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Mr.구미호씨
W. 판윙의 딸

 

 

0. 새식구

 

 

관린은 어느 날 길을 가다 구미호를 주웠다. 겨울이었다. 자신의 집주변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을 조금 치워보니 새하얀 여우가 있었다. 왠 여우지. 관린은 여우의 몸에 찬기가 돌아 자신의 품으로 감싸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 따뜻하게 수건으로 몸을 감싸준 다음에 안고 있었다. 잠시 잠에 든 것 같더니 머리를 꾸물거리더니 귀와 얼굴을 뿅 하고 내보였다. 몸집으로 봐선 새끼인 것 같았다. 관린은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맘에 드는지 여우는 눈을 감고 한참이나 관린의 손길을 즐겼다. 그리고는 꼬리를 살랑거렸다. 관린은 꼬리가 마치 아홉 개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촉감이 이상해 관린이 수건을 들추자 아홉 개의 꼬리가 보였다.

 

그게 지금의 지훈. 구미호다. 관린은 그 당시 지훈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정부에 맡겨야 하나 보호소에 맡겨야 하나 고민하는데 자꾸만 자신의 품을 파고들고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여우가 눈에 밟혀 그냥 자신이 키우기로 했다. 여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무작정 키우기로 한 자신이 무모하게만 느껴졌지만 적적한 집안에 조그마한 여우는 큰 힘이 되었다.

 

여우를 키우기로 한 관린은 곧장 새 식구로서 이름을 지워 주려 했다. 미미? 여우는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 이름으로 지은 강아지 일화가 생각났다. 그럼.. 음.. 지훈? 라이지훈 어때. 지훈아. 여우는 이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고개를 까딱였다. 똑똑하네 우리 지훈이. 관린은 웃으며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 지훈은 말썽쟁이

 

 

조용히 관린의 손길만 즐길 줄 알았던 지훈은 온갖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관린이 회사에 있을 시간이면 소파를 물어뜯기는 기본이고 집안을 헤치며 휴지 정글로 만들었다. 치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두 세 번 반복되자 화가 난 관린은 지훈의 앞발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지훈 잘못했어 안 했어.

 

지훈은 낑낑대며 나가려고 발버둥쳤다. 관린은 그런 지훈을 그대로 지훈의 보금자리 울타리 안에 넣어놓고 반성하라며 거실로 다시 나가 집안을 치웠다. 지훈은 머리로 울타리를 밀어보기도 하고 앞발로 툭툭 치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되겠는지 이빨로 울타리를 물었다. 결국, 마지막엔 관린이 가까워졌을 때 낑낑대며 반성했다는 식으로 굴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인상을 찌푸리던 얼굴을 피고 풉하고 웃었다. 너땜에 못살아. 지훈 다신 안 그럴 거지? 지훈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관린은 지훈을 울타리 밖으로 꺼내줬다. 그럼에도 돌아다니지 않고 자신만 쳐다보는 지훈에 관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지훈. 배고파? 배고프다는 말에 반응해야 할 지훈은 반응 안 하고 가만히 있자 관린은 더 수수께끼에 빠졌다. 그때 지훈의 다리가 총총 관린의 다리 근처로 갔다. 그리고 앞발을 들어 관린의 위로 가려 했다. 그제야 관린은 지훈이 자신의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훈 나한테 안기고 싶었어? 알았어. 일로와.

 

