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W. 모드

 

 

 

“아, 너구나. 네 번째.”

 

“..네?”

 

“내가 벌어온 돈으로 먹여 살리는 애. 네가 네 번째라구.”

 

 

그게 둘의 첫 대화였다.

 

지훈은 오늘 저녁 맛있더라, 하는 말투로 그런 말을 했다. 그런 얼굴로, 그런 말투로 하는 삐딱한 말은 이게 악의가 있는지 그냥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보통이라면 백퍼센트 비아냥거리는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어쩐지 백퍼센트로 다가오지 않았다. 무표정임에도 미묘하게 선해 보이는 인상 때문일까.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그 가벼운 말투 때문일까. 관린은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A엔터 소년가장. 박지훈의 별명 중 하나다. 중소 중의 중소였던 A엔터의 신인개발팀의 신의 한 수. A엔터는 배우 전담 소속사가 아니다. 원래도, 지금도. 아이돌 기획 전문 엔터테인먼트다. 그런 소속사에서 유일하게 뜬 연예인이 배우 박지훈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지훈의 말처럼 관린은 네 번째였다. 지훈이 벌어온 돈으로 띄우려는 아이돌.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디션이 아닌, 캐스팅이었다. 박지훈을 캐스팅한 전설의 A사 신인개발팀의 두 번째 신의 한 수였다. 적어도 얼굴만 보면 그랬다. 지금 같은 가요계에서 솔로는 경쟁력이 없다지만, 관린은 무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해도 팬이 붙을 얼굴이었다. 신인개발팀은 그렇게 생각했다. A사는 박지훈을 캐스팅한 팀을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관린의 얼굴을 보자 확신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 포스트 박지훈을 만들겠다고.

 

그런 상황에서, 관린이 지훈의 맘에 들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미소는 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훈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관린을 아래서부터 쭉 훑었다. 관린은 본 적도 없는 오디션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하나 가시를 바르는 듯한 눈빛. 정전기가 오르는 듯한 느낌. 발끝부터 올라온 시선이 맞닿았을 때,

 

“두세 번째보단 훨씬 낫네. 또 보자.”

 

그 말이 관린의 귀끝까지 붉게 만든 것도 모르고 어깨를 툭툭 치며 훌훌 사라졌다.

 

 

 

***

 

A엔터에서 택한 관린의 프로모션은 두 종류였다. 하나, 라이관린의 얼굴. 둘, 박지훈의 얼굴. 뮤직비디오도 그 법칙에 충실했다. 관린의 얼굴을 주로 담은 퍼포먼스 버전과 지훈의 얼굴을 주로 담은 드라마 버전으로 기획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깜짝 놀랐지. 보나 마나 까일 줄 알았는데.”

 

지훈의 매니저를 맡았던 정 실장이 관린에게 무용담을 늘어놨다. 지훈의 표현으로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지훈이 안 한다고 못을 박았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찍을 기력이 없었다. 계약상 을이라지만, 그래도 A엔터 소년가장이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자질구레한 것이 맞았다. 심지어 신인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면 더. 정 실장은 1%의 예스를 기대하고 물어봤는데, 돌연 오케이를 하는 바람에 진짜? 진짜지? 하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왜 한다고 그랬대요?”

 

“몰라? 야 뭐가 됐든 대박인 거야.”

 

진짜 너 제대로 기회 잡은 거다. 잘할 수 있지. 기운을 북돋기보다는 확답을 받으려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온 기횐데, 잘해야죠.

 

“그러니까 얼굴 좀 풀어 인마.”

 

정 실장은 첫 촬영을 앞두고 딱딱하게 굳은 관린에게 껌이라도 씹어보라며 자일리톨을 건넸다. 껌을 씹고 있자니 머릿속에 딱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시계 초침처럼 박자를 맞췄다. 오랜 습관이다. 머리를 울리는 소리가 주는 안정감. 딱딱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촬영장을 둘러봤다. 온통 정신이 없다. 겨우 첫 번째고 앞으로 이런 곳에서 학교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학교보단 한결 낫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좀 풀리는 듯했다.

 

연습 8개월 만의 데뷔. 제대로 준비가 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이르다. 관린은 무대를 빨리 서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벌써 무대라니…회사에 처음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땐 사긴가 했다. 랩을 하고 싶어 오디션을 준비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타이밍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 꼭, 꼭 연락주세요.

 

A엔터? 처음 들어보는데. 명함을 받고 집에 와서 네이버에 검색했을 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지훈 소속사? 와, 대단한 거 같긴 한데…배우 소속사 아닌가? A엔터 밑으로 쭈르룩 나오는 드라마 제목들과 박지훈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봤다.

 

잘생겼네….

 

관린은 문득 누나가 <사춘기>에서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거실을 오가며 드문드문 보였던 청량한 얼굴도 어렴풋 떠올랐다. 박지훈이랑 같은 소속사라고? 관린은 홀린 듯 명함 속 번호를 꾹꾹 눌렀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까 명함 주고 갔던 걔라고?

