구가 있는 건가요?”

 

 

 

 

관린은 말끝에 되물었다. 오르파에 우체국이야 많았지만, 외성 우체국은 몇 도시에 하나 정도밖에 없었다. 우주에 개방적인 행성치고 지나치게 적은 숫자였다. 관린의 친구들도 항상 그 점을 들먹이며 투덜거리곤 했다.

 

 

 

 

“네. 지구에 친구가 있어요. 제가 거기서 유학 왔거든요.”

 

 

“지구요?”

 

 

“아아. 처음 들어보셨어요?”

 

 

“……아뇨. 제가 아는 사람도 지구에 있어서요.”

 

 

 

 

관린은 간단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은 감성 같은 걸 탈 날이 아닌가 보다.

 

 

 

 

“지구에 아는 사람이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관린은 대충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곤, 대화에 흥미를 느끼는 듯한 여자를 내버려둔 채 돌아섰다. 저 여자가 내 설명을 듣고 길을 잘 찾아가든 어쩌든 알 바는 아니다. 나무 사이 보랏빛 하늘에, 은빛 별 투나드가 자기 행성을 집어삼킬 듯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벌써 10월 둘째 주인가 보다. 관린은 빨려들어갈 듯한 그 작은 불안감을 좋아했다.

 

 

 

 

오르파의 유일한 우주사관학교인 라이카 사관학교는 단 하나인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우주 관련 학과를 세 종류로 분류해 X, Y, Z의 동으로 나누었고, 그 안에서도 관련 직종에 따라 일일이 나누는 바람에 총 29개의 캠퍼스가 생겼다. 각 캠퍼스 안에도 강의실, 실습실, 회의실이 따로 있었고, 그 밖에 시뮬레이션실이 6개, 기숙학생들의 숙소가 10개에 실제 우주로 나갈 때 탑승하는 중력 캡슐 보관실도 몇 개 있었다. 규모를 보면 사관학교가 아니라 소도시에 가까웠기 때문에, 라이카는 사관학생이 아니면 길을 찾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다.

 

 

 

 

관린은 로베타, 우주어로는 미개발 행성 연구원이라는 꿈을 바라보고 라이카에 입학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실습 시험을 위한 무중력 공간에서 놀랍도록 가뿐하게 중력 캡슐을 조종하며 단번에 붙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순전히 운이었다. 적어도 관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에게서 돌아선 관린은 별생각 없이 Y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름처럼 행성 연구학과에서 취업하기 유리한 로베타는 Y동의 제 14캠퍼스에서 양성했다. 문제라면 Y동은 항상 뭔가가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3년 전 관린의 계기판이 증명해 주는데도 Y동은 바뀌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러나 관린은 바뀌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

 

 

 

 

“어, 너 왜 여깄어?”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관린에게 소리쳤다. 분명 목소리는 꽤 멀리서 들렸는데, 돌아보자 다니엘이 관린의 어깨를 잡았다. 다니엘은 항상 그렇게 빠르게 와서 관린을 놀래켰다. 도대체 덩치가 산만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너 지금 처잘 시간 아니야? 오늘 4시간 공강이잖아.”

 

 

“내가 뭔 허구한 날 잠만 처자는 줄 알아. 그리고 오늘 아니야, 병신아.”

 

 

 

 

그거 어제였잖아. 날짜도 모르냐? 관린은 다니엘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냥 산책하려고 나왔어. 좀 우울해서.”

 

 

“저거 보고 나왔지?”

 

 

“뭐?”

 

 

 

 

다니엘이 관린의 옷자락을 잡아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레샨 꽃이 길 양쪽에 만개해 있었다.

 

 

 

 

“아니, 저건 못 봤는데.”

 

 

“저거 오늘 핀 거야.”

 

 

 

 

다니엘이 관린을 슬쩍 쳐다봤다. 관린은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그에 다니엘은 다시 눈을 레샨 꽃에 둔다. 시선이 엇갈리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저거, 오늘 폈다고. 그래서 나온 줄 알았지.”

 

 

 

 

다니엘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님 말고. 관린은 길가에 가득한 레샨 꽃을 다시 보았다. 그 꽃에 건 기대는 세 번째였다.

