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TECT YOU! PROTECT ME?
w. 떼떼떼뗴

 

 

 

“와 진짜 귀여워.”

지훈은 관린의 첫인상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흘려버렸다. 금세 정신을 차렸지만, 그렇다고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옆에서 케이티와 소림은 서로 마주보며 티 나게 웃어댔다. 관린도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훈은 미소를 지으면 말랑한 볼에 생기는 관린의 보조개도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큰일 났다. 이 신입, 딱, 내 스타일이다. 지훈의 귀가 불이 난 듯 새빨개졌다. 에이스 박지훈 씨가 웬일로 초능력 컨트롤을 못하실까아? 소림은 케이티에게 귓속말하는 척했지만, 소림의 말은 지훈의 귀에도 생생히 들려왔다. 불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놀리는 소리에, 지훈의 홍조도 심해졌다. 지훈은 속마음이 들켰다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첫만남에 관린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기분 나쁘셨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를 ‘귀요미’라고 부르셔도 상관없는 걸요.”

관린은 지훈을 보며 눈이 잔뜩 휘어지도록 웃었다. 지훈은 차마 관린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앞으로 파트너가 될 사람인데, 괜히 이상한 인상만 박힌 것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PROTECT YOU! PROTECT ME?

ice lai kuanlin X fire park jihoon

 

 

 

 

지훈은 차마 관린을 ‘귀요미’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린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훈련하면서 자신과 합을 맞출 때 입을 꾸욱 다물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도 숨겨지지 않는 젖살, 훈련이 끝나자마자 온통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눈과 입, 다른 이들의 훈련을 지켜볼 때 동그랗게 말리는 기다란 몸. 이런 점들은 지훈이 자꾸 어떠한 다짐을 하게끔 만들었다. I’ll protect you, 넌 내가 지킨다! 관린 씨는 내가 지켜요. 어느새, 지훈 안에서 관린은 귀요미를 넘어 소중하고 지켜야 할 존재로까지 발전했다. 케이티와 소림도 훈련을 끝내고 관린과 지훈 쪽으로 왔다. 자신의 안에서 잔뜩 커져버린 관린의 존재를 생각하느라 잔뜩 심각해져 있는 지훈을 보고, 소림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귀요미 씨 옆의 박지훈 씨 놀리는 건 언제나 재밌지. 소림은 훈련하느라 메말라 버린 목을 축인 뒤, 관린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지훈 씨. 훈련 끝나고도 눈빛이 풀어지지 않네. 관린 씨, 조심해요. 지훈 씨 정말 무서운 능력자에요. 관린 씨가 지훈 씨를 첫만남만 가지고 허당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 진짜, 은소림. 못 말려, 정말. 케이티가 겨우 물을 넘기고는 소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강하지 않게 쳤다. 정작 온몸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여야 할 지훈만 웃지 않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지훈 선배 허당이라고 생각 안 해요. 훈련할 때도 실전처럼 진지하게 하는 걸요.”

“훈련에서도 눈빛이 살벌하기는 한데, 현장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훈련’, ‘실전’, ‘현장’이라는 단어들에 지훈의 귀가 트였다. 지훈은 a large boy, 그러니까 관린을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 곳에 데려갈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관린의 무릎을 손으로 감쌌다. 관린은 자연스럽게 지훈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뜨거운 손과 차가운 손이 만나서 적당한 온도를 만들었다.

“아, 진짜요? 다행이다. 전 선배랑 같은 편이잖아요. 선배랑 같이 있으면 천하무적이겠어요.”

관린이 지훈을 바라보면서 손에 힘을 줬다. 단단히 잡힌 손을 보며, 지훈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관린이 현장에 나가는 일은 자신이 만들지 않을 것이었다. 또 다시 어두워진 지훈의 얼굴을 알아차린 케이티가 말을 돌렸다.

“오늘은 우리끼리 뭐 먹으러 가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쌓인 거 있으면 풀고.”