 

– 네, 신인개발팀 이지원 팀장입니다.

 

관린의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받았다.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머릿속이 엉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원래 말을 고르지 못할 때는 핵심이 제일 중요한 법이다. 그래서 관린은 다짜고짜 ‘저 근데 랩하는데요’ 했다. 그리고 신인개발팀의 말에 홀려 2주 후 계약했다.

 

관린은 습득이 빨랐다.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했다. 데뷔날짜가 생각보다 일러진 건 회사의 자금 사정도 있었지만 관린의 춤이 훌쩍 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너 이제 데뷔해도 되겠다’가 그저 칭찬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있지 않아 진짜 데뷔 날짜를 통보받았다. 첫 녹음, 첫 촬영. 열아홉의 소년 앞에 모든 처음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잘했다 그 저기야. 화면도 잘 받네.”

 

최 감독의 말은 첫 촬영을 끝낸 관린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관린은 연예인 체질이었다. 카메라도 잘 받았고, 표정도 좋았다. 얘 뜬다. 최 감독은 확신했다. 마스크는 물론이고, 확실히 몸을 쓸 줄 아는 애였다. 특유의 스웨그가 있었다. 이 판에서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다. 칭찬이 짜기로 소문난 최 감독은 망설임 없이 잘했다고 웃어주었다. 관린은 몸은 피곤했지만 감독의 칭찬에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박지훈이니까 금방 하겠네.”

 

“언제 이 판에서 박지훈이랑 작업해보나 했는데.”

 

“왔대? 15분에 시작한다고 해요.”

 

현장은 들뜬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훈 정도의 위치, 그것도 배우가 뮤직비디오를 찍는 일은 흔치 않았다. A엔터처럼 협찬같이 출연하는 경우밖에는. 덕분에 기사도 꽤 많이 났다. ‘박지훈, 후배 지원사격…라이관린 MV 출연’, ‘박지훈 A엔터 신인 뮤직비디오 출연’, ‘박지훈 MV 촬영 예정…’라이관린’ 누구?’…나란히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기분이 어색했다.

 

관린은 술렁이는 스탭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박지훈은 연예인이었다. 관린도 이제 연예인이지만, 박지훈은 진짜 연예인이었다. 촬영장엔 박지훈 온다고 기다리는 여자 스탭들이 한 트럭이었다. 관린은 그중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A엔터를 선택한 건 신인개발팀의 다단계 뺨치는 언술도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박지훈 회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신뢰였다. 같은 회사면 몇 번 마주치지 않을까, 어쩌면 친해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택도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박지훈이 바쁜 것은 물론이고, 데뷔를 앞두고 있는 관린의 스케줄도 만만치 않았다. 차에서 차로, 차에서 연습실로, 차에서 촬영장으로…. 오늘도 같은 촬영장에서 촬영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바로 연습실로 달려가야 했기에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뜻밖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 데뷔하는 라이관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만 하고 나오면 돼. 쓸데 없는 말 많이 하지 말고. 찍히면 골치 아프다. 인사만 드리고 바로 차로 와. 형 통화하고 차로 갈게.

 

정 실장은 바쁘게 울리는 전화를 처리하며 지훈에게 인사를 하고 오라 했다. 데뷔하면 수도 없이 하고 다닐 일이다. 첫 단추를 같은 회사 선배, 가수가 아닌 배우에게 끼는 건 안전한 선택이라고도 했다. 관린은 아직 낯선 촬영장을 헤매다가 겨우 대기실을 찾았다.

 

박지훈.

 

문 앞에서 붙은 이름이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박지훈…. 관린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노크했다. 문을 열자 메이크업을 받는 지훈의 뒤통수가 보였다. 대기실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또 보네, 네 번째.”

 

문턱을 넘어 들어오자 지훈이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가볍게 인사했다. 거울 속 지훈은 메이크업 때문인지 원래 표정이 별로 없는 것인지 정적이었다. 관린은 웃으면 더 잘생겼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배운 대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라이관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해서 약간 삑사리가 났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지훈은 눈치도 안 보고 박장대소했다. 첫 단추 영 잘못 끼운 것 같은데..아, 쪽팔려. 관린은 부끄러우면 귀가 빨개지곤 했다. 피부가 얇고 밝아 부끄러움이 잘 보이는 편이기도 했다. 동시에 여간해서 당황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대담함도 있었다. 하지만 지훈 앞에서는 두 번째였다. 두 번 만나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쓰는 와중 지훈이 의자를 돌려 관린을 마주했다.

 

잘생겼다….

 

관린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내가 이름 같은걸 잘 못 외어서…촬영은 끝?”

 

엷은 미소를 띠는 얼굴에 미안한 기색은 없다. 관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지금 끝나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네 번째라고 부르는 거 싫으니?”

 

“넌 좋겠냐? 그래도 후밴데 좀 외워라.”

