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의 사람들
w. 외도

 

 

 

홍콩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인천에 도착했다. 공항은 새벽임에도 부산스러웠다. 관린은 익숙하게 지하철 어플을 켰다. 집에 가는 데엔 택시보다 지하철이 빨랐다. 빈자리에 앉아 다리 사이에 캐리어를 고정한 관린은 귀에 이어폰을 꽂아 넣었다.

비행기 안에서 제법 잤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정거장을 오는 동안 살짝 졸았다. 좀 몽롱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정리했고 빨래도 했다.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뤄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는 샤워를 마친 뒤에 노트북을 챙기고서 집을 나섰다.

고가도로 밑을 지나 눈에 익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흔한 골목이 나타났다. 관린은 걸음을 멈춰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틈새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실외기 뒤편으로 동글동글한 사료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관린은 긴 다리로 에어컨 실외기를 넘었다. 날이 더우니까 물이라도 넉넉히 채워줘야지. 때에 맞춰 빈 그릇을 채워주는 건 관린의 애인 몫이고, 사료 주문은 관린의 몫이었다. 관린은 머릿속으로 남은 사료의 양을 더듬었다. 최근 몇 달간 출장이 잦아서 남은 양이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그만큼 작업실이 오랜만이라는 소리였다. 관린은 뚱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내 텅 빈 물통을 찌그러트렸다. 머지않아 진동과 함께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다. 주문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골목을 빠져나와 45도쯤 몸을 틀면 애인의 작업실이 보였다. 페인트칠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 무작정 칠했을 게 분명한 까만색 문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 층이라 부르기엔 아쉽고 반지하라 부르기엔 넘쳐서 영칠(0.7)이가 된 작업실은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높이가 낮았다. 보이는 창문을 위로 세어보면 분명 3층이 맞는데 체감상 느껴지는 높이는 그보다 훨씬 밑이었다.

관린은 터벅터벅 걸었다. 신발 밑창과 바닥이 부딪치는 소리가 제법 컸다. 활짝 열어둔 창문 밖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아마도 애인의 것일 터였다. 상대적으로 희미한 건 잎담배일 테고. 꽤 오래전에 금연을 한 뒤로 담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건 관두기로 했기에 그는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흐트러트렸다.

 

“안녕.”

 

똑똑거리는 두드림을 곁들인 심심한 인사였다. 애인은 따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현관에 서 있는 관린을 바라봤다. 쌍꺼풀은 없지만 제법 큰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언제 왔어? 관린은 애인 옆에서 비트를 찍는 남자를 힐끔거리고서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비행기 내려서 전화하지.”

“자고 있을 줄 알았어. 작업 중?”

“밤새웠어.”

 

애인이 들고 있는 전자담배의 램프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배터리가 부족하단 뜻이었다.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밥은.”

“하던 거 마무리하고 그냥 자려고. 너 잠은?”

 

눈 퀭하다. 애인은 관린의 눈 밑을 살살 쓰다듬었다. 굳은살이 박인 엄지가 딱딱했다.

 

“비행기에서 대충 잤어. 눈만 조금 아파.”

 

진부한 핑퐁엔 덧붙일 말이 없었다. 침묵은 익숙했다. 흐름을 끊은 건 갑작스레 튀어나온 강아지였다. 관린은 신이 나 폴짝거리는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우리 안나, 나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서 맨날 짖었지, 그치이.”

 

관린의 팔 밖으로 빠져나온 안나의 발을 쥐고서 칭얼거리는 애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관린은 저와 키가 비슷한 애인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얼른 들어가서 작업 마저 해. 나도 일 남아서 그거 끝내야 해.”

 

애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관린도 아쉽지 않았다. 별 미련없는 헤어짐이었다.

 

홍콩이나 한국이나 날이 덥고 습한 건 마찬가지였다. 브런치로 에그 베네딕트를 먹는 것도 같았다. 맛은 홍콩이 더 나았다. 에그 베네딕트를 포함한 모든 브런치 메뉴가 엉망인 이 카페를 자주 드나드는 이유는 애완동물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식사하는 내내 무표정했던 얼굴이 종아리에 얼굴을 비비는 안나를 보자마자 물결쳤다. 관린은 허리를 숙여 안나의 턱을 가볍게 긁어주었다.

 

“미안. 오늘은 안돼. 산책하기엔 해가 너무 뜨거워서 그래.”

 

안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관린은 안나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다. 강아지가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지 어쩐지에 대한 논문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사실보다 믿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었다. 좀 사이비 같은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라이관린교를 창시하자. 생각이 아무렇게나 튀었다.

카페는 조용했고 멍하니 공상을 하기 좋았다. 관린은 한입 정도가 남은 에그 베네딕트를 보면서 청국장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낙원상가의 청국장이 떠올랐다. 한국인 다됐군. 침까지 돌았다. 이번 주말엔 꼭 가야지. 제법 비장한 다짐이었다.

타닥타닥. 노트북의 타자 소리가 벌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짧은 휴가를 받았지만 아직 일이 남아있었다. 관린은 홍콩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작성한 오퍼 목록을 추렸다. 출장 기간에 비해 과도한 업무였다. 홍콩을 이 잡듯이 뒤집어엎었다고 생각했는데 셀렉한 물건이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었다. 개인적인 취향을 너무 개입시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피곤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성격만큼이나 딱 떨어진 엑셀을 메일에 첨부하고서 관린은 기지개를 켰다. 휴가의 시작이었다.

