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
w. 아토못

 

 

 

이야기 전반에 충청도 방언이 사용되나 문자를 읽는 데에나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의 변형(했쥬, 했슈 등)은 저의 주관에 따라 표준어로 표기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록적인 가뭄으로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났다. 부식된 자동차가 발견됐다. 경찰차와 구급차, 그리고 그 저수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놀라기보다 묘한 표정으로 그 차가 떨어뜨리는 물방울을 쳐다보고 있다.

 

 

 

 

 

임우

19905

 

그해에는 깡철이 아주 지겹게도 땅바닥에 붙어있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의 일이다. 마을 어른들은 형형한 불덩이들을 보면서 드디어 이 마을이 가물어 말라 뒤질 때가 됐다고 둥글게 굽은 허리를 두드리면서도, 꼭 그래야 하는 숙명을 짊어진 것처럼 바쁘게 입을 놀렸다. 마침 면사무소 창고에 처박아 놓은 야매 기우제용 풍물들을 꺼낼 일이 햇수를 다섯번 넘기도록 없었던지라 한탄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지훈이네 할머니, 그러니까 영춘 할머니가 거실 장판에 놓은 몸통만한 브라운관 테레비전에는 헤어 무스로 국회의원 마냥 뺀질하게 머리를 넘긴 정장차림의 앵커가 보령댐 저수율이 역대 최저네 마네 입을 놀려댔고, 마을 노인정 앞에 앉아 고스톱을 치는 할머니들은 제각기 앓는 소리를 냈다. 화투패를 내려치는 때에 맞춰서. 타악, 어휴. 타악, 어휴. 땅바닥이 꺼지도록.

 

대체 그 깡철이가 뭐기에 그러는 걸까? 지훈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영춘이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깡철인지 꽝철인지 하는 것은 용이 되지 못한 뱀인지 이무기 같은 것으로 비를 무진장 싫어하는 놈이라고 했다. 땅바닥에 붙어서 하늘로 못가고 비를 못내리게 버티는 끔찍한 놈이라고. 작물을 다 망치고 결국 농민들 목숨까지 구겨놓는 괴물. 그 괴물이 이 모든 한탄과 한숨을 만들어내는 걸까.

 

내가 죽을 때가 되긴 했지. 이 나이 먹고 살아봐야 뭣헌디야. 죽는 게 속 편허지. 어린 지훈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이 정말 안타까워 걱정의 마음으로 한탄을 하는 것인지, 혹은 습관처럼 자신들의 비극을 비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마을 아저씨들이 이맘때가 되면 지내야 한다고 노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기우제처럼 말이다. 기우제를 지내는 마을 노인들은 그게 정말 비를 내려줄 거라고 철썩같이 믿는데, 비극을 비는 저 작은 의식들은 전혀 효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훈은 밭일을 도우면서 들려오는 고속도로 뽕짝과 타령을 여름 내리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장님이 키우는 가축 몇의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지훈은 뙤약볕 아래에서 푸르르 콧바람을 내는 소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이 물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럼 저 한탄들이 불행 빌기를 멈출까. 그 생각을 이어받은 것처럼 할머니가 다시 넋두리를 하기 시작한다. 제 논밭의 비극을 빌면서 허리를 조아렸다 핀다. 절에 가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굽혔다, 폈다. 굽혔다, 폈다. 먹고 죽을래도 없는데 가뭄이 웬말이여. 이장놈도 기우제를 지낸다고 주둥이 놀리기만 바쁘지 지들이 하는 것이 뭐가 있어. 그래, 내가 죽을 때가 되긴 됐지. 배때지 거죽이 등딱지 가 붙어 죽으라고 하늘에서 고사를 지내는겨, 고사르을……..

 

 

 

 

 

 

 

지훈이가 사는 동네에는 아주 큰 개천이 하나 있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장님 집도 있었고, 학교도 있었고 면사무소랑 제일 끝에는 산까지 이어지는 곳이었다. 개천에는 이름도 있었다. 살아있는 소새끼한테도 지어주지 않는 이름을, 뭐가 그리 귀해서 이름까지 붙여주는지 어린 마음에도 참 궁금했지만 어쨌든 그 개천은 참 대단하게도 이름이 있었다. 심지어 지훈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름이 있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그보다도 더 오래된 누군가가 이 마을에 살때 어느날 갑자기 생긴 천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이곳에 살 때 개천이 이어지는 그 산에는 비범하게 여겨지는 노루인지 짐승 하나가 살았었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참 기묘한 놈이라, 짐승을 잡아 먹고 사는 산에 집을 짓고 사는 삼꾼도 그 짐승을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고. 그러다 어떤 멍청한 백정 하나가 그 짐승이 불길하답시고 잡아죽여 약을 지어먹고 고기를 해먹겠다며 짱돌로 머리를 찧어버렸고 짐승은 그 자리에서 아주 큰 느티나무에 코를 박고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 생긴 천이 지금의 개천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장루천이었다. 장루천. 노루 장자에 눈물 루, 장루천. 그 개천은 이 마을의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다른 짐승도 아니고 노루 눈물이라니 이름도 참 예쁘구나 싶었다. 그때는 사진기도 없고 그저 입에서 입으로 얘기를 전하니 갑자기 생겼다는 말에 그러려니 해야 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적어도 지훈의 생각은 그랬다. 탄생이 비범하거나 말거나 지금 그 개천은 바닥까지 말라서 노루 눈물은 커녕 땀 한방울도 없는 판국이고, 목숨도 안 붙은 그런 강물떼기를 비범하게 여기어 보았자 몇백년 전에 죽어버린 짐승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려 강물이 난데없이 퐁퐁 샘솟을리 만무하니 종이에도 없는 그 이야기를 어느 짝에 쓸 것이냐가 지훈의 오랜 의문이었다. 마을에 비하면 코딱지만했을 그 짐승이 도대체 눈물을 얼마나 흘렸기에 개천까지 됐을까 쓸모없는 상상도 해보았다. 머리에 돌팔매질을 당하고 흙바닥에 고꾸라져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짐승의 얼굴과 눈을.

 

 

 

 

 

 

 

 

“안 되겄어.”

 

그리고 할머니가 밭을 메다 벌떡 일어난 것은 5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서울에서는 벚꽃 나들이의 끝물일 시기. 모내기를 막 마친 논두렁은 본디 찰박거릴 정도로 저수지 물이 사방팔방 가득해야 맞았으나, 여기저기서는 거의 바닥을 드러낸 밭 투성이였다. 가뭄이었다. 이장님 말씀이 정부에서 경보까지 내렸단다. 모에서 자라난 잡초를 솎던 지훈이의 할머니가 잔뜩 성을 내며 바싹 마른 풀을 팽개쳤다.

 

“아니, 풍물 치는 데 남자여자가 어디있간? 저것들이 아직 배가 덜 고파 조선 양반댁 노릇에 취한겨. 배 고프면 치는 힘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대단한 천하장사 힘이 난다고 저랴. 그럴 때는 하나라도 더 풍물을 쳐야 저 하늘에 기별이라도 가시겄구먼 무슨 벼슬을 지내겠다고.”

 

경보 소식을 들은 이장님이 마을의 남자 어른들을 불러모아 풍물을 치러 장루산으로 향한 날이었다. 영춘 할매를 포함한 마을 여자들은 기어코 사내들만 가야한다며 그들을 만류한 데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쩌시게, 할머니.”

 

지훈이가 영춘이 할머니가 팽개친 잡초를 거두며 물었다. 무릎이 닳은 노인이 허벅지를 짚고 끙끙 앓으며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저거 몇번 쳐봐야 지들 귀만 아프지. 저것들 풍물 치고 삼일내로 비가 내리면 내가 이장네 처자식이다, 염병할.”

 

다소 거칠은 말에도 지훈이는 익숙한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욕을 담은 영춘 할머니만 햇살을 가득 받은 지훈이의 말간 눈에 헛기침을 몇번 했을 뿐이다.

 

“풍물 쳐도 소용이 없으면은 임우네 불러야지 어쩌겄어.”

“임우네요?”

“거 기우제 지내주고 우리 수호목 봐주는 무당 하나 있디야.”

 

임우. 나이가 어린 지훈이는 이름만 들었지 기억속에 일면식이 없는 이름이었다. 지훈이는 내심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으나, 가끔 어릴 때에 무슨보살, 무슨도령하는 무당집을 동네 아줌마들 손에 이끌려 찾아갔다가 방이 떠나가라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경기를 일으킨 기억밖에 없었으니 곧 경계심이 호감을 이겨먹었다.