케이티가 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 시선을 눈치 챈 지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떡하죠, 제 스트레스는 관린 씨가 파트너로 있는 이상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팀의 귀요미를 위하여!”

소림이 술에 취해 소리쳤다. 옆에 앉은 소림의 파트너 케이티는 소림을 딱히 말리지 않았다. 그저 소림의 술잔을 슬쩍 물이 담긴 잔으로 바꿨을 뿐이다. 귀요미라는 말에 가장 크게 타격 받을 지훈도 누구를 말릴 형편은 아니었다.

“관린 씨가 왜 우리 귀요미에요…”

내 귀요미지. 크게 쿵- 소리가 날 법한 상황은 관린의 재빠른 손 덕분에 일어나지 않았다. 선배, 다쳐요. 관린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지훈이 벌떡 일어섰다.

“내가 왜 다쳐요. 나는 다치면 안돼요. 관린 씨 이렇게 옆에 두고 다치면 안 되는 거죠.”

“너무 든든하네요, 선배.”

분명 비꼬는 말일 텐데, 관린은 그 말을 하면서 지훈에게 너무나도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요, 관린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관린 씨는 내가 지켜요. 와아아아-! 지훈이 관린을 흔들거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웅얼거리자, 소림이 갑자기 자리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라이꽐링 쒸와 박찌후운 쒸, 서로룰 뮏고 오오래도로옥 함께하시겠습니까아-!”

소림이 아까보다 더 꼬인 발음으로 소리쳤다. 관린은 소림의 말을 용케도 알아듣고는 네에- 하고 답했다.

“두 분이 지금 결혼해요? 그리고 소림 씨는 주례해요, 주례해?”

“왜요오옹. 우리 주윈고니 대돱도 해앴는데요오?”

주인공? 케이티가 소림을 앉히면서 눈만 껌벅거리는 지훈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훈 씨는 대답 안 했네. 쎄한 느낌이 케이티의 몸을 잠시 감쌌다.

“지훈 씨, 지훈 씨? 자요? 자는 거야? 자는 거면 일어나고. 우리 이제 가요.”

푸우우. 지훈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눈을 세게 감았다 뜨더니 씩씩하게 일어났다.

“그래, 가요! 가요오. 가요, 노래방! 가즈아!”

“우와아앙! 우리 이줴 노오랭 부른다앙!”

소림도 지훈과 함께 일어나서 또 다시 크게 박수를 쳤다. 이런, 망했다. 케이티가 인상을 찌푸렸다. 케이티는 얼떨결에 같이 일어난 관린을 바라봤다. 관린 씨도 노래 부르고 싶은 건 아니죠? 네? 아, 아니요. 조금 날카로워진 말투에 관린이 케이티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그럼 옮겨요, 숙소로.

 

노래방 가는 길이라고 타이르니 지훈과 소림은 순순히 관린과 케이티를 따랐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피곤했는지 거의 잠들어 있었다.

“선배, 저 이제 갈게요.”

그대로 관린이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지훈이 관린의 옷자락을 잡았다. 안돼요, 내가 관린 씨 지켜줘야 하니까. 관린 씨는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 돼애….

“저 지금 안 위험해요. 그리고 선배가 저 안 지켜주셔도 돼요. 저도 제 몸 하나는 잘 지킬 수 있어요.”

“아니야, 아니야. 우리 귀요미는 내가 지켜요….”

사실 지훈의 진짜 초능력은 술을 먹으면 발휘되는 것인지, 옷자락을 붙잡은 힘이 너무 셌다. 관린은 결국 지훈의 숙소에서 나가지 못했다. 관린이 움직이지 않자 지훈은 안심했는지 그대로 잠들었다. 관린도 더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갈 힘이 나지 않아 멍하니 지훈을 보다가 스스륵 잠이 들었다.