 

박지훈의 매니저가 지겹다는 듯 타박하자 지훈은 꺄르륵 웃을 뿐이었다.

 

“내가 기억력이 별로 안 좋아서…그리구 넌 네 글자나 되잖아.”

 

묘하게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기억되지 못하는 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또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관린은 네 글자나 되는 제 이름을 탓하기로 했다.

 

“넌…뭐 도와줄래?”

 

“네?”

 

의자를 만지작거리던 지훈이 웃는건지 아닌건지 모를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기브앤테이크. 내가 너 도와주는 거잖아. 뮤직비디오. 손가락으로 대기실 문을 슥 가리키더니 그렇게 덧붙였다. 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농담과 진담, 웃음과 멸시.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저 뭐 도와줄 수 있어요?”

 

생각해둔 눈치는 아닌지 음…하는 시선이 다시 관린을 훑었다. 사람을 저렇게 보는 건 습관인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상대는 박지훈이었다. 지훈이 그렇게 볼 때면 긴장도 됐지만 어쩐지 짜릿한 기분이 되었다. 눈을 내리깔 때 보이는 촘촘한 속눈썹을 보는 것도 좋았고, 다시 올라와 시선을 맞출 때의 심장이 덜컥하는듯한 짜릿함이 있었다. 틀림없이 겁나지만 어김없이 타고 마는 놀이기구처럼.

 

“대본 한 번 맞춰줘.”

 

“대본요?”

 

“응. 곧 드라마 하거든.”

 

“저 할 수 있어요?”

 

순수하게 몰라서 물어본 것인데 지훈은 웃기만 했다. 그렇게 어려운 거 아냐. 해보면서 배우는 거지. 우리 매니저형이 목이 쉬어서 못 해준대. 지훈은 제 매니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색이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가 해주는 정도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당연히 연기는 해본 적 없었지만 대충 읽어주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촬영도 일종의 연기였고,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훈의 제안을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 관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의 입꼬리가 사르륵 올라갔다.

 

“그래. 또 보자.”

 

둘러 말하지만 이제 그만 나가라는 뜻이었다. 어쩐지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인사만 드리고 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났지만, 말을 먼저 붙이는 지훈에게 일말의 기대 같은 걸 했는지도 모르겠다. 관린은 애써 서운함을 감추며 매니저가 일러준 대로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왔다.

 

괜히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대본 한 번 맞춰줘’. 당장 연습실에서 피드백 받을 곡을 다시 봐야 하는데, 가사를 다 까먹어버렸다. 가사로 가득찬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차로 돌아가는 내내 지훈 생각을 했다. 조금 전의 상황이 끊임없이 리플레이됐다. 연한 베이지색의 니트. 까만 진. 예쁘게 휘어진 눈매에 곱게 뻗은 속눈썹. 시나리오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대사를 읽는 박지훈을 상상했다. 발성도 훌륭할 것이다. 지훈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머리를 맴돌았다. 또 보자. 또 보자. 또 보자…아!

 

“연락처…!”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 얼굴에 홀려서 제일 중요한 걸 잊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15분을 넘어있었다. 촬영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멍청이…! 관린은 머리를 쥐뜯었다. 정 실장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며 쳐다봤지만 관린은 대꾸할 여유도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었을까? 나중에 밥 한번 먹자 그런 말 일까? 초조해졌다. 입술 안의 살을 깨물었다. 손톱이 근질거렸다. 굳이 제게 뭘 해달라는 제안을 하는 지훈과 또 보자면서 연락처 하나 알려주지 않은 지훈이 온통 뒤섞였다. 관린은 복잡해지는 머리를 비우려고 애썼다.

 

 

 

*****

 

데뷔는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번 주면 녹음이 다 끝난다. 뮤직비디오 로케이션 촬영이 끝나면 순차적으로 음악방송 리허설이 남아있었다. 녹음을 하고 있자니 정말 데뷔가 코앞으로 느껴졌다. 관린은 데뷔라는 중요한 순간에도 계속 지훈의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이 났다. 곡 하나 연습이 끝나면. 매니저와의 대화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서. 순간순간 계속 떠올랐다. 그때 물어볼 걸 그랬나, 하고 아주 불현듯이 그렇게 되뇌이는 것이었다.

 

지훈은 어려운 사람이다. 관린에게 어려운 질문을 주는 사람이다. 어디까지 다가가도 될까. 그냥 하는 말일까. 날 싫어하는 걸까. 저 말이 진심일까. 왜 그렇게 웃는 걸까. 관린은 그런 생각이 떠오를때면 습관적으로 손톱을 뜯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매니저형이 혼을 내곤 했지만 의식이 어찌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오늘 박지훈 청룡 간다더라.”

 

“진짜 장난 아니다. 청룡?”

 

“아까 레드카펫 봤어요? 대박 존잘.”

