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일기
W. 2U

 

 

  1. 아이가 생겼어요

 

 

 

-그게 무슨 좆같은 소리야 씨발?

 

-형님 애 듣슴다

 

-듣든지 말든지!! 야 막말로 나도 아직 애야 나도!! 애새끼가 무슨 애새끼를 키워?? 그럼 내 연애는? 결혼은? 평생 이렇게 총각으로 살다가 늙어 뒈지라는 거야 뭐야?? 화아 진짜 미치겠네

 

 

 

본인 말마따나 머리를 쓸어넘기는 얼굴에 발그랗게 홍조가 인 것이 꼭 아직 애처럼 보이는 이 남자의 이름은 박지훈이다. 짝다리를 짚고 악세서리를 목에 주렁주렁 건 폼새에, 잔뜩 겉멋이 들어가 있는 남자. 걸걸한 목소리에는 약간 사투리끼까지 섞여있다. 약간 품이 큰 것 같은 줄무늬 양복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치수로 몸에 걸쳐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어른 남성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아버지 옷을 빼앗아 입은 것 같은 소년 느낌이 나는 애매한 그의 외모 때문에 아마 더욱 더 저 껄렁거리는 태도를 과장되게 하는 것이겠지.

 

 

 

뭐 못된 사람 같지는 않네. 단순해 보이고.

 

 

 

그게 라이관린의 박지훈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12살 짜리 소년은 자기보다 한뼘은 더 큰 것 같은 지훈을 올려다보며 막대 사탕을 쪽쪽 빨고 있었다. 하얀 후드티를 입은 눈만 땡그랗고 깡마른 소년. 소년은 그냥 빨리 이야기가 끝나고 밥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누가 데려가든 상관없어. 어차피 자기 자식도 아닌데 굶기지 말고 때리지만 않으면 좋겠네. 이왕이면 고기를 많이 사주고 휴대폰도 좋은 거 사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영민한 그의 생각은 옳았다. 박지훈은 정말로 좀 단순해서 거칠긴 해도 악한 사람까지는 못됐기 때문이다.

 

 

 

-일단은 내가 맡을게. 맡는데!! 하 진짜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뜯는 지훈을 보며 아이는 작게 미소지었다.

 

 

 

역시 만만해 보이네. 잘됐다. 하고.

 

 

 

지훈은 망연한 표정으로 관린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는 아이의 미소에 자기도 모르게 어색하게 따라웃고 말았다.

 

 

 

미치겠네 애가 무슨 잘못이냐 내가 호구인게 잘못이지 씨발.. 씨발..!!

 

 

 

 

 

  1. 가족이 되었어요

 

 

 

의외로 박지훈은 아이에게 잘하는 편이었다. 무뚝뚝하기는 했어도 세심하게 신경쓰고 챙겨주는 게 느껴질 정도라서 관린은 생각보다 운이 좋았네?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지훈은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고 있었다. 안주도 거나하게 치킨이었다.

 

 

 

-일로와. 니도 같이 먹자.

 

 

 

관린이 사뿐사뿐 걸어와 옆에 앉자 지훈이 닭다리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야구에 집중하는 척 이따금 탄식과 욕만 하던 지훈은 어느새 벌개진 얼굴로 관린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관린이 지훈을 바라보며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눈만 깜빡깜빡하자 지훈이 관린을 와락 껴안았다. 몸에서 술냄새가 훅 끼쳤다. 숨이 막혀서 관린이 버둥댔지만 지훈이 놔줄 생각이 없는듯 으으으응 소리를 내며 관린의 머리며 등을 쓰다듬었다.

 

 

 

-아이구 이 어리고 착하고 귀여운게 무슨 죄가 있다고오.. 그치? 그치 관린아 아이구 불쌍한 내새끼..

 

 

 

취해서 그러는 게 틀림 없는데 관린은 어쩐지 눈물이 핑돌았다.

 

 

 

아 나 지금 불쌍한 거였나? 누가 내가 불쌍한 거라고 말해주질 않아서 몰랐는데 내가 불쌍한 거였나보다..