 

결국 마을 남자들이 이틀동안 내내 풍물을 쳐 지낸 기우제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영춘이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 여자들이 봇물 터뜨리듯 이장이며 남자들을 채근했다. 내가 그럴 줄 알었다, 그럴줄 알었어. 풍물 치느라 염병떤 그 땀을 모아서 문식이네 논에 물을 댔으면 벼가 애저녁에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겄다. 하여간 지덜이 남자라고 나서서 한 일 중에 잘된 일이 뭐가 있어.

 

“아, 고생헌 사람들헌티 그런말 하는 것 아녀요.”

“얼씨구. 지금 마을이 통째로 말라죽게 생겼는데 여자는 풍물치면 안 된다고 구한말 얘기를 헌 게 누군데 그랴?”

 

이익. 이장을 비롯한 마을 남자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들의 이마며 목에는 땀이 홍수나듯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그것들을 길어 모으면 잡초에 물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쏟아졌다. 살인적인 볕이었다.

 

“그럼 뭐 좋은 방법이 있는지 말이나 해보쇼.”

 

영춘이네 할머니를 중심으로 여자들 사이에 말이 오갔다. 결연한 표정들이다. 그들의 사이사이에는 지훈이 또래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무결한 표정으로 어른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임우네 불러.”

 

‘임우’라는 이름에 이장이 눈을 뒤집고 잔뜩 성냈다.

 

“아, 우리 먹고 죽을래도 없는디 그 사람 부를 돈이 어디서 난디야!”

“말마따나 먹고 죽을래도 없는 거 허리띠 졸라매서 무당이라도 불러야지. 10년 전에도 두달을 풍물만 치다 임우네 불러서 비가 아주 저수지 가득 채울 만큼 쏟아졌던 거 벌써 잊었어?”

 

듣기에 그 임우라는 작자가 —할머니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용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10년 전이라면 지훈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그맘때면……. 지훈이가 생각에 잠겼다. 회상을 하고자 함이었다. 기억이 날 법도 한데 얼마나 가물었는지만 대강 기억이 나고 별 특별한 기미가 없었다. 어쨌든 ‘용한 임우네’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 기록적인 가뭄을 폭우와도 같은 장마로 풍요롭게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 노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었다.

 

“이러다 다 죽어.”

 

결국 제풀에 꺾여 물 먹지 못한 모마냥 고개를 숙인 이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일년 일해 하루 벌어먹는 농부라 돈이 없어도 별 수 있으랴.

 

“…….그렇게 헙시다.”

 

배째라 등가죽을 바닥에 깔고 껌뻑 죽지 못하는 것은, 죽기에는 아직 뿌린 게 많아 거둘 것도 많은 인간이어서니.

 

 

 

 

 

 

결국 동네 노인들은 없는 형편에 쌔가 빠져라 돈을 모아 임우네를 부르기로 했다. 마을에서 제일 논이 넓은 만석이 할아버지는 집에 있던 경운기를 하나 팔았다. 다들 그의 대쪽같은 결단에 놀라면서도 잘했다 고맙다 떠받드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쉬울 것도 잃을 것도 제일 많으니 발등에 제일 큰 불이 떨어진 건 당연 만석이네 아니겠냐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언제 오라고 한겨?”

“다음주에.”

 

가만히 말을 듣던 지훈이가 영춘 할머니의 옷자락을 몇번 당겼다.

 

“그럼 다음주에 그 무당이 오는겨?”

“그랴. 이따 얘기해줄 테니까 잠깐 조용히 혀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영춘 할머니는 약속대로 면사무소에서 오간 이야기를 토씨 하나 안 빼먹고 일러주었다. 장루산에 오르면 있는 그 느티나무가 우리 마을 수호목인데 그걸 가끔 와 돌봐주기도 하고 제를 봐주기도 하는 무당이었다. 기우제를 지낼 순간이 오면 마을의 수호목을 돌봐주는 무당이라기에 마을에 상주를 하는가 싶었더니 아니란다. 원래 나무를 보던 무당은 서울로 비즈니스(?)를 하러 떠났고, 급한 마음에 수소문해 찾은 댁이 임우였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피였던 계남이 삼촌이 소개해줬다는데 계남이 삼촌은 지금 마을에 없었다. 서울로 취직해서 금의환향 하겠다면서 마을을 떠난지가 벌써 2년째였다.

 

마을 노인들은 그때부터 바빠졌다. 어쩌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간절하고 바쁘게. 저마다 방에다 맑은 물을 떠다놓고 싹싹 손바닥을 빌면서 누군가에게 빌었다. 소싯적 머구리를 하던 구택이 할아버지는 산을 타고 올라가 울보 짐승이 코박고 죽었다던 그 수호목까지의 길을 쓸었다.

 

염원이다. 염원이 온 마을을 덮었다.

 

 

 

 

 

 

 

첫째날

 

 

아침 댓바닥부터 마을이 소란스러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벽에 걸린 검은색 시계의 시침은 아직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가뭄이라지만 아직 밤공기가 서늘한 5월이었다. 이불을 끌어올리며 고개를 드니 두런두런 할머니가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일출이 시작되지도 않아 온세상이 시퍼렇게 어두웠다. 지훈이 비척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곱게 접었다. 마루에 영춘과 상순이 얘기를 나누다 장판 소리에 두 노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일어났냐.”

 

까치집이 된 머리에 눈을 게슴츠레 뜬 지훈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상순 할머니.”

“그려. 잘 지내지?”

“네, 그럼요.”

 

이따가 데리고 갈겨? 데리고 가야지. 괜찮여? 안 될 건 또 뭐 있어. 이장네 연락해봐. 아직 안 왔나? 야, 지훈아. 안에서 전화기 좀 끌어갖고 와라. 고개를 끄덕인 지훈이 발 빠르게 마루 안으로 발을 들이고 부엌에서 옥색 전화기를 끌어다 내놨다. 마루 창호에 붙은 마을 비상연락망에 주름진 지문이 얹혔다. 공사삼……. 어, 여보쇼. 면사무소로 가라고? 어어, 알었어. 자리가 있어? 이이, 그거 타고 가는 게 훨씬 낫지. 그려. 휘청이는 손으로 전화를 끊은 할머니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면사무소로 오라네.”

“아휴, 거기까지 가려면 또 한오백년이여.”

 

지훈이 화장실로 들어가 다라이에 받아놓은 물을 손에 묻혔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눈곱을 뗐다. 바지도 갈아입어야 하나. 지훈아, 가자! 바지는 갈아입지 못하겠구먼. 후다닥 슬리퍼에 발을 끼워넣었다. 만석이네가 경운기 태워준디야. 경운기 팔았담서? 아, 그 댁 경운기가 한두개여? 팔고 남은 건갑지. 여하튼 그거 타고 가믄 뒤야.

 

면사무소에는 마을에 사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평소면은 다섯 이상 모이기가 힘든 이 동네에, 열도 열다섯도 더 모이는 때가 며칠을 걸러 생겼다. 다 가뭄 때문이었고 가뭄 때문이었다. 아직 몽롱한 정신에 주위를 둘러보니 지훈이 또래는 자신밖에 없었다. 아직도 여섯시가 되지도 않았으니 그럴만 했다. 원채 어린 아이가 없는 동네이기도 했다. 영춘, 상순, 그리고 만석을 비롯해 면사무소에 도착한 어른들이 안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으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거들었다.

 

뭐여. 왔다면서 어디갔어?

산에 가서 기도 먼저 드리고 온디야.

지극정성이구먼.

그럼. 돈 주고 불렀음 그 정도 정성은 있어야지.

 

여섯시가 됐다.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곧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안이 차분해졌다. 이장님이었다. 자자. 조용히들 허고. 문이 살짝 열려있었는데, 그 문틈의 정면에 앉은 지훈은 그 밖이 누군지는 몰라도 비범할 것이란 생각은 금방 들었다. 요즘에는 할머니들도 입지 않는 한복차림이었다. 하얀. 안의 분위기가 어느정도 정리되자 문을 조금 열고 밖의 여인과 말을 나눴다. 여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혼자가 아니었다. 지훈이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여인을 뒤따라 들어왔다. 아직까지 총기가 도는 영춘과 비교적 젊은 노인 몇을 제외하면 그 무당의 얼굴이나 옆에 붙은 남자아이의 정체를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나이의 노인들이니 당연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임우네라는 무당과 그덕에 가뭄이 끝났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이 짝은 다 알지?” 무당을 가리키며 물은 이장이 한바탕 아우성을 들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다 어제오늘 하는 인간들인디 알기는 무얼 알어! 이마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비빈 이장이 무당에게 손짓을 했다. 기우제든 임우라는 이름이든 소개를 하란 의미였다. 무당이 꾸벅 인사를 했다.

