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예쁜 말을 다 해서
w. 2U

 

 

 

0.

 

박지훈.

흔하디 흔한 성씨 박. 성씨가 박씨이기에 그 이름이 얼마나 호쾌한 울림이 있는지 모른다. 한자로는 순박하다- 라는 뜻으로 쓰는 박씨 성과 그 아이가 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는 가끔 박가- 하고 그를 부르곤 한다. 초코바 보다 군감자를 좋아하는 토속적인 면이나 예쁘장한 얼굴로 아재처럼 약간 껄렁이며 타박타박 걷는 면이 그 성씨와 잘 어울려서, 나는 가끔 그 사랑스러운 일면에 마음이 둥 하고 울리며 미소를 짓곤 한다.

 

지. 지이, 하고 혀를 스치며 내는 소리. 한국말로 쓸 수 있는 가장 이지적이면서도 정감있는 소리. 그의 온화하고 현명한 일면은 이 ‘지’자와 같다. 만약 그의 이름에 ‘지’가 없었다면 싱겁거나 기름진 걸로만 이루어진 밥상처럼 느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훈의 그런 담담하면서도 적당히 산뜻한 일면에 반했다.

 

훈. 그의 이름 중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후운하고 입안에서 청량하고 야무지게 바람을 머금는 소리가 나면 나는 시원하면서도 달큼한 그 아이의 향기를 떠올린다. 실제로 소년이면서도 소년같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 애는 박으로 시작해 지로 이어져 이 ‘훈’으로 마무리되며 영원히 내 가슴속에 한여름의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박지훈일 수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박지훈은 그 세 발음을 형체로 만들어낸 듯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누구에게나 올해의 여름이 고유하듯이. 누구에게나 인생에 단 한번의 그 여름이 오듯이.

 

 

 

1.

 

나는 타이페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상하신 분이시고 어머니는 현명한 분이시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두 분이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나이에 자식들을 데리고 이민을 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다행히 나도 한국이 싫지 않았다. 틀에 박힌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인상이긴 했지만 재밌는 일도 맛있는 것도 많고 나름대로 정감이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그런 점을 쏙 빼닮았다. 일단 어디에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어떤 일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에 가슴이 뛰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또래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마트 판촉까지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던 것은 물론, 북극, 아프리카, 남미, 유럽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스쿠버다이빙, 서핑, 글라이딩, 골프… 안해본 스포츠도 없었다. 5개국어를 할 줄 알았고 책 읽는 취미도 노래 듣는 취미도 폭넓은 편이었다. 다행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몰려다니며 싸움을 하는 쪽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그런 성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무난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를 설레게 하는 빈도수가 가장 높은 카테고리는 단연 사람이었다. 사람이란 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제각기 달라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큰 것과는 별개로 관찰자다운 진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온 세상 사람들을 탐험하는 동안, 갇혀 있는 금붕어같은 불쌍한 학교 애들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도 그럴것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관심사를 가진 똑같은 나이의 사내애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엔 세상에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내 주변에는 유명작곡가, 유명 크루에 들어가 있는 비보이, 천재로 인정받는 젊은 예술가, 팔로워가 수만에 달하는 패션피플, 성공한 인터넷 쇼핑몰 사장, 인기 웹툰작가, 잘나가는 운동선수, 주로 교수나 젊은 학자들인 유쾌한 아버지의 지인들 같은 재밌고 흥미로운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나는 교실에 갇혀 있을 때에도 온갖 재밌는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른 애들이 방학에 다닐 학원스케줄이나 요새 유행하는 아이돌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나는 몽골에 가서 말을 탈 것인가 낙타를 타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승마를 배운 적이 있으니 말을 타는 쪽이 수월하기는 하겠지만 고비사막의 명물이라는 쌍봉낙타를 타는 경험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편안한 관광지로 여행가는 것보다 고생길이 훤한 사막투어 가격이 훨씬 비싸서 어떻게 하면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할 수 있을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 날 따라 왜 이렇게 짜증이 밀려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땀방울이 툭하고 볼품없는 책상위로 떨어졌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도 아닌데도 생각을 방해할 정도로 교실의 기온이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무심코 에어컨을 돌아봤더니 작동을 멈춘 채였다. 주변에서 애들이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게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어린 남자 녀석들의 땀냄새가 기분 나쁘게 코끝을 쑤셔댔다. – 아 조퇴할까. – 어떻게 하면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이 무시무시한 더위 속에서 애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 그래. 한국 고등학생들이란 이 더위 속에서라도 공을 차지 않으면 안될만한 절박한 답답함이 있겠지. – 보기만해도 더 더워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에 한 소년이 – 그 수많은 한낱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그만이 내게 소년이었다 – 뱀같이 꿈틀거리는 수도배관을 들고 입구를 손가락으로 막은채 물을 흩뿌려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찌는 듯한 더위와 지독한 땀냄새와 숨막히는 무료함에 그가 찬물을 끼얹어 버렸던 순간. 내가 그에게 흠뻑 젖어버린 완전했던 그 순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햇빛이 쏟아지는 운동장 위에서 온 몸을 흠뻑 적신채 뛰어놀고 있는 그 애가 다 젖어 군데군데 뭉친 머리칼 밑으로 보석같은 눈을 빛낼 때마다, 막 빨다 뱉어놓은 사탕처럼 매끈하게 빛나는 입술이 번져가듯 미소를 짓는 모양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에서 앙증맞은 토끼이빨이 새하얗게 빛날 때마다, 내 가슴 속에서는 하와이의 바다에서 파이프라인 속을 서핑할 때보다도 더 강렬한 파도가 넘실대며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애의 입술에 난 점과, 햇빛을 받아 볼언저리까지 그림자가 내려앉는 긴 속눈썹과,  티셔츠를 펄럭일 때마다 드러나는 잘익은 과자같은 납작한 배, 젖은 티셔츠 위로 볼록하게 솟은 젖꼭지, 제법 탄력있게 올라붙은 엉덩이, 걸을 때 살짝 팔자가 되면서도 가만히 설때는 안짱다리로 서는 그 애의 숨겨진 잔망스러움까지 단숨에 꿰뚫어보았다. 한낱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그 애를 관찰할 귀중한 시간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의 모습은 일부분에 대한 잔상 뿐이다. 그가 내게로 와 완전히 지금의 박지훈의 형체를 갖추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박지훈은 내가 18년 동안 본 어떤 경이로운 경치나 흥미로운 사람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그 모든 것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2.