지훈을 안고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들었다. 구미호지만 어린아이인 지훈은 인간으로 변할 줄 몰랐다. 관린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친해지면 변하겠지 생각했다. 관린은 참 무덤덤하고 놀라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옆에 외계인이 있더라도 그런가 보다 할 그런 성격이었다. 지훈이 구미호임에도 관린의 자신의 간 걱정이 아닌 인간일 때 지훈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하였다. 동화책을 읽게 된 계기도 그거였다. 읽어주다 보면 인간으로 변할지 몰라. 집 한구석에 남아있던 동화책을 지훈이 물어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읽어주면 이해한다는 듯이 귀를 쫑긋거리고 어느 날은 졸린 지 졸고 있기도 하고 맘에 드는 부분이 있는지 앞발로 척 글씨에 손을 대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중에 지훈이 갑자기 책 쪽으로 도도 걸어갔다. 이빨에 책이 뚫리는지도 모르고 책을 가져왔다. 이제 그만 잘 시간이야. 아기곰들의 꿈에 대한 자장가 같은 책이었다. 지훈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동화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관린은 잠시 알바로 구연동화를 했었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지훈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맘에 드는 부분이 있는지 이번엔 앞발이 아닌 자신의 입을 가져가 책을 물어뜯었다. 관린은 어이없었다. 뜯어진 부분을 다시 관린에게 주고는 또 얌전히 관린이 읽어주길 원했다. 책을 물어뜯으면 어떡해 지훈아. 정말 못 말려. 눈동자가 푸르게 변해가는 지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읽어주자 좋은지 머리를 관린의 손에 부볐다. 하얀색 털 뭉치가 손에서 귀여운 짓을 하자 관린은 털 뭉치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털 뭉치는 색색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구미호가 참 순해.

 

 

 

  1. 지훈이는 304년 된 사람이래요​

 

 

지훈이 인간이 된 모습을 본 건 지난 여름이었다. 관린이 너무 더워 선풍기 앞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자 어디서 놀고 있던 지훈이 다가와 앞발로 관린을 흔들었다. 관린은 땀에 지쳐 지훈이 다가왔음에도 가만히 누워있었다. 지훈은 다급해져서 관린의 주변을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앞발로만 급히 흔들었다. 관린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지훈이 귀여워서 일부러 더 죽은 척을 했다. 그때 지훈이 멀리서부터 두 번 구르더니 몸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인간으로 변했다. 아직 서툴러 귀와 꼬리는 남긴 채 관린을 깨웠다.

 

관리,나.. 꽌리니.. 꽌린.. 잉.. 일어,냐..

 

말소리에 관린은 번쩍 눈을 뜨고 몸도 벌떡 일으켰다. 지훈이야? 관린은 인간으로 변한 지훈가 처음으로 마주했다.

 

엄청 어린아이일 줄 알았는데 지훈은 성인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관린보단 키가 작고 성인이라기보단 학생. 학생의 몸을 가져 보였다. 갈색 생머리가 찰랑거리고 깊은 눈매가 구미호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아름다웠다. 지훈의 모습은 누가 봐도 홀릴만한 경국지색의 미인이었다. 눈에는 눈물을 대롱대롱 달고는 관린을 쳐다보는 것이 관린의 죄책감의 쿡쿡 찔렀다. 안 죽어 나 안 죽어 지훈 뚝. 죄책감을 느낀 관린은 히끅히끅 울고 있는 지훈에게로 곧장 다가가 지훈을 안고는 달랬다. 지훈 미안해. 지훈은 관린의 목을 꽉 안고 죽지먀.. 꽌린.. 더 울었다. 그런 지훈이 귀여우면서 미안해서 다시는 이런 장난은 안 치기로 마음먹는 관린이었다. 뒤에 지훈이 다음에도 이런 장난치면 간을 빼먹겠다는 말을 관린은 마음속에 새겼다. 장난은 치지 말 것.

 

관린은 인간이 된 지훈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지훈은 관린옆에 발라당 누워서 시러. 모랴. 이 두 마디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이름은 맘에 들었어?라는 관린의 질문에 귀를 쫑긋 세우며 대답했다. 웅 맘에 드로. 여우인 지훈도 귀여웠지만 새침하게 맘에 든다고 말하는 지훈도 무지 귀여웠다. 지훈이는 왜 인간 모습 안 보여줬어 여태까지. 이런 귀여운 모습을 지금 본 것에 약간 서운함을 느낀 관린이 물었다. 귀차나. 아주 공주였다. 그마저도 사랑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우일 때 본능이 남아있는지 머리를 곧장 관린의 가슴팍에 부볐다. 그러다가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한 지훈이 빨리 떨어졌다. 나 잉간이지! 꽌린한테 안 안겨!

 

그부분은 괜히 서운했다. 인간이고 여우고 나한테 안기는 게 왜 뭐가 달라. 관린이 투덜거리자 지훈이 웃으면서 안대! 애기같잖아 나 이제 어른이라규!