 

“임우는 제가 아니라 여기, 이짝.”

 

의외였다. 임우네, 임우네 하며 며칠을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무당의 이름이 임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의 주인이 무당이 아닌 저 아이라니.

 

“할머니. 임우가 뭐여.”

 

지훈이 영춘 할머니의 어깨 위로 고개를 쑥 빼고 물었다. 장마, 장마. 영춘의 성의 없는 대답에 지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우제에 딱 맞는 이름이지 싶었다. 영춘이 쑥덕대며 무당 뒤에 선 ‘임우’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할머니들이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 숙여 그 이야기를 귀에 주워담았다. 아마 이 말은 하루도 안 되어 넓디 넓은 마을에 퍼질 것이다.

 

저 놈이 정사년 뱀띠에 난 애랴. 용이 못된 이무기가 뱀이 되어서 땅바닥에 배가 붙어 승천을 못한겨. 원래는 병진년 용으로 났어야 하는 걸 애미 뱃속에 들어 꼬박 한해를 뻐팅겨갖고. 그래서 깡철이가 몸안으로 든겨.

 

“지훈이 너 저 애 가까이 하지 말어라. 알았지.”

 

영춘이 지훈에게 경고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훈은 한귀로 말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을 해서 끄덕인 것은 아니었다. 노인들 그렇게 끄덕이지 않으면 절대로 말 멈추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훈이였다. 깡철이. 가뭄이 들라치면 꽹과리로 쫓으려고 무던 애를 쓰는 그 괴물. 그것이 몸에 든 아이 임우. 무당은 온갖 소란에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 뒤의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밭일을 하느라 까무잡잡하고 할머니들의 소식거리들을 얻어먹으며 자란 자신의 팔다리에 비해 턱없이 마르고 말간 몸이었다. 지훈은 그 얼굴이 꼭 안개로 뒤덮인 저수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런 잡념이 섞이지 않고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얼굴이었다.

 

순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지훈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심장이 툭툭대며 가슴을 때렸다. 자자, 조용히들 허고. 이장이 성난 소 달래듯 마을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다시금 찾아온 고요함에 무당은 천천히 기우제에 대해 설명했다. 모두가 까맣게 잊은 10년 전 그날의 기우제였다.

 

기우제는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거사였다. 무당과 임우라는 아이는 그동안 이곳에 머무르면서 비를 빌 것이라 했다. 가끔 가다 노인들이 손을 들어 어떤 제를 지내는 것인지에 대해 물었지만 무당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금기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풍물, 특히 꽹과리는 절대 안 된다.

 

풍물, 꽹과리. 지훈은 장루산에 어렴풋이 들려오던 그 시끄러운 쇳조각들의 소리를 떠올렸다. 하기야 저 무당도, 맑은 눈을 하고 얇은 수막으로 둘러싸인 눈을 한 저 임우라는 아이도 벼락같은 그 소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무당이 자신의 말을 마무리 하자 노인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장이 까치발을 들고 무어라 소리를 질렀는데 그것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이장은 곧 바닥에 제 녹색 모자를 내팽개쳤다. 해가 중천에 떴다. 풀이 한뼘만큼 말랐다.

 

 

 

 

 

 

 

 

 

 

“그럼 무당이랑 그 임우라는 애는 어디에서 지내고 자는겨?”

 

경운기를 털털 타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영춘은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일찌감치 마당으로 나가 잡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훈이가 밥을 먹다 말고 밖에다 물었다. 그렇게 물으니 영춘은 쌀포대 위에다 파리약을 잔뜩 뿌리며 엉덩이를 들썩댔다. 대답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할머니이.”

“몰러. 묻지말어.”

“그 무당이 묻지말리야?”

“아이고, 알어서 좋을 거 하나두 읎어. 그러려니 햐.”

 

지훈이가 입을 샐쭉대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무당이 금기라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았다. 테레비전을 보면 그런 거 다 가짜라고 하던데. 지훈이가 사는 동네야 워낙 외져서 공영 방송사를 제외하면 케이블 방송이라고는 종교 방송 뿐이었다. 가끔 집에 처박혀서 먹을 것도 할 것도 없으면, 지훈이는 테레비를 틀어놓고 그 방송을 아무 생각없이 보았다. 어디인지 모를 고요한 공간 안에서 구원, 기도, 회개 이런 단어들이 떠다니는 것을 듣다보면 잠이 절로 왔다. 오늘은 밭일도 쉬는 날이었다. 아마 일주일간 아무도 쉬이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훈이는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 반찬통 뚜껑을 차례대로 닫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바닥이 끈적거리는 게 조만간 청소를 해야 쓰겄는디.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밤이 됐다. 요즈음엔 구름도 없어 밤하늘이 맑았다. 영춘은 그 하늘을 몹시도 싫어했지만 지훈이는 밤에 조금 더울 때면 곧잘 나가 평상에 누워 자고는 했다. 아침에 살이 익거나 눈이 시리는 것이 흠이기는 했지만 봐도봐도 질리지 않을 절경이었다. 영춘이 할머니는 아홉시면 칼같이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기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오면 테레비전도 킬 수 없었다. 영춘이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벽시계를 보고 이부자리에 몸을 욱여넣었다. 지훈이도 그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지훈이는 몇번이고 자세를 바꿨다. 양도 백 몇마리까지 세어보다가 그만두었고 일에서 백까지, 또 백에서 거꾸로 일까지도 세어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결국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지훈이가 영춘을 넘어 살금살금 슬리퍼를 신었다. 마루 아래로 털썩 내려앉은 지훈이의 발짓에 쌀포대 위에서 약을 먹던 파리들이 마지막 날갯짓을 했다. 와. 마루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은 지훈이의 고개가 절로 꺾였다. 이제 곧 보름달이 뜰 시기라 그런지 거의 다 차오른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지훈이의 고개가 멍하니 하늘을 향해있다가, 갑자기 눈앞에 오늘 면사무소에서 봤던 얼굴이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얕은 물안개, 해무, 그런 희끄무레하고 그것을 덮는 너른 물의 무게와 같은 얼굴. 임우의 얼굴.

 

“어후.”

 

갑자기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안 되겠다.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지훈이 퉁탕대며 집 울타리를 나섰다. 달빛이 밝아 가로등도 필요 없었다. 장루천이 있는 개천으로 나가 그 길을 따라 산까지 쭉 산책을 하면 몸이 좀 노곤해지지 않을까, 그 얼굴이나 눈이 또 안 떠올라 경기를 덜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게 열다섯 지훈이의 대책이었다. 새벽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습기 찬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콧속으로 들어왔다. 아까 잠시 후텁지근해졌던 기운이 말끔히 씻겨나갔다. 그리고 장루천의 사이를 잇는 작은 다리들을 세번쯤 지나쳤을 때였다. 느티나무 수호목이 있는 장루산 쪽에 허여멀건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본 지훈이는 온몸의 피가 아래로 꺼지는 듯 하다가, 그것이 곧 오늘 마을로 도착한 무당임을 깨닫고 몸을 수그렸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저쪽은 산이라 밤에는 위험할 텐데. 발은 절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무당과 아이는 걷고 또 걸어 산 위로 향했다. 무당의 양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이따금씩 비탈길을 오를 때 달빛이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것이 쇠붙이로 만든 무언가 같았다. 발길이 멈춘 곳은 느티나무 근처의 사당이었다. 무당이 그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이며 기도를 올리고, 임우는 잠자코 옆에서 기다렸다. 다른 손에는 꾕과리채가 쥐여져있었다. 어어. 분명 무당이 자기 입으로 풍물이나 꽹과리는 안 된다고 했는데. 풀숲에 숨어있던 지훈이의 어깨가 의아함에 들썩였다. 풀숲의 가지가 흔들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여엄병…!”

 

해필이면 이럴 때 소리가. 지훈이가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 무당이 그 소리를 듣지 못했기를 바라며 그쪽을 바라봤다. 저 멀리 맞은편에 있던 임우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있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토끼에 화살을 맞추는 것처럼 그 큰 안개의 눈이 정확히 지훈이를 향했다. 순식간에 그 안개에 싸인 저수지로 끌려갔다.

 

돌아가.

 

찰나였지만 아이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달빛 아래의 창백한 얼굴과 큰눈은 지훈이에게 경고를 전달하기 딱이었다. 지훈이가 놀라 뒤로 자빠졌다.

 

벌렁대는 가슴에, 싸구려 슬리퍼에 용케도 그 먼 거리를 달려 삐걱대는 철문을 차고 들어와 평상에 드러누웠다. 허억, 헉. 옅게 퍼진 하늘에 달빛이 서늘하게 피었다. 그 눈처럼.