 

그러고보면 나의 여름은 여름이 싫다고 했다.

 

점점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방학에 대한 기대는 까맣게 잊은채 지금 나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날이 점점 더워질수록 성급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처럼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내가 항상 가슴이 뛰는 일을 택해왔다는 것은 적어도 그 것을 택하지 못해서 실패한 경험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 애를 택하는 일을 하기도 전에 방학이 끝나버릴까봐 애가 탔다. 물론, 택한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기대하고 갔던 여행지에는 별 볼 게 없는 적이 더러 있었고 흥미가 동해서 다가갔던 사람이 실상 빈수레만 요란했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택하는 일을 실패한 적은 없었다.

 

그를 발견한 뒤로는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학교가 갑자기 에로스를 모시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신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해변가에 난파되어 있는 미지의 보물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색으로 성의없이 바른 밋밋한 학교건물이 반짝이는 몰타의 레몬빛 성같기도 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인조잔디 운동장과 나무 몇그루로 이루어진 등나무 쉼터는 귀족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유럽저택의 비밀정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토록 간절하게 그를 원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그 요정같은 애 가까이에만 가면 온 몸이 굳으며 노트르담의 꼽추처럼 자신감이 없어졌다.

 

오늘은 목요일, 몹시 더운 날이다. 그럼에도 지훈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땡볕 아래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나는 에어컨이 고쳐진 시원한 교실에서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뜨거운 태양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갔다. 축구가 끝나자마자 온 몸을 샤워하듯이 수돗물로 적시고 있는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내 몸뚱이 사이에 감춰진 가장 은밀하고 예민한 감각을 연달아 건드렸다. 잠시 후 커다란 수건으로 온 몸의 물기를 대충 닦은 그가 민소매 티셔츠의 밑단을 비틀어 짜냈다. 땀과 수돗물이 섞여 약간은 찝질할 것이 분명한 반짝이는 물방울이 흙바닥에 짙은 갈색의 자국을 남기며 후두둑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약간의 괴로움을 느꼈다. 너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팔뚝을 따라 뽀얗게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고운 솜털. 짤막하게 깎은 손톱이 발갛게 물들어 있는 말랑해보이는 뭉툭한 손 끝. 그리고 반바지가 마구 주름진 채 들러붙어 있는 사타구니까지. 내가 양심도 없이 정신을 놓고 그를 훑어보고 있는데 바로 그 소년이 내가 앉아 있는 벤치로 걸어왔다.

 

그가 내게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는 – 고작 동갑내기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인데 – 어떻게 나를 이토록 흥분시킬 수가 있는걸까? 그의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의식하며 망설이는 데가 있었다. 그 천진한 것 같으면서도 영악해보이는 기묘한 자의식이 스스로를 관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는 악마가 잠시 요정으로 탈바꿈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다음부터 너도 같이 할래?”

 

생각보다 퉁명스러운 어조의 남자다운 말투에 한없이 동요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호의와 배려가 짙게 배어있었다.

 

“아니. 난 여기서 네가 뛰는 거 볼거야”

“변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변태.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흘기는 박지훈의 눈꼬리가 물결치듯이 흘러들어와 가슴을 간지럽혔다.

 

“아후우 덥다. 다음부턴 지켜볼거면 시원한거라도 좀 사오시든가? 아 여름 싫어 진짜.”