 

 

 

휴가는 주말을 포함해 5일이 주어졌다. 비행기를 타고 나면 체력이 떨어졌다. 몸살이 난다던가 침대에 늘어질 정도는 아니고, 모든 게 귀찮아져서 하루를 통으로 날리곤 했다. 이런 관린을 애인은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오랜 연애가 그렇듯 포기하게 되는 것이 늘어갔다.

주어진 5일 중 만 하루를 연락 없이 잠수를 타는 것에 소비한 관린은 개운한 얼굴로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애인 홀로 관린을 맞았다.

 

“이번엔 뭐하지?”

“딱 1시간 고민하고 바로 출발하자.”

“콜.”

 

둘 모두 가벼운 여행을 원했고 그에 따라 비행기를 타야 하는 지역은 목록에서 제외됐다. 가평이나 호텔은 애인이 내켜 하지 않았다. 계곡 갈래? 기타를 뚱땅거리던 애인이 작업실 소파에 누워있는 관린을 보며 말했다. 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은 시리도록 차가웠고 음식은 비쌌지만 맛이 좋았다. 관린은 계곡치고 깊은 수심에 뛰어들었다. 물속은 까마득하게 고요했다. 애인의 옆도 그러했다. 시시하고 지루했다.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관린은 애써 모든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길고 긴 연애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관린은 남은 휴가 내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드라마를 몰아 시청하고 방을 청소했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서 맥주를 사러 갈까 하는 중에 하데스를 물고 다가오는 안나를 보고서 겸사겸사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선 관린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서 공원을 돌았다. 열대야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인공 호수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싼 텐트가 하나 같이 수다스러웠다. 안나 역시 걷는 내내 온갖 사물에 참견질했다. 조용한 건 관린 혼자였다. 덕분에 관린의 걸음이 느려졌고 그건 여러 가지를 떠올릴 구실이 되었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졌지만 마땅한 상대가 떠오르지 않았다. 삼백 개가 넘어가는 전화번호가 모조리 허수로 느껴졌다. 애인에 몰입하느라 상대적으로 얕고 짧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걸 언제나 한심하게 생각하던 관린이었는데 지금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사실 관린은 연애를 하고 말고 와 상관없이 자기 사람을 살갑게 챙기는 편이었다. 평소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기객관화가 언제나 적절한 상황에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공원 초입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사고서 앉을 만한 자리를 탐색하는 중에 안나가 걸음을 멈췄다.

 

“왜?”

 

안나는 대답해 줄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앞발을 들어 신나게 점프했다. 관린은 하얀 비닐 봉다리를 들고서 그런 안나를 지켜봤다. 땅으로 내려앉은 비눗방울이 관린의 발끝을 두드리고서 톡하니 부서졌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으로 인해 비눗방울이 빛났다. 꼭 유리알 같은 모양새였다. 안나는 꼬리를 흔들었고 관린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비눗방울은 한 남자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탓에 자꾸만 뒤로 넘어가는 비눗방울을 남자는 아쉬워했다. 남자가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뒤로 젖혔을 때 관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지훈 선생님?”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 아이들이나 할법한 비눗방울을 불어대던 지훈의 시야에 관린이 꽉 들어찼다. 지훈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관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라라. 관린 씨네.”

“앉아도 돼요?”

“맥주?”

 

관린은 비닐봉지 속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손목을 까딱였다. 마실래요? 관린의 말에 지훈은 손을 뻗어 맥주를 건네받았다.

 

“같은 동네 사는 줄은 몰랐어요.”

 

지훈은 관린이 4년째 다니는 동물병원의 원장 선생님이었다. 안나가 크게 아픈 일이 아니고서야 병원에 갈 일은 없었지만, 때맞춰 접종하는 예방 주사가 얄팍한 인연을 오래 유지하게끔 했다.

 

“이사 왔어요. 얼마 전에.”

“언제요?”

“……팔 개월 전?”

“얼마 치고 너무 긴데요.”

 

지훈은 슬쩍 웃고서 후후 비눗방울을 불었다.

관린은 요령 좋게 대화를 이끌었다. 관린이 자기 이야기를 하다 의견을 묻는 척 질문을 건네면 지훈이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나중엔 자연스럽게 지훈의 대한 정보가 쌓였다. 집이 어딘지,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공원에 산책하러 자주 나오는지 아닌지와 비눗방울을 사게 된 계기를 설명하다가 지훈은 좀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불편해요?”

 

직접적인 물음이었다. 지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하고 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질문은 범위가 넓었지만 불편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쌉싸래한 맥주를 들이켠 지훈이 이어 말했다.

 

“새로운 친구 만드는 게 좀 오랜만이어서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관린도 마찬가지였다. 일로 인해 사귄 친구들은 몇 있어도, 이렇게 사귀는 사람은 간만이었다. 그리고 지훈과 안나가 아닌 주제로 오래 대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관린은 잠깐으로 지훈의 깊은 속내까진 알 수 없었지만 적당할 정도로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맥주는 딱 한 캔에서 그쳤다.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적당했다. 관린과 지훈은 각자 마신 맥주캔을 들고서 쓰레기통을 향해 걸었다. 함께 걷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지난 4년보다 얼굴을 마주 본 한 시간이 둘 사이의 친밀도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성산동이면 이쪽?”