 

 

 

 

 

 

둘째날

 

 

 

 

 

“핵교 가냐!”

 

자전거 위에 올라타는 지훈이를 보고 영춘이 소리쳤다.

 

“어엉—!”

“그려, 조심히 가. 해 지기 전에 와야듸야!”

 

오늘은 친구들과 물질을 하고 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대답을 않고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하게 몸이 개운했다. 지훈이는 그 날 집으로 돌아가 실신하듯 잠에 들었다. 헉헉대며 평상에 드러눕자마자 목베개를 끌어다 놓을 틈도 없이 그렇게 꼴딱 잠에 빠진 것이다. 평생 밭일을 도우면서 고되게 하루를 보낸 날에도 그렇게 빨리 잠에 든 적이 없는데 참 해괴한 일이지 싶었다. 아침에는 웬일인지 영춘이 깨우지 않아도 눈을 번쩍 떴다. 영춘이 깨우지 않고도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까지 마쳤다.

 

“야, 너 그날 면사무소에서 그 임우인지 무당 봤담서?”

 

학교는 역시 기우제와 무당, 그리고 지훈이의 또래였던 임우의 이야기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날’이라 함은 무당과 임우가 마을 어른들에게 임우라는 이름의 주인과 금기를 말해줬던 날을 일컫는 것일 테다. 덕분에 그날 유일하게 면사무소를 찾아갔단 지훈이에게 온갖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지훈이는 저에게 쏠리는 관심에 속으로 괜시리 기분이 좋으면서도 얼떨떨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 태성이가 다가와 제일 먼저 임우에 대해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물었다.

 

“늬들이 이미 들은 이야기밖에 없을 것인디.”

“풍물, 꽹과리 안 된다는 거?”

 

지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왜 안 된디야?”

 

군중 속에서 누가 물었다. 수십의 아이들이 가진 눈이 한번에 지훈이에게로 향했다. 몸이 얼어붙는 기분에 지훈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노인들도 잘 모르는 걸 저가 알 리 없지 않은가.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저었다.

 

“울 할머니가 알아서 좋을 것 없다든디.”

“맞어. 울 엄마도 그랬어.”

 

지훈이가 한 말에 몇몇이 맞장구를 치자, 어떻게든 답을 얻어낼 것 같았던 녀석들이 조용해졌다. 대충 상황이 무마되었다.

 

“그 임우라는 놈은? 어땨?”

 

그 물음에 까맣게 잊었던 어젯밤 일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지훈이는 왜인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사실 이 마을에서 살며 배운 것이라고는 서울 사람들 말로 촌빨 날리는 사투리와 잠깐 본 것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법 뿐이었는데, 왜인지 이 대목에서는 쉬이 그날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없었다. 그 이유로는 무당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그날 유일하게 자리해 있던 그 또래라고는 하지만 멀리서 말도 안 하고 멀뚱히 보기만 한 데에 어른의 눈이고 열다섯의 눈이고 뭐 크게 다를 게 있을까 싶은 게 첫째였다. 둘째로는 그 다음날 임우를 숲속에서 보기야 했지만 눈이 마주친 것이 다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이놈들에게 이야기 했다가는 곧장 어른들의 귀에 들어가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당에 대해 그렇게 조심하라, 알려고 하지 마라,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말했던 영춘과 노인들이었는데 자칫 저가 한 일이 기우제에 안 좋은 영향이라도 끼쳤다가는 경운기를 팔아 무당을 부르는 데에 큰 몫을 했던 만석이 할아버지부터 제 등짝을 내려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 눈을 마주쳤다고 그 순간을 장황히 늘어놓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눈을 마주친 것 그 뿐인데도 그러했다. 그 눈이……. 참으로 묘했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이유는 저도 몰랐기에 그저 그 심정을 표현해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열다섯 어린 중학생이 시골에 살며 가진 표현이라봐야 꽃같다, 좆같다, 개같다, 지랄같다 정도에서 끝이 났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근디 그 애 보고 싶다.”

“지훈이 너는 말 안 해봤어?”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나에게 말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입술이 벌어지지도 않고 전달된 것이라 너무 놀란 나머지 헛것을 들은 것으로 넘기기로 했다.

 

“언제 걔 혼자 다니는 거 보면 말 걸어보자.”

“그래!”

 

학교 종이 치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앉아 교과서에 낙서를 시작하고, 연필을 들고 지우개똥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치는 모습에 과연 이 동네에 무당이 찾아오기는 한 것인가 의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창가 자리에 앉은 지훈이 턱을 괴고 커튼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을 바라봤다. 체육 시간을 맞이한 아이들이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축구공을 놀리고 있었다. 집에만 돌아가면, 노인들이 셋 이상 모인 자리에만 끼면 요즘은 어디인가 긴장감이 마구 도는 어제와 오늘이었는데 학교는 이상할 만큼 평범하고 조용하다.

 

 

 

 

 

 

 

“야, 야. 빡지!”

 

학교가 끝나 책가방을 메고 세워놓았던 자전거를 찾으러 갈 무렵이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저의 별명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도니 딱 봐도 장난기가 잔뜩 도는 얼굴들이 동동 몰려 저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지훈이 주위 눈치를 보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태성이가 품안에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크기나 두께가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안에 무언가 묵직한 게 든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장루천을 거슬러 올라가자고 지훈이를 끌어들였다. 지훈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루천을 따라 산 위쪽으로 가면 어른들은 밭일 때문에 잘 오지 않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옆에 물질할 곳도 있겠다, 이럴 때는 물질하지 말어라, 이럴 때는 뭐하지 말아라 참견하는 어른들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놀 수 있는 장소로 곧잘 활용되었다.

 

아이들은 이런 구석에서 참 단합력이 좋았다. 아이들은 산 아래에까지 망설임없이 달렸다. 태성이는 큼지막한 가방을 고이 안은 채 자전거를 몰았다. 아이들 중 절반은 제대로 자전거를 세우지도 않은 채 산 위로 뛰어올라갔다. 어찌나 빨리 몰았는지 평소에는 자전거를 빨리 모는 편인 지훈이가 맨 뒤로 뒤처져버렸다. 지훈이는 넘어진 자전거들을 세우고 날다람쥐처럼 산길을 뛰어오르는 아이들을 뒤따라갔다.

 

그리고 그 장루천이 연못처럼 오목하게 모여있는 터에 다다를 때였다. 아이들이 태성이를 중심으로 뭔가를 귀히 쳐다보고 있었다. 잇따라 감탄사며 욕지기를 내뱉는 것이 보통 물건을 가져온 게 아닌 모양이었다. 분명 야한 책이나 찬장에 두고 잊혀버린 소주를 훔쳐온 것이 틀림없다. 지훈이가 풀숲에 아이들이 벗어놓은 겉옷이며 가방더미에 제것도 올려놓고 다가갔다.

 

“뭐여?”

“태성이가 뭐 가져왔는지 봐라.”

“뭔디.”

 

그 무리의 중심에 앉아있던 태성이가 의기양양하게 자켓을 걷었다.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술이었다. 안에는 딱 봐도 삼도 뭣도 아닌 무언가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지훈이는 순간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뭔디, 이게.” 괜히 옆에 있는 아이의 옆구리를 찔러 물었다.

 

“뱀술이다, 뱀술.”

 

태성이가 대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아이들이 신이 난듯 발을 굴렀다. 그러나 지훈이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 병 안에 떠다니는 뱀의 형체를 바라봤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그 병 안에 떠다니는 뱀처럼 둥둥거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나이에 맞지 않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지훈이와 이 술을 훔쳐온 태성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얼른 마시자고 재촉했다. 알 수 없는 것이 지훈이의 뱃속에서 조용히 요동쳤다.

 

“어?”

 

그때였다. 누군가가 방금 지나온 수풀 너머를 가리켰다. 맷돼지나 들짐승인가 싶었는데 그 손가락의 끝에는 하루만에 동네 최고 유명인사가 된 그 아이가 서있었다.

 

임우였다.

 

“쟈가 임우 아녀?”

 

모두가 지훈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훈이는 또 그 눈 때문인지 제자리에 얼어붙어있을 뿐이었다. 맞나 봐. 반응을 확인한 아이들 중 몇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쩜 저렇게 겁도 없는지. 지훈이는 심장이 쿵쾅댔다. 어젯밤에 그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 임우가 그런 얘기를 했다가는 내가 밤늦게 몰래 무당 뒤를 밟았다는 게 들키는데. 태성이도 어느 새 뱀술병을 내려놓고 임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임우는 그 중심에서 나무를 한손으로 가볍게 짚은 채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새벽 공기처럼 서늘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지훈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임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면사무소에서는 워낙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가까이 보지는 못했는데. 임우는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고개를 조금씩 돌렸다. 꼭 동물원에 있는 노루를 보는 것 같았다.