 

 

 

 

“야. 나 간다.”

 

 

“너 지금 강의 들어가야 되잖아, 병신아! 출튀라도 하고 가!”

 

 

 

 

다니엘이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관린은 순식간에 기숙사 e동 쪽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혼자 남은 다니엘은 헛웃음을 치며 레샨을 내려다보았다. 레샨은 항상 하루아침에 피었다가, 몇 달 뒤엔 또 하루아침에 졌다. 그 모양이, 언젠가 관린이 쏟아냈던 취담 속 지구인을 닮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다니엘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Y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

 

 

 

 

3년 전인 3024년 10월 12일, 관린은 실전 트레이닝 중 고장난 계기판 때문에 표류했었다. 그것도 오르파의 수도 카디나의 대척점인 하나바 사막이었다. 보통 실전 트레이닝은 3, 4일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관린을 찾으러 와줄 사람은 없었다. 다른 방법 없이 사막에 주저앉아 비행기를 수리해야 했다.

 

 

 

 

표류한 첫날 밤, 관린은 드라이버를 붙들고 몇 시간을 엔진과 씨름했다. 고장난 게 계기판만은 아닌 것 같아 점검해 보았더니, 모래가 찬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가장 시급한 엔진에 먼저 손을 대자, 밤하늘은 금방 깔렸다. 그러다 관린이 깜박 잠들기 직전에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저기, 혹시 여기가 어디인가요?”

 

 

 

 

관린은 이런 이상한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주어로 말하기에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뭐요?”

 

 

“여기가 어디냐고요. 전 오늘 저녁에 여기 낙오돼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연이어 나오는 희한한 말들에 관린이 고개를 돌렸다. 돌아본 곳에는 몇 걸음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투나드의 빛을 등지고 있어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희미한 빛으로도 보이는 얼굴이 굉장히 예쁜 남자였다. 묘한 눈꼬리와 붉은 입술이, 체격만 더 작았다면 여자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정도였다.

 

 

 

 

“여기는 오르파라고 하는 행성이에요. 그런데 낙오됐다뇨?”

 

 

“우주 탐사팀의 팀원인데, 이동 중에 혼자 떨어졌어요.”

 

 

 

 

남자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둘러보며 불안하게 말했다. 여기는 처음 들어보는 행성인데요.

 

 

 

 

“그만큼 멀리 떨어졌나 보죠. 어느 행성에서 오신 겁니까?”

 

 

 

 

관린은 사막 한가운데서 생긴 말 상대를 빨리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졸음이 덩 가신 와중에도 꾸준히 말을 걸었다.

 

 

 

 

“지구요.”

 

 

 

 

대답은 간단했다. 지구. 관린은 그 이름을 딱히 기억해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랬죠?”

 

 

“오르파라고 해요. 소마젤란 은하에 있는데, 지구와 많이 멀어요?”

 

 

“오르파요……. 예쁜 이름이네요.”

 

 

 

 

남자는 관린이 되물은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빠진 듯, 혼자 되풀이해서 중얼댔다. 왠지 방금 전까지 불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모습과 대조되었다. 그러다 그가 문득 물었다. 그럼 여기는 어디예요?

 

 

 

 

“여기는 사막이에요. 저도 표류 중이에요. 비행기가 고장나서.”

 

 

“……아아. 사막이구나. 여기가.”

 

 

“지구, 에는 사막이 없어요?”

 

 

 

 

이번에는 대꾸가 돌아왔다. 아뇨, 지구에도 사막이 있어요. 근데 거기는 사람 살 데가 못 돼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금방 갈 생각은 아닌가 보다.

 

 

 

 

“여기도 사람 살 데는 아니에요.”

 

 

 

 

관린은 슬쩍 웃으며 답했다. 남자의 눈을 보고 있자니 올라간 눈꼬리를 따라 입끝도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또 엉뚱한 이야길 꺼냈다.

 

 

 

 

“저기, 이름이 뭐예요?”

 

 

“라이관린이에요.”

 

 

“성이 라씨예요?”