 

 

 

관린은 딱히 부모에 대한 정같은 게 없었다. 조직에서 꼬리끊기 해서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는 이제 관린이 27살이 돼야 돌아온다고 했고 어머니는 얼굴도 몰랐다. 바보같은 아버지. 그렇게 해서 나한테 돈 주면 내가 뭐 얼마나 좋아할줄 알았어? 같이 살 때도 거의 코빼기를 본 적 없는 아버지였다. 일주일 동안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사람을 돌보는데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남자였다. 그래서 관린은 자신에게 돈을 남기고 교도소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그래도 내가 아들인가보다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없어져서 자신이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는걸 깨달은 이 순간 두 번째로 그 사람이 그래도 나의 아버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지훈과의 사이도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대화가 없기로는 마찬가지로 그랬다. 다른 게 있다면 먹을 것과 옷을 열심히 챙겨주는 것. 소년은 그 정도의 관심만으로도 점점 피부가 맑아지고 조금씩 살도 쪘다.

 

 

 

지훈과 관린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지훈이 관린을 침대에 안아서 데려다 주고는 그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들었다.

 

 

 

뭐야. 생각보다 더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었잖아.

 

관린은 술냄새가 나는 지훈이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진 표정을 보며 심지어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되었다.

 

 

 

 

 

  1. 지켜주고 싶은 사람

 

 

 

다음날 관린은 아침 일찍 혼자 일어나 학교갈 채비를 마쳤다. 아직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지훈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일어나서 거실에 널부러져 있는 치킨박스를 쓰레기봉투에 담고 조그만 손으로 설거지도 하고는 야무지게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서자 어쩐지 세상이 어제보다 좀 더 밝고 또렷한 것만 같았다. 아침에 집을 떠난다는 게 이렇게 아쉬운 일이었나를 생각하며 관린은 등교길에 올랐다.

 

 

 

느즈막히 잠에서 깬 지훈도 양복을 입으며 출근 준비를 마쳤다. 구역 내에 업소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관리하고, 수금하고, 문제가 없는지 감시하는 일이 조직내에서 지훈이 맡은 일이었다. 안살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아이까지 맡아 기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큰 문제만 없으면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수입을 받을 수 있는 직책이라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같은 날이었다.

 

지훈은 그 날 조직 똘마니 간 붙은 시비가 커져서 한바탕 하고 오는 길이었다. 별 시덥잖은 문제였는데 한 놈이 덤벼드니 너도나도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아이고고..

 

지훈은 얼음팩을 턱에다 비비며 현관문을 들어오려다 자기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온 몸이 다 쑤시긴 하는데 어디가 찢어진 것도 아니고 부러진 것도 아니라 병원가기도 좀 애매했다.

 

그 날 따라 관린이 소파에 앉아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일이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나긴 하지만 이렇게 아침이 되도록 안 들어오는 일은 없었는데 오늘따라 관린이 귀신같이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아직도 안자고 그러고 있어. 불도 다 끄고.

 

-오늘 싸움났다고 뉴스 나왔어요.

 

-아 그래? 근데 난 별 일은 없었어.

 

-혹시 이대로 안들어올까봐..

 

-헤? 관린이 울어?

 

 

 

관린이 얼굴을 가리며 몸을 구기고 우는데 지훈의 얼굴에 철없이 함박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삼촌 어기 들어갈까봐 무서웠어요?

 

-아 하지마세요.. 형이랬다가 삼촌이랬다가.

 

 

 

관린에게 와서 얼굴을 들게 하고는 끌어안고 뺨에다가 뽀뽀를 쪽쪽 해대는 지훈에게서 벗어나려 관린이 바르작 거렸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저 같이 일하러 가려면 몇 살 돼야 돼요?

 

-넌 안 돼.

 

-왜 난 안되는데요?

 

-아무튼 넌 안 돼 관린아.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아버지랑 나랑은 다르게 살아야돼. 알겠어?

 

-그래도 할 수 있어요?

 

-뭐를?

 

-지훈 지켜주는 거.

 

-어?

 

-아니에요. 저 들어가 잘게요.

 

 

 

지훈은 괜한 얘기를 했다는 표정으로 들어가 자려던 아이를 붙잡아서 끌어안고 말했다.

 

 

 

-할 수 있지. 더 잘 지켜줄 수 있지. 관린이가 형 지켜줄거야?

 

-…

 

-고마워. 고맙다 관린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지훈은 오히려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마 곧 그를 이 난장판인 인생들로부터 멀리 떠나 보내야할지도 모르겠다고도 어렴풋이 생각했다.