 

관린은 거기서 또 궁금한 것이 생겼다. 지훈아 지훈이는 몇 살이야. 지훈이는 작은 손으로 꾸물거리며 자신의 나이를 셌다. 한참을 그러더니 알았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304샬! 우리 지훈이.. 많이 먹었구나..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관린은 몇샬이야?

 

관린은 30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훈의 눈이 땡그래지면서 모야 내가 나이가 더 많넹. 형이라구 불러.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웠지만. 그깟 형이라고 못 불러줄까 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불러줄게. 형. 지훈이형.

 

 

 

  1. 지훈과 외출하기(with 놀러갸기!)

 

 

지훈이가 여우일 때는 품에 안고 근처 편의점에 나갔다가 오는 게 전부였다. 관린이 보기엔 너무 작고 소중했으니까. 관린에게는 구미호가 아니라 둘도 없는 애기였다. 그에 비해 지훈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자신이 파묻혀 있었던 그 자리에 눈이 녹고 꽃이 핀 것을 우연히 보고 눈으로 덮여 있던 산도 꽃이 다 폈겠구나 하고. 관린은 아직 티비속에서 마트만 봐도 우와 거리는 지훈을 데리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 밖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만약 내가 손을 놓쳐서 잃어버리면! 횡단보도에서 뛰어다니면! 관린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고 싶어하는 지훈을 매일 떼놓고 어르고 달랬다. 지훈이 단단히 삐쳤는지 여우로 변해서는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관린은 다시 쩔쩔매며 지훈에게로 다가갔다.

 

지훈아 지훈아 나와바 지훈이 형 안 나올 거에요?

 

형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는 지훈이 보였다. 귀여움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뻔했다. 지훈아 좀만 더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주지. 관린은 조심스레 다가가 지훈에게로 손을 뻗었다. 지훈은 싫다는 식으로 관린의 손을 머리로 톡 치고 다른 방으로 도도 갔다. 고집도 세지. 결국 관린은 졌다는 식으로 지훈을 불렀다. 가자. 마트 가자 지훈아. 지훈은 바로 두번 굴러 인간으로 변해서는 관린에게 폭삭 안겼다. 꽌링.. 우리 지짜 나가?! 관린은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지훈을 보고 웃으며 그래 나가자 하면서 지훈을 만세 시켰다. 평소 입힐 때면 지가 입겠다고 막입다가 엉뚱한 쪽으로 옷을 입던 지훈이 나간다는 말에 손을 번쩍 들고 가만히 있었다. 맨날 좀 이래 봐라. 양말까지 꼬물꼬물 다 신은 지훈이 신발장에서 관린을 기다렸다. 꽌링! 빨리! 관린도 급하게 준비하고 신발을 신었다.

 

지훈아 내 손 놓으면 안 돼 알았지.

응 아랏어~

 

지훈은 관린이 몇 번씩 계속하는 당부를 한 귀로 흘리는지 자꾸만 관린의 손을 놓았다. 대신 관린이 지훈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여름이라서 더운데도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지훈은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관린은 몇 번째 마트 주변을 도는 지훈을 데리고 시원한 마트에 도착했다. 관린도 대형마트는 오랜만에 오는지라 그동안의 조금씩만 있던 생필품들을 다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차도 가져왔지. 지훈이 걸어가재도 차를 타길 잘했다. 곧바로 내려서 마트 주변을 몇 바퀴 도는 지옥을 맛보기도 했지만.

 

지훈은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찬 공기에 시원하다면서 자신의 볼을 두번 찹찹때렸다. 여러 가지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신기한지 몇 번씩 우와거렸다. 문득 이것저것 지훈이 막 집어넣었던 것들을 빼던 관린은 궁금했다.

 

지훈이는 300년 살았다며. 근데 왜 마트 처음 봐.

