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가(獻花歌)
w. 럼

 

  1. ASA에 관한 저서

 

AD 2119년 발발해 2128년에 끝난, 9년에 걸친 긴 전쟁이 끝난 후,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그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 대신 인류 공동체(Human Community)라는 개념이 들어섰고,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HC 시대라고 부른다. 세계 전쟁은 많은 것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땅은 전쟁 전 영토의 1/12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밖의 영토가 황폐화, 사막화 되며 이용 가능한 자원 역시 그에 비례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산림 자원의 소실로 인한 산소의 고갈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산림은 이전 시대와는 개념이 많이 다른 자원이 되었다.

 

(중략)

 

많은 것이 파괴된 지구는 재생과 회복이 턱 없이 더뎠고, 인류는 그 터전을 우주로 넓히는 데에 박차를 가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ASA(Agency of Space Administration)인데, 이는 기존 AD 시대의 우주개발센터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기관이다. ASA에서는 인류의 생존이 가능한 다른 행성을 찾고 있으며 그 프로젝트의 주축에 선 인물이 바로 J.Park(박지훈)이다. 그는 HC 2, 24세의 나이로 WING 1호에 올라타며 우주 답사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 후 WING호가 지구로 돌아온 것은 12년 만의 일이었다. J.Park을 중심으로 한 WING 1호는 생명체가 생존 가능하다고 보이는 행성을 단 1개 발견했다. WING호는 J.Park을 중심으로 이후로도, 현재까지 우주 답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ASA에서는 세계 전쟁 이전 AD 시대에 발견한 행성 케플러-22의 생명체 생존 가능 영역을 답사하다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새로이 발견한 LAI-144를 탐사하는 중이다. HC 62년이 된 지금까지 벌써 59년째 그 프로젝트는 사실상 J.Park이 이끌어가고 있는데 그는 지금까지 8회에 걸쳐 답사를 다녀올 동안 사실상 거의 나이를 먹지 않았다. 우주 비행을 할 동안에는 지구와는 다른 시간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인 셈이다.

 

한편 ASA는 우주개발뿐만 아니라 환경공학에도 힘을 쓰는데, 환경보전협회는 분리되고 지금의 EPA가 설립되었다. EPA가 하는 일의 중심은 산림 자원 관리이다. AD 시대와는 달리 HC 시대에는 산소는 생산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고 산림은 그 생산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EPA에서는 각 지구에 산림원을 두었는데, 과거에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었던 열대 우림의 이름을 따서 아마존이라고 하였다. 아마존은 EPA의 영역으로, 현재 중요한 산소 공급원이다. 8지구가 뒤늦게 개방되면서 아마존을 가지지 못했고, 그럴 자원도 부족했는데 지금은 J.Park의 사유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후략)

 

 

 

  1. HC 68년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64년 8월에 출발한 WING호가 바로 어제 9번째 답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박지훈 우주비행사는 오늘 오전 제 1지구 ASA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 참여하였습니다. ASA에서는 회의 내용을 검토 후 내일 모레 공식 석상에서 브리핑할 예정입니다.”

 

 

관린은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엘리베이터 안의 TV 화면을 노려보았다. 3년 전 WING호가 출발하던 당시와 어제 도착한 후의 지훈의 모습이 화면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지훈의 앞머리가 조금 길었다는 정도 빼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가득 채운 사람들도 뉴스를 보고는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들로 공간을 채웠다. 새로운 행성으로의 이주 가능성 같은 다소 먼 얘기부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훈의 모습에 대한 사소한 얘기까지. 결국 모두 같은 뉴스에 대한 얘기였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훈에 대한 얘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가 우주비행사라는 사실은 지나가던 행인을 붙잡고 물어도 알 만한 내용이리라. 관린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다다를 동안 내내 지훈의 이름이 오가는 것을 듣다가 다시 이어폰을 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환경과학관 건물을 나서려는데, 들어오던 사람들마저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10분이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정문 방향으로 뛰었다. 관린을 지나쳐 건물을 나가는 사람 중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관린이 입은 것과 같은 과 잠바를 입고 있었다. 같은 관린은 그의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야, 어디 가?”

“라이관린? 아씨, 깜짝이야.”

 

 

과 동기 Y가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마음이 급한지 관린에게 잡혀 있으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다. 관린은 그가 듣는 전공 수업이 곧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너 지금 전공이잖아.”

“지금 그게 문제야?”

“그럼 뭐가 문젠데?”

“문자 못 봤냐? 야, 일단 뛰어.”

 

 

Y는 다짜고짜 관린의 손목을 잡았다. 교양관으로 가려던 관린은 얼떨결에 그를 따라 정문을 향해 뛰게 되었다.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며 Y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쳤다.

 

 

“지금 학교 앞에 박지훈 왔다고!”

“……뭐?”

