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지구
W. 이브피아제

 
 

※ 이탤릭체는 중국어 또는 대만어입니다.

 

 

 

 

공항을 나서자 뜨끈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달의 인력에 기울어졌던 자전축이 수직이 되며 대만은 더 이상 푹푹하게 찌듯이 더운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북위 37도와 24도의 차이는 의미가 있었는지 서울보다 높은 기온에 지훈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더워?”

“조금? 근데 괜찮아.”

 

관린이 템플 동아시아지부에 머무른 지 3년째 되는 가을에 관린과 지훈은 함께 대만에 갔다. 거주를 완전히 옮기기 위해서는 기존 템플 명부에 등록된 이름을 지우고 새 템플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훈이 대만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템플에서 자라 템플의 사람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지훈을 위해 관린이 옮기기로 했다(물론 한국 치킨도 한 몫 했을 가능성이 있다).

 

둘은 아직 각인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된 지 곧 2년이었지만, 각인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부장은 아직도 미련을 보였지만, 지훈이 쓰러지고 한참 서먹하다가 둘이 홋카이도에 다녀오는 등 템플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나서는 말을 아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든 각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훈과 관린은 누가 보기에도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다. 각인을 하지 않은 채로도 가이딩 효율은 충분했고, 지훈은 가이딩이 자주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훈 이외에는 누구에게나 60% 정도의 효율을 보이는 관린은 퍼블릭 가이드로서도 의미가 있었다. 사실 어떤 템플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을 인력이었다. 그런 관린이 동아시아지부로 명부를 옮기겠다고 했을 때, 지부장은 여유롭게 승낙했지만 관린이 나가고 나서 발을 구르며 기뻐했다. 지훈에게까지 휴가를 주며 같이 다녀오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둘은 함께 대만에 왔다. 일본이나 가까운 중국 정도는 임무로 가 봤지만 대만은 처음인 데다 관린의 나라에 왔다는 생각에 지훈은 사실 꽤 들뜬 상태였다. 건물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공기에서 풍기는 냄새가 달라 신기했다.

 

“관린아, 너 한국 처음 왔을 때, 공기도 뭔가 달랐어?”

“응? 아, 응. 공기 냄새가 달랐어.”

“나도 그래. 진짜 신기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훈의 표정이 놀란 토끼 같아 관린은 씩 웃었다. 공항 앞에는 템플 대만지부의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템플의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어느 지부를 가든 템플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퓨필과 스콰이어는 애초에 다른 지부에 방문할 일도 거의 없었지만, 신변 보호를 위해 반드시 템플에 머물러야 했다. 나이트는 권장 사항일 뿐 일반적인 숙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만 템플과 이능력자에 대한 태도가 반드시 호의적인 건 아니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템플과 달리 일반 숙소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므로 대부분 템플을 선호했다.

 

나이트 라이, 너무 오랜만인 거 아니야?”

나이트 저우, 네가 일부러 왔어?”

그야 당연하지. 네가 파트너를 데리고 온다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오겠어?”

 

기다리던 대만지부의 센티넬 나이트가 관린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대만어를 모르는 지훈은 눈동자를 굴리며 얌전히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네 파트너야? 동아시아지부가 애지중지한다는 엄청난 센티넬이라더니 토끼같이 귀엽기만 한 것 같은데.”

실례야, 야오린. 지훈은 엄청나다구.”

 

관린은 피식 웃고서 지훈에게 야오린을 소개했다.

 

“형, 이쪽은 저우야오린周姚淋이야. 대만지부의 센티넬 나이트야. 야오린, 이쪽은 박지훈. 동아시아지부의 센티넬 나이트야.

반가워요. 관린이 동아시아지부에서 파트너를 만났다니 기뻐요.”

“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야오린과 악수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관린과 지훈이 뒷좌석에 나란히 타자, 운전석에 앉은 야오린이 관린을 돌아보고 물었다.

 

템플로 갈 거지? 네가 쓰던 방 아직 그대로 있어.”

아냐, 야오린. 템플에는 잠깐 들르기만 할 거야. 우리는 호텔을 예약해 놨어.”

? 템플이 아니라? 호텔이라니괜찮겠어?”

. 괜찮아.”

 

야오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관린의 단호한 표정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왜 그래?”