 

 

“아니, 이름이 관린이에요.”

 

 

 

 

잠시 동안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갔다. 이름 예쁘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관린을 보고 웃었다. 관린도 따라 웃어주었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나는 박지훈이에요.”

 

 

“발음이 약간…… 딱딱해요.”

 

 

 

 

남자는 푸스스 웃으며 그랬다. 우리나라가 발음이 좀 딱딱 끊어지게 말해요. 지구에는 나라가 엄청 많아서, 쓰는 말도 다 달라요.

 

 

 

 

대화가 그쯤 이어지니 관린은 이제 잠이 아주 달아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엔진이나 마저 고치자며 일어선 관린은 지훈을 내려다보았다. 모래밭에 앉은 지훈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제 가게요?”

 

 

“가고 싶어도 오늘내일은 못 가요. 나 낙오됐다니까.”

 

 

“……아.”

 

 

“그러니까 나랑 조금만 더 얘기해 줘요.”

 

 

 

 

엉덩이를 움직여 앉은 채로 다가온 지훈이 관린의 바짓자락을 살짝 잡았다. 이제는 아쉬운 쪽이 지훈이 됐다. 시선을 올린 지훈의 눈 속에 은빛 별들이 담겼다. 저만치 사막의 모래산도 깔렸다. 갈색 눈동자에 하나바 사막이 들어찼다.

 

 

 

 

“수리는 내일부터 할게요.”

 

 

 

 

관린은 자신이 그 눈에 홀렸다고 생각했다.

 

 

 

 

 

 

 

 

 

하나바 사막은 오르파에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단 끝없이 펼쳐진 맑은 모래밭부터가 장관이었지만, 이곳의 진짜 묘미는 밤이었다.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면, 사막의 모래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반사한 듯 금빛으로 빛났다. 그 시간 하나바 사막은 어디를 봐도 눈부시게 반짝였다. 하늘에는 은빛이, 땅에는 금빛이 차오른 모습은 외성에서도 유명했다.

 

 

 

 

관린과 나란히 비행기에 기대앉은 지훈은 모래알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하자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손이 닿은 곳의 모래를 한 움큼 잡아올려 보며 그랬다. 이, 이거 왜 이래요?

 

 

 

 

“여기는 원래 이래요. 근데 밤에만 이렇게 빛나는 거예요.”

 

 

 

 

지구의 사막은 어때요? 관린은 말 끝에 물었다. 지훈은 여전히 손에 올려진 모래에 감탄하며 대꾸했다.

 

 

 

 

“우리 사막은 이렇게 안 빛나요. 그냥 평범한 모래예요. 가 보진 못했지만, 별도 이만큼 많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굉장히 예뻐요.

 

 

 

 

“그런데 낙오됐으면, 돌아갈 수는 있어요?”

 

 

“네. 우리 시스템이 그래요.”

 

 

“어떻게 돌아가요? 좀 먼 게 아닐 텐데.”

 

 

“소환하는 거예요. 지구로. 낙오되고 나서 72시간 동안 지구 본부와 연락두절이면 그냥 소환해 버려요.”

 

 

 

 

그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뭘 하고 있든 그냥 소환되는 거예요. 되게 체계적이죠. 지훈은 손바닥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자문했다. 근데 이걸 체계적이라고 하는 게 맞나?

 

 

 

 

“덕분에 낙오돼서 못 돌아갈 걱정은 없지만, 3일 동안 어떻게 하느냐는 자기 문제죠.”

 

 

“본부랑 연락 돼요?”

 

 

“아뇨. 떨어질 때 통신 기구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 3일을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그나마 사람 있는 데 떨어졌으니 다행이죠.”

 

 

 

 

지훈은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걸 끝으로 대화가 뚝 끊겼다. 문득 관린이 지훈의 옆모습을 돌아보았다. 관린은 유려한 곡선이 그려진 그 태가, 살짝 보이는 눈동자가 담은 금빛 사막이,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왜인지 처연해 보이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인지 그날 밤.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다음 날에, 관린은 아침 시간을 비행기 수리하는 데 보냈다. 관린이 목장갑을 끼고 기어와 씨름하는 동안, 지훈은 투나드가 3분의 1을 가린 보랏빛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공상에 빠져 있었다. 언뜻 보기로는 낮의 하늘에서 지구를 찾아내려는 것 같기도 했다. 관린은 이따금씩 그를 돌아보며, 굉장히 엉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을 저렇게 오래 하는 걸까.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지훈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고개를 틀어 관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지구가 어디인지 알아요?