 

아 냐 산속에서 살아서 구래 꽌린이 냐 발견한 냘이 처음으루 산속에서 내려온 냘이야

 

아 그렇구나. 관린은 금방 수긍했다. 근데 지훈아.. 웅 왜? 막 담지마.. 어느새 수북이 쌓인 카트를 보며 관린은 한숨을 쉬었다. 지훈은 하나하나 다시 뺄 때마다 빼면 안 된다며 왜 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옆에서 열변을 토해냈다. 응 그래. 관린은 지훈의 말에 설렁설렁 대답하면서 다 다시 돌려놓고 갔다. 초콜릿만 몇 개고 젤리는 또 몇 개야. 지훈아 자꾸 이러면 간식 앞으로 금지한다. 과자를 한 움큼 집어넣던 지훈은 세상에서 제일 놀란 표정으로 과자를 다시 돌려놓았다. 꽌린 미워. 절루가. 앞장서서 가는 지훈을 따라 카트를 움직였다. 그리고 밤톨 같은 도토리가 움직일 때까지 지훈의 이름을 불렀다. 결국, 지훈이 눈꼬리를 척 올리고 왜부르냐면 물었다. 관린은 혼자서 생각했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스러워. 널 진짜 어떡하지. (지훈의 간식 안주면 관린의 간을 먹겠다는 꿍얼거림을 듣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트에 와서 지훈과 관린은 나름대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단 한 가지 지훈이 구미호인 것을 까먹은 거 빼고. 길가는 사람마다 지훈을 쳐다보고 아이들은 일부러 지훈의 얼굴을 보고 예뻐 형! 가질 않나. 시식코너 아줌마들은 지훈을 못 잡아 안달이었다. 지훈은 의외로 즐기는지 안되는 척하면서 아주머니들한테 얻어먹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관린은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아무것도 아닌데. 지훈을 뺏긴 기분이었다. 그래서 급히 지훈을 돌려세우기도 했다. 저 사람을 홀리는 눈. 지훈이 덜 예뻤으면 이렇게 사람이 안 꼬였겠지. 괜히 속으로 심술을 툭툭 꺼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지훈아.

아 시러.

 

그럼 지훈이는 여기서 살아 관린이는 갈 거야. 관린은 진짜 지훈을 두고 떠났다. 지훈은 그런 관린 뒤를 쫓으며 관린의 등을 주먹으로 파바박 때렸다. 나쁜 꽌린. 구미호라서 그런가 생각한 것보다 등이 아려옴에도 관린은 째려보는 지훈의 눈빛을 모른 척하고 물품들을 계산대에 올려놨다. 얼마에요. 아네. 짐들을 들고 차로 가자 지훈은 졸졸 쫓아와 자기도 들겠다며 관린의 짐을 휙 뺏어갔다. 구미호들 힘 짱쎄. 지훈은 짐을 상하로 움직였다. 여전히 얼굴은 뾰로통했다.

 

지훈아.

왜.

나중에 놀이공원 가자.

 

지훈은 눈을 크게 뜨고는 볼에 다시 살구를 장착했다. 뭐 생각해볼게. 어이구 못 살아 정말 저 새침은 타고났다니까. 둘은 각자 다른 이유로 웃으며 차에 탔다.

 

 

 

  1. 질투

 

 

요즘따라 관린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지훈은 밤새 관린을 기다리다 거실에 잠드는 것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어제는 지훈과 약속까지 하고 월차를 쓰려한 날임에도 회사 일이 남아있다며 지훈을 냅두고 밖으로 향했다. 지훈은 일이란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잘 볼 수 없는 관린에게 서운했다. 하지만 자신은 300살 먹은 어른이라며 관린을 더욱 이해하려 노력했다. 밥도 잘 먹고 (당근도 안 남겼다) 집안도 안 어지럽히고 관린 침대에 먼저 누워 자신의 온기로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런 지훈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린은 파리한 얼굴로 돌아와 바로 풀썩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많이 힘든가 봐. 바로 잠든 관린의 얼굴을 꼼지락거리던 지훈도 이내 잠이 들었다.

 

오늘은 잠들지 말고 꽌린에게 힘을 주쟈! 지훈은 아침 댓바람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하는 청소라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헷갈렸지만 어쩌저찌 잘해냈다. 그리고 조금 바보상자와 놀다가 시간을 보나 6시였다. 꽌린 오겠댜! 지훈은 후다닥 부엌으로 향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생고기를 찾아서 관린이 했던 것처럼 굽고 볶음밥도 도전해봤다. 약간 나 천잰가뱌. 한 입 간을 봤더니 너무 맛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 꽌린만 오면 돼!