 

 

관린은 인상을 좁히며 되물었다. 정문 앞에는 사람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Y와 관린은 그 끝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야말로 박지훈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방금 도착한 사람들도 하나둘씩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관린의 옆에 선 Y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 관린만 홀로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있었다. 다들 촘촘히 원을 이루며 서서 지훈의 실물을 보려 까치발을 들고 있을 때, 관린이 그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다. Y는 당황한 목소리로 관린을 불렀지만 관린은 그저 앞을 향해만 나아갔다. 어쩔 수 없다는 듯 Y도 그 뒤를 따랐다.

 

 

“야, 뭐해, 야 라이관린!”

 

크게 소리친 Y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지훈이 소리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무리를 비집고 나온 관린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Y는 관린을 잡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지훈 형.”

 

 

관린이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훈은 하고 있던 사인을 마무리하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관린을 마주했다. 모두가 술렁이며 놀라는 가운데 관린만이 태연한 표정을 했다.

 

 

“왔네? 어떻게 딱 알고 왔어?”

“학교에 박지훈이 왔다는데 발칵 뒤집혔으니까 알았죠. 그리고 그건 제가 형한테 묻고 싶은데요.”

“권 비서님한테 물어봤는데 너 여기 다닌다길래. 수업 끝났어?”

“아뇨. 근데 일단 갈래요. 여기 더 있기 너무 민망해서.”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듯 관린이 지훈의 옆에 주차된 차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지훈도 남은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비켜났다. 관린은 차창 아래에 팔을 걸치고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지훈은 백미러도 사이드 미러도 보고, 관린의 눈치도 봤다. Y로부터 문자가 와서, 관린의 전화가 계속 울렸다. 관린은 반짝이는 액정만 보고,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관린은 창밖만 보고 있다가, 무료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 너 뭐야

– 어떻게 된 거야?

– 네가 왜 박지훈 차를 타?

 

Y에게서만 문자가 온 것은 아니었다. 관린이 대학에서 아는 사람들로부터 웬만하면 문자가 왔다. 대부분 박지훈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내용이었다. Y는 학교 커뮤니티를 도배한 지훈과 관린에 대한 글을 캡처해 보내주기도 했다. 문자도, 학교 커뮤니티도, 포털 사이트도 온통 지훈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결국 다시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멍하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제 8지구의 풍경을 보았다. 드문드문 가로수가 우뚝 솟아 있었다. 가로수라는 말도 지훈이 알려준 것이었다. 흰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돋아나는 식물을 보며 지훈이 벚나무라고 가르쳐 주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어린 아이 때 벚나무라고 배운 그것이 T-1010이라고 하는 컨버터(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전환시켜주는 식물을 그렇게 부른다)임을 대학에 와서 알았다. 이후 T-1010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면서 지훈을 떠올리면서, 옛말을 자연스럽게 쓰는 지훈의 세월이 새삼 느껴졌다.

 

지훈이 관린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제 8지구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제 8지구의 중심에 있는 타워의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웨이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안쪽 방으로 둘을 안내했다. 전망이 좋고 프라이빗한 곳이었다. 이미 둘을 위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훈은 착석해서 가장 먼저 창밖을 보았다. 내부의 조명이 밝지 않아 슬슬 해가 지는 풍경이 잘 보였다. 관린은 지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보았다. 지훈의 시선 끝에는 정원이 있었다. 지훈이 말하는 꽃이라는 게 잘 피어 있는 시기였다. 지훈은 컨버터 F형을 그렇게 불렀다. 관린도 지훈을 따라 그것을 꽃이라 부르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낯설었다. 정원의 한 가운데에 너무 크지 않은 저택이 있었는데, 그곳이 지훈의 집이었다. 정작 거의 관린 혼자 사는 지훈의 집.

 

먼저 식사를 시작하는 지훈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관린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에 손조차 올리지 않고 지훈만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형. 형은 별로 오랜만이 아닐 수도 있지만.”

 

 

관린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지훈은 그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훈이 돌아올 때면, 그것도 이렇게 몇 년 만에 돌아올 때면 관린은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 때마다 지훈은 미안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미안한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훈의 손은 멈췄는데, 관린이 그제야 식기를 들었다.

 

 

“어떻게, 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뉴스로 먼저 접했네요.”

“미안해. 거의 돌아오자마자 회의에 들어갔는데 너무 길어져서.”

“탐사가 길었으니 회의도 길었겠죠.”

 

 

다소 날 선 말에 지훈은 어쩔 줄 몰랐다. 관린은 크게 썬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것을 삼킬 때까지 지훈은 관린의 반응을 살피고만 있었다. 관린은 투정은 이쯤 하자고 생각했다.

 

 

“그냥 보고 싶었다는 말이에요.”