 

그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는 동작을 할 때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소한 살냄새가 갓구운 과자냄새처럼 기름지고 달았다. 헐렁한 민소매 사이로 보드라워보이는 겨드랑이 살이 뽀얗게 보였다 감춰졌다 하며 나를 애타게 했다.

 

 

 
3.

 

나는 이 아름다운 님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온갖 시원하고 맛있는 것을 사들고 벤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고등학생에게 주어지는 점심시간이 비인간적으로 짧은 것에 대해서는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고등학교는 고등학생에게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 정도 밖에는 가치있는 무언가를 제공해 줄 능력이 없다. 굳이 들자면 끔찍한 시간을 같이 견뎌냈다는 학생들 간의 동지애 정도일까.

 

그 날은 기온이 높다기보다는 유난히 햇빛이 강한 날이었다. 제 아무리 쇠도 씹어먹는다는 남고생이라도 차마 이런 자비없는 태양아래 뛸 용기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뛰놀던 아이들이 어딘가로 쏙 숨어 들자 운동장엔 녹색 인공잔디와 새파란 하늘만 적막하게 남았다. 나는 사실 또래 애들을 좀 귀엽게 여기는 데가 있었다. 땡볕 아래 헥헥대며 뛰놀던 강아지 같은 것들이 시원한 교실에 틀어박혀 제각기 퍼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장난기 많은 남고생이 좋아할만한 기름진 도시락을 안고서 그가 님프답게 유난히 발달한 육감을 발휘해 내게로 꼬여들기를 기다렸다. 안되면 혼자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별로 밑지는 장사도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 바칠 것을 차리고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설사 그가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나의 편인 신이 오늘도 내 성의에 대한 보답을 가져다주었다.

 

“그걸 너 혼자 다 먹어?”

 

소년이 그를 위해 차려놓은 제단 위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내가 바친 제물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이 최대한 숨을 들이마셨다. 벤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그에게서는 비누냄새가 나고 또 그 무엇보다도 나를 들뜨게 하는 젖내 같은 살냄새가 났다.

 

벤치 등을 붙잡은 그의 통통한 손목에 돋아나있는 여린 솜털이 바람에 눕는 걸 보며 당장이라도 거기에 입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럼에도 내 목소리와 눈빛의 온도를 잰다면 아마 보통 사람의 체온보다 조금 낮을 것이다. 나는 뱀처럼 본능적으로 그런 것들을 조절할 줄 안다.

 

“아니 너랑”

“내가 올 줄 어떻게 알고?”

“지금 왔잖아”

“어 그렇네? 뭐 그럼 먹어볼까?”

 

이 단순하고도 영악한 소년은 자신을 향한 조공이 낯설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고기 위주로 도시락을 골라먹더니 곧 잘먹었다며 뻔뻔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햇빛에 물결치는 머리칼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말 없는 식사였지만 왠지 어색하지가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를 관찰하느라 거의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것 따위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다만 이 날개 달린 요정이 제사가 끝나자마자 날아가버릴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이다. 그러자 내 안타까운 마음을 알았는지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여름이 내게 꿈을 꾸도록 해주었다. 장난꾸러기 요정이 사랑의 미약을 쓴 것이라면 다시는 이 꿈에서 깨지 않게 해주기를.

 

그 앙큼한 아이는 내 허벅지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벤치 위에 벌렁 누웠다.

 

“시원하고 좋네”

 

얼굴과 안어울리게 낮은 목소리에 구수한 말투. 소년답게 거침없고 뻔뻔한 행동. 그 모든 것에서 풍기는 풋내같은 것들이 박지훈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한다. 가슴이 요동치고 아래로 피가 쏠렸다. 그래서인지 머리에 피가 부족해져 어찔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더위에 40분 가까이 야외에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순간을 고통이라고 해야할지 즐거움이라고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너무 과분할 정도의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 사람이 조금 두려워지기도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작은 새가 잠시 어깨에 앉았을 때처럼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색색 숨을 쉬며 누워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4.

 

비. 억수로 퍼붓는 비. 나는 그대로 하교하기가 망설여졌다. 오늘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층에 있는 그 애를 만나러 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 애는 다른 애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애를 보자마자 무시무시하고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전율로 온 몸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도저히 자연스럽게 등장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펼쳤을 때였다. 순간 나는 지훈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내가 가까스로 찾아낸 것은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그 애의 뒷모습이었다.

 

입술을 벌리고 비가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지극히 진부한데도 연심을 자극했다. 그에게는 클리셰를 뛰어넘는 운율이 흘렀다. 그를 보고 시를 쓸 사람은 많겠지만 시가 사람이 된다면 결국 다시 박지훈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못하고 한참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살포시 솟아오른 어깨뼈와 둥글게 휘어진 등뼈의 건강미를, 감색 교복아래 힘이 들어 가있는 봉긋이 부푼 엉덩이를, 그리고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감길 것 같은 허벅지를.