 

지훈은 꿈에서 마시멜로우를 굽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하얀색 덩어리에서 풍겨 나오는 달큰한 냄새에 지훈의 광대가 절로 올라갔다. 흐으음, 벌써부터 맛있다. 요리조리 돌리며 적당하게 구운 다음 입으로 마시멜로우를 가져가려는 찰나, 금방이라도 입에서 녹아버릴 것 같은 하얀 덩어리가 검은 재로 변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한 번 크게 감았다 뜨자, 관린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훈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눈을 깜빡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린과 자신과 함께 자신의 숙소 현관 앞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이게 무슨…. 찬찬히 돌아오는 어제의 기억에 한숨이 크게 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관린이 눈을 떴다.

“선배, 일어났어요? 몸은 괜찮아요?”

“관린 씨는 왜 여기서 불편하게 잤어요…. 나 여기 놓아두고 돌아가지 그랬어요….”

지훈이 미안한 마음에 말꼬리를 늘였다. 이번에도 내 눈 제대로 못 쳐다보시네. 관린은 부러 장난스럽게 답했다.

“선배가 저 안 놓아주셨잖아요. 지켜주겠다면서. 저 선배 보호 받으려고 일부러 안 갔어요.

관린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훈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는 꼭, 안전하게 지켜줄게요. 기대할게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편안하게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거죠, 저? 관린이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을 했다. 응, 진짜루 그럴 거에요. 자꾸만 심각해지는 지훈의 얼굴을 보던 관린이 말을 꺼냈다.

“선배가 저 지켜주시려면, 우선 우리 더 친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으응?”

“저 ‘귀요미’라고 불러보세요. 못 하시겠으면 ‘린린이’.”

관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모습은 ‘귀요미’나 ‘린린이’라는 호칭에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지만, 지훈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관린 씨한테 어떻게 그래요오.

“어제 봤는데, 케이티 씨하고 소림 씨는 공적인 자리 아니면 서로 반말도 하는 것 같던데요. 우리도 서로 반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근하게 불러야 더 친해지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같이 산전수전 다 겪고 지금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고요. 관린 씨는, 내가 그런 거 겪게 하지 않을 거고. 고개를 들어 쳐다본 얼굴이 너무나 무해해서 지훈은 어두워졌다.

“귀요미, 하다못해 린린이라고 부르시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저는 선배랑 같이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하룻밤 보냈는뎅.”

관린이 시무룩한 표정을 하자, 지훈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 얼굴로 그런 표정은 반칙 아니에요? 아니에요, 히히. 관린이 빙글빙글 웃었다. 지훈은 황당함에 벌어진 입을 조금 움직였다. 린린 씨…. 네? 린, 린린 씨…. 어, 관린 씨요? 관린 씨는 여기 없는데, 린린이만 있어용. 보기보다 집착 있는 편이구나, 관린 씨는. 지훈이 아랫입술을 한 번 꾹 물었다 놓았다.

“린린 씨, 이제 센터로 가요.”

관린은 지훈이 애칭을 또박또박 발음하고 나서야 지훈을 놓아주었다. 네, 선배. 린린이랑 같이 가요. 지훈은 관린을 만나고 난 이후로, 자신의 얼굴이 빨갛지 않은 적이 없지 않았나- 생각했다.

 

 

“린린 씨, 오늘은 최근에 센터에 들어온 초능력자들 만나서 면담해줘요. 비슷한 상황 겪어봤으니까 이야기해줄 것도 많을 거고.”

“선배는요?”

관린은 차마 지훈의 옷자락을 잡지 못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러시라고 린린이라 불러달라 고집부린 거 아닌데…. 그걸 본 지훈이 눈과 입을 늘어뜨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미안해요, 같이 못 가줘서.”

지훈의 저 표정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있으면 방법이 뭔지 가르쳐달라 하고 싶다고, 관린은 생각했다. 멀어지는 지훈을 잡지 못하고 서 있다가, 애써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헐. 형 파트너가 박지훈이에요? 대박. 그 사람이 나 폭주하는 거 말려줬는데.”

쓰읍. 박지훈이라니. 얼굴은 나보다 어려보이던뎅. 관린이 아이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요즘 들어 관린이 꺼낼 일이 없던 얼굴이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무서워진 관린에 하얗게 질려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저도 알아요. 지, 지훈님? 관린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죠. 지훈님이죠, 지훈님.