 

지훈이 자신의 왼쪽으로 손가락질했다.

 

“그럼 선생님은 이쪽으로 걸어가시겠네요?”

 

관린이 지훈을 따라 손가락을 뻗었다. 반대 방향이었다. 관린은 안나를 안아 들고 손을 흔들었다.

 

“또 봐요, 선생님.”

 

지훈은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대로 안나에게서 멀어진 손이 허공에서 팔랑팔랑 좌우로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공원을 멤돌 때와 다른 마음이었다. 어딘가 가벼웠고 경쾌했다.

 

 

 

공원은 끝도 없이 넓어서 주저앉는 어느 곳이든 아지트가 됐다. 지훈이 사는 아파트와는 10분, 관린이 사는 빌라와는 15분 떨어진 곳이었다. 공원 입구에 있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주 보며 마신 맥주가 열 캔이 됐을 즈음엔 연잎이 둥둥 떠 있는 곳 근처 어딘가가 암묵적인 약속 장소가 되었다. 지훈이 혼자 맥주를 마시며 기다릴 때도 있었고 관린이 안나와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목요일엔 맥주를, 금요일에는 와인을 마셨다. 관린의 야근이 잦은 월요일과 화요일, 지훈의 야간진료가 있는 매주 수요일은 만나지 않았다. 주말은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지훈은 딱 한 번 관린에게 주말에 약속이 있냐고 물었고 관린은 애인을 만나야 한다고 답했다. 그 이후 같은 질문이 반복된 적은 없었다.

한입 크게 베어 물은 머핀 같은 달이 뜬 날, 맥주캔에 꽂은 빨대를 이로 잘근대던 관린이 지훈에게 물었다.

 

“언제 헤어지셨어요?”

“나?”

“작년인가 재작년 겨울까진 반지 끼고 계셨던 것 같은데, 안 보여서요.”

 

지훈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관린은 지훈의 표정 대신 손가락을 살폈다. 비어있는 지 꽤 된 자리였다. 궁금했는데 사생활의 영역이라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근데 지금은 왠지 물어볼 정도의 사이가 된 것 같아서.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을 제외하고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사실은 지훈이 답을 해줄 거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설사 껄끄러운 질문이라 답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아내가 있었어요. 반지는 결혼반지였고.”

 

여자를 만났었구나. 관린은 맥주를 들이켰다. 미지근한 맥주가 목을 더욱 마르게 했다. 지훈은 의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상대였다. 오래도록 생각했다기엔 짧은 시간이 지나고서 천천히 말이 쏟아져 내렸다.

 

“짧게 연애했고 신혼 내내 싸웠어요. 남들은 좋아 죽는다는 신혼을, 괴로워 죽겠다, 하며 보냈죠. 싸울 때는 정말 개처럼 싸웠는데 헤어지고 나니까 반대로 친해졌어요. 남들은 어떻게 친구처럼 지내느냐고 하던데,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가능한가 봐요.”

 

지훈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관린은 호수와 지훈의 얼굴에 내린 달빛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가끔 만나요. 얼마 전엔 남자친구 생겼다고 자랑도 하던데?”

 

이어지는 말에 관린은 맥주캔을 내려놓았다.

 

“그럼 선생님은 애인 있어요?”

 

관린은 일부러 여자친구라고 짚어 묻지 않았다.

 

“있었으면 관린 씨랑 매주 이러고 못 놀아요.”

 

으으음. 관린은 몸을 꼬았다. 지훈의 말이 꼭 애인한테 집중하란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 같아 살짝 눈을 피하며 말했다.

 

“선생님, 저 지금 좀 찔리려고 해요.”

“찔려요?”

“네.”

“호 해줄까?”

 

지훈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훈의 말에 관린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 사람.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지훈은 자신의 무릎에 얌전히 누워있던 안나의 이마 위로 호오, 숨을 뿜었다.

 

 

 

반려동물이 있다는 건 빠른 퇴근을 위한 적당한 이유였다. 관린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낚듯이 안나를 안아 들고서 지훈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첫 번째 이유는 안나의 심장사상충 예방접종을 위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지훈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떳떳할 수 있었다. 관린은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나의 안부를 전했다. 수화기 너머엔 어딘가 부족한 음악과 사람 말소리가 배경처럼 깔렸다. 안나의 이름이 호명되기 전까지 지속된 통화는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거슬렸다.

 

“따-끔, 따아-끔. 아이구, 잘 참았네.”

 

지훈은 주사를 잘 견딘 안나를 한껏 예뻐해 주었다. 지훈의 손가락 사이로 윤기 나는 갈색 털이 스쳐 지나갔다. 안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지훈의 가슴팍에 코를 들이밀었다. 지훈의 양 볼에 동그란 광대가 솟아오르고 이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주머니 안에서 육포가 꺼내졌다.

 

“말썽 안 부리는 친구들한테만 주는 거야. 알겠어?”

 

관린은 그런 지훈을 바라봤다. 수요일 저녁의 지훈은 살짝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밝은 데서 보니까 더 잘생기셨네요.”