“아냐. 호텔로 간다니까 그러네.”

“으응. 근데… 둘이 많이 친했어?”

“응.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템플에 들어왔을 때 야오린이 날 많이 챙겨줬었거든.”

“그랬구나. 좋은 사람이네. 같이 식사라도 하면 좋겠다.”

 

야오린의 운전은 깔끔하고 빨라, 한 시간 정도를 달리자 템플 대만지부에 도착했다. 관린과 지훈이 차에서 내려 대만지부에 들어가자, 지부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쏟아졌다. 지훈에게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었다. 그제야 지훈은 깨달았다. 관린이 명부를 옮긴다는 건 동아시아지부의 입장에서 대환영인 만큼 반대로 대만지부에서는 떨떠름한 일이었다. 동아시아지부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여움만 받으며 자란 지훈에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낯설고 긴장되었다. 긴장한 지훈이 침을 꿀꺽 삼키자 관린이 손을 잡아왔다.

 

“괜찮아, 지훈.”

 

언제나처럼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 지훈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지훈은 관린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명부를 옮기기 위해서는 지부장을 만나야 했다. 관린이 손을 잡은 채 지훈과 같이 가려고 하자, 야오린이 말렸다.

 

관린, 지부장님이 굉장히 화가 났어. 네 파트너와 같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여기 혼자 두기도 좀 그런데.”

내가 같이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으음…….”

“왜 그래?”

“아, 지부장님은 일단 나 혼자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야오린이 같이 있어주겠다는데… 괜찮겠어?”

“응, 그럼. 괜찮아.”

“금방 다녀올게.”

 

다시 한 번 손을 꼭 잡아주고 관린은 혼자 지부장실로 향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지부장은 관린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뒷모습에서는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관린은 그런 지부장의 뒤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록 관린이 아무 반응이 없자, 참다못한 지부장이 헛기침을 했지만 관린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지부장은 돌아보며 버럭 화를 냈다.

 

나이트 라이관린!”

, 지부장님.”

들어왔으면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나이트 라이관린, 템플 대만지부에 돌아왔습니다.”

…….”

 

태연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인사에 지부장은 할 말을 잃었다. 대만 지부장은 관린이 명부를 옮기겠다는 연락을 받고 펄펄 뛰었다. 각인한 파트너를 구했다면 몰라도 각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사랑에 빠졌다고 명부까지 옮기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관린이 돌아오면 어떻게든 설득하여 말릴 생각이었기에 기를 꺾으려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이트 라이, 정말 명부를 옮길 생각인가?”

, 지부장님.”

왜 굳이 명부까지 옮기려고 하는 건가? 파견 기간은 얼마든지 늘려 줄 수 있네. 이번처럼 파트너와 가끔 대만에 머무르는 것도 좋고.”

죄송합니다. 벌써 결심한 일입니다.”

아니, 대체 왜! 파트너라고 하지만 각인도 하지 않은 상대 아닌가? 명부까지 옮겼다가 다른 사람과 각인하기라도 하면 그 때는 어쩌려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다른 사람 운운하는 지부장의 말에 관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고, 관린의 싸늘한 표정에 지부장은 말문이 막혔다.

 

, 나이트 라이. 그러지 말고 한번만 더 생각해보게. 기왕 파트너와 같이 왔으니 휴가 동안은 같이 대만도 다녀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나가 보도록.”

지부장님!”

크흠!”

 

다시 등을 돌린 지부장은 관린이 부르건 말건 꿋꿋이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관린은 한숨을 쉬며 지부장실을 나왔다. 일단 의사를 전했으니 대만을 떠나기 전에 다시 들러 확실하게 명부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관린은 긴 다리를 빠르게 놀려 지훈과 야오린을 찾아다녔다. 휴게실에도, 식당에도 없어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관린이 쓰던 방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지훈!”

 

뛰다시피 해서 도착한 관린이 문을 벌컥 열자, 웃느라 얼굴이 발개진 지훈이 관린을 맞이했다.

 

“왔어?”

“어, 응. 뭐해?”

“여기 네가 쓰던 방이라고 야오린 씨가 데려와줬어.”

“응. 그렇긴 한데….”

“옛날에 어땠는지 얘기도 해 줬어. 너, 어릴 때엔 엄청 성격 나빴다며?”