“무튼 제가 온 도시를 정전시켰거든요. 근데 지훈님이 그 뭐냐, 원시시대에 횃불 드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 비슷하게 순식간에 불꽃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서 도시를 다시 환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곧바로 다른 사람들 불러서 원상 복귀시켰죠. 빠르기도 엄청 빨라서 어디로 도망가지도 못했고.”

관린은 괜히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우리 선배님 역시 짱이당. 너무 좋다. 원래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아졌어.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계속 올라가던 관린의 입꼬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관린의 무표정을 본 아이는 긴장했다.

“부럽다, 넌.”

얼굴에 손가락을 살짝만 갖다 대도 몸 전체를 얼려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꺼낸 말이 내가 부럽다? 뭐지, 이 사람. 아이는 의아했지만, 관린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왜요?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에요. 여기에 있는 애들은 박, 아니 지훈님하고의 스펙타클한 첫만남 정도는 가지고 있거든요. 멘토형도 그런 경험 있을 것 같은데.”

잘못 말했다. 마주친 관린의 눈동자가 얼음 구슬, 그 자체여서 아이는 자책했다.

“어차피 그런 거 다 소용없죠, 뭐. 그래 봤자 지금 지훈님 파트너는 멘토형이잖아요.”

이거다, 이거. 관린이 내뿜던 차가운 기운이 조금 줄어들었다. 단단한 얼음 구슬도 녹았다. 그렇긴 하지? 네, 그렇죠!

“엄청난 능력을 가진 지훈님 파트너라니. 저는 멘토형이 더 부러워요.”

“그치? 그래서 나도 지금 너무 행복해.”

휴우. 다행이다. 아이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린이 처음의 따듯한 멘토로 돌아와 있었다. 그나저나,

“형, 지훈님 좋아해요?”

“응?”

관린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아, 그게…! 아, 그게, 좋아한다고요? 아이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내가 여유로운 듯 웃을 때 선배가 이런 기분이었나. 관린은 잠시 자기 반성 시간을 가졌다.

“지훈님도 형이 자기 좋아하는 거 알아요?”

관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선배는 모르시지. 하지만 관린은 그 말을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나온 문장들이 지훈과 자신 사이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이는 또 다시 어두워진 관린의 얼굴을 보다 조용히 말했다. 형, 이거 먹을래요? 초콜릿. 나중에 지훈님이랑 같이 먹어도 좋고.

 

“린린 씨, 어제 면담은 잘 했어요?”

관린의 얼굴이 내내 어두워서 지훈은 부러 관린이 좋아하는 호칭을 불렀다. 관린은 평소에도 밥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특히나 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린린 씨? 지훈이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앗 네에…….”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관린이 자신을 침울하게 만드는 것들을 털어놓기를 기다리며, 지훈은 묵묵히 점심을 먹었다.

 

“선배, 저랑 초콜릿 먹으실래요?”

“내가 초콜릿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고마워요.”

관린과 지훈은 서로 말없이 초콜릿을 톡톡 끊어먹었다. 관린은 어느 때의 지훈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상태로 빠르게 초콜릿을 먹었다. 지훈이 관린을 신경 쓰며 초콜릿을 반쯤 먹었을 때, 관린이 말을 꺼냈다.

“어제 제가 면담한 아이, 선배가 구해줬다고 들었어요.”

“그런 애들 많을걸요. 내가 그래도 여기서 좀 오래 근무했으니까.”

그리고 또 다시 정적. 관린은 손가락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면서 입술을 씹었다. 지훈이 그런 관린을 보며 말을 골랐다.

“린린 씨는 어떻게 센터로 오게 되었어요?”