 

 

 

 

 

  1. 너랑 나랑은

 

 

 

지훈은 참 하루하루 지겹게 시간이 안간다고 생각하다가도 관린이 자란 걸 볼 때마다 늙은이처럼 ‘와 세월 참 빠르다’ 하곤 했다. 어느새 15살이 된 관린은 이제 키도 쑥 자라서 지훈과 비슷할 정도가 됐다. 여전히 애기티가 풀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같이 야구 할 때 봐주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쬐끄매가지고 진지하고 말도 없던 애가 오히려 몸집이 커지고 나서는 곧잘 애교도 부리기 시작했다. 아잉 하는 징그러운 류의 애교 말고 가끔 침대로 기어들어오며 같이 자면 안돼요? 하는 류의, 자기 나름대로의 애교였다.

 

 

 

주말에 어디 데리고 나가면 ‘아유 동생인가봐?’ 하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10살 차이밖에 안나니 보호자라기보다는 나이 차가 많이 하는 동생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훈은 요즘 들어 자꾸만 관린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관린아. 아빠라고 불러봐.

 

-아 아빠 아니잖아요!

 

-아 그래도~

 

-싫은데요?

 

-아 왜 나는 너 내 아들같은데.

 

-우리 아빠 살아있거든요? 그 말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은데요?

 

-야.. 그런게 아니라.. 알았다.

 

 

 

아 사실 이게 아닌데.

 

 

 

-관린아 내가 미안해. 응?

 

 

 

지훈이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애 머리칼을 연신 넘겨주며 말했다. 관린은 뭐가 그렇게 분한지 베개를 꼭 껴안고 울기만 했다.

 

 

 

-아빠 아니야..

 

-응 아빠 아니야 관린아 미안해 형이 미안..

 

 

 

왜 그게 그렇게 서러울 일인지 아직은 둘 다 몰랐다.

 

 

 

 

 

  1. 어른

 

 

 

관린이 본격적으로 아이에서 성인같은 느낌을 풍기며 ‘우리가 애가 이렇게 잘생겼을수가’ 싶은 포스를 풍기기 시작한건 17살 때부터였다. 지훈은 자기 나이 먹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아이 나이 먹는 것만 헤아리며 세월을 가늠하곤 했다.

 

연애, 결혼.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가끔 욕구만 풀 수 있으면 그만이지 집에 이렇게 충족감을 주는 존재가 있는데 그런 귀찮은 것이 인생에서 뭐가 필요한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안정감이 관린의 성장과 함께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영구치가 젖니를 밀어내듯이 관린의 변화가 어차피 이 관계는 영원하지 못할 거라며 일상을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키가 180이 넘게 큰 관린은 아직도 앳된 맛이 있긴 하지만 언뜻 보면 성인 처럼 보였다. 그것도 아주 잘생긴 성인 남자. 언제 까무잡잡했나 싶게 새하얗게 변한 피부와 빚어놓은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관린은 제가 봐도 정말 잘생긴 아이로 컸다.

 

문제는 그 소심하고 지훈이랑 노는 것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던 관린이 요즘 들어 영 행동거지가 이상하단 거였다.

 

 

 

밤에 일을 나가는 지훈보다 오히려 더 늦게 들어오는가 하면 지훈이 자고 있으면 아침에 등교도 안하기 일쑤였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지인의 집에서 맡아 기르는 아이인걸 학교에서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담임이 관심을 기울인다고 기울이는 데도 한 번 엇나간 아이를 다시 돌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곧잘 하던 공부도 뒷전이 돼서 성적은 끝간데 없이 떨어졌다. 이제 예전처럼 애교를 부리지도 않는 관린에게 지훈은 커다란 벽 같은 걸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일은 터졌다.

 

 

 

-아. 네. 라이관린 보호자 되시죠? 여기 파출손데요.

 

-….. 네?

 

 

 

조직생활 하면서 구를만큼 구르고 엇나갈 만큼 엇나가 봤다고 생각했던 지훈이 파출소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슬리퍼에 츄리닝 바람을 하고 정신 없이 뛰어가 보니 관린이 교복이 엉망이 된 채로 파출소 의자에 앉아 있는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맞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니 내가 진짜 애비가 다 됐구나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원래 보자마자 한 대 갈겨줄라 그랬는데 이놈새끼. 내가 아무리 험한 일 하고 사는 한심한 인생이라지만 너는 내가 그렇게 안키웠잖아.