“아첨하는 거예요? 나 오늘 야근해서 상태 완전 메롱인데.”

“진심이에요.”

“원래 밤에 봐야 더 예쁜 거 아닌가.”

“비동의.”

 

진지한 관린의 어투에 지훈은 입을 가리고 활짝 웃었다.

 

“잘생긴 사람이 그런 말 해주니까 되게 기분 좋다.”

 

귀 끝이 빨개지도록 민망해진 건 도리어 관린이었다. 떠오르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인데 덜컥 고백해버린 기분이었다. 섣불리 떳떳해 버렸나. 관린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은 이미 깊은 구렁에 빠진 뒤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기적절한 자기객관화였다.

 

비가 내렸다. 부슬비로 그칠 줄 알았던 비가 거친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관린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돌아갈까, 말까. 전화를 걸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지만 관린에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매주 돌아오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지훈을 만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예정 없는 회식을 하는 경우엔 속절없이 발을 굴러야 했다. 지훈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긴 했지만 한 번도 연락해본 적은 없었다. 한 번은 어렵지만 두 번, 세 번은 쉬울 것이다. 빈 화면을 띄워놓고 망설인 적은 많았다. 관린은 온갖 후회가 몰려오는 밤마다 망설임에서 그친 그 순간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관린은 결국 공원을 향하면서도 지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이 되어서 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당연하게도 공원엔 사람이 없었다. 관린은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이왕 온 김에 호수까지만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대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기대가 현실이 됐을 때, 호수 위로 쌓이는 빗물처럼 마음이 넘치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올 줄 몰랐는데.”

 

지훈의 동그란 눈이 관린을 향했다. 푸덕거리는 빗소리에서도 그 말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올 줄 몰랐는데 왜 기다렸어요. 관린은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마음에 꼭 맞는 답변을 들을까 봐 일부러 묻지 않았다.

 

“어디 갈까요?”

지훈이 먼저 물었다. 동물병원과 공원이 아닌 곳을 향하는 건 처음이었다. 관린은 머릿속으로 인근 술집의 위치를 더듬었다. 조용한 이자카야와 적당히 시끄러운 펍을 고민하고 있을 때 지훈은 술집은 시끄러울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그럼 우리 집 갈래요?”

 

너무 꼬시는 말처럼 들렸으면 어떡하지. 관린은 우산을 살짝 들어 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지훈은 관린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겠다고 했다. 복잡한 표정을 지었더니 곧바로 발이요, 발, 하고 말이 돌아왔을 땐 이대로 땅으로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쪽팔림이 몰려왔다.

지훈이 엉망이 된 발을 씻는 사이, 관린은 냉장고에서 절인 올리브와 복숭아 두 개를 꺼냈다. 베이킹소다를 뿌려내 뽀득하게 닦은 복숭아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접시 위에 올려졌다. 관린은 하나는 껍질을 죄다 벗길 걸 그랬나, 하고 고민했다.

 

“복숭아네요? 근데 웬 올리브?”

“단짠이 먹고 싶어서요. 혹시 못 드세요?”

“아뇨. 잘 먹어요.”

“복숭아 껍질 벗길까 하다가 말았는데.”

“난 껍질 좋아해요.”

 

지훈은 젖은 손으로 복숭아를 집었다. 미끄러진 복숭아가 철썩 소리를 내며 아일랜드로 추락했다. 지훈은 멎쩍은 듯이 웃었고 관린은 뒤늦게서야, 아! 포크, 얼빠진 소리를 내며 포크를 내밀었다.

 

“근데 안나가 안보이네요?”

“요 며칠 내내 야근해서요, 애인 집에 있어요. 가면 잘 안 오려고 해요. 나보다 잘 놀아주거든.”

 

지훈은 와인의 코르크를 따고 있는 관린 앞에 앉아 대리석을 흉내 낸 점이 찍혀있는 아일랜드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끈적거렸다. 아마도 아까 떨어트린 복숭아 때문일 것이다. 눈치껏 물티슈를 찾아 아일랜드를 문질렀다. 달큼한 복숭아 향과 물티슈의 파우더리한 향이 뒤섞였다.

 

“안나는 왜 이름이 안나에요?”

“겨울왕국보고 오는 길에 처음 만나서, 안나.”

“왜 엘사가 아니고?”

“머리카락 색이 닮아서요.”

 

단순한 이유였다. 아하. 지훈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소리 냈다. 관린은 지훈의 입안에서 붕 떠 있는 혀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바로 했다. 침을 삼키는 타이밍에 맞춰 시선이 부딪쳤다. 관린은 순간 들켰나, 하고 생각했다.

 

“방금 좀 트위티 같았어요.”

 

키득키득. 지훈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노랗고 속눈썹이 긴, 입술이 특히 귀여운 트위티를 떠올린 관린의 표정이 조금 뚱해졌다.

제법 비싼 와인잔도 갖추고 있는 관린이었지만 오늘은 손에 잡히는 아무 잔이나 꺼냈다. 지훈에게 건네준 글라스엔 작고 귀여운 세모 모양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다. 무더위가 몰려오기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컵이었다.