 

지훈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지훈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훈이 연예인이라는 점이 다행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지훈이 올해 초에 찍었던 영화가 잘됐다고 들었다. 감독에게 직접 찾아가 ‘박윤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즉석 오디션을 본 에피소드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A엔터는 작은 회사였다. 그답게 A엔터 소년가장이 무려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주 멤버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주로 팀장급이었다. 관린은 A엔터의 차기 소년가장으로 점쳐지고 있는 만큼, 정 실장을 따라 함께 참석 대상이었다.

 

“오늘 상 탄대요? 그런 거 미리 안 알려줘요?”

 

“글쎄..그런 거 없나 보던데.”

 

관린은 정 실장에게 조잘조잘 물었다. 정 실장은 아이돌 기획사가 영화제에 대해 뭘 알겠냐고 어깨를 으쓱했다. 박지훈은 드라마로 떴고, 보통은 드라마를 위주로 활동했다. 그래서 백상은 그런 거 없던데, 청룡도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영화를 즐겨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훈이 영화도 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정 실장 얘길 들어보니 일이 년 됐다고 한다. 흥행성적이 썩 좋지 않아서 그렇지 두어 편 찍었다고. 관린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에 후보에 오른 <폭염>이 영화 데뷔작인 줄 알았다. 관린은 지훈이 나온 작품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째서?

정신없이 데뷔를 향해 달려오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박지훈 생각에 잠겨있는데. 미디어 속의 지훈을 찾아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티비 속의 지훈을 본들, 그게 지훈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이 갈증이 해소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

 

이번 청룡의 주연상은 점치기 쉬웠다. 압도적인 평을 받은 배우가 있었고, 800만 정도 성적을 거둬 수상이 거의 확실한 상태였다. 초미의 관심사는 대상과 조연상 부분이었다. 후보가 하나씩 불렸다. MC는 박윤수 에피소드 언급을 잊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따낸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지금은 박지훈씨가 아닌 박윤수를 상상할 수 없네요….”

 

관린은 남우조연상 후보를 비춰주는 화면을 보면서 지훈이 지나치게 튄다고 생각했다. 젊고, 예쁘고, 반짝거리는 눈. 어디 하나 눈을 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누구보다 저 자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어느 때보다 조연상 부문이 치열한 해였다. 주연으로 들어가야 할 배우도 수상 욕심에 조연으로 빠진 경우도 있었다. 암묵적인 여론도 있었다 몇 년째 안타깝게 수상에 실패한 연기파 배우. 이번 해는 챙겨줘야 하는 게 아니냐. 변수는 많았다. 단지 청룡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한 연유가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박지훈은 수상에는 실패했다. 정 실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며 박수를 쳤다. 맞는 말이었다. 별안간 지훈이 화면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니까, 관린은 많은 부분 태어나면서 거머쥐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신인개발팀의 말처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팬이 붙을 타입이었지만, 관린에게 데뷔는 호락호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관린은 무대에 진지한 면이 있었다. 무대는 쏟아내는 곳이었다. 한 번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연습해도, 실전에서 삐끗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목요일 새벽 세 시. 수백 번은 연습했을 곡이지만, 관린은 여전히 연습실이었다.

 

연속 세 곡을 반복하고 관린은 쓰러지듯 바닥에 발라당 누웠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온몸을 쿵쿵 울렸다. 고요한 바닥에 누워있자니 물밀듯이 지훈의 생각이 밀려왔다. 시상식의 지훈의 모습이 선했다.

 

– 지금은 박지훈씨가 아닌 박윤수를 상상할 수 없네요….

 

관린은 갑자기 그 영화가 몹시 보고 싶어 졌다. 당장의 연습, 당장의 잠 같은 걸 다 제껴두고 오롯이 스크린 속의 지훈을 감상하고 싶었다. 박지훈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박지훈이 나온 작품을 다 보고 나면 감이 좀 올까. 어떤 게 연긴지. 관린은 핸드폰을 찾아 박지훈을 검색했다.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섯의 박지훈은 서울에 있는 고모집에 놀러 왔다가 서울역에서 A엔터 신인개발팀에 붙들렸다. 넉넉지 않았던 박지훈의 집안과, 막연히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소년은 어떤 소속산지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홀랑 넘어갔다. 몇 개월간의 연습 기간 동안 박지훈은 제가 노래에는 죽도록 소질이 없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도 될 사람은 된다고, 연습생 주제에 홧김에 하이틴 드라마 <사춘기> 오디션을 봤고 덜컥 붙었다. 드라마는 시청률 30%까지 찍으며 히트했다.

 

박지훈은 나쁘지 않은 연기력은 둘째치고, ‘사춘기 얼굴천재‘, ‘사춘기 교복 걔등의 이름으로 얼굴을 알렸다. 그 후로 가수 데뷔는 그만두고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으며 준수한 연기력을 쌓았고 국민 남동생 노선을 밟았다.