 

그는 이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귀여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타닥타닥하고 적어 내렸다. 신도 자신이 이런 존재를 생각해냈다는 것에 놀라워 했을 것임이 분명할 정도로 한없이 사랑스러운 소년이었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른채 덥고 습한 공기만 들이 마셨다. 빗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니 금방이라도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쾌감과 함께 목마름이 덮쳐왔다. 침을 모아 억지로 삼키고 나서 드디어 그에게 가까이 가려는 순간, 별안간 그의 경박한 친구녀석 하나가 나타나 감상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오래 기다렸나? 가자!”

 

우산은 그의 친구가 들었다. 그가 순진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어깨를 움츠린채 그를 따라나서는 장면이 가슴 한켠에 깊은 통증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 순간, 무의식 깊은 곳에까지 선명히 아로새겨진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박지훈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그 때 나를 돌아보던 세상에서 가장 무결하고 사악했던 표정을, 날 때부터 장난이 심했지만 아직 악에 물들지는 않은 꼬마 님프 – 제제같은 그 아찔한 눈매를, 그리고 그 작은 악마가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던 그 장면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바보’

 

그가 그렇게 활자없는 서신을 던져놓고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 때 비로소 박지훈의 조각들이 모여 박지훈이 됐다. 여름비 속으로 몸을 던지기 직전의 박지훈, 순박하리만치 투박한 감성을 지녔지만 섬뜩하리만치 관능적인 박지훈, 아이스크림광고 속에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앙증맞기도 하고 3류 연예인처럼 천박하기도 하지만 그 더러움과 혼돈 속에서 문득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다정한 일면이 드러나는, 내 마음 속에 표징으로 아로새겨진 박지훈.

 

그렇게 나의 단 하나 뿐인 여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5.

 

금요일.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여름날씨. 하지만 길고 지루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어 벌써부터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닷새만에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 그 애는 지금쯤 뭘하고 있는걸까. 빳빳하게 다린 햇빛냄새가 나는 교복 셔츠를 입고 펜 뒷꽁무늬를 입에 물며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여름날의 단꿈에 빠져 교실보다 신비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 잔뜩 헝크러진 머리위로 눈부시게 내려앉는 햇살을 내 손가락으로 헤집어볼 수만 있다면.

 

오늘은 운동장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더위에는 공을 찰 수 없다며 완전히 파업을 선언해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날이 완전히 갤 줄 알았다면 유인책으로 도시락이라도 싸올것을. 이제와 쓸데없는 후회를 하며 터벅터벅 걷는 내 앞에 고양이같이 날렵한 물체가 휙 지나가는게 보였다.

 

가슴이 뛰었다. 나는 그 형체를 따라 충동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흥분에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배었다. 얼굴근육이 기대감에 꿈틀거렸다. 토끼는 왜 도망가는 걸까. 나를 이상한 세계로 데려가려는 걸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폴짝폴짝 잘도 뛰는 박지훈은 온 몸에 소년다운 장난기와 생동감이 흘러넘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애는 이리저리 엇갈려 있는 층이 낮은 계단 손잡이 위에 앉아 그것을 미끄럼 타듯이 타고 내려가더니 다시 머리칼을 찰랑이며 반대편 교사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건너갔다. 나는 호기심 넘치는 앨리스처럼 무작정 토끼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를 쫓았다. 수영장이 있는 건물을 지나 축구 골대 옆을 지나… 결국 숨을 헐떡이며 그를 몰아넣은 곳은 인조잔디를 심다 말아서 군데군데 흙바닥이 보이는 새로 지은 도서관 건물의 뒷편이었다. 지훈의 운동화가 모래알을 스치며 사악, 스윽, 하고 아름다운 마찰음을 냈다.

 

미색 본관과는 달리 붉은 벽돌로 지어진 별관은 도서관 외에도 행정동, 동아리동으로 사용됐다. 그 건물의 뒷편에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설치된 철망안에는 토실토실한 토끼 몇마리가 살았다.

 

“잡았다, 토끼. 철망에 가둬버릴거야”

 

박지훈이 햇살아래 부서지듯이 빛을 내며 호쾌하게 웃어댔다. 입이 예쁘게 찢어지고 광대가 볼록하게 솟는 게 사랑스러웠다. 볼을 톡 치자 다시 터질것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손안에 잡히는 팔때기가 뜨겁고 뼈대가 굵은 것이 여자애의 몸과는 또 다른 질감이었다.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작게 전율하고 있어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충동과 인내심이 내 몸안에서 치열하게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점에 가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 너 원래 알아”

“나도”

“그런데 너 왜 도망가고 있었던거야?”

“원래 딴 애랑 장난치다가 튀고 있었던건데 네가 날 따라올 눈치길래. 그래서 재밌을 것 같아서 도망갔지.”

“내가 널 왜 따라갔는지 궁금하지는 않아?”

“넌 날 맨날 쳐다보잖아”

“응”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잖아. 자기도 모르게.”