지훈은 주둥이와 바닥이 같은 폭으로 떨어지는 긴 글라스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감상했다. 이거 너무 귀엽게 생겼다. 흘리듯 뱉는 소리에 관린은 쉽게도 답했다.

 

“가질래요?”

“이렇게 쉽게 줘도 돼요? 선물 받았다면서요.”

“선물이라기보단, 그냥 준 거에 가까워요. 작게 소품샵 하는 친구예요.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줬다고 하면 별말 안 할 거예요. 오히려 좋아할걸요.”

“자기가 준 선물이 생뚱맞은 사람한테 가는 걸 달가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관린은 와인병을 흔들었고 지훈은 잔을 내려놓고 팔을 쭉 뻗었다. 컵에는 물고기 7마리 하고도 반 마리가 잠길 정도의 와인이 채워졌다.

 

“그러면 언제 한 번 같이 가요.”

“주소를 알려주셔도 되구요.”

 

밀어내는 말에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그 생각이 우스운 것임을 깨달았다. 나 생각보다 뻔뻔하구나. 관린은 뒤집어둔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피곤해서 일찍 잔다고 했는데, 그도 그랬을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싫었다. 관린의 얼굴 위로 여러 가지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훈은 짭짤한 올리브를 이 끝으로 깨물고서 말했다.

 

“짠하고 싶은 얼굴이네요.”

“티 나요?”

“조금?”

“주소 알려주기 싫어서는 아니에요.”

 

관린이 먼저 지훈의 글라스에 잔을 부딪쳤다. 지훈은 관린의 농담에 피식, 가볍게 웃었다.

 

“그럼요?”

“……남자친구가 바람났어요.”

 

짧은 말 속엔 놀랄 포인트가 군데군데 존재했다. 관린은 의도적으로 말을 흘렸다. 지훈은 글라스 표면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려는 건지, 놀란 건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관린은 순간 자신의 공간 안에 지훈을 데려다 놓고서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자기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지훈에겐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관린 씨가 알고 있다는 거, 애인도 알아요?”

 

그러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을 때, 관린은 안도했다. 동시에 속이 따갑기도 했다. 남자친구를 애인으로 바꿔말하는 지훈의 섬세함에 관린은 콕콕 찔린 과거를 상기했다. 나무라는 말이 맞았구나. 잠시간 생각을 곱씹던 관린이 복숭아를 포크 끝으로 쪼개며 답했다.

 

“모를걸요.”

“관린 씨는 언제 알았어요?”

“안나가 그 남자를 보고도 짖지 않을 때요.”

 

그때 느꼈던 건 불쾌한 기시감이었다. 기억의 퍼즐을 다시 짜 맞춰봐도 같은 기억은 없었지만 어딘가가 익숙했다. 마치 타인이 되어서 자신과 애인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옆자리가 더 이상 나만의 자리가 아니게 되는 순간, 까만 문을 경계로 관계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안나가 남자 무서워하거든요. 아마도 전 주인이 남자였나, 하고 짐작하고 있어요. 아니면 남자에게 학대를 받았던가. 남자는 나랑 애인만, 아, 그리고 선생님만 좋아하는 애인데, 안 짖더라고요. 참 신기하게도.”

 

관린은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고 빈 잔을 다시 채웠다.

 

“차라리 닮았으면 했어요, 나랑. 근데 그 남자, 나랑 닮은 곳이 한구석도 없어요. 난 음악은 젬병인데 걘 비트를 잘 찍는대요. 마른 건 비슷한데, 나한테는 없는 타투가 많고, 머리색은 볼 때마다 바뀌고. 이름은…… 기억 안 나요. 하고 싶지도 않고.”

 

흘깃거림들이 인화된 사진처럼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었다. 관린은 단 한 번도 발음해 본 적 없지만,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인 이름 석 자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5년은 긴 시간이었다. 사랑이 식는 것과 정이 사그라드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관린은 자신의 이별이 이성적이고 정적이길 바랐으나 애초에 감정 하나만으로 시작된 관계가 조용한 파국을 맞을 리는 없었다. 개새끼. 한 푼 남은 정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게끔 들키지나 말지. 정을 털어내는 작업조차 한없이 감정적이었다. 연락을 피하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거짓말을 하고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꾸역꾸역 얼굴을 마주했다.

 

“정답은 한 개예요. 헤어지는 것. 다만 관린씨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여러 가지죠. 모른 척하거나 정 안되면 티를 내거나 화를 내서 사과를 받아내거나. 그래서 이미 깨져버린 신뢰 위에 억지스러운 감정들을 겨우겨우 올려두던가…. 아니면 개과천선이라도 기대해 보던가.”

“헤어져야 한다는 거 머리로는 알겠는데,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정답대로 사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몇 번씩은 정답을 알면서도 틀려요. 그러니까 조금 더 고민해봐요.”

 

내가 선택한 오답은 정돈되지 않은 마음으로 당신의 앞에 선 것이라고, 관린은 말할 수 없었다.

 

 

 

여름의 고도가 최대치를 향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었다. 관린은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자리를 비운 동기들의 몫까지 일했다. 여름 휴가를 당겨 써버린 사람의 말로였다.