 

 

 

 

“아니, 몰라요.”

 

 

“그럼 EAR56 은하는요?”

 

 

“거긴 들어봤어요. 그런데 EAR56이면 엄청나게 먼 곳이에요. 관린이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 지훈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사막에 꽃이 있어요?”

 

 

 

 

지훈이 손가락으로 가까운 곳을 가리키며 그랬다. 손가락을 따라간 곳에는 레샨 꽃이 만개해 있었다.

 

 

 

 

“아아. 레샨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 어디서나 잘 자라는 꽃이라 사막에도 있어요. 어젠 없었는데, 오늘 피었나 보네요.”

 

 

“저거 지구에도 있는 꽃 같아요.”

 

 

“네?”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구에도 있는 거 맞아요.

 

 

 

 

“지구에서는 저걸 해국이라고 불러요.”

 

 

“지구에도 있어요?”

 

 

“네. 여기서 보니까 되게 신기하네요. 지구에서는 가을에 피어요.”

 

 

“여기서도 가을에 피어요. 지금이 10월이라.”

 

 

 

 

지훈은 재빨리 걸어와 레샨을 꺾어 왔다. 향도 지구 거랑 똑같아요. 진짜로 같은 꽃인가 봐요.

 

 

 

 

“꽃말이 뭔지 알아요?”

 

 

“아뇨. 딱히 꽃에 관심이 없어서.”

 

 

“지구에서는 꽃말이 기다림이에요. 예쁜 뜻이죠?”

 

 

“그러네요.”

 

 

 

 

또다시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대화를 주고받는다. 관린은 손을 뻗어 레샨의 꽃잎을 뜯으며 말했다.

 

 

 

 

“하루아침에 죄다 피었다가, 또 몇 달 지나면 하루아침에 다 지는 꽃이에요. 진짜 예고 없이 그래서, 지면 좀 허전해져요.”

 

 

“지구에서는 그러진 않아요.”

 

 

 

 

잠깐 생각하던 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뭔가 뜻이 맞네요.”

 

 

“뭐가요?”

 

 

“예고 없이 갑자기 핀다고 했잖아요. 계절이 되면 꽃이 피는 날을 기다리게 될 것 같아요. 지고 나서도요.”

 

 

 

 

지고 나면 그 허전함이 남으니까, 내년에 꽃이 피기를 또 기다리게 되잖아요. 지훈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관린은 그 웃음을 마주했다.

 

 

 

 

“…….예뻐요.”

 

 

“그렇죠? 향도 좋고, 이래 봬도 식물학 전공했거든요. 내 자식이 칭찬받는 기분…….”

 

 

“아니. 지훈이요.”

 

 

“뭐라고요?”

 

 

 

 

고운 말을 하며 웃는 지훈은 예쁘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관린은 방금 한 말을 똑똑히 되풀이했다.

 

 

 

 

“지훈이. 예쁘다고요.”

 

 

 

 

정말 그랬다.

 

 

 

 

 

 

 

 

 

오후에는 남은 잔 작업들을 했다. 예쁘다고 내뱉은 이후로 지훈은 이상하게 관린과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대화는커녕 시선도 오가지를 못하니 분위기가 굉장히 불편해졌다.

 

 

 

 

“있잖아요.”

 

 

 

 

관린이 침묵을 깼다.

 

 

 

 

“지구는 어떤 곳이에요?”

 

 

“네? 아아.”

 

 

 

 

움찔한 지훈이 그제서야 관린을 돌아봤다.

 

 

 

 

“갈 만한 곳은 못 돼요. 이상 기후 때문에 사람들은 다 실내 기지에서 살거든요. 그래도 기지 안은 날씨가 그렇게 되기 전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해 놨어요.”