 

박지훈 인생 요약본을 읽고 있자니, 관린은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저보다 지훈을 더 잘 안다는 사실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한 인생에 대해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건 불행일까. 아니, 어디까지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 시간에 누가 있나 했네.”

 

“…?”

 

연습실 문 부근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핸드폰으로 탐구하던 인생의 주인공이 서 있었다.

 

“선배님.”

 

“어지간한 연습벌렌가보다.”

 

“여긴 어떻게,”

 

“불 켜져 있길래 들어와 봤어. 나도 뭐, 보다시피.”

 

지훈은 고개를 힐끗했다. 지훈의 손엔 대본인듯한 종이뭉텅이가 들려있었다. 옷차림도 트레이닝복이었다. 저런 차림의 지훈이 낯설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그 누구보다 반짝이던, 실존할 것 같지 않은 그 박지훈이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지훈이 자박자박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진동했다. 관린은 연습실과 함께 동요했다. 여긴 여전하네. 여기서 엄청 혼났는데. 난 연기가 적성인 것 같아. 한 걸음 한 걸음 연습실을 도는 지훈은 추억에 잠긴 얼굴이었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종이뭉텅이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데 써야겠네….”

 

오랜만에 연습실에서 거울 보면서 선 좀 맞춰볼라구 그랬거든. 아무래도 여기가 편해서. 이제 내 연습실 아니라는 거 자꾸 까먹네. 원래 이 시간에 아무도 없었어서.. 지훈이 그렇게 말을 길게 하는 건 처음 봤다.

 

 

“도와줄까요?”

 

가볍게 말하려고 애쓰는 목소리가 엉망이었다. 한 바퀴를 돌아 이제 나가려는 듯한 지훈을 불러세웠다. 시선은 지훈의 손에서 멈췄다.

 

“저번에 한 번 말했잖아요.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라면서요.”

 

관린은 애매한 머뭇거림을 뒤로하고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의문이 아닌 권유를 하자 지훈은 여느 때처럼 관린의 곳곳을 살폈다. 관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새벽 두 시. 별로 친하지도 않은 회사 후배. 땀이 범벅인 연기 문외한. 거절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천년 같은 찰나의 침묵 후, 지훈은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그럴래?”

 

 

 

***

 

“너무 딱딱해.”

 

별로 어려운 거 아니라면서. 대충 대사를 읽어주며 맞춰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깐깐한 면이 있었다. 눈에 좀 더 힘 빼고, 템포는 좀 더 느리게. 다시 해볼까? 지훈은 선생님처럼 굴었다. 그런 면이 싫지 않았다. 연기에 진지한 구석이 있구나 싶어서. 선생과 제자 같은 그 어떤 관계에 얽혀있는 기분이 들어서. 관린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뗐다.

 

“쉽게 져버릴 수 없,”

 

“빨라.”

 

한 줄을 다 읽기도 전에 끊겼다. 지훈은 ‘그거 아니야’하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관린의 손에 있는 대본을 훅 가져갔다. 그리고 제 것을 손에 채워 넣었다. 지훈의 대본에는 메모가 빼곡했다. 여기서 한 번 쉬고. 뒤로 돌면서. 눈을 쳐다보며. 호흡. 체크. 호흡. 엄지손가락으로. 빨간 볼펜으로 대본 여기저기에 써넣은 글씨가 가득했다.

 

“…이거 직접 다 쓴 거에요?”

 

관린은 의외라는 눈을 하고 물었다. 이런 거 다 신경 쓰면서 해요? 빙의해서 하는 거 아니라?

 

“연기는 다 계산이야. 넌 내가 얼굴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니?”

 

저런 말을 얼굴 하나 안 붉히고 한다. 청룡 조연 후보까지 올랐으면서 저렇게 말하는 건 자기 얼굴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관린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가 지훈의 얼굴을 쳐다보고 납득 비슷한 걸 했다. 과대평가하기에 좋은 얼굴이었다. 순간 넋을 놓고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지훈이 입 모양으로 ‘집중’이라고 말했다. 다시 관린의 뺨이 물들었다.

 

이건 뭐 맞춰주는 게 아니라 배우는 수준인데. 섬세한 선생 노릇을 하도록 두었더니 지훈은 내심 재밌는 얼굴이었다. 깐깐한 선생님 때문에 좀처럼 나가지 않던 진도가 어떻게 그럭저럭 중반까지 왔다. 극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갈등이 해소되고 남녀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키스신은 어떻게 찍는지 알아?”

 

“……. 진짜로 하는 거, 아니라는 건 알아요.”

 

 

일이 벌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지훈은 대본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걸어왔다. 순간이 길었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울리고, 관린의 온몸을 흔들었다.

 

“카메라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면,”

 

허공을 가리키는 손과 함께 천천히, 유연하게 몸을 틀었다. 단번에 지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트는 지훈의 숨소리 귓가를 타고 올라왔다. 숨결이 닿은 곳마다 물들이는 듯했다.