관린의 애인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애인은 관린이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아쉬움 속에 섞인 약간의 연기를 눈치챈 건 긴 연애 덕이었다. 관린은 애인의 인스타에 확인 사살처럼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을 눈으로 곱씹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떨어트린 과자를 새가 주워 먹었듯이 바람의 흔적을 샅샅이 주워 먹는 건 관린이었다. 관린은 애인이 돌아올 길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퇴근 후엔 예정된 순서처럼 지훈을 만났다. 공원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많은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는 탓이었다. 관린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지훈의 얼굴을 보고 밝게 웃었다.

 

“너무 덥지 않아요? 바닥이 뜨끈뜨끈해.”

 

지훈은 돌로 된 계단에 궁둥이를 붙였다가 몸을 일으켰다. 관린과 지훈 모두 더위를 유별나게 타는 건 아니었지만, 유별난 더위엔 자연히 호들갑을 떨게 됐다. 관린과 지훈은 휴대용 선풍기에 나란히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제 생각에도 지금 날씨에 밖에서 술 마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살짝 허리를 구부린 채로 관린이 하는 말에 지훈이 관린의 팔꿈치를 두어 번 툭툭치고서 걷기 시작했다.

센과 치히로를 연상케 하는 3층짜리 이자카야와 원피스를 계속해서 틀어주는 작은 선술집 중에서 관린은 후자를 골랐다. 바글바글 끓는 나가사끼 짬뽕을 앞에 두고서 기본 안주로 나온 크래커를 공략하던 지훈은 얼마 전 방영한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을 조곤조곤 읊었다.

 

“지우펀 홍등이 정말 예쁘더라구요. 시간 되면 가보려구요. 방송 보면서 관린 씨 생각이 계속 나서 얼굴 보면 꼭 말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 프로그램 무슨 요일 날 해요?”

“토요일이요.”

“토, 일, 월, 화, 수, 목……. 6일 동안 제 생각하신 거네요, 그럼?”

 

관린이 요일을 세느라 접어 내려간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훈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게 되는 거죠.”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관린의 표정에 지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관린은 긴 속눈썹이 도톰한 애교살에 내려앉는 웃음을 관찰했다. 어두운 술집 조명은 집요한 시선이 묻히기 좋은 조건이었다.

분명 아사히 생맥주로 술을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테이블엔 소주 몇 병이 굴러다녔다. 지훈은 관린의 얘기를 착실히 들어주는 쪽이었다. 분명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꺾어지는 술잔을 따라 하나하나 쌓이는 질문에 모조리 대답을 해주고 나서는 이젠 입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꾸 관린 씨한테 말린다.”

“더 말리게 할 거예요. 이렇게, 돌돌.”

 

관린은 불어터진 나사카기 짬뽕의 우동면을 젓가락에 감았다. 이내 쪼록 하는 소리와 함께 입속으로 면이 빨려 들어갔다.

지훈과 관린 둘 다 술을 꽤 하는 편이어서 약간 들뜬 상태로 술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술집을 나서자마자 훅하니 끼쳐오는 습한 공기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관린은 도로변으로 고개를 뻗어 빈 차 표시등이 켜져 있는 택시를 찾았다. 이내 팔을 뻗는 관린을 지훈이 저지했다.

 

“왜요?”

“걸어갈래요.”

“그러기엔 좀 먼데.”

 

지훈의 집은 관린의 집을 지나치고도 한참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관린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 걷는 거 좋아해요. 그리고 관린 씨도 데려다줄 겸.”

 

지훈은 살짝 술이 오른 얼굴이었다. 관린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이 지훈을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마음먹고서 다시 인도로 몸을 틀었다.

 

“밤에 걸으면 여러 소리가 잘 들려서 좋아요.”

 

지훈의 목소리 위로 강이 흘러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곳곳이 소리였다. 타이어가 바닥을 끄는 소리, 함께 신호등을 기다리는 청년의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바람 소리.

관린과 지훈은 아무 대화 없이 한참을 걸었다. 둘 사이엔 한밤의 소리들만 놓여있었다. 잦아드는 귀뚜라미의 울음을 따라 걸음이 느려졌다. 관린은 나직이 말했다.

 

“집 다 왔어요.”

 

아쉽다는 듯이 뒤로 물러진 발이 마른 바닥을 운동화 앞코로 콕콕 찍었다.

 

“…들어오실래요?”

 

질문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뒤늦게 올라오는 술기운이 자꾸만 잘못을 덜어내는 것을 저지했다. 잘못은 쌓이고 양심이 덜어졌다. 관린은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진동에 보지도 않고 핸드폰의 홀드 버튼을 눌렀다. 지훈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

 

지훈도 관린도 방금 전화가 누구에게서 걸려왔는지 쉽게 짐작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동시에 끔찍한 타이밍이었다. 관린은 지훈과 거리를 좁혔다. 지훈은 그런 관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튀었다. 눈을 감으면 고개가 기울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지훈이 고개를 들지도 몰랐다. 눈을 꼭 감을 필요도 없었다. 눈을 감는 건 촉각에 집중하기 위한 보조 과정일 뿐이니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해서 키스를 못 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 혹시 살면서 나쁜 짓 한 적 있어요?”

“공범이 되어달라고 묻는 거예요?”