 

지훈은 음식이 식고 식다가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은 12시. 너무 늦어져서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관린을 기다렸다. 그때 집 앞으로 검은 승용차가 라이트를 켜며 멈췄고 그 차에서는 관린이 내렸다. 꽌린이다! 지훈은 베란다에 찰싹 붙어 반대쪽 문을 여는 관린을 보았다. 그리고 그 문에서는 어떤 여자가 내렸다. 여자는 관린에게 몇 마디 말을 걸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호의를 보였다. 아무리 산속에서 혼자 지낸 지훈이라지만 이런 상황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여자 뭐야. 설마 애인?! 그럼 나눈!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는 지훈은 자신이 만들어둔 식은 음식을 보고 방으로 돌아와 구석으로 사라졌다.

 

관린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식어있는 음식이 보였다. 아 헐 늦는다고 말할걸. 지훈이 삐쳤겠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와 지훈을 찾았다. 인간으로 변한 후로는 잘 여우로 안 변하는데 여우로 변해서 잠을 청하는 지훈을 보고 어디 아픈가 생각했다. 그러나 몸에 열도 없고 잠만 색색 잘 자는 게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나한테 삐쳤나 보다. 지금은 자고 있으니까. 내일 풀자. 관린은 방구석에 자는 지훈을 자신의 품으로 데려와 침대에서 같이 잤다.

 

구석에 자고 있던 지훈은 아침에 일어나자 자신을 안고 자고 있는 관린이 어이없었다. 새근새근 자는 게 밉기도 하고 당연히 관린을 자신의 짝으로 생각하고 있던 지훈은 괘씸해서 관린을 자신의 앞발로 툭툭 때렸다. 관린이 그 몸짓에 일어나려 하자 재빨리 방에서 나와 소파 밑으로 숨었다.

 

어디갔지..

 

어딨어 지훈아. 지훈아? 일어난 관린은 허전한 자신의 품을 보고 바로 지훈을 찾았다. 몸을 일으키고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지훈의 이름만 계속 불렀다. 나쁜 꽌링 흥이다. 메롱. 지훈은 계속 소파 밑에 누워 관린을 저주했다. 아무리 불러도 되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관린은 그제야 눈을 뜨고 침대에서 엉덩이를 뗐다. 지훈아 어디 갔어. 어제 내가 늦게 들어온 건 미안해. 지훈아? 지훈아. 관린은 침대 밑부터 화장실 거실까지 다 뒤졌다. 점점 조급해질 때 소파 밑에 보이는 하얀 털 뭉치가 그를 안심하게 했다. 왜 거기 있어 지훈아. 내가 잘못했어. 나와봐 얼굴 보여줘 응? 아무리 관린이 설득을 해도 들은 척 안 하는 지훈에 관린은 어떡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다행이지. 아마 이러고 내가 회사 갔으면 영영 얼굴 못 볼 뻔했네.

 

지훈은 소파 밑에 누워서 어쩌라고를 시전했다. 관린이 무슨 말을 해도 아 몰라 안 들려. 그래도 계속 미안하다 하는 관린 때문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꽁기한 마음이 조금 녹자 꼬리를 바깥으로 내밀고 조금씩 앞발을 밀어 나왔다. 관린은 지훈이 나왔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지훈을 껴안았다. 지훈은 온몸으로 버둥거리며 관린의 품에서 나오려고 애썼다. 관린은 그런 지훈이 당황스러워서 일단 놓아줬다.

 

지훈아 아직 화 안 풀렸어?