 

“너 그 무당은 어디로 갔냐?”

“맞어. 원래 둘이 같이 댕기는 거 아녀?”

 

몇번의 질문이 던져졌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 사이를 가르며 잠시 대답 없는 침묵을 흐트러뜨렸다. 임우의 눈에는 참을성 없는 이 사내새끼들의 인내심도 대단히 많이 늘여놓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게 무당의 애동인지 제자인지, 그저 데리고 다니는 아이였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지 그저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임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이는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아니.”

 

그 대답에 누군가가 참았던 숨을 탁 트여냈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숨 막히는 줄 알었네. 답답허다.

 

“그럼 너 우리랑 놀자.”

 

태성이의 제안이었다. 몇몇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야, 걍 갈 길 가라 그랴. 난 쟤 무섭단 말여.”

“그런 게 어딨냐? 무당이 그 아줌마지 쟤여? 사람 따돌리고 그러는 거 아녀.”

 

대장격인 태성이가 말하자 겁에 질린 몇이 지그시 저들을 보는 태성이와 임우의 눈빛에 짓눌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간다.” 그러더니 책가방과 옷가지들을 챙겨 자리에서 벗어난다. 태성이가 그 뒷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임우와 눈을 맞춘다. 야.

 

“우리 저거 마시고 물질하고 놀 건디. 같이 할텨?”

 

임우가 태성이가 가리킨 뱀술을 바라보았다. 또 대답을 기다렸다.

 

“어쩔겨. 빨랑 말해야 뒤야, 안 그럼 해져.”

 

그런데 그런 옆의 재촉에 임우가 대답은 안 하고 돌연 지훈이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지훈이가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그 반응에 모두가 일순 긴장했다.

 

“아, 늬들 먼저 빨리 마셔. 대답 기다리다가 목 빠지겄어.”

 

당황한 지훈이가 어색하게 너스레를 떨며 태성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들이 그제야 답답함을 토로하며 뱀술이 놓인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훈이는 아직도 저를 가만히 쳐다보는 임우에 허수아비 같은 몸짓으로 걸어갔다. 등딱지에 붙는 시선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수건놀이를 하는 것처럼 삥 둘러앉은 자리에 끼었다. 가운데에는 술병과 종이컵 몇잔이 놓여있었다. 태성이를 필두로 아이들이 종이 술잔을 돌렸다. 지훈이도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술병의 뚜껑이 열리던 때였다.

 

“그거 마시면 안 되는데.”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태성이와 지훈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뒤를 팩 돌았다.

 

“뭐여?”

 

얕은 강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지훈이가 침을 꼴깍 삼키는 그 소리밖에는 없었다. 누군가는 미간을 좁히고 눈을 크게 하고, 목을 바짝 당기고 어깨를 움츠렸는데 그 팽팽한 곳 안에서 원래의 결을 유지하는 것은 임우 그 아이 뿐이었다.

 

“그거, 마시면 안 되는데.”

 

또 다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무거워 소리조차 나지 않는 파도가 떠올랐다. 그 파도가 지훈이를 꿀꺽 삼켰다. 그 별 같은 눈이 또 지훈이를 향해있다. 꼭 지훈이를 보고 마시면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제는 물음이 떠오른다. 왜 자꾸 나를.

 

“마시면 안 되지. 미성년자, 그거잖애.”

 

태성이는 낄낄거리며 술병을 따고 조금 너른 입구 안으로 종이컵을 밀어넣었다. 황금빛의 술이 조금씩 따라나왔다. 술냄새가 얼핏 코끝을 스쳤다. 지훈이는 아까부터 드는 이상한 오한에 눈살을 찌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쟤 간다.” “가라 그랴. 어차피 안 마실겨.” 임우가 자리를 뜬 모양이다. 태성이가 지훈이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됐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혼자 뺄 셈이냐며 한소리 들었다.

 

“자, 위하여!”

 

어디서 들은 것은 있는지, 술 제공자인 태성이가 손을 가운데로 뻗으며 외쳤다. 모두가 술잔을 따라 들으며 외쳤다.

 

“위하여—!”

 

그 소리의 끝이 다다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몸통만했던 술병이 묵직한 폐색음을 내며 깨졌다. 높이 치솟아있던 항아리 모양의 술병이 아래로 고꾸라졌다. 놀란 아이들이 술잔을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서서히 술병 안에서 죽어간 뱀이 몸이 비틀어진 채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날아든 돌도 없었다. 새도, 다른 짐승도, 무언가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귀에서 뜀박질을 하는 맥박의 소리가 터졌다. 툭, 툭, 툭. 지훈이는 모두가 얼어버린 그 공간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젯밤과 비슷한 모습. 푸른 수풀 사이 희끗하게 낀 안개처럼 서서 저를 보는 임우.

 

저 아이가 한 짓인가?

 

어떻게?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술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무 막대기로 건져 강에 버리고, 미리 싸왔던 비닐봉지에 깨진 유리조각들을 모아 자전거를 타고 읍내의 버스 터미널 휴지통에 버렸다. 술 한잔 걸치고 하려 했던 물질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그거, 마시면 안 되는데.

 

모두가 그 아이의 말 뒤에 술병이 깨졌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멀쩡하던 술병이 깨지는 것도,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기이한 일들보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에게 술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기우제 둘째날.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른들이 절대 몰라야 하는 비밀이 하나 생겼다.

 

 

 

 

 

 

 

 

 

 

 

저녁시간 전이었다. 지훈이는 방에서 가만히 테레비전을 보다가 가만히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뱀술을 보고 체한 것처럼 뒤틀렸던 속이 깨끗했다. 지훈이는 천천히 방에서 나서 신발을 신었다.

 

“좀 있으면 저녁 먹는디 어디 가냐?”

“더워서, 물질하러.”

“아이고, 팔자도 좋다.”

 

뒤에서 또 한탄을 하는 영춘을 뒤로 하고 페달을 밟았다. 아까 술을 마시려다 마시지 못한 그 산 위가 장소였다. 보름달이 떴으니 달빛이 숲속도 잘 비춰줄 것이다.

 

조금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오후에 술병이 깨졌던 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지훈이는 대충 옷을 벗고 트렁크만 입은 채 물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 공기에 식어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에 찌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가만히 물 위에 떠서 눈을 감았다. 물이 마치 침대라도 되는 양 둥둥. 이렇게 하면 물의 표면이 귀를 막아서 주위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민도 생각도 멈췄다. 물속의 소리가 대신 머릿속을 채웠다.

 

멀리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물결이 치는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헤엄치는 소리였다. 놀란 지훈이 배를 위로 드러내놓고 있던 것을 멈추고 벌떡 일어났다. 물안으로 감겨들어가는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지훈이 첨벙대며 물살을 가르고 그 손목을 잡아 끌어올렸다. 누군가가 버둥대며 뭍 위로 튀어올랐다. 그 무게에 지훈이 되레 물속으로 넘어졌다.

 

달빛을 등 지고, 그 마르고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하얀 눈도.

 

임우였다.

 

지훈이는 순간 당황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수영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게 왜 그렇게 헤엄을 쳐.”

“너를 따라했어.”

 

저가 물 위에 등을 댄 것을 일컬어 하는 말 같았다. 임우의 말은 느릿했다. 느릿하고 무겁고, 사람을 묵직하게 휘감았다. 지훈이는 왠지 모르게 가빠지는 숨에 눈을 내리깔고 시선 끝에 걸리는 임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이끌리듯 하게 되는 행동이었다.

 

“헤엄을 칠 땐 손가락을 피지 말고 오므려야 하는 거야.”

 

창백한 손가락에 물갈퀴가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괜히 그 톡 튀어나온 손마디뼈들을 어루만졌다.

 

“그래야 물을 차고 앞으로 나가지.”

 

지훈이의 손가락 지문은 물을 먹어 쪼글쪼글거렸다. 그 울퉁불퉁한 표면에 보드라운 피부가 슬쩍 밀렸다. 이 대화가 서로에게 건네는 첫 대화인데도, 임우는 손을 잡는 이 행위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놀라움도 없는 모양이었다. 태성이나 다른 애들은 손만 살짝 스쳐도 징그럽다고 토악질 하는 시늉을 하는데. 오히려 손을 뒤집어 깍지를 끼우는 행동이라니. 지훈이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임우는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지훈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물 때문에 살짝 윤기가 도는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주위의 공기마저도 다르게 변했다.