 

관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최소한의 단어로 언제나 정곡을 찔렸다. 관린이 지훈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자 시선을 느낀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눈을 감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입이 내밀어지지도 않았다.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관린의 아픈 곳을 꾹 문질렀다.

 

“그것보다 먼저, 애인이랑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은 해봤어요?”

“……모르겠어요.”

“그럼 버틸 거예요?”

“…….”

“나는 답을 내려주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픈 안나는 고쳐줄 수 있어도 아픈 라이관린은 고쳐줄 수 없어요.”

 

이번엔 관린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간 머뭇거리던 지훈은 관린의 머리 위로 손을 얹어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다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이별은 담담했고, 쉬웠다. 평소보다 더 짙은 살색을 가진 애인에게 헤어짐을 고하면서 관린은 소파 팔걸이를 더듬었다. 팔걸이에 동그랗게 남아있는 흉터는 관린이 흡연을 할 적에 실수로 새겨놓은 자국이었다. 담배값이 4500원으로 인상되던 해 금연을 한 관린이니 못해도 3년은 넘은 물건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새로 사야겠다며 함께 카탈로그를 들여다보았던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끝이네. 탄산이 다 빠져버린 탄산수를 들이켠 관린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애인이 관린의 손끝을 붙잡았다.

 

“미안해.”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난데 왜 니가 미안해?”

“양심은 없어도 염치는 있어.”

 

관린은 자신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운 안나의 귀를 꾹 막으며 말했다.

 

“그것까지 없었으면 개같이 싸웠을 거야.”

 

니 얘기 하는 거 아닌 거 알지? 관린의 말에 안나는 그저 눈을 떼구루루 굴렸다. 관린은 그 모습을 보며 오늘만큼은 안나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나 보고 싶을 때마다 보러와. 아니면 전화해. 내가 영칠이로 데려올게. 3일은 니가, 4일은 내가 이런 식이어도 상관없어.”

“이혼한 부부 같다, 우리.”

“진짜 이혼했으면 저작권료부터 나눠야 해. 그건 좀 아까울걸?”

“쓰게 말하지 마. 너한테 뭐가 아까운 적은 없었어.”

“헤어지는 마당에 감동이네.”

 

관린은 만약 해가 쨍쨍했으면 좀 울고 싶었을지도 몰라, 라는 애인의 말이 퍽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애인과는 반대로 울 것 같다는 마음을 고리타분하게 비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은 쿨한 척, 언제라도 다시 만나면 하하 호호 웃을 것처럼 해놓고는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애인과 관린 둘 다 눈치채고 있었다.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철이 없어서 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먹고 먹어도 부스러기는 남기 마련이니까.

아마도 다시 보지 못할 까만 문 앞에 서서 관린은 팔을 벌렸다. 애인이 안겼고 품에 안은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관린은 꿈을 꿨다. 우주에서 수영하는 꿈이었다. 우주는 포근했고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빅뱅 이후 계속 식어가는 우주는 절대 영도에 가까웠다. 그래서 꿈을 꾸면서도 꿈인 걸 알 수 있었다. 우주에선 귀뚜라미가 울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동그란 행성을 따라 수영하다가 그 행성이 지훈의 얼굴이라는 걸 깨닫고서는 꿈이지만 좀 어이가 없어서 관린은 피식대며 눈을 떴다.

별 꿈을 다 꾸는구나. 침대에 누워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매미의 구애, 베란다 쪽에서 들리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를 들으면서 관린은 한밤의 지훈을 떠올렸다. 등이 배겼다. 관린은 몸을 돌려 등을 새우처럼 둥글게 말고서 다시금 지훈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한밤들의 지훈들을 떠올렸다. 등이 배길 만도 했다. 마지막 밤을 떠올렸을 땐 뜬금없이 달리기가 하고 싶었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것인지 에어컨 23도가 춥게 느껴졌다. 에어컨 근처에 앉은 사람들이 한둘씩 겉옷을 두르고, 나중 가서는 에어컨 온도를 팍팍 올리는 하루가 반복됐다. 관린 역시 카디건을 두르고서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했다.

바다에서 서핑을 하다 앞선 파도에 떠밀려오는 서퍼와 부딪쳐 다리를 다쳤다는 선임 대신 출장을 다녀온 관린은 근 이 주 동안 지훈을 보지 못했다. 회피하는 사람처럼 비쳤으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했고 지훈이 별로 개의치 않아 할 거라는 생각이 더 컸지만, 가끔은 티끌이 거슬릴 때도 있었다.

관린은 퇴근하는 길에 처음으로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통화 연결음을 들으면서 작은 궁금증 하나가 해결됐다. 컬러링이 없군. 관린은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씩 컬러링을 변경했다. 순전히 자기만족이었다. 도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지하철 한 정거장을 넘었다. 1분 조금 넘는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선생님?”

 

연결음이 끊겼는데도 말이 없어서 관린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왜 전화했냐고 물을 것 같으니까 먼저 말할게요. 애인이랑 헤어졌어요. 긴긴 5년이 헤어지자는 한 마디면 끝나더라구요.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아요.”

– 잘했어요.

“제일 처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헤어졌다는 거요? 왜요?

“음. 그건 얼굴 보고 말할래요.”

– 편한 대로 해요.

“사실은 전부터 전화하고 싶었는데, 해도 될지 몰라서 망설였었어요.”