 

 

 

그런데 관린이 지훈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하는 말에 지훈은 그저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커다란 어깨를 감싸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보다도 커다란 아이였다.

 

 

 

-내가 이렇게 아직 많이 어려서 미안해요.

 

-나는 네가 아직 많이 어려서 좋아. 그러니까 나와 함께 있어주는 거잖아. 내 허무했던 인생에 있어줘서 고마워.

 

-제가 더 이상 당신 곁에 있어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당신을 배신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관린이 꺽꺽 거리고 울었다. 파출소 경찰들이 대체 저건 무슨 관계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건 말건 둘은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다.

 

 

 

 

 

  1. dear moon

 

 

 

진술서를 쓰고 상대 아이와 부모를 잘 달래서 합의를 하고 파출소를 나오니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오늘 출근 못해서 어떡해요.

 

-알잖아. 내 일 그렇게 성실하게 해야되는 그런 일 아닌거.

 

-그런데도 성실하게 해왔잖아요.

 

-쪼끄만게 별 걸 다 아네.

 

-이제 제가 훨씬 크거든요?

 

 

 

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그런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마치 관린이가 어렸을 적 데리고 다니던 것처럼 손도 꼭 잡았는데 이제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형처럼 보이지가 않아서 커다란 남자 둘이 손을 잡고 새벽길을 걷는 조금 이상한 그림이 되었다.

 

 

 

어느새 둘 다 말수가 적어졌다. 동네로 올라가는 언덕이 제법 가팔랐다. 곧 달동네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별빛처럼 빛났다. 아직 채 넘어가지 않은 달빛이 가로수 사이로 하얗게 빛났다. 둘은 거기서 예정이나 된 것처럼 멈춰섰다. 옆에 서 있는 소심하고 아이답지 않게 영민했던 아이는 이젠 남자 냄새가 물씬 나는 옆선을 가지고 있었다. 지훈은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었다. 관린은 그 옆에서 작게 흥얼거렸다.

 

 

 

Dear moon, my moon

가까워지지 않아

잰걸음으로 따라가도 닿지 않는 달처럼

 

Oh moon, like moon

왜 사라지지 않아

뒤돌아 등지고 도망쳐 봐도

따라오는 저 달처럼,

 

넌,

우연일까

눈 맞추던 순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낮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답을 한다

망설이던 대답

아스라이 거기 너를

왜인지 난, 다 알 것 같다고

 

Oh moon

My moon

안으려는 게 아냐

내 품에 안기엔 턱없이 커다란 걸 알아

 

Oh moon

My moon

가지려는 게 아냐

네가 나에게 이리 눈 부신 건

내가 너무나 짙은 밤이기 때문인 걸

 

우연일까

하얀 얼굴 어딘가

너에겐 어울리지 않는

그늘진 얼룩을 본 것만 같아

 

손을 흔든다

널 부르는 수화

여기 너와 몹시 닮은

외톨이의 존재가 있다고

 

 

잘 살아지지 않아

 

My only moon

가닿지 않을 만큼

깊어진 밤까지

하얀 빛을 그 고요를

 

오늘 밤도 잠들지 않을게

 

 

 

 

 

  1. 내 품에 안기엔 턱없이 커다란 너

 

 

 

관린과 지훈은 그 이후로 냉전 상태였다. 관린이 집을 나가 따로 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관린이 혼자 나가 살겠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관린의 고집은 극단적으로 떼를 쓴다기보다는 단단하고 단호했다. 무엇이 그에게 그렇게 단호한 의지를 심어주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다 큰 애가 학교에 안간다고 버티는데 저걸 팰수도 없고 안아서 데려다 놓을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훈은 속이 탔다.

 

 

 

-대체 왜 나랑 같이 살기가 싫어진건데? 우리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보자.

 

-싫어진 게 아니라요.

 

-그럼 뭐야 따로 나가서 살면 좋을 게 뭐가 있는데. 대체 왜 그래 어??!!!!!

 

 

 

생전 속 썩이지 않고 알아서 학교생활이며 집안일까지 착실하게 하던 관린이 왜 이렇게 다 커서 속을 썩이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저게 얼굴값 하느라고 그런가? 지훈이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관린은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이마에 갖다댄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성인남자인 자신에게도 위압감을 줄 정도로 존재감이 커 보였다. 내 품에 안기엔 턱없이 커다란 너. 달밤에 관린이 부르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관린은 이제 자신의 품에 안기엔 턱없이 커다래지고 말았다.