 

박지훈이 하얀 아이스크림콘의 옆구리를 이빨로 떼어내며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조금 긴장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너도 그런 사람이 있어?”

“응.. 있나? 아, 그런데 넌 방학 때 뭐해?”

 

충동이 가까스로 작은 고지 하나를 점령해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지훈아”

“…응?”

“주말에 우리집에 와라”

 

 

 

6.

 

그 애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양말부터 벗어던졌다.

 

“아 덥다”

 

나는 그 애가 발갛고 동글동글한 맨발로 우리집 마루를 걸어다니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거실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새하얀 마루바닥에 얼룩덜룩 나뭇잎 그림자를 만들고 소년의 몸에도 그림자를 만들었다. 햇살이 사랑하는 이 소년은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집 소파에 응석을 부리며 온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햇살은 따사롭고 에어컨이 식혀놓은 공기는 시원했다. 이렇게 완벽한 주말 오후가 있었던가.

 

나는 지훈이 우리집에 들어왔다기보다는 우리집이 지훈이 머무는 곳으로 변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의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한낱 배경으로 바꾸어놓는 힘이 있었다. 이 집은 이제 요정이 맨발로 뛰노는 북유럽 신화 속에 나오는 신비로운 숲이 된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잘 찾아왔네”

“너무 큰 주택이라서 오히려 설마 싶었다니까? 그래서 한참 빙빙 돌았어. 아 근데 나 잠깐 화장실 좀”

 

한 쪽 눈이 불편한지 연신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 걷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혼자 웃음을 터트리고 중얼거렸다.

 

“거짓말..”

 

그 애는 욕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 쪽 벽에 손을 짚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시라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애가 타 견딜 수가 없었다.

 

코발트블루 빛의 세면대 위에는 나뭇결이 그대로 보이는 빛바랜 민트색 거울 테두리가 달려 있었다. 이 인상적인 인테리어는 아버지와 함께 북미일주를 떠난 어머니의 솜씨였다. 욕실이 베란다와 마주보고 있어 거울에 새파란 하늘과 우거진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흔들리는게 비쳤다.

 

그리고 여름을 담은 액자에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지훈은 눈꺼풀을 벌리며 눈동자 사이에 숨어 있는 티끌을 찾아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어느새 눈주변이 빨개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코와 입술에 부드러운 머리칼이 닿았다. 머리카락에서 방금 막 감고 말린 향기가 났다. 나는 그 애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가 조금 더 힘을 주어 돌려세웠다. 지훈은 그대로 서 있기에는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세면대 주위를 죽 두르고 있는 나무 선반 위에 걸터앉았다. 반바지 밑으로 종아리와 맨발이 축 늘어져 있었다.

 

“혀로 핥으면 금방 빠져”

“진짜? 해봐”

 

따가운 눈을 어떻게든 떠보려고 하는 그 가여운 모습에 그의 관자놀이를 손으로 감싸고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뾰족한 혀 끝에 찝질하고 매끈한 눈동자의 표면이 닿았다. 지그시 눌렀다가 떨어지니 혀끝에 기다란 속눈썹이 묻어나왔다.

 

“아 떨어졌다.”

 

그 애가 눈을 깜빡이며 눈물 한방울을 툭 떨어뜨렸다. 그는 나를 올려다 보며 웃었고 나는 반대쪽 눈가로 천천히 입술을 가져갔다.

 

“아, 거기는 괜찮은데”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한 것은 그 애의 떨리는 말투도, 물러날 곳도 없는데 약간 내빼는 시늉을 하는 엉덩이도, 살짝 벌어진 반들반들한 입술도 아니었다. 얼굴을 붉히며 오른쪽 아래를 응시하는 그 흔들리는 시선이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이끌리듯 그에게로 다가가 내리깐 눈꺼풀 위로 입을 맞췄다. 얇은 눈꺼풀이 파르르하고 가늘게 떨려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 애가 입을 벌리고 한참동안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그 애의 예쁘게 접힌 쌍꺼풀이 귀여워 빙긋 웃었다.

 

곧 그 애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하지만 지훈이 조금 부끄러울 때 눈을 꿈벅인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 곁을 스쳐 지나 거실로 돌아갔다. 주위가 온통 내 심장박동 때문에 진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내 평생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열두살에 첫사랑을 할 때조차도.

 

 

 

7.

 

지훈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뻔질 우리집에 드나드는 동안 기말고사가 끝나고 금세 방학이 왔다.

 

그 애는 나를 자유라고 불렀다. 나는 그래서 그 애가 헤엄칠 곳이 필요하면 수영할 물을 만들어주고 그 애를 잡아 가두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해 뛰어 놀 곳이 필요하면 숲을 제공해주었다. 그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 나도 그에게 그랬다.

 

“관린아. 저기 진짜 들어갈 수 있어?”