나는 린린 씨 전에 본 적 없어서. 지훈은 관린과의 첫만남을 상기하고는 괜히 귀를 긁적였다. 관린은 손을 무릎에 가만히 두고 말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어서, 겨울에 한국으로 여행 왔었어요.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댔어요. 그런데 제 손 위에 눈송이들이 안 녹는 거예요. 제 손에 처음 올라온 예쁜 상태 그대로 있길래, 혹시나 하고 센터에 갔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달까요.”

그때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폭주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도 선배가 구해줬을까요.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그렇게 센터에 오게 되었을까요. 근데 저는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왜냐면…. 관린은 애써 말을 삼키고 한쪽 입꼬리를 꾸욱 눌렀다. 남은 초콜릿을 먹지도 않고 멍하니 관린을 보던 지훈의 눈이 커졌다.

“신기하다. 나도 그랬는데. 나도 내 발로 센터에 걸어 들어왔어요. 손바닥이 너무 뜨겁고 욱신거려서 며칠을 앓다가 센터로 검사 받으러 왔거든요.”

공통점 찾은 기념으로 하이파이브. 그리고 내 남은 초콜릿도 먹어요. 지훈이 아아- 하고 말하는 소리에 맞춰서 관린이 입을 벌렸다. 나도 초콜릿 엄청 좋아하는데, 관린 씨한테 더 필요한 것 같으니까. 관린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훈이 생각했다.

“우리 비슷한 점이 많네요. 센터에 스스로 온 거나 초콜릿을 좋아하는 거나. 그래서 파트너는 운명이라고 하는 건가?”

지훈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관린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입 안에 있는 초콜릿도, 옆에 있는 지훈도, 지금 이 상황 전체가 달달했다.

 

 

“린린 씨, 내가 보고서 맡긴 거 작성하고 있어요.”

“또 어디 가세요?”

“요즘 급한 일이 많이 생기네. 미안해요.”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지훈은 관린을 놓아두고 매일 쌩하니 가버렸다. 관린은 자꾸만 입으로 가려는 손을 컴퓨터 자판 위에 올려놓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럼에도 우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의 달달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관린은 조용히 초콜릿을 사러 나갔다.

센터의 입구는 평소 같지 않게 소란스러웠다. 어떤 이들은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뛰어다니고, 또 어떤 이들은 무전을 치고. 영문을 모르는 관린만 상황을 파악하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걸어 나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기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초능력자겠지? 관린은 넓은 보폭으로 초능력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

관린의 존재를 알아채자마자 그 사람은 급하게 달아나려고 했고, 그보다 먼저 관린이 그 사람을 잡았다.

“맞죠, 초능력자?”

그 사람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도망쳐왔는데, 하필이면 여기냐. 에이, 초능력 있는 거 같으면 센터로 오셔야죠. 관린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사람도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관린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수상한 사람을 잡고 있는 관린을 보더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모여들었다. 관린 씨가 찾은 거야? 신입인데 대단하네. 관린은 괜히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관린 씨! 입구에서부터 지훈이 뛰어왔다.

“관린 씨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고?”

관린이 괜찮다는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지훈이 관린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정말로 괜찮은 거죠? 걱정으로 가득 찬 지훈의 눈동자에 관린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관린에 대한 걱정을 쏟아붓고나서야 입구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지훈 씨는 어떻게 알고 관린 씨를 여기다 잠복시켰어. 작전을 아주 잘 세우네.”

예? 관린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하, 관린 씨 힘들 테니까 숙소로 데려다 주고 올게요.”

그런 관린을 본 지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관린은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했다. 관린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지훈을 따랐다. 지훈 씨가 초능력자들 많이 잡아봤으니까, 당황해서 센터로 오는 상황도 겪어봤거나 예상했나. 어쩐지 관린 씨는 센터에 계속 배치해야 한다고 하더라. 등 뒤로 이러저러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두 관린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관린 씨, 놀랐을 텐데 쉬어요.”

이번엔 관린이 지훈의 옷자락을 잡았다. 선배, 설명해주셔야죠. 지훈의 눈빛이 잔뜩 흔들렸다. 그 눈빛에 관린은 손에서 힘을 풀 뻔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지금까지의 지훈의 행동과 방금 들은 말들이 이상했다.