 

“나는 물이 좋아.”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다.

 

“그 속에서 죽어도 좋을 만큼이야.”

 

그게 자꾸 나를 보는 까닭이니.

 

아까, 술병 깨뜨린 거 네가 한 거니.

 

그렇게 묻고 싶었는데 매번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마다 그러했듯, 그리고 그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도 그러했듯 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혀 아래에 머물렀다. 묻지 않아도 긍정할 것만 같은 이상한 믿음이 피어올랐다. 숨이 막혔다. 물에 빠진 것처럼. 둥둥 떠다니는 뱀술, 감겨들어갔던 임우의 손, 그리고 물 위에서 물질을 하며 가만히 유영하던 나. 모든 것이 한 데 뒤섞였다. 지훈이는 저가 먼저 손을 빼내고 황급히 물 밖으로 나갔다. 물기도 닦지 않고 대충 바지와 옷가지를 주워 입고 산을 뛰어내려갔다.

 

태성이와 다르게 두개의 비밀이 생긴 아이는 오직 둘이었다. 지훈이와 임우에게.

 

 

 

 

 

 

 

셋째날

 

 

 

 

 

꽉 찬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이 텅빈 트럭이 아침부터 지훈이의 집을 지났다. 영춘은 그 트럭이 어디로 가는지 유심히 보다가, 계남이 삼촌네로 향한 것을 알아내고 그쪽에다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취직을 해서 2년째 서울에 살고 있다던 계남이 삼촌 때문에 계남이 삼촌의 아버지인 계명이 할아버지가 트럭을 몰고 서울로 올라간단다. 영춘이 지훈이를 데리고 그 집으로 향했다. 취직한 회사가 망해서 귀농하는 계남이 삼촌을 위해 그간 서울에 쌓인 짐들을 모두 가지러 가려고 며칠전부터 용달차를 빌리니 뭐니 시린 무릎으로 동분서주한 거였다. 갈 채비를 하는 계명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영춘이 물었다.

 

“서울 어디 회사에 취직했답시고 몇년동안 기별도 없더니만 무슨 일이랴.”

“거기 사장이 옥장판 사라고 닦달을 허고 결국에는 돈 들고 날랐다 이거 아녀. 말이 좋아 서울살이 하다 귀농하는 것이지 저게 귀농이여? 귀양이지. 지가 언제 서울 사람이기는 했다고.”

“지 아들한테 못허는 말이 읎네.”

“맞는 말이지 뭘 그랴. 아, 말 나온 김에. 지훈이는 서울 가 봤어?”

“읎지. 갈 데가 으디있디야.”

 

영춘이 고개를 저었다. 지훈이는 지금껏 이 동네를 벗어난 적이 절대로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계명이 영춘의 눈치를 잠시 보다 지훈이에게 물었다.

 

“야, 지훈아. 서울 가보고 싶지?”

 

그 물음에 지훈이 말간 눈으로 영춘을 바라봤다. 노인의 눈에 수심과 함께 얕은 고민이 스쳤다. 그러더니 대뜸 묻는다.

 

“가볼텨?”

“진짜요?”

“가 봐. 은제 또 가보겄어.”

“아싸!”

 

그 자리에서 펄쩍 뛴 지훈이가 제자리에서 몇번이고 뛰어올랐다. 아이고! 정신 사나워 가만히 좀 있어! 괜히 민망해 꾸지람을 하는 영춘이 할머니를 껴안은 지훈이가 영춘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서울 강북에 자리를 잡았던 계남이 가진 짐은 조촐했다. 옥장판 아홉장과 가지고 올라갔던 밥솥 하나, 선풍기 하나, 옷가지를 담은 트렁크 그리고 몇가지 잡동사니 끝이었다. 마을에 돌아온 계남은 계명과 함께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느라 동분서주했다. 간만의 재회에 모두들 계남을 반겼다. 영춘의 밭일이 마무리 되면 조금 뒤에 계남이네에서 하는 술자리도 간다고 했다.

 

“할머니.”

 

지훈이가 텃밭 일을 하다말고 앉아 멍하니 영춘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저 멀리 텃밭의 끝쪽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다.

 

“뭐.”

“저 노래 계속 들을겨?”

“나야 있는 거 그냥 듣는 거지 무얼. 딴 거 오백개 있음 오백개 돌아가며 들었다야.”

“글면 나 이번에 서울 따라가서 사가꼬 온 거 하나 있는데 그거 트까?”

“틀어보든가.”

 

지훈이가 그 말에 기다렸다는듯 일어나 방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계남과 짐을 트럭에 실어 다시 이곳으로 내려올 때, 영춘이 쥐여준 돈으로 산 테이프와 또 다른 하나를 꺼냈다. <여름 트로트 베스트>와 <송창식 베스트 메들리>. 송창식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이름이 든 테이프는 계남이 제 돈을 꺼내 대신 사준 것이었다. 송창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유명한 가수란다. 기타라는 악기를 무진장 잘 치는. 지훈이는 익숙하게 테이프의 껍데기를 열어 원래 플레이어 안에 있던 것을 꺼냈다. 그리고 <송창식 베스트 메들리> 넣었다. 맑은 악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게 기타 소리구나.

 

딩동댕, 딩동댕 여름은 가버렸네속절도 없이

 

“푹푹 늘어지는 게 무슨 맛으로 듣냐, 저걸.”

“별로야?”

“걍 들어. 손주 트는 거 듣자.”

 

지훈이 뿌듯하게 입술을 꾹 짓누르고 웃었다. 광대가 열매처럼 톡 튀어나왔다. 영춘 할머니가 지훈이가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하던 얼굴이었다. 꼭 사과같어, 얼굴이. 지훈이는 은근슬쩍 밭일을 멈추고 평상으로 가 앉았다. 지훈이의 다리가 가볍게 들썩거렸다.

 

‘이렇게 너르고 큰 나무의 몸에 쇠로 된 줄들이 매달려 있는 거야. 그 줄을 튕기면 소리가 나. 호수나 빗소리 같기도 하고. 나무에 따라서 달라.’

 

밭에서 일을 하는 어른들과 달리 기타 이야기를 하는 계남이 삼촌의 얼굴은 낭만으로 가득 차있었다. 깔끔하고, 상쾌했다.

 

 

 

 

 

 

“미친겨!”

 

밭일을 대충 끝낸 영춘과 지훈이가 계남이네로 향했다. 영춘과 지훈이는 뒤늦게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대문을 넘어 마당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계남이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화가 날 일이 생긴 것인지, 그것을 본 영춘이 잰걸음으로 들어가 성을 내는 계남을 말리려고 손사레를 쳤다. 10년전 무당을 소개시켜줬던 당사자가 이번에는 왜 무당을 불렀냐며 성화인 것이다.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엉거주춤 서서 짐도 아직 다 풀지 못한 계남이네 집 바닥에 겨우 발을 디디고 섰다. 바닥에는 옷가지와 장판 몇장, 그리고 검은가죽으로 된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야, 계남아. 지금 가뭄이…….”

“저것들이 진짜 비를 내려줄 것 같어요? 하늘 무서운 줄 알어, 이 사람들아! 저런 거 고만 믿으라고!”

“그 하늘 무서워서 십년 전에 네가 네 손으로 데리고 온 거 아녀!”

“영춘 할머니도 정신차려요. 지훈이 아부지 그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디! 회개허고 손바닥 닳도록 빌어도 모자랄 판에 또 그걸 불러들여서 대체 뭘 허겄다고 부른겨, 대체!”

 

아버지. 그 단어에 지훈의 안에 있던 무언가가 멈췄다. 주위의 공기도 덩달아 싸늘해졌다. 그만하라며 계남과 영춘을 말리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한참의 고요. 계곡에서 아이들이 뱀술을 먹으려고 했을 때, 그래서 병이 깨졌을 때 겪은 그 침묵과 색이 비슷했다.

 

“그럼 어쩔 것이여.”

 

그런 침묵을 가르고 고개를 든 영춘의 눈이 슬쩍 보였다. 그런 얼굴의 할머니는 처음이었다.

 

“어떡할 것이냐고. 다른 방법이 또 있음 네가 말혀봐.”

 

대답을 듣지 않은 영춘은 붙잡고 있던 계남의 손목을 놓고 천천히 마당 밖으로 나섰다. 가뭄이 모두를 천천히 말라붙게 만들고 있었다.