“일단 따라와봐”

 

우리는 살금살금 담벼락을 넘었다. 달이 밝고 열대야가 살을 끈적하게 하는 여름밤이었다. 우리는 천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파트너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들고양이들처럼 날렵하게 학교 수영장 건물로 숨어 들어가자 압도하는 듯한 어둠이 온 몸을 덮쳐왔다. 맞닿은 손의 온기가 있어서 이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고 유쾌했다. 우리는 곧 수영장 문에 걸려있는 자전거용 자물쇠에 다다랐다. 알로호모라! 박지훈이 외운 주문이 빈 교사안을 울렸다.

 

우리는 흥분에 도취되어 그런 별거 아닌 소리를 하고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이거 어쩌게? 끊어?”

“끊으면 안되지”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며 지훈을 내려다보자 그의 얼굴이 호기심과 긴장으로 한껏 상기되어 있는게 보였다. 입술을 ㅡ자로 만들고 잔뜩 기대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흥미로운 기색으로 가득했다.

 

“내가 너를 위해서라면 풀지 못할 자물쇠가 없지.”

 

주머니에서 철사를 꺼내자 지훈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이런게 진짜 되는거냐며 눈을 깜빡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위험한 순간인 것도 잊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손전등을 떨어뜨릴 뻔 했다. 수영장으로 통하는 거대한 철문을 뒤로 기대고 선 지훈이 비상구인지 소화전인지에서 새어나오는 미세한 불빛을 받아 평소보다 더 탐미로워 보였다.

 

“아 간리나.. 지금 이럴해가 아인…..”

 

그 때 지훈의 뒤로 팔을 뻗어 만지던 자물쇠가 툭하고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개를 떼자 눈꺼풀이 노곤하게 풀린 사랑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나는 자물쇠를 확 빼며 손잡이를 돌렸다. 기대고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리자 당황한 지훈이 휘청였다.

 

“어어어!!”

 

뒤로 넘어지려는 지훈을 받친 김에 번쩍 안아들었다.

 

“야!! 야 너 안놔? 야!!!”

“알았어 놔줄게”

“야!! 야아아아아”

 

불도 들어오지 않은 어두컴컴한 실내 수영장에 달빛과 비상구의 푸른 불빛만 은은하게 비쳤다. 곧 고요한 실내 수영장 안에 풍덩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울려퍼졌다. 나는 한켠에 손전등을 켜서 놓아두고는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서 물기를 닦아내는 지훈의 모습을 구경했다.

 

“아하하하하”

“야 재밌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지훈이 어둠 속에서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아채는 바람에 나도 중심을 잃고 대자로 물 속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온 몸을 찰싹 때리는 수면장력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푸드덕 거리며 물 위로 올라와서 고개를 흔들고 손으로 얼굴을 비벼 물기를 제거하는데 다시 뒤에서 엉겨 오는 지훈의 힘이 느껴졌다. 나는 나를 넘어뜨리려고 어깨 위에 팔을 감은채 등에 무게를 실어오는 지훈의 엉덩이를 번쩍 안아 업었다. 그 정도 공격으로 나를 덮치기엔 영 역부족이었다.

 

“으아아악!!”

 

지훈이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으려 내 등에 꼭 매달려왔다. 물 속에서 한껏 발을 짚으면 박지훈을 안고 밤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학교 수영장의 높은 천정 아래로 우리의 웃음소리가 가득 고였다. 공기가 진덕거려서 물밖으로는 한시도 나가 있기가 싫었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첨벙거리고 장난을 치다가 물속에서 서로를 피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도망을 가기도 하고 상대에게 허리를 잡히면 그대로 돌아서서 서로를 진하게 껴안아 보기도 했다.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장난 삼아 그걸 입에 넣고 물었다.

 

“키흐해오 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지훈에게 그렇게 물었더니 지훈이 그 안에 들어 있는 함의까지 알고 있다는 듯 가뿐 한숨을 내쉬며 제발, 빨리. 라고 말하며 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친다면 분명 얘 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허겁지겁 그를 안았다.

 

영원히 끝날 것같지 않던 키스도 숨이 거칠어질무렵 서로를 아쉽게 어루만지며 끝이났다.

 

박지훈은 깔깔 거리며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고는 했다. 나는 호수의 정령이 여름밤의 축제를 벌이듯 생동하는 그 애의 몸짓과 목소리가 아름다워서 애가 타는 심정으로 검은 실루엣을 눈으로 쫓았다. 그러다 결국 팔을 벌리고 어머니의 품으로 풍덩 안기는 그 애에게 다가가 안도하며 끌어 안았다.

 

“없어지면 안돼”

 

그렇게 귀에 속삭일 때면 그 애는 두 다리를 내 허리에 감으며 안겨왔다. 내 머리를 끌어안고 이마와 머리카락에 키스를 퍼붓다가 눈이 마주치면 금방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 나는 그 애를 풀 가에 걸터앉게 하고 제법 경건한 표정으로 발등에 입을 맞췄다.