“관린 씨를 지켜주기로 했잖아요, 내가. 현장에 나가면 다치는 일이 많으니까, 차마 데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저 지켜주겠답시고 파트너 내버려두고 혼자서만 일해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는… 선배랑 같이 작전 수행하고 현장에서 뛰는 순간만을 꿈꾸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파트너까지 되었으니까 이제 선배랑 함께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관린은 어느새 울먹거리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지훈은 차마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선배, 그런 행동은 저 지켜주는 거 아니에요.”

관린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선 숙소를 빠져나갔다. 관린이 없는 관린의 숙소에서 지훈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사실 관린이 기억하는 지훈과의 첫만남은 지훈이 기억하는 것과는 달랐다. 실제 지훈을 만난 것이 아니니 당연했다.

그날은 모처럼 특별수업이 있었다. 외부에서 온 강사가 ‘초능력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다. 관린은 딱히 딴짓을 하지도 집중을 하지도 않은 채 강사의 설명을 들었다. 초능력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가 점차적으로 나아졌다는 뻔한 이야기였다.

“학생들 많이 피곤하죠? 이쯤에서 잠도 깰 겸, 초능력 센터 홍보영상 보고 갈까요?”

강사는 학생들의 무덤덤한 반응에도 미소를 지으며 영상을 틀었다. 영상이 재생되자마자, 관린은 그 미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밤을 새서 학교를 왔다고 하더라도 졸음을 누르며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상이었다.

관린은 그때 분홍색 머리를 한 지훈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지훈은 손으로 작게 불을 일으키기도, 센터에 갓 들어온 초능력자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센터에 이모저모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관린은 지훈이 말하는 한국어를 바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중국어 자막으로 의미를 파악했다. 언젠가는 저 말을 바로 알아듣겠다는 다짐까지 하면서 관린은 홀린 듯 영상으로 빠져들었다. 영상이 끝난 뒤, 강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초능력자가 나오는 영상으로 가져왔어요. 다들 여기 나오는 초능력자가 설명해주는 거 잘 들었죠? 자기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의심되면 뭘 해야 한다?”

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본다. 관린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멍하니 대답했다. 그렇죠! 학생들 역시 똑똑하네요. 강사가 활기차게 강의를 이어나갔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관린은 그 영상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능력 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업로드 된 모든 홍보영상을 찾아보았다. 지훈이 부드러운 말투로 멘트를 읊는 걸 들었을 때부터, 관린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센터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운명. 지훈과 같은 운명.

그렇게 들어간 센터에서 관린은 초능력을 제어하거나 이를 이용해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관린은 센터 홍보용 팜플렛을 보면서 버텼다. 내 영웅님과 함께하려면, 나도 영웅님처럼 강해져야지. 지훈은 관린을 직접 구해준 적은 없지만 홍보영상으로 구해준 셈이었기에, 관린은 지훈을 ‘영웅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 영웅님’이 ‘내 선배님’이 되기 전날, 관린은 설레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영웅님, 아니 선배님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생각에 기뻤다.

지훈의 행동은 관린의 노력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지훈은 센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찾는 곳이었다. 케이티도 그곳에 와있었다. 지훈은 그 옆으로 가서 섰다. 엄지손가락으로 작게 불꽃을 만들고는 한숨을 불어서 껐다.

“으음 지훈 씨 귀요미 씨랑 뭔 일 있었죠?”

“네. 나한테 엄청 화났어요.”

지훈은 찬찬히 케이티에게 관린과의 일들을 말했다. 그래서 맨날 관린 씨 혼자만 센터에 남아있었구나. 케이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주었다.

“근데 나도 처음에 그랬어요. 지훈 씨는 마냥 관린 씨를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지만, 나는 내 파트너가 미덥지가 않아서? 첫만남부터 계속 호들갑 떨면서 너무 영광이에요, 왕자님 같아요, 이런 말들을 내뱉어서 부담스럽기도 했고.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아, 나중에 소림 씨한테 말하면 안돼요.”