 

 

 

 

 

 

 

 

 

 

 

답답했다. 지훈이가 몸을 꿈틀대며 움직였다. 목구멍이며 콧구멍으로 물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눈을 뜨니 사방이 누리끼리했다. 하늘이 노랬다. 물 밖으로 벗어나려 손을 뻗었다. 손끝이 둔탁한 무언가에 막혀 멈췄다. 이 촉감은, 유리였다. 그 순간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뱀, 뱀술의 뱀이 담겨있던 그 유리병 안이다. 시체처럼 부유하고 있던 뱀이 축 늘어져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 꿈틀댔다. 구부렁대는 몸이 지훈이의 가슴과 몸, 다리를 속박하고 졸랐다. 벗어나려고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 없었다. 꽹과리 소리가 나고 무언가를 외는 소리가 들렸다. 청조는 발령 천상신장 대장신 지하신장 대장신 오방신장 대장신 사해신장 대장신 갑진신장 대장신 갑오신장 대장신 갑신신장 대장신 을유신장 대장신 육병신장 대장신……. 귀가 찢어질듯 아프고 허파에 물이 찼다. 아귀가 쩍 벌어진 채 지훈이에게로 달려든다. 그만, 그만, 그만…….

 

땀으로 흠뻑 젖은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쯤에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일어나 보니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지훈이는 가방을 뒤져 계남이 삼촌이 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냈다. 마루에 놓인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송창식 메들리를 꺼내 집을 나섰다. 무엇을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토끼 같았다. 자전거를 몰아 장루산, 태성이가 뱀술을 먹으려고 했던 그 자리까지 갔다. 아무도 없는 강가에 얕은 물만이 평화롭게 흘렀다. 계속해서 오한이 서렸다. 그제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장기들이 아우성을 쳤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아까 꿈에서 보았던 그 장면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 환상이 실체가 된 건지 여전히 꿈을 헤매는지 모를 꽹과리 소리가 귓속을 찔렀다. 귀를 움켜쥔 지훈이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명 때문에 아까까지 들렸던 계곡물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꽹, 꽹, 꽹, 꽹. 작은 몸이 잔뜩 웅크리고 팔다리를 비틀었다. 아악. 아악. 정신이 희미해질 무렵이었다.

 

“여기는 왜 왔어?”

 

폭풍이 몰아치던 머릿속이 잠잠해졌다. 안개. 저수지. 호수. 잔잔한 바다. 지훈이가 눈을 떴다. 땀이 맺힌 말간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차있었다. 임우였다. 마른 손이 지훈이의 귀를 막고 있었다. 꽹과리 소리도, 경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려가.”

“어떻게 알았어?”

 

임우는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카세트 플레이어의 이어폰 줄을 풀었다. 그리고 지훈이의 귀에 하나씩 그것을 끼워주었다. 찰칵. 다소 큰 소리가 들리며 노래를 재생했다. 그 애를 닮은 색의 기타선율이 귀를 덮었다.

 

창밖에는 비오고요 바람 불고요

 

모든 것이 진정되고 나서야 보였다. 흙바닥을 굴렀는지 덕지덕지 묻은 몸과 생채기가 난 입가가.

 

“어떻게 된 거야?”

“내려가. 밤에는 절대 올라오지마.”

 

지훈이가 뒤돌아 가려는 임우의 손목을 잡았다.

 

“괜찮은 거야?”

 

임우가 고개를 저었다. 노랫소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뻐끔대는 그 입술의 모양에 집중했다.

 

‘네가 괜찮지 않으면 나도 괜찮지 않아.’

 

그리고 손이 눈인지 이마께를 덮었다. 까만 눈앞에 지훈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넷째날

 

 

 

 

 

 

지훈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에 뜨끈한 손수건이 툭 떨어졌다. 장판에 손바닥이 눅진하게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일어났냐.”

 

영춘이 안방으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좀 더 쉬어.”

“나 집에 어떻게 왔어?”

“계남이가 업고 왔다.”

 

계남이 삼촌이? 지훈이가 띵한 머리를 짚고 일어섰다. 영춘은 어디를 가려는지 자꾸만 전화기를 들었다 놓고 누군가와 바삐 통화했다.

 

“임우네가 장루산 사당으로 오라데.”

“사당요?”

 

통화내용을 엿들은 지훈이가 영춘에게 물었다. 뒤를 돈 영춘이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무어라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엉거주춤 무릎을 짚고 일어난 노인의 표정은 조금 암담했다.

 

“그랴. 너는 여기 있어.”

“나도 갈래.”

“가봤자 좋을 거 읎어.”

“할머니.”

 

지훈이의 말에 영춘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하고 지훈이를 노려봤다. 그 얼굴에 지훈이가 주춤댔다.

 

“알아봤자, 가봤자 좋을 거 읎어.”

 

그렇지만, 그 아이는 어제 나를 도와줬는데.

 

 

 

 

 

 

지훈이는 몰래 영춘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부러 빙빙 둘러 장루산의 사당 근처로 갔다. 아이들을 제외한 마을 어른들이 쑥덕대며 무슨 일인지를 서로에게 물었다. 아무도 연유를 알지 못했다. 소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고, 곧 무당과 임우가 나타났다. 못마땅한 표정의 계남이 그가 나타나자마자 물었다.

 

“뭔 일로 부른겨?”

“이 마을 산의 길지가 더럽혀졌어.”

“길지?”

“불운한 것이 맥을 막은겨.”

 

무당의 말에 어른들은 어두운 낯빛으로 수군거렸다.

 

“불운한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여?”

 

그 물음에 무당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시선이 무리 사이를 헤집다 누군가에게 머물렀다. 영춘이었다. 무당이 부채의 끝을 들어 영춘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무당이 물었다.

 

“아들 이름이 뭐여.”

“뭐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영춘을 대신해 계남이 대답했다.

 

“박용훈이 아녀.”

 

딱 10년 전, 무당이 이 마을을 방문했던 그때 사라진 지훈이의 아버지. 무당이 다시 영춘에게 물었다.

 

“아들이 언제 태어났어.”

 

영춘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육중한 무게가 노인의 굽은 허리를 짓눌렀다. 식은땀이 흘렀다.

 

“뱀띠.”

“…….”

“아녀?”

 

무당의 말에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셈을 하던 상순이 넓적다리를 철썩 내려쳤다. 아이고, 맞네. 맞어. 용훈이 계사년(1953년) 뱀띠, 맞네. 시상에.

 

“그 뱀이 장루산 길지를 더럽혀서 비가 오지를 못해.”

 

사람들의 눈이 뒤바뀌었다. 수군거리던 말소리가 작아졌다. 멀리서 보던 지훈이는 밤에 꾸었던 악몽에 식은땀을 흘렸다. 영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여.”

“억울하게 죽은 원이 남아서 길지가 더럽혀지고 그 뱀 기운이 손주한테까지 넘어갔어.”

“아, 그게 무슨 소리냐고!”

 

소리를 꽥 지른 영춘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영춘을 업고 재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손주와 할머니가 하루를 거러 나란히 병원 신세를 진 것이다.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영춘이네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밀담 (1)

 

 

 

그때 지훈이 애비, 그 누구여. 그려. 용훈이. 용훈이가 갔어. 자세히 기억은 안 나고 밤에 혼자 누가 불렀다고 차 몰고 나갔다가 사라졌다고. 차? 아, 원래 영춘이네가 차가 있었어, 10년 전인가에는. 그때는 지훈이네지훈이 애비가 없어지면서 감쪽같이 사라져서 그렇지. 아이고. 영춘이네도 안 됐지. 실종이 됐음 어디 몸뚱이라도 찾게 내비두지 어디로 갔는지 그것두 없고. 그래서 10년째 장례도 못 치르고 저러고 있는 것 아녀. 하늘도 무심허시지. 그때 이장네랑 하루에 못해도 세번씩은 만나서 기우제 지내는 데 도움 되겠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냥. 지훈이도 그랴. 애미 일찍 요절한 것도 서러운디 애비는 사라져……. 할미는 살려면 또 얼마나 오래 산다고. 불쌍하지, 불쌍햐…….

 

 

 

 

 

 

 

다섯째날

 

 

 

 

지훈이는 그 다음날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영춘이 극구 만류했다. 영춘은 알지 못했지만, 지훈이도 노인들과 무당을 따라 그 산에 올라가 모든 것을 지켜보았기에 더 따져묻지 않고 잠자코 집안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것 없이 잠에 노곤노곤 들 무렵이었다.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영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여.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그 소리에 지훈이가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영춘이 대여섯 되는 마을 사람들과 마주 서서 항변하고 있었다. 모두들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난듯한 표정이었다. 지훈이는 그 대상이 영춘과 10년 전 실종된 자신의 아버지 용훈, 그리고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지훈이가 발을 대충 신발에 욱여넣고 영춘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것은 어른인 영춘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당이 그렇다잖어. 이 집안 때문에, 온 마을 풍비박산 나게 생겼어!”