– 전에 만날 때 전화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 그랬어요. 그럼 해도 된다고 했을 텐데.

“그럼 가도 돼요? 선생님 집.”

 

이러나저러나 허락을 구하는 물음이었다. 물어보란 말이 어떻게 바로 그렇게 연결돼요? 지훈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관린은 그런 지훈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 와요. 나도 지금 퇴근 중이에요.

 

관린은 지하철에서 내린 뒤 열심히 달렸다. 전화를 끊고부터 내내 뛰었던 심장이 이제야 좀 몸에 맞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 진작 뛸걸. 그랬으면 양심도 염치도 없는 놈이 됐을 테지만. 사실 참아서 뛰었기 때문에 이런 후회도 할 수 있었다.

관린이 십 분 정도를 죽어라 뛰면서 생각한 건, 새로 산 로퍼가 아닌 발에 익숙한 운동화를 신어서 다행이라는 것과 지금 지훈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지었다.

마음만큼은 당장이라도 지훈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제 마음을 모두 꺼내 보여줄 수 있을 정도였는데 현실의 벽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관린은 아까보다 흥분을 억누른 상태로 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층으로 가야 해요ㅠㅠ?]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끝자락에 붙인 이모티콘이 신경 쓰였다. 애 같으려나? 관린은 괜히 화면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자신이 보낸 문자를 천천히 읽었다. 안달 내는 것처럼 보였으면 어쩌지.

 

[801호]

 

간결하게 도착한 답장이 너무나도 지훈다웠다. 숫자 8에 빨간 테두리가 씌워진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상승했다. 관린은 거울을 보며 옷을 정갈히 했다. 방금 느낀 1분은 딱 적당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이쯤이면 1분이지, 정도의 1분.

시작은 언제나 설레고 두려웠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든, 새 직장으로의 이직이든, 가본 적 없는 나라를 향한 여행이든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이럴 거야, 하고 느껴지는 어렴풋한 감정은 다 얕게 조금씩 경험한 것들이었다.

긴 연애를 끝마쳤다. 이 짧은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타이밍을 번번히 놓쳐서 쉼표를 찍었던 날들이 있었다. 지훈은 그런 관린에게 알맞은 속도감을 찾아주는 사람이었다. 관린은 지훈을 만난 뒤로 목적 없이 남발했던 쉼표를 지울 수 있었다. 연애가 쫑이 난 것의 칠 할은 권태고 이 할은 애인의 바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 할은 지훈이었다. 일 할은 작은 것 같지만, 1분이 늘 같은 1분이 아닌 것처럼 일 할이 꼭 일 할의 크기만을 갖는 건 아니었다. 실질적 크기라는 게 있으니까. 관린은 자신이 지금 좀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몸을 틀면 곧장 801호가 보였다. 관린은 초인종과 노크 중에서 고민했다. 덜 요란한 쪽이 좋았다. 이미 머릿속과 가슴이 충분히 시끄러운 상태였다. 관린은 미리미리 쉼표를 찍어두었다. 열 번 정도 심호흡을 했다. 이번 문장은 곱게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짧은 고민 뒤에 타자 위에 머무는 손처럼 둥그러진 손가락이 지훈의 집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빠르다. 지하철역에서 우리 집 그렇게 안 가까울 텐데. 혹시 뛰어왔어요?”

“날개라도 있었으면 날아왔을걸요.”

 

관린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은 뒤 주인 쫓는 개처럼 지훈의 뒤를 쫒았다. 말 잘 듣는 강아지에 가까웠다. 앉아요, 하면 재빨리 자리에 앉아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은 여전히 잘생기고 예뻤다. 한껏 감성적인 상태에서 기껏 떠올린 게 얼굴을 찬양하는 말이어서 관린은 자기 자신이 살짝 싫어질 뻔했다. 그러나 싫은 건 싫은 거고, 예쁜 건 예쁜 거였다.

 

“얼굴 보면 말해준다면서요.”

 

하고 싶었던 말을 잔뜩 하겠다는 다짐과 달리 구체적이고 명확한 단어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관린은 몸을 돌려 지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훈은 뭐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키스해도 돼요?”

 

많은 말들이 단 한 개의 단어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관린은 이것보다 확실한 말은 없을 거라는 데에 지훈 역시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런 말보다 더 와닿는 문장이 있고, 필요한 물음표가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지훈은 대답 대신 입술을 부딪쳤다. 통통하고 더운 온도의 입술이었다. 관린은 지훈의 팔뚝을 조금 더 잡아당겨 목 뒤를 두르게끔 했다. 야금야금 서로의 입술을 입술로 무는 가벼운 키스였다.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붙었다. 자꾸 나누는 키스에 입술 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입술 말고도 여러 곳이 달아올랐다. 지훈이 먼저 키스를 멈췄고 관린은 지훈의 어깨에 어리광 피우듯 이마를 기댔다. 몸보단,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더욱 벅차오를 것이다. 관린은 그 벅참이 가라앉기 전에 입을 열었다.

 

“다음에 전부인 만나면 꼭 자랑해요. 남자친구 생겼다고.”

 

이번엔 지훈의 웃음이 관린의 귓가로 쏟아져 내렸다.

 

 

 

 

 

개과의 사람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