 

“이 방향으로 얼굴을 틀어야 해.”

 

 

미친, 어쩌자고….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두 눈을 갈 데를 몰랐다.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코가 닿을 것 같았다. 진짜 어쩌자고…이렇게.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세계가 통째로 흔들렸다. 관린의 몸은 그 자리에 내린 나무마냥 빳빳해졌다.

 

 

 

“…넌 연기엔 별로 소질이 없구나.”

 

그 말만 남긴 지훈이 가버린 후 매일같이 새벽 연습실을 지켰지만, 다시 지훈이 오는 일은 없었다.

 

 

 

*****

 

연습실에서의 충격이 기억을 어떻게 한 게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외 로케 촬영을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그것도 박지훈과 동행하는. 짐은 다 쌌냐는 정 실장의 말에 웬 짐,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정 실장은 못 말린다는 얼굴을 했다. 이놈 정신 빠져가지고. 뮤비 홍콩 로케 있잖아. 내 말 안 듣지. 뜻밖의 소식에 관린은 정 실장 손을 덥석 잡았다.

 

매일 연습실에서 기다림 아닌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관린에게 촬영 동행이라는 건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했다. 관린은 습관처럼 손톱을 뜯었다. 넌지시 정 실장에게 박지훈이랑 같이 가냐고 물었다. 관린은 그냥 물어보는 척을 하냐고 애썼다.

 

“촬영 스케쥴 때문에 박지훈은 하루 늦게 올걸? 자세히는 몰라. 걔가 워낙에 바쁘잖아.”

 

관린은 그렇죠, 하고 애매하게 웃었다. 확 느껴지는 거리감이 어쩔 수 없이 밀려왔다.

 

 

 

관린의 어렴풋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훈과는 마주칠 수 없었다. 사흘간의 홍콩 일정에서 단 한 번도. 관린의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세계관을 같지만 버전은 다르다. 함께 촬영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촬영팀이 하나라, 지훈과 관린은 번갈아 가면서 슛에 들어갔다. 게다가 지훈은 외곽 위주로, 관린은 도심 위주로 작업했다.

 

관린은 지난 시간들을 곱씹으며 당연한 일이야, 하고 스스로 납득시켰다. 같은 회사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마주칠 수 없었던 시간들. 정 실장이 새로 들어온 연습생이라고 소개시켜주기 전까진 자신의 존재도 몰랐을 박지훈. 후배라곤 하지만 사적은 물론, 공적인 연락처 하나 물어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선. 같은 스튜디오를 썼지만 시간대가 달라 대기실에서 인사나 겨우 했던 첫 뮤직비디오 촬영. 관린은 애초부터 혼자 촬영하러 온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아쉬움이 덜할 것 같았다.

 

 

***

 

낯선 나라에서의 하루는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관린은 이미 미국과 대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지금은 한국이 제 나라였지만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십 분이면 제 짐을 모두 쌀 수 있을 만큼, 여기저기 떠도는 일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틀 내내 이어진 촬영은 제법 피곤한 일이었다. 관린은 연예인 체질이었고, 연습보다 카메라 앞에서 더 잘 해내는 타입이었지만 내내 품평을 당하는 듯한 촬영 현장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씻고 나온 관린은 커튼을 걷고 한참 야경의 불빛에 잠겨 있었다.

 

그러던 도중 돌연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하우스키핑? 관린은 약간 예민해졌다. 카메라와 스탭들에게 온종일 노출된 하루 끝에 찾아온 시간은 온전히 홀로 쉬고 싶었다. 하지만 관린은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데뷔를 앞두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짜증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잠시 정돈하고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도 돼?”

 

무방비한 차림의 지훈이 서 있었다.

 

“내 방에 티비가 고장 났나 봐.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그거 때문에 룸 체인지하긴 좀 그렇고.”

 

샤워가운 차림인 지훈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관린은 지훈이 표정을 지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메모로 가득 찼던 대본의 ‘곤란하다는 표정으로’가 지훈의 얼굴에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알 수 없이 혼재되는 생각에 잠깐 멍해진 관린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지훈을 안으로 들였다. 박지훈을 복도에 세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켜본 적은 없는데, 나올 거에요.”

 

관린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체하려 입은 제 맘대로 아무 소리를 했다. 지훈은 실내화를 살짝 끌며 방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자연스럽게 침대에 걸터앉아 리모컨을 찾았다. 모니터링 해야 한다고 한 건 지훈이 출연한 요리 예능이었다. 금세 방이 시끄러워졌다. 관린은 그 옆에 우두커니 서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 눈을 굴렸다. 누가 누구 방에 들어온 건지..되려 지훈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 웃음도 안 나왔다.

 

 

“여긴 나오네. 삼십분을 씨름했는데 그냥 바로 올걸.”

 

지훈은 앞부분을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안 앉아? 그럼 좀 미안한데..”