“말이 뒤야? 비가 하늘에서 내리지 사람한테서 워찍케 나!”

“하늘에서 내리는 거믄 무당은 왜 불러!”

 

사람들 사이를 파헤쳐 앞으로 나선 만석이 평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통째로 엎었다. 영춘이 만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지훈이가 울며 그 옆에 주저앉았다.

 

“지금 이게 뭣허는겨!”

 

그때 마당문을 열고 뛰쳐들어온 계남이 만석에게 소리쳤다. 젊은 계남의 손에 만석의 횡포는 그제야 잠시 멈추었다.

 

“이거 놔.”

“다들 미쳤어. 믿을 게 있고 안 믿을 게 따로 있지, 10년 전에 기우제로 덕을 봤음 덕을 봤지 제일 피해를 본 게 누군디 그랴!”

“입 다물어. 무당이 한 말 못 들었어? 뱀 기운이 절로 넘어갔다잖어. 깡철이가 저 새끼한테 넘어간 거라니까!!!”

 

만석이 자신의 발치에 있는 영춘을 밀쳤다. 지훈이와 영춘이 바닥에 넘어졌다. 계남이 더 해코지하려는 만석과 영춘을 떼어놓고 옆에 있는 각목을 대충 찾아 들어 휘둘렀다. 만석이 뒷걸음질을 쳤다.

 

“다들 나가.”

 

수십개의 눈동자들은 만석이 아닌 쓰러진 노인과 아이에게 계속해서 머물렀다. 계남이 바람소리가 휭휭 날 정도로 세게 각목을 휘둘렀다.

 

“아, 나가라고 이 썅놈의 새끼들아!!!”

 

사람들이 주춤대며 물러나자 계남이 거칠게 문을 닫았다. 덜덜 떨리는 손이 각목을 떨어뜨렸다. 계남이 미친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미쳤어, 다들 미쳤어……. 다들 미쳤어. 뭐에 씌인겨. 미친겨, 다들…….

 

 

 

 

 

 

 

 

 

지훈이는 그날 밤, 임우가 경고했던 말을 무시하고 산 위로 올라갔다. 임우는 수호목에도, 사당에도 없었다. 장루천을 따라 산을 샅샅이 뒤졌다. 전에는 찾지 않아도 턱턱 마주쳤던 그 얼굴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댔다. 경사가 진 산길에 숨이 차올라도 지훈이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수풀 사이를 뒤지고 임우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어디야, 어디있는 거야. 찾아서 따지고 싶었다.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러냐고. 아부지가 대체 뭘 잘못했냐고. 정말 우리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거냐고.

 

산을 헤매던 지훈이가 제풀에 지쳐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수풀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흙자갈이 흩어지는 소리도 났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지훈이는 저도 모르게 인기척을 죽이고 나무 줄기에 몸을 숨긴 채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가 바닥에 쭈그려 앉아 바쁘게 땅을 파내고 있었다. 분명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누구지. 지훈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더듬었다. 누구야. 누가 이 시간 이곳에서…….

 

“지훈이여?”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말이 이럴 때를 일컫는 모양이었다. 지훈이가 딱딱 부딪히는 턱을 애써 가만히 두려 애쓰며 고개를 들었다. 번쩍. 우르르 콰앙. 웬 궤변인지. 5월에 벼락이 자꾸만 쳤다. 번쩍. 모자 아래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드러났다. 번쩍거리는 섬광에 익숙한 인영이 가리고 있던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지훈이가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백골이 된 시체,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진 모자 하나. 지훈이네 마을 이장이 항상 쓰고 다니는 모자였다. 이장의 주름진 손에 흙이 잔뜩 끼어있었다.

 

“하, 할아버지…….”

“왜 여기있어.”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는 이장의 발걸음에 지훈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듯 뒤로 물러났다. 죽겠다. 미숙한 몸을 본능이 뒤덮었다. 이장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장이 코앞까지 다가온 그때였다. 또 번쩍하며 벼락이 치더니, 이장과 지훈이 사이에 있던 나무가 우지끈하고 무너졌다. 이장의 귓가에 헛소리가 들렸다. 10년째 자신을 괴롭히는, 지훈이의 아비 용훈의 목소리였다. 번쩍. 그 소리에 자리에 주저앉은 이장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끔직한 광경을 보고도 한결같은 표정을 지은 아이 하나가 서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고꾸라진 이장이 두려움에 젖은 채로 소리쳤다. 으, 으아악. 아악. 그 소리에 맞춰 또 벼락이 친다. 우르르 쾅. 이장이 경기를 일으켰다.

 

“사, 살려줘. 살려줘…….”

 

임우의 얼굴이 사라질 것처럼 아찔하게 희미해졌다. 지훈이는 나무에 가려 그 너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 도망가. 집으로 가.

 

지훈이는 그대로 뒤를 돌아 도망쳤다.

 

 

후두둑. 물방울이 나뭇잎이 흐트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5월의 비였다.

 

 

 

 

 

밀담 (2)

 

 

1988년의 가뭄은 수십 년 만의 가뭄으로, 주민들은 이야기로만 전해 내려오던 미숭산 천제당에 기우제를 지내기로 하고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산에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몰래 묘를 쓴 흔적이 있었다. 암장의 흔적을 보고 주민들은 분노했고, 검은 연기를 산봉우리에서 피우면서 제를 지냈다. 제를 지낸 뒤 곡괭이로 묘를 파헤치기 시작할 무렵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소나기가 세차게 퍼부었으며, 농민들은 환희의 함성을 터트렸다. 암장한 묘를 파헤치기 전에 비가 내린 것이었다. 암장한 사람은 밀양 사람으로 밝혀졌으며, 그는 즉시 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미숭산 천제당 기우제에는 남성만 참여할 수 있으며, 이때 동네 여성들은 동네 보(洑)에서 기도하고 있다가 천제당에서 내려오는 농악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바가지로 봇물을 퍼 뿌리면서 “비가 온다! 비가 온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여섯째날

 

 

미친듯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뒤늦게 경찰차가 도착했다. 장루산에는 폴리스 라인이 둘러지고 마을 이장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노인들이 했던 시뻘건 눈은 곧 이장에게로 옮겨졌다. 어디에 씌인 거지. 미쳤구먼. 무당한테 홀렸어. 이장은 10년 전 그날 자신이 박용훈을 죽였노라고 고백했다. 사라진 차는 저수지에 박혀있었다. 감식반과 차를 들어올리기 위한 중장비들이 동원됐다. 이 모든 일이 기우제를 위해 부른 무당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안 경찰은 동네 노인들을 조사했다. 동네에서 조사를 받지 않은 이들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기우제를 위하여 며칠 전 무당이 마을에 방문했다고 말했을 뿐 가타부타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19995

 

“아, 됐어. 넣어둬.”

“그냥 받어, 할머니.”

 

지훈이가 몇번의 만류에도 영춘의 손에 돈봉투를 쥐여주고 마당을 나섰다. 이제 삼십년도 넘은 지훈이의 집은 서울로 상경해 취직한 지훈이도 없었고 영춘만 그 안을 지키고 있었다. 떠나기 직전 영춘에게 돈을 건넨 지훈이가 뒤를 돌아 버스에 올라탔다. 동네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지훈이를 배웅했다. 허리를 몇번이고 숙여 인사한 지훈이 풀썩 오래된 버스 시트에 엉덩이를 붙였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훈이는 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왜인지 저 푸른 색의 어딘가에 하얀 수막 같은 임우가 서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그 아이.

 

버스는 계속 달렸다. 산은 진즉 등을 졌다.

 

면사무소도 지나고, 그 마을에서 제일 가는 땅부자인 만석이 할아버지의 논도 끝자락에 다다랐다. 하늘이 어두웠다.

 

“5월인데 웬 비래.”

 

누군가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폭우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에 물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훈이가 가방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냈다. <송창식 베스트 메들리>. 임우의 지문이 묻은 이어폰을 하나씩 귀에 끼웠다. 버튼을 눌렀다. 찰칵. 눌리는 소리가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는 소리도 가리도록 컸다. 뒤편으로 마을이 흐려졌다.

 

노인들이 애지중지 가꿔 깡철이가 없고 풍요로운 장루천의 마을. 어제부터 흐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10년째 가뭄이 없는 지훈이네 마을이었다.

 

 

 

 

 

 

참고문헌

기우제 [祈雨祭]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