“뭐어?”

“야오린 씨가 흉내내줬는데 너무, 웃겨서, 푸하하!”

관린, 걱정했어? 내가 네 파트너를 괴롭히기라도 할까봐?”

, 아니그런데 내 흉내라니 대체 뭘 한 거야?”

그건 비밀이야.”

 

어안이 벙벙한 관린을 앞에 두고 야오린과 지훈은 배를 잡고 웃었다. 관린은 그래도 지훈이 웃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관린아, 명부는 옮겼어?”

“그게…. 아무래도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아.”

“안 된대?”

“그냥,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하도 그래서. 다음에 다시 오자.”

“으응, 알았어.”

야오린, 고마워. 지훈을 챙겨줘서.”

소중한 사람이잖아. 네가 명부를 옮기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이해해줘서 고마워.”

또 만나자. 나중에 한국에도 놀러 갈게.”

그래, 그때는 내가 마중 나갈게.”

 

관린은 웃으며 야오린과 인사하고 템플을 나왔다. 둘은 미리 불러둔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낯선 이국의 풍경에 지훈은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즐거워했다. 그런 지훈의 어깨를 감싸고 볼에 입을 맞추니 입 맞춘 자리가 발그레해졌다.

 

관린이 예약해 둔 호텔은 호화스러운 최고급은 아니어도 깔끔하고 세련된 고급 호텔이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지훈은 푹신하고 넓은 침대에 늘어졌다. 비행의 피로와 대만지부에서의 긴장이 이제 몰려오는 눈치였다.

 

“관린아, 짐은 나중에 풀고 조금 쉬자 우리.”

“많이 피곤해?”

“조금?”

“그럼 쉬고 있어. 짐은 내가 정리할게.”

“그러지 말고∼. 난 너랑 같이 쉬고 싶단 말이야.”

 

관린은 지훈이 저렇게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애교를 부리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웃으며 지훈의 옆에 누웠다. 지훈은 쪼작쪼작 움직여 관린의 품에 파고들었다. 샴푸도, 바디워시도 모두 같은 제품을 쓰는데도 묘하게 상쾌한 관린의 체향을 코로 흠뻑 빨아들였다. 관린의 두 팔이 부드럽게 지훈을 끌어안았다. 닿아있는 피부로 조금씩 가이딩이 흘러들어왔다. 달콤하면서 시원한 감각에 저절로 기분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피로가 풀리면서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지훈의 몸에 힘이 빠지고 숨소리가 커졌다. 새근새근 잠이 든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관린도 눈을 감았다.

 

 

다음 날부터 관린은 지훈을 이끌고 대만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역시 이제 상당한 고급 음식이 된 지파이를 먹으며 후라이드 치킨과 지파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버블티를 고르지 못하는 지훈을 위해 다섯 잔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만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 둘은 스펀에 갔다. 풍등을 날리는 사진을 본 지훈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였다. 막상 관린도 풍등을 날려 본 적은 없었다. 달이 사라지고 살아남기에 급급해진 지구에서 해외여행은 극소수만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고, 스펀의 풍등도 예전처럼 매일매일 수십 수백 개가 띄워지지는 못했다. 밤하늘에 띄워 보고 싶다는 지훈의 말에 둘은 일부러 어둑한 시간에 도착했다. 원하는 소원에 따라 풍등의 색이 달라야 한다는 말에 지훈은 한참을 고민했다. 입을 꾹 다물어 턱이 호두처럼 몽글몽글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 꼭 껴안고 싶었지만 지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

 

“관린아, 너는 뭘로 할 거야?”

“글쎄…. 뭐랑 뭘 고민하고 있는데?”

“평안, 건강, 행운, 성공, 연애…?”

“그럼 두 개 띄울까? 하나면 외롭잖아.”

“헤헤, 그럼 그럴까?”

 

지훈은 4면이 전부 다른 색색의 풍등을 하나, 그리고 연애운을 비는 분홍색으로 다 채운 풍등을 하나 골랐다. 그걸 보던 풍등을 파는 사람이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연애가 제일 중요하신가 보네요. 풍등은 영험하니까 꼭 잘 될 겁니다.”

“예?”

“풍등은 영험하니까 연애가 잘 될 거래, 형.”