 

 

“기지 안은 어떤데요?”

 

 

“하늘이 파란색이에요. 그리고 인공 항성이 엄청 밝아요. 또……. 계절이 네 개예요.”

 

 

“계절이 네 개라고요?”

 

 

“네. 지금쯤 거기도 가을이겠네요.”

 

 

“여기는 봄하고 가을밖에 없어요. 가을에 저 항성이 가장 가까이 다가와요.”

 

 

 

 

관린은 투나드를 가리켰다. 은빛 별은 이제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보에서는 오늘 가장 가까이 온다고 했어요.

 

 

 

 

“……아름다워.”

 

 

 

 

지훈이 그렇게 말했다. 지구어인 것 같았다. 관린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요?”

 

 

“아름다워요.”

 

 

 

 

지훈이 우주어로 다시 말했다. 그는 보랏빛 하늘을 메우는 은빛 별을 멀거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훈.”

 

 

 

 

관린이 지훈을 불렀다. 지훈이 꿈에서 깬 듯한 눈을 한 채 돌아본다. 관린은 그의 어깨를 천천히 잡았다. 그리고 가까워졌다. 잠깐 멈칫하던 지훈은 이내 몸에 힘을 뺐다. 코끝이 닿을 정도가 되자, 자연스레 고개가 틀어졌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찬란한 은빛이 지훈의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눈이 감겼다. 지훈은 아이가 엄마를 찾듯 관린의 팔을 붙들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시야가 온통 기묘한 은빛이었다. 정신이 온통 몽롱했다. 순간의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이거 좀 봐요.”

 

 

 

 

지훈이 관린에게 작은 종잇조각을 내밀었다.

 

 

 

 

“뭔데요?”

 

 

 

 

받아든 종이에는 무언가 구불구불한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아, 이게 지구에만 있는 건가?”

 

 

 

 

지훈이 혼자 중얼댔다. 그런가 보네.

 

 

 

 

“하트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는 이 안이 빨갛게 칠해져 있어야 하는데.”

 

 

“무슨 뜻이에요?”

 

 

“사랑이에요.”

 

 

“예쁜 뜻이네요.”

 

 

 

 

관린이 답했다. 사실 예쁜 건 지훈이 더였다. 그런데 지훈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나 오늘 지구에 가요.”

 

 

“네?”

 

 

 

 

지훈이 한 번에 쏟아낸 말에 관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걸 깜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지훈이 그랬다.

 

 

 

 

“내가 지구에 가면요. 여기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올게요. 몇 년이 걸려도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안 갈 수는 없는 거예요?”

 

 

“말했잖아요. 72시간 뒤에는 그냥 소환된다고. 내가 가고 싶지 않아도 갈 수밖에 없어요.”

 

 

 

 

지훈은 조급하게 말했다. 어제 이후로 점점 멀어지는 투나드는 이제 하늘의 4분의 1 크기로 작아졌다. 넓게 보이는 하늘은 짙은 색으로 빠르게 물들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가면 어떡해요.”

 

 

“나도 어젯밤에 계속 이 생각만 했어요. 정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기에 꼭 돌아올 거예요.”

 

 

 

 

지훈이 발을 동동 굴렀다. 빛깔이 빠르게 변하는 하늘은 이제 완전한 감색이었다. 별이 몇 개 뜨기 시작했다. 그런 하늘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문득 발밑으로 시선을 옮긴 관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래알 하나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모래가 빛나요.”

 

 

 

 

관린이 숨을 몰아쉬며 그랬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 지훈은 울고 있었다. 투명한 눈물 방울이 속눈썹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는, 곧바로 다음 물방울에 밀려 떨어져 내렸다.

 

 

 

 

“……라이카 우주사관학교에 있을 거예요. 3027년까지는 라이카로 오면 돼요.”

 

 

 

 

지훈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을 뻗어 관린을 붙잡았다. 심장이 총에 맞은 새마냥 뛰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관린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지훈을 와락 끌어안았다. 지훈의 몸뚱아리는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니, 몸이 아니라 그의 옷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시간이 정 길게 느껴지면요.”