 

어느새 완전히 발가벗은 우리는 태초의 연인들처럼 밤새도록 새카만 물 속을 노닐며 사랑을 나눴다.

 

수영장 천장 가까이에 나 있는 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과 손전등 불빛만이 우리를 다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8.

 

여름은 깊어만갔다.

 

우리는 시원한 마트에 가서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며 시식만 잔뜩 집어먹고는 칸칸이 뛰어다니며 엉망으로 춤을 추었다. 마트 직원이 서있는 곳에서는 물건을 카트에 집어 담는척 하며 시식을 받아먹다가 직원이 없는 곳에 가면 물건들을 집어 아무데나 죄 꺼내놓고 바퀴에 올라타 신나게 달렸다. 지훈이 신나는 노래가 나올때마다 어찌나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지 그것도 웃겼지만 남들이 볼 때마다 1초만에 다시 정색을 하는 게 더 백미였다.

 

가끔 관광버스를 타고 가까운 물가에 가서 빽빽 소리를 지르다 흠뻑 젖어서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같은 꼴이 된 것을 보고 서로 깔깔대다가 결국 그 꼴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기를 구워먹곤 했다. 의자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건 말건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집에서 무료하게 누워있다가 떡볶이를 만들어먹자며 불을 올려놓고는 갑자기 키스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우리집 부엌을 엉망으로 태워놓기도 했다.

 

명품관에 가서 까다롭게 이것저것 보여달라며 입어보고서는 이거 다 별로라고 악담을 퍼붓는 일도 포기할 수 없는 재미였다. 그럴 때 악담을 퍼붓는 역할은 주로 지훈이 맡았다. 얼마나 속상해할만한 소리를 골라서 얄밉게 해대는지 가끔 너무 웃겨서 한 번 더 해주면 안되냐고 조르기도 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빛나는 나의 연인에게 나는 완전히 반해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사랑스러운 응석에서 나는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를 친구라고 정의하는 지훈의 말에도 나는 그다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사랑했고 여름은 한창이었고 그는 나의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9.

 

지훈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가끔 물어봐도 평범해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만 할 뿐 그다지 길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아낸 바를 종합해보자면 지훈은 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니 일찍이 아역배우를 했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그의 아역배우 시절의 영상을 찾아내기 위해 하룻밤을 꼴딱 지새운 적이 있다. 지금도 요정 같은 박지훈은 그 때는 한층 더 작은 꼬마 요정 같아서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능숙하게 애수를 자아내고는 했다).

 

나는 생각보다 학업을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서 지훈은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추상적인 두뇌활동을 극도로 못견뎌했다. 성적과는 별개로 나는 한국의 고등학생이 으레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도 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쉬웠다.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일인 박지훈을 사랑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도 내게는 충분히 가치있고 충만한 나날이라고 느껴졌다.

 

그에 비해 나의 귀여운 연인은 요즘 통 심통이 나 있다.

 

“나 엄마가 학원 다니라고 해서 앞으로 잘 못 만날 것 같아”

 

나는 우리의 달콤한 만남을 방해하는 이 성가신 이벤트에 대해서 얼마든지 분통을 터트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제시할 묘안도 물론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눈을 반짝이며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말하기도 전에 지훈이 별안간 성질을 내는 바람에 나는 채 이야기를 끝마칠수도 없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넌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쓸모가 없다니. 자신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리고 그 학원에 다니면 더 쓸모가 있어질 것 같아? 잘하고, 하고 싶은걸 찾아서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거지. 지훈은 어차피 공부에 소질도 없잖아.”

 

난 솔직히 말해 한국의 고등학생에게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절망적인 소리인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았다. 한국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못간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의 심연에 깃든 불안감과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중압감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야 니가 나를 알기는 해? 나를 좋아해? 나의 뭐를 좋아하는데? 내 얼굴? 엉덩이? 그런 것들 말고 내가 뭐가 있는데! 너야 그렇게 살아도 뭐든 해먹고 살겠지. 난 못해! 평범하게 대학가고 취직하고 여자만나 결혼하고 애낳고. 그렇게 살아야 겨우 사람구실하고 산단 소리 들을까 말까 하다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깊게 충격을 받은 나는 눈 앞에 박지훈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분에 못이겨 가슴을 들썩이며 울고 있는 저 애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그가 생각보다 저속하고 상스럽다해도 괜찮다. 그가 잠깐 인간들의 통속적인 놀이를 즐기고 싶다 해도 괜찮다. 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한번쯤 저 눈물나게 지리멸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따분한 삶을 살아보고 싶음직도 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참아줄 필요가 없다. 그가 날 사랑하지 않을리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넌 내가 아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야. 그런 식으로 말해서 날 슬프게 하려고 하지마.”

 

상처 받은 것은 나인데도 박지훈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로 돌아가는 토끼굴 입구를 잊어버린 토끼처럼 나 어떡해, 나 어떡해, 하고 외치던 그 애의 처연했던 유년의 눈동자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네가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래서 짓궂은 장난을 생각하며 내 주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걸 그만두게 되더라도, 언제나 널 사랑할 거라고.