 

지훈이 옆에 와 앉으라며 매트리스를 툭툭 쳤다. 관린은 침대에 앉아서 옆에 앉으라고 하는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넘어갈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리로 오라는 목소리는 너무 거리낌 없이 담백했다. 그는 제 방에 들어온 듯 편해 보였다. 관린은 어쩐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어 그냥 지훈의 옆에 풀썩 앉았다.

 

상관없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나뿐일 텐데.

 

 

 

***

 

반 이상을 놓친 예능엔 지훈이 나오는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꼼꼼히 모니터링을 하던 지훈은 클로징 멘트가 흘러나오자 얼굴이 풀어졌다. 지훈은 기지개를 켜더니 리모컨을 찾아 채널을 돌렸다. 관린이 앉아있는 쪽으로는 고개도 한 번 안 돌리고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침묵이 돌았다. 대화라도 한다면, 분명 첫 마디는 이제 가야겠다가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관린은 박지훈을 내보내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그럴 생각도 안 했다. 내일 오전 비행기일 지훈도 이제 돌아 가보겠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원래 같이 쓰는 방인냥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지훈은 티비에 미친 사람처럼 채널을 계속 올리다가 영화 채널에서 멈췄다. <폭염>이었다.

 

“저 이거 안 봤는데.”

 

침묵을 깨고 관린이 간신히 말을 꺼냈다. 진행형으로 만들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이거 청불인데?”

 

그 말에 돌연 사레가 들렸다. 지훈은 온통 빨개진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이내 켁켁거리는 관린에게 괜찮냐며 물을 건넸다. 여전히 얼굴엔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폭염>이 야한 영화였나? 별것도 아닌데 부끄러워졌다. 찍은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지훈은 이내 농담이라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냥 한 말이야. 왜 이렇게 놀래.”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눈앞에서 헤실거렸다. 너 되게 귀엽다. 관린은 완전히 놀아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놀아나도 좋을 것 같았다.

 

 

 

“관린아.”

 

지훈이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몇 살이랬지?”

 

“열, 아홉요.”

 

“열아홉…좋을 때네.”

 

그래봤자 두 살 차이나면서 한참 어른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싫었다. 더 싫은 건 지훈이 확실히 어른스럽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앳돼 보이는 외모, 얼마 되지도 않는 나이 차. 하지만 관린과 지훈 사이에는 일종의 선이 있었다. 그건 성년과 미성년의 차이일 수도 있었고, 연예계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지훈은 그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 어떤 날에는 경계를 흐려 알아볼 수 없게 하기도 했고, 또 그렇기 생각할 때쯤이면 어느새 물러서 선명하게 긋기도 했다. 어찌 됐든 묘한 어른스러움이 지훈에겐 분명 있었다.

 

“이상하다. 되게 성숙해 보이는데.”

 

“그거 욕이에요?”

 

“원래 잘생기면 좀 성숙해 보이잖아.”

 

관린은 잘생겼다는 소릴 숨 쉬듯 듣고 살아왔지만, 태어나서 본 사람 중 제일 잘생긴 사람한테 들으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별말 없이 뒷목을 긁적였다. 지훈은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게 관린을 더 부끄럽게 했다.

 

“데뷔 전에 하고 싶은 건 없어?”

 

보통 데뷔하면 하고 싶은 걸 물어보지 않나? 관린은 갑자기 그런 걸 생각하려니 뭔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훈의 질문에 하나하나 다 대답하고 싶은 심경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교복 입고 놀이공원 가고 싶었는데. 데뷔하니까 뭐 하나 쉬운 게 없더라.”

 

“어, <사춘기>에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거는 다르지. 데뷔하면 넌 더이상 열아홉 소년이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이미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연습실에 들어서면서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평범한 삶. 연예인으로서의 삶.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박지훈이 잘 안다는 얼굴을 했다. 둘은 그런 얘기들을 했다. 어디서든 사진을 찍힐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리의 한계.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 삐끗했다간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 박지훈 입에서 나오는 현실은 무엇이 그를 이런 태도로 만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앞으로의 관린의 인생 또한 낱낱이 전시될 것이다. 진심인 얼굴보다 아닌 얼굴을 하게 되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박지훈이 그렇듯이. 지훈이 연예인이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려웠을까. 장담할 수 없다. 박지훈은 입체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말 너머에, 표정 너머에 분명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째서인지 말 하나하나에 고민하게 됐다.

 

 

“관린아.”

 

특히 저 눈빛, 그리고 말투가.

 

“그 때에 할 수 있는 걸 해야 돼.”

 

지훈이 손을 뻗어 관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이 아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느껴지는 지훈의 손가락에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지긋이 쳐다보는 지훈의 눈은 촉촉했다.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때가 지나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손가락이 천천히 머리카락을 지나 목 뒤로, 어깨까지 이어졌다.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모든 감촉은 손가락이 닿는 끝으로 몰렸다. 데자뷰였다. 그 새벽, 연습실. 박지훈의 손길, 눈빛, 목소리는 순식간에 그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불러오기라도 한 듯했다. 또 웃는건지 아닌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살짝 들더니 관린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툭, 툭.