안 그래요. 저는 미덥잖아요. 지훈이 손을 내저으면서 웃었다. 케이티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소림 씨는 작은 신호로도 초능력자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나는 그 위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인지 찾아내서 안내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처음엔 나도 나 혼자 현장 뛰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소림 씨가 덜렁거려서 오히려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소림 씨는 센터에서 작전을 짜는 데만 참여해도 괜찮다고 여겼어요. 나중에 소림 씨가 현장에 쳐들어와서 나에게 신호가 잡히는 곳이 달라졌다는 걸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때 함께 파트너로서 현장을 뛰면서 소림 씨가 텔레파시 능력이 있고, 나는 암호 해독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케이티가 관린은 대답을 하고 지훈은 대답을 하지 않았던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파트너 중 어느 한 사람도 없으면 제대로 된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죠. 두 초능력자가 파트너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에요. 지훈 씨도 관린 씨를 조금만 더 믿어봐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 마음 잘 알아요.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거든요. 그런데 소림 씨랑 함께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그리고 이거. 케이티는 지훈에게 책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소림 씨와 처음으로 현장에 뛰었을 즈음에 읽던 책이에요. 지훈 씨가 나랑 같은 부분을 인상 깊게 읽기를 바라서.”

 

지훈은 숙소로 돌아와서 찬찬히 책을 읽었다. 야생 동물을 키워서 야생에 돌려보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은 야생 적응 훈련이 끝난 동물을 야생으로 되돌려 보내야 하는데 죽을까봐 두려워서 그렇게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때 다른 사람이 건넨 말이 지훈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라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걔네의 행복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거야. 나를 위해서 야생동물들을 곁에 두려는 생각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했어.

지훈은 야생동물과 사람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정말로 관린을 지키는 게 아니구나. 지훈은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서로 서먹서먹한 상태로 처음 현장을 나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훈은 계속 관린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관린은 입을 다물고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케이티와 소림이 알려준 장소를 가니 이미 그곳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현장을 만들어놓은 초능력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 물부터 없앨게요.”

지훈이 물을 모두 증발시키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현장에 처음 와본 관린이 지훈에게로 다가갔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진 순간, 물방울들이 하나씩 떠오르더니 어느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음과 불이 만나 생긴 물의 힘으로 현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관린과 지훈이 가만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케이티와 소림이 물바다가 사라진 곳에 나타난 초능력자를 잡았다.

“괜찮아요?”

케이티가 물의 능력자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지훈은 마치 관린이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훈이 옆에 있는 관린을 바라보았다. 마냥 아기 같다고만 생각했던 젖살이 보였다. 이제는 입을 꾹 다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려는 관린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관린 씨, 그동안 미안했어요.”

지훈이 말을 마치고도 관린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잠시 케이티와 소림 쪽에 시선을 둔 관린이 말했다.

“선배 혼자서 있던 시간보다 저랑 같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용서해드려도 되나요?”

“우린 파트너니까. 나는 당연히 관린 씨한테 용서 받겠네요.”

지훈이 활짝 웃었다. 관린도 지훈을 따라 웃었다.

“박지훈 선배님, 저 라이관린을 믿고 오래도록 꼭 함께하실거죠?”

관린이 소림이 했던 말을 지훈에게 다시 던졌다. 네, 당연하죠. 나는 귀요미 린린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관린 씨를 지켜줄 만큼 좋아하니까. 지훈이 이제서야 그때 하지 못했던 대답을 했다.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관린은 지훈에게 안겼다. 지훈의 품은 보기보다 넓어서 관린은 편안하게 안길 수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는 꼭 안전하게 지켜준다더니, 진짜네. 관린은 그 품에서 자신이 면담한 아이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지훈님도 형이 자기 좋아하는 거 알아요? 관린은 지훈이 자신에게 했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응, 당연하지. 이제 내 선배님은 내 연인님이니까. 관린과 지훈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능성 중에서 비로소 운명이 선택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