“아하하…. 고맙습니다.”

 

지훈은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둘은 풍등을 하나씩 들고 천천히 걸었다. 달이 사라지고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에는, 예스러운 기차가 다니는 철길에서 풍등을 날렸다고 했다. 하지만 대격변으로 철길은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은 가까운 공터에서 풍등을 날려야 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 가장자리에는 함부로 숲에 들어가지 않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울타리에 드문드문 등이 걸려 있었다. 가로등처럼 높지도, 밝지도 않은 등이라서 공터는 어두웠지만 그런 만큼 밤하늘이 잘 보였다. 오히려 대격변을 거치며 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인구는 감소해서, 공해가 크게 줄어들어 별이 훨씬 잘 보인다고 했다. 그 말대로인지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지훈은 한껏 고개를 젖혀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비행기로 3시간 정도니까 별로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의 모양이 약간 다르네.”

“정말?”

“응. 저기 봐봐. 저 별자리가 한국에서는 좀 더 이쪽, 이쪽에 있거든.”

“그렇구나. 전혀 몰랐네.”

“밤하늘을 자주 봤거든. 사진이나 영상 같은 것도. 달이 있을 때의 하늘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플라네타륨도 갔었어. 가본 적 있어?”

“아니, 없어.”

“굉장히 신기해. 다음에 꼭 같이 가보자.”

“그래, 그러자.”

 

여상스럽게 다음을 약속하는 말이 달콤했다. 가져온 라이터로 조심스럽게 풍등에 불을 붙이고, 풍등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다 손을 살짝 놓으니 춤추듯 살랑거리며 풍등이 떠올랐다. 분홍색 풍등에 불꽃이 비쳐 일렁거렸다. 풍등이 높게 떠오를 때까지 둘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풍등이 멀리 사라졌을 때, 지훈이 입을 열었다.

 

“있지, 관린아.”

“응?”

“달을 선물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대만에는 없나보다. 한국에는 그런 게 있어. 달이 사라져서 지구가 이렇게 됐잖아.”

“그렇지.”

“달이 사라지기 전의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푸르고, 풍요롭고, 아름다웠다고 해. 달이 지구의 위성이라고, 마치 지구에 달이 딸려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지구도 달이 없으면 안 됐던 거야.”

“…….”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달 모양의 무언가를 선물하는 거야. 당신은 내게 달과도 같다고. 당신이 없이는 나도 지금의 지구처럼 될 거라고.”

“…….”

“이거, 고르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 너에게 보름달이 어울릴까, 초승달이 어울릴까, 어떤 걸 선물하면 좋아할까….”

그리고 지훈이 품에서 꺼낸 것은 은색으로 빛나는 목걸이였다. 목걸이 끝에는 가느다랗고 긴 초승달이 달랑거렸다.

“…너는 내 달이야, 관린아.”

 

 

관린은 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달은 관린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사라졌고, 관린의 세상은 달이 없는 게 당연했다. 교육과정에서 달이 사라지기 전의 하늘, 달에서 찍은 지구를 보긴 했지만 그런 것에 어떤 감상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지훈이 밤하늘의 모양이 다르다고 했을 때도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훈이 달을 선물하며 너는 내 달이라고 고백할 때 처음으로 관린은 달과 지구에 대해 생각했다. 달이 사라지기 전, 인간은 우주를 날아 달에 발을 디뎠다. 달에서 바라본 지구는 말 그대로 푸른 보석처럼 빛났다고 한다. 어릴 때 교육용 자료로 봤던 그 사진이 떠올랐다. 지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달이 있었기 때문이고….

 

“마, 마음에 들어?”

 

관린이 멍하니 목걸이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없자 지훈은 긴장했는지 더듬거렸다. 그제야 정신이 든 관린은 말없이 지훈을 꽉 껴안았다. 가슴이 벅차올라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껴안고 있자 지훈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팔을 풀고 관린은 목걸이를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진짜? 다행이다! 지금 해 볼래?”

“지훈이 선물해 준 거니까, 지훈이 직접 걸어줘.”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자 지훈이 주저하다 양손을 뻗어 목을 껴안듯 하고 목걸이를 걸었다. 보지 않고 하려니 잘 되지 않는지 끙끙대다 “됐다!”하고 환성을 질렀다. 그 순간 관린은 다시 지훈을 꼭 껴안고 속삭였다.