 

 

 

 

지훈이 한 걸음 물러났다. 말을 꺼낸 건 한 박자 늦게였다.

 

 

 

 

“그러면요. 오늘 저녁부터, 다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별을 가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 봐요. 밤에 하늘을 보면, 이 별들 중 하나에 내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모든 별들이, 다시 오르파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웃는 것처럼 보일걸요.”

 

 

 

 

그때 그건 별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작은 방울이 된 것 같을 거예요. 지훈은 눈물이 흔들리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 모습이 기묘할 만큼 맑았다. 관린은 그저 그 웃음만 따라하며 중얼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부터 생각했는데, 지훈 진짜 엉뚱해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훈의 발목 언저리에서 노란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그가 발목을 움찔했다.

 

 

 

 

“이제 가는 거예요.”

 

 

 

 

관린은 그 말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두 손으로 지훈의 뺨을 감쌌다. 잠시 고개를 숙였던 지훈이 그를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해국이 피는 날 다시 올 거예요.

 

 

 

 

“올 때 신호를 보낼게요. 여기서 있었던 일들,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으면 돼요. 알았죠?”

 

 

 

 

지훈은 관린을 잡은 손에 정신없이 힘을 주며 그랬다. 상황이 상황인데도 지훈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그러는 동안 그는 발목에서부터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사리진 곳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관린은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급하게 지훈을 끌어당겼고, 그도 순순히 끌려왔다. 입술이 부딪혔다. 그곳만 현실에서 뚝 떨어져나온 듯했다.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닮은 짠맛이 느껴졌다.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기분이 거대하게 몰려왔다. 사막이 완전히 금빛으로 바뀌는 순간, 맞닿은 감촉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방금까지의 온기도, 팔을 잡은 손의 촉감도 함께였다.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온기가 싹 사라졌다. 순식간에 관린은 어둠이 깔린 끝없는, 그 찬란한 사막에 거짓말처럼 혼자 남았다.

 

 

 

 

관린의 발밑에는 지훈의 하트 그림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

 

 

 

 

정신없이 달린 관린은 5분도 안 되어 기숙사 e동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 e동은 기괴하게 일렁이는 것 같았다. 오늘은 네가 왔을까. 네 말대로, 예고 없이 올 너를 기다렸는데. 한순간에 사막에 피어 한순간에 져 버린 너를 기다렸어. 이제, 나는 처음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삶 너머의 너를 찾는 날들만이 있을 뿐이지.

 

 

 

 

무슨 정신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는지, 문 앞에 섰는지도 몰랐다. 문을 열자 항상 깔렸던 목조 건물의 냉기가 아니라, 이상한 온기가 관린을 슬그머니 덮쳤다.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느껴질 정도로 떨렸다. 관린은 어딘가 낯설지 않은 온기를 이해하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그가 꺾어 내밀었던 레샨 줄기가 자꾸만 눈앞을 가린다. 눈을 떴다. 현실로 돌아오자, 새하얀 공용 침대 시트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돌아왔다. 익숙한 구불구불한 기호가 그려진 종잇조각이었다. 확인한 순간, 손발이 자꾸만 덜덜 떨리며 사고를 방해했다. 약속대로였다. 해국이 피는 날, 박지훈은 정말 예고 없이 라이관린에게 돌아왔다.

 

 

 

 

지훈이 그린 하트의 텅 비었던 속은 잡아먹힐 듯한 붉은색으로 가득 칠해져 있었다.

 

 

 

 

 

 

 

 

 

*해국: 식물계 피자식물문 쌍떡잎식물강 국화과의 꽃으로, 그 크기가 30~60cm이며 개화기는 7~11월 초이다. 관상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인용문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 그 별들 중 하나에 내가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어느 한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아저씨에게는 모든 별들이 웃는 것처럼 보일 거야. ……(중략) 그건 마치 내가 아저씨한테 별들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작은 방울들을 준 것 같을 거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中-

 

 

 

 

이제 나는 처음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삶 너머의 너의 이야기들을 찾는 날들이 있을 뿐이지.

 

-영화 ‘인터스텔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