 

지훈은 두 바퀴 구르고 인간으로 변해서 관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잘못한 게 모야. 관린은 말까지 더듬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말했다. 일단 늦는데 말 안 한 거.. 그리고. 그리고 또 뭐. 그리고.. 없는 것 같은데.. 미안해 지훈아. 지훈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없다고? 다시 관린을 노려봤다. 어 그러니까 지훈아.. 관린은 손에 땀이 찼다. 마치 애인에게 잘못하고 쩔쩔매는 자신 같았다. 지훈은 어젯밤 그 여자와 믿기 힘들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관린을 생각하자 서글퍼졌다. 당황한 관린을 뒤로 하고 여우로 변해서 방구석에 누웠다. 살아서 무얼 하나. 허망햬. 갑자기 기운이 없어진 지훈을 보자 관린은 이제 답답했다. 밥 먹으라고 해도 묵묵부답. 다 저를 위해서 하는 행동임에도 무시당하자 화도 나기 시작했다. 그게 쌓이고 쌓이자 결국 관린은 지훈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그럼에도 심드렁한 지훈을 보고 더욱 화가 난 관린은 네 맘대로 해. 지훈에게 쌍방향 무시를 예고했다. 지훈도 그런 관린은 처음 봐서 당황했지만 제 짝을 잃은 이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힘없이 몸을 축 늘렸다.

 

관린이 예고한 쌍방향 무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저에게 관심 없이 멍하니 창문만 보는 지훈과 지금 이 상황이 신경 쓰이는 건 저 하나뿐이니까. 깊은 밤이 찾아올 때까지 지훈은 말 한마디 없이 음식도 일절 먹지않았다. 관린은 지훈이 어디 아픈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한 선언은 뒤로 한 채 지훈의 앞에 섰다.

 

지훈아 미안해. 어디 아파?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다정한 음성에 새벽 구미호 감성 왈칵 터진 지훈은 두 바퀴 구르고 인간으로 변해 관린에 가슴팍을 쳤다.

 

냐 버리꾸

따른 여쟈랑

늦은 시간꺄지

 

서럽고 뒤죽박죽인 지훈의 머릿속 탓에 말이 횡설수설 나왔다. 다른 여자? 널 버려? 관린은 눈물 흘리는 지훈을 황급히 안아 들고 그게 무슨소리냐고 물었다.

 

킁.. 내,가 뱝했,눈데.. 다른 여쟈랑.. 차에,차에서..

 

또 서러워져서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지훈에 놀라서 거의 품에 가두고 달랬다. 그러면서도 한쪽은 머리를 팽팽 돌리면서 지훈의 말을 이해하려 했다. 아 설마 누나를? 지훈에게 아직 말 못한 사정이 하나 있었다. 같은 직장상사가 바로 저의 친누나임을. 그때 나 태워준 거 보고 그러는 거야? 뭐야. 지훈 너무 귀엽잖아. 새로운 사람한테 관심이 무지하게 많은 지훈에게 누나를 보여줬다가 누나가 좋다고 홀라당 넘어가 버릴까 봐 가족 얘기 하나도 안 했는데.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거 질투인가. 귀엽네. 기분도 좋고. 어느 정도 달랬을 때 관린은 사실을 말했다.

 

지훈아. 사실은 그 여자 우리 누나야.

 

지훈은 울다가 눈물이 쏘옥 들어갔다. 뭐라구? 나 오늘 뱝두 안먹구 힘두럿는데! 그냥 누나였담 말야?! 지훈은 급속도로 빨개져 오는 얼굴에 관린을 밀치고 다시 여우로 변해 소파 밑으로 숨었다. 어떡해! 나 모한거야! 지훈은 자신의 흰털도 빨갛게 보이는 것 같았다. 관린은 크게 웃으면서 지훈을 불렀다. 지훈이 그럼 이제 밥 먹자! 배고프잖아 지훈아~ 이 배는 또 왜 정직한지. 관린의 말에 꼬르륵거리는 배가 정말 미웠다. 그래 꽌링 짝이 나면 된 거지. 앞발을 쏘옥 다시 바깥으로 내밀었다. 샤람이 뱝은 먹어야징.

 

꽌린

다룬 여쟈 생기면 꽌린 간 빼먹고 진짜 샤람될거야

!!!!!

 

지훈의 눈이 푸르게 뜨는 것을 보자 관린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 알았어 지훈아. 지훈은 다시 순둥해져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내일 간이나 사올까. 아직 내간은.. 술이나 와장창 마실까. 지훈은 잠시 고민에 빠진 관린의 팔을 잡고 먹으라며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관린은 고민을 날려버렸다. 에이 장난이겠지.

장난아닝뎅. 꽌린 내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