 

“고마워, 지훈. 정말 많이 사랑해.”

“…나도. 나도 진짜 많이 사랑해.”

 

그러고 나서 지훈은 목걸이를 한 관린을 이리저리 감상하더니 대만족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내가 골랐지만, 진짜 잘 어울린다.”

“그런데, 보름달이랑 초승달 중에 왜 초승달을 골랐어? 아까 고민했다며.”

“어? 그건….”

“왜에, 뭔데?”

“초승달이 보름달보다 더 음… 요염하게? 아름답잖아. 그리고… 보름달은 꽉 차 있지만 초승달은 그게 아니니까, 내가 채워줄 자리가 있었으면 했어.”

조곤조곤 말하는 고백을 들으며 관린은 부끄러운 듯이 웃는 지훈이야말로 초승달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스펀에서 돌아온 다음날 관린은 다시 템플로 향했다. 야오린은 임무 중이라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지훈이 고집을 부려 결국 같이 갔다. 여전히 대만지부의 분위기는 냉담했다.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명부를 옮기겠다는 관린도, 각인도 하지 않았으면서 관린을 데려가는 지훈도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훈은 지난번과 다르게 태연했다.

 

나이트 라이관린, 지부장님이 들어오라신다. 같이 온 사람도 함께.”

같이?”

그래. 싫다면 돌아가.”

“지훈, 지부장님이 같이 보자는데… 괜찮겠어?”

“응, 당연하지. 같이 가자.”

 

지부장은 이번에는 의자에 앉은 채 굳은 얼굴로 둘을 맞이했다. 날카롭게 생긴 얼굴을 굳히고 있으니 더 싸늘한 표정이었다.

 

나이트 라이관린과 그의 파트너가 왔습니다, 지부장님.”

나이트 라이관린, 인사드립니다.”

“나이트 박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템플 대만지부장 천웨이팅陳偉霆이네.”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은 지부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훈을 쳐다보았다. 관린이 막 얘기를 꺼내려는데 지훈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외치듯 말했다.

 

“뚜에부치! 빠이투, 투어러!”

 

관린은 깜짝 놀랐다. 성조도 엉망진창에 더듬기까지 했지만 미안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라는 말이었다. 지부장도 얼이 빠져 지훈을 보고 있었다.

 

“관린아, 통역 좀 해 줄래?”

“어? 응.”

“나이트 라이관린이 템플 대만지부의 소중한 일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관린은 제게 달과도 같은 사람이에요. 부디 허락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지훈은 지부장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지훈의 말을 통역하자 지부장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피식 웃었다.

 

그 목걸이는 자네 파트너가 선물한 건가?”

? .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겠군. 명부를 옮겨주겠네.”

지부장님도 이걸 아시나요?”

달을 선물하는 것 말이지? 알고말고. 아직 각인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덜컥 명부를 옮기는 걸 반대했던 건데, 달을 선물할 정도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자네 파트너에게 자네를 잘 부탁한다고 전해주게.”

 

관린이 지부장과 대화를 나눌 동안 옆에서 긴장한 채 서 있던 지훈은 관린이 눈을 마주치자 급히 소곤거렸다.

 

“관린아, 뭐라셔? 옮겨 주신대?”

“응. 그리고 지부장님이 날 잘 부탁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지훈은 그제야 안심한 듯 지부장을 보며 활짝 웃었다. 바로 템플 대만지부의 명부에서 나이트 라이관린을 삭제하고, 지부장이 직접 둘을 배웅하러 나섰다.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로 지부장이 직접 배웅하자 냉담하던 분위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지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 인사치레는 됐네.”

아닙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자네도 동아시아지부에서 잘 지내길 바라네.”

 

오랜 시간을 보낸 대만지부를 이제는 정말 떠난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관린은 고개를 깊이 숙여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숙이자 목에 걸린 달이 찰랑거렸다. 그 작은 존재감이 잠시나마 허전해진 가슴을 꽉 채웠다. 너는 내 달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지훈을 떠올렸다. 각인을 하지 않았어도 오래 전부터 지훈이 관린의 눈雪이었듯, 관린도 앞으로 영원히 지훈의 달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