 

“넌…그게 뭐인 것 같니.”

 

 

해야 할 것을 할 때였다.

 

 

***

 

눈을 떴을 때는 혼자였다. 영화에서는 같이 잘 때 가장 좋은 점은 일어나서 처음 마주 보는 얼굴이 상대여서라던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막상 일어났을 때 옆에 없으니 모든 게 다 꿈만 같았다. 꿈같은 밤이기는 했지만, 이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꿈같은 밤이었다. 지훈의 말이 끝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끌린 것처럼 입을 맞췄다.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잠깐 스쳐 지나갔던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훈도 자연스럽게 안겨 자세를 맞췄다. 혀가 감기고 서로를 파고들었다. 입맞춤은 조금 급했고, 꽤나 농밀했다. 지훈은 키스신을 가르쳐주던 각도로 고개를 틀며 점점 몸을 밀착했다. 몸이 맞닿자 호흡은 더 가빠졌다. 그 와중에도 지훈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 시간 많아. 천천히..

 

끝없는 밤이 이어지길 바랬다. 입술에서 턱으로, 귓볼로, 목으로…입맞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관린은 그런 행위가 낯설었지만 서툴지는 않았다. 뭐든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타입이다. 닿고 싶은 곳은 끝도 없었고 그대로 움직이면 됐다. 멈추지 말고 계속 해줘…떨어지지 마. 지훈의 나른한 목소리도 한몫 했다. 눈빛만큼이나 촉촉한 피부에서 한 시도 떨어지기가 싫었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서로의 몸을 탐하고, 숨소릴 귓가에 속삭였다. 좀 더 가까이. 나 봐, 키스해줘. 지금 갈 것 같아.. 그렇게 솔직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당시엔 흥분해 놀랄 새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새삼 낯설었다. 필요한 말만 하는 타입인줄 알았는데. 아니, 필요한 말만 한 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밝은 창가에 손을 뒤적여 핸드폰을 찾았다. 열시 십칠분. 지훈을 옆에 두고 오래도 잤다. 지금부터 빠듯하게 준비해서 나가야 시간이 맞을 듯하다. 정 실장에게 듣기로 지훈의 비행기는 저보다 두 시간이 빠르다. 지금쯤 공항일 것이다. 가는 거 못 봐서 미안하다고 카톡이라도 남길까 했는데, 아직도 연락처를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

 

그리고, 한국에서의 상황은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갔다. 지훈과 마주치는 행운 같은 건 없었다는 거다. 뮤직비디오 반응은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신인개발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관린의 영상이 공개되자 각종 사이트에서 반응이 왔다. 박지훈 얼굴 화보라고 불리면서 입소문이 탄 것도 컸다.

 

관린은 홍콩에서 돌아온 후, 신데렐라 마냥 열두 시만 지나면 연습실을 향했다. 그전에도 한 번밖에 성공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연습실이 아니면 회사는 오겠지. 같은 회사니까 어떻게든 마주치기는 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매일 출근하며 쏘다녔다. 데뷔 무대를 앞둔 빠듯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어딘가에 마음을 뺏겨버린 사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 실장은 여기저기 연습벌레라며 빠짝 기합 들어갔다고 칭찬했지만 관린은 아니라며 웃었다.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순한 의도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성과도 없었나 보다.

 

 

 

박지훈을 마주친 건 뜻밖의 타이밍이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지훈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관린을 당황시키곤 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첫 음악방송을 녹화하러 가는 방송국 주차장. 셋팅을 다 마치고 차에 두고 온 이어폰을 가지러 갔을 때였다. 엘레베이터가 열리자 그려놓은 듯한 얼굴이 서 있었다.

 

“지훈 형!”

 

반가운 목소리는 숨겨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평소보다 메이크업이 진했고, 평소보다 애틋하게 느껴졌다. 지훈은 한 손에 들린 바나나우유를 빨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보여준 그것이었다.

 

“오랜만이네, 관린아. 근데 내가 지금 촬영가는 길이라서..”

 

“아..저 근데 형 연락처가 없어서. 제가 지금은 핸드폰이 없는데…”

 

아직 데뷔 초라 밖에선 못쓰거든요. 숙소에선 쓸 수 있어요. 제꺼 알려줄게요. 관린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본 얼굴인데. 바쁜 스케줄에 자주 연락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연락처 하나 모른다는 건 관린을 너무 허무하게 했다.

 

 

“관린아.”

 

사실, 그 애매한 미소에서 알아챘어야 했다.

 

“아마추어 아니잖아. 그치?”

 

또 보자. 지훈은 핸드폰 대신 제 손에 들려있던 바나나우유를 쥐어주고 지나쳤다. 그리고 우유는 곧 관린의 손을 힘없이 떠나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희미한 색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넘었다고 생각했던 선이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