 

 

 

-왜냐면 제가 당신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 근데 왜 나간다고 하냐니까?

 

 

 

관린이 고개를 들며 실소를 터트렸다. 눈가에 조금 물기가 어린 것 같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못 알아들을 줄.

 

 

 

그제서야 지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그리고 지훈은 처음으로 관린을 때렸다.

 

 

 

-야 이 미친새끼야. 니가 제정신이야? 기껏 키워줬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야 이…!

 

 

 

결국 지훈은 자기가 때리던 관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울고 싶을 때 의지할 사람도 이제 자기를 울린 라이관린밖에는 없었다.

 

 

 

 

 

  1. 다시 만날 때까지

 

 

 

관린은 어느새 18이 되었고 관린의 끈질긴 요구 끝에 결국 지훈은 관린이 집을 나가는 걸 허락해주기로 했다. 고백은 받아주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훈은 관린이 성인이 되고 진짜 아버지가 사회로 나오더라도 관린과 평생 가족일거라고 생각했다. 지훈도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외롭게 자랐던 터라 가족이 주는 따뜻함에 더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린을 성적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관린과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훈이 생각하기에 서로를 성적으로 원하는 사이는 어차피 끝이 있는 사이였다. 남자와 남자 사이라서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다면 더더욱.

 

 

 

-다시.. 괜찮아지면 들어와.

 

-그럴 일 없어요. 지훈형.

 

-..그래. 지금은 그럴 것 같겠지. 내가 너 항상 지켜보고 있을거야. 진짜야. 학교도 제대로 다니고.

 

-그럴게요.

 

 

 

관린은 의외로 담담했다. 오히려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미련을 놓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건 오히려 지훈이었다.

 

 

 

마지막으로 단출한 캐리어를 끌며 돌아서려던 관린을 붙잡은 지훈이 말했다.

 

 

 

-근데 왜 나가야되는데?

 

-..우리 다 얘기 끝났잖아요.

 

 

 

이마를 짚으며 지훈을 내려다보는 관린의 표정이 너무나 어엿한 남자의 모습이라서 지훈은 자꾸만 이 아이가 내가 기른 그 아이가 맞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했다.

 

 

 

-왜? 나를 보면 괴로워?

 

-네. 괴로워요.

 

-왜?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형 제발 이러지 마요. 저도… 하…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안 돼. 안될 것 같아. 그럼 인생이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이걸론 안 돼? 뭐가 더 필요해? 어?

 

-형 어른이잖아요. 뭐가 더 필요한지 알잖아요.

 

-…나랑 자고 싶어?

 

-형.

 

-그래서 그래? 그게 괴로워? 고작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7년간 가족같이 지낸걸 네가 지금 다 부숴야겠다고 하는 거냐고? 어?!

 

-형이랑 자고 싶어요. 그것도 내 아래에 두고 잔뜩 울 때까지 괴롭히고 싶어요. 내가 뭘 생각해왔는지 더 얘기해요? 아니. 근데 그건 어차피 문제의 본질이 아니에요. 난 형이 날 아들처럼 보는 게 싫어요. 스킨십을 하지 못하더라도 좋아요. 연인 사이가 되고 싶어요. 내가 당신을 그런 의미로 사랑하니까.

 

-대체 언제부터.

 

-그건 저도 몰라요. 당신이 키웠잖아요. 내 모든 건 다 당신이 만든거예요. 그 이전의 내 모습은 하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착각일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아직 어린 너한테 나밖에 없었으니까.

 

-저 그래서 형 모르게 온갖 짓도 해봤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절 이제 다 키워버린 거예요. 그래서 난 이제 형을 사랑할 줄 아는 한 사람으로 커버렸어요.