 

그 애는 수없이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나에게 와 안겼다. 그건 짧은 선고유예같은 고백이었다. 아이는 자라버릴 것이고 나는 영원히 네버랜드에 남을 테니까.

 

 

 

10.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애와 그 애 본연의 모습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특별함에 대해서 착각한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다만 “정상”에 대한 그의 가엾은 부채감을 너무 얕봤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애의 머릿속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세상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발을 들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나도 사실은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계를 홀로 돌아다닐 정도로 용감한 줄 알았던 나는, 세상에 단 하나, 나의 발걸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곳만은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내가 끔찍하게 사랑했던 박지훈은 박지훈이면서도 박지훈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박지훈은 그가 비친 상(像)에 불과했다. 여름날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사막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박지훈 본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선명한 그림자처럼 떠올라 있는 그 아름다운 상을 나는 사랑했다.

 

아직도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상이 진짜 박지훈을 닮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던 것인지, 그 상을 사랑했기에 결국 박지훈마저 사랑하게 된 것인지 하는 것뿐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말았다는 것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내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견딜 수 없어 한 것은 지훈이었다. 그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먼 훗날의 약속을 실낱같이 붙잡고 있고 싶어 한 것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냐고 수없이 매달리며 물어본 것도 모두 그였다. 나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서 이런 건 그만해야 한다며 어쩔 수가 없는 거라며 구역질을 할 정도로 오열하는 그를 달래며 몇 번이나 정말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대답을 해주다 나중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대답을 기다리며 두려움에 떠는 그 애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쉴 새 없이 계속 속삭여야 했다.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모습 그대로. 심지어 아직 숨겨져 있어서 채 다 알지 못하고 있는 그 모습까지도. 모두 다 사랑한다고.

 

 

 

11.

 

어느새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박지훈은 2학기 들어 안경을 꼈다.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도록 시력을 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근시안이 되었다. 마치 안경테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그에게 첫사랑의 상처를 남겼고 그는 가까운 곳을 볼때도 멀리를 응시하는 것만 같은, 깊은 눈빛을 가진 소년이 됐다. 티 없이 교내를 달리던 그 어린 날의 너를 우리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른의 눈빛을 하게 된 그가 못내 안쓰러웠다.

 

누구에게나 여름의 한페이지를 가득 채울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난다. 박지훈의 앨범에서 단 한 번의 여름은 라이관린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아,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할까.

 

나는 여전히 여름이 올 때마다 박지훈만을 연주하곤 한다. 이미 철이 들어 버린 아름다웠던 소년에 대해서, 아무리 변주해도 또 다른 음율이 떠오르게 하는 나의 영원한 뮤즈에 대해서, 그 영원할 여름에 대해서.

 

 

 

0.

 

박지훈.

 

P-A-R-K.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몇번이고 계속 밀려와 바위에 부딪쳐 부서져도 또다시 밀려오는 소리. 날카롭고, 탄산수같이 따갑고, 칼날같이 차가운 소리. 그런가 하면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처럼 상쾌하고 싱그러운 소리.

박. 그렇게 쓰면 그것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 끝이 약간 갈라지는 낮은 목소리로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대다, 헤헤 하고 능청을 떨며 웃어버릴 때의 정감있는 소리.

 

지. 지이 하고 내 마음을 진동시키며 나는 소리. 입천장에 혀를 대고 작게 떨면 나는 작은 산 새같은 소리. 님프의 요정의 등에 달린 작은 날개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귀여운 꼬마가 조금 토라졌을 때 혀를 차며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동그랗고 발갛게 물든 그 애의 약지 끝 같기도 한 소리.

 

그리고 훈. 그의 이름 중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후운하고 입안에서 청량하고 야무지게 바람을 머금는 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는 소리. 내뱉고 나서도 아직 입 안에 가득 고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훈아. 내가 그렇게 부르면 여전히 조금은 소년 같은 그 사람이 빛바랜 앨범의 페이지를 단번에 넘기듯이 또렷한 현실이 되어 내게로 다가왔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 아무리 다양하게 변주되어도 박지훈이다. 그 해 여름에 환희와 경이의 선율을 입고 강렬하게 아로새겨질 때에도, 우수에 젖은 아다지오로 무겁게 가슴 속을 울릴 때에도, 사이렌처럼 날카로운 유혹의 소리로 다시 나를 불러낼 때에도.

 

그 애가 천천히 걸어 내 곁으로 온다. 신중해진 발걸음. 깊어진 눈. 앙다문 입술. 단단하게 여문 손 끝. 발갛게 달아오르지 않는 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너.

 

다른 사람이 박지훈일 수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박지훈은 그 세 발음을 형체로 만들어낸 듯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누구에게나 올해의 여름이 고유하듯이. 누구에게나 인생에 단 한번의 그 여름이 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