 

 

 

 

 

  1. 불빛

 

 

 

지훈은 언덕 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관린의 자취방을 구해주었다. 지훈은 창가에서 그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는 관린이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고는 했다. 연락을 끊기로 한 것도 아닌데 둘은 최대한 연락을 삼갔다. 원래부터 같은 집에 살면서도 살뜰히 연락을 하는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그저 때가 되면 집에 들어와 있고 곁에 있는 게 당연한 사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훈은 관린의 집에 불빛이 들어온 것을 보며 등을 켰다 껐다 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가 집에 들어왔구나. 그 사이에 또 얼마나 컸을까. 나를 여전히 사랑할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지훈은 답지 않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금 뒤에 관린의 방에서 불빛이 깜빡깜빡 하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보고 지훈은 그만 창가에 엎드려 울고 말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는데 서로 떨어져있어야만 하는 걸까.

 

 

 

지훈은 거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불을 끄고 밖으로 나섰다.

 

 

 

 

 

  1. 졸업

 

 

 

[형 나 졸업하는데 와줄거야?]

 

[졸업은 할 수 있는거야? 장하네]

 

[응 커다란 꽃다발 사들고 와]

 

[그래]

 

 

 

2년 만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관린은 낮에, 지훈은 밤에 움직이기 때문인지 한 번도 마주쳐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둘은 그렇게 어제 만난 것처럼 문자를 주고 받았다. 스무살이 된 관린이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지훈은 막대사탕을 물고 있던 12살 짜리 소년의 모습부터 자신의 지켜주겠다고 말하던 15년 짜리 소년의 모습, 방황하던 17의 관린의 모습까지, 자신이 젊음을 다 바쳐 키웠던 관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8년은 한 소년을 어른이 되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8년 동안 지훈 자신은 좀 더 어른이 되었을까.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일까. 지훈은 무척 복잡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최대한 말쑥해보이려고 양복에 코트를 차려입었더니 칼바람이 코트속으로 들어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 인가봐 이 정도 날씨에 이렇게 추운걸 보니.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며 장난을 치는 어린애들 사이로 관린이 보였다.

 

 

 

-형!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에 등 뒤에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아 눈물겹게 보고 싶었던 나의 아이.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장하고 사랑스러워서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에게 안긴 것 같은 폼새가 된 지훈은 관린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한참을 끄윽거리며 울었다.

 

 

 

-형은 다 큰 남자가 뭐 이렇게 눈물이 많아요.

 

-이게 다 컸다고 건방져져가지고.

 

-이제 다 큰 것처럼 보이기는 해요?

 

-어 너 나 이겨먹으려고 이렇게 운동했냐?

 

-아 티 나나보네?

 

-짜식..

 

 

 

지훈이 까치발을 들어 관린의 머리를 잔뜩 흩트려 놓았다.

 

관린은 해사하게 웃더니 지훈에게 등을 내밀며 무릎을 꿇었다.

 

 

 

-뭐? 업히라구?

 

-네. 제가 집까지 업어다 드릴게요.

 

-야 나 무거워 임마

 

-이까짓거 못할까봐. 빨리 업혀요.

 

 

 

지훈은 관린의 등에 업혀 집에 가면서 비로소 자신이 그를 떠나보낸 것은 자신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감정이 착각일 것에 대한 두려움. 2년 만에 다시 만나 ‘형 이제 저 착각에서 벗어났으니 우리 다시 형동생 해요.’ 할 것 같은 두려움.

 

 

 

-나는 니가 다 크는 게 싫었어.

 

-세상에 그런 보호자가 어딨어요. 잘 크는 걸 보면 자랑스러워야지.

 

-그러니까. 그런데 네가 다 크면 날 떠나갈 거니까 그래서 싫었던 모양이야.

 

-우리 형이 나한테 업히더니 어린양을 다 하시고.

 

 

 

언제 이렇게 능글맞은 놈이 된거지.

 

 

 

-그럼 지금 잡아요.

 

-어떻게.

 

-나랑 다시 가족이 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이제 다 컸으니까 내가 더 이상..

 

-그렇게 말고 또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럴까.

 

 

 

관린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왜 이제 너무 무거워?

 

 

 

관린의 등에서 내려온 지훈이 관린을 웃으면서 올려다 보았다. 관린이 지훈의 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응 누가 누굴 업어주는 관계는 이제 너무 무거워. 그러니까 이제 같이 걸어요. 이 길 끝까지.

 

 

 

해가 지며 언덕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관린은 예전의 그 때처럼 교복을 입고 있었다. 둘은 거기서 첫 키스를 나눴다.

 

 

 

안녕 나의 아이. 이제 천천히 같이 늙자. 우리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