 

 

보고 싶었냐는 말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지훈은 먼저 할 수가 없었다. 지훈이 며칠을 그리워하면 관린은 몇 달을, 지훈이 몇 주를 그리워하면 관린은 몇 년을 그리워했다. 인류의 영웅이라 추앙 받는 지훈도 관린의 시간 앞에서는 속절없이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훈은 관린의 말을 듣고야 안심할 수 있었다.

 

 

“관린아.”

“네.”

“네가 올해 몇 살이지?”

“스물 둘이에요. 4년만이네요 우리.”

 

지구로 돌아와 관린을 만나면 지훈이 언제나 인사처럼 건네는 질문이었다. 지훈에게 있어 관린의 나이를 묻는 것은 곧 올해가 몇 년도인지 묻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결국 비슷한 의미인데, 지훈은 언제나 년도 대신 관린의 나이를 물었다. 벌써 4년이 지났다. 우주로 떠나고 몇 밤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열여덟의 소년이 벌써 스물둘의 성인이 되어 있다. 교복을 벗고 대학의 과 잠바를 입었다.

 

 

“네가 제 8지구에 있는 대학을 갈 줄은 몰랐어.”

“왜요?”

“간다면 제 1지구에 있는 곳을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왜요, ASA랑 EPA 본부가 있어서?”

“꼭 그런 건 아니고. 대학은 보통 거기로 가려고들 하니까.”

 

 

지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제 1지구는 사실상 모든 것의 중심부의 역할을 했다. 지훈이 말한 두 기관의 본부가 있기도 했고 그 밖에도 여러모로 가장 발전한 곳이었다. 지훈은 그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실 그건 보통 사람들이 제 8지구에 대해 느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이 세계에서 가장 보통이 아닌 존재였다. 관린은 때로 제 8지구는 사실 지훈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식사가 반쯤 이루어졌을 때 지훈은 와인을 주문했다. 웨이터가 지훈의 잔과 관린의 잔을 차례로 채웠다. 관린의 잔에 레드 와인이 담기는 것을 지훈이 물끄러미 보았다. 종업원이 물러가자 관린이 먼저 잔을 들어 건배를 권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훈 형의 귀국을 기념하며.”

 

 

지훈도 흔쾌히 자신의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쳤다. 자신의 잔에 든 것을 마시면서도, 관린의 입술 사이로 와인이 흘러들어가고, 그것을 넘길 때마다 목울대가 울렁이는 것을 관찰했다.

 

 

“신기하다. 네가 벌써 술을 마시는 나이고.”

“사실 많이 마셔보진 않았어요.”

“스물 둘이라면서? 왜?”

“마실 기회도 많이 없었구요. 마실 사람도.”

“왜? 대학 다니면 술 마시러 자주 다니고 그러지 않아?”

 

 

자신이 대학을 다닐 때를 떠올렸다. 나 때는 전공실에 남아 연구하던 애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러 자주 가고 그랬는데. 경청하는 관린의 표정을 보고서야 그러다 그 때가 제법 옛날임을 깨달았다. 6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 때 지훈과 술을 마시러 다녔던 동기들은 아마 지금쯤 관린의 할아버지뻘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미안, 너무 옛날 얘기지.”

“아니에요.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도 Y랑은 몇 번 마셔봤어요.”

“Y가 누군데?”

“아까 제 옆에 있던 애요.”

 

 

관린은 상냥했다. 지훈이 과거─관린에게는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먼 과거─를 회상하는 얘기를 지루해하지 않고 경청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문득 다 큰 관린의 모습에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의 얼굴이 조금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꽃을 건네던 어린 아이가 벌써 저보다 큰 키의 말끔한 성인이 되었다. 지훈은 새삼 세월의 흔적을 실감했다.

 

 

“이번 답사는 어땠어요?”

“피곤했어. 완전.”

 

 

관린이 묻자마자 지훈은 곧바로 지친 표정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내용을 말해주기 전에 우선 한숨부터 쉬었다.

 

 

“이번에는 거의 잠을 못 잤어. 이동하고 탐사하고, 이동하고 탐사하고. 비행선 안에 붙어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거든.”

“바쁘게 다녀왔네요.”

“응. 원래 우주에 날짜 개념도 시간 개념도 없긴 한데 이번엔 잠까지 안 자니까 진짜 가늠도 못하겠더라. 그래서 난 4년이나 지난 줄은 몰랐어.”

 

 

어쩐지 그 말이 변명 같이 들렸다. 실제로 지훈은 미안했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할 관린이었다. 그런 관린이 이제 제 부재에 익숙해진 것 같아서 더 그랬다.

 

 

“돌아오자마자 집에서 푹 자고 싶었는데 회의에 들어가라잖아. 어차피 보고서에 다 적어놨는데 굳이 뭘 그렇게 바로 다음 날 참석해야 한다는지 모르겠어, 꼰대들. 명령질이야, 출생년도로 치면 내가 걔네 아버지뻘일 텐데.”

 

 

씩씩거리며 불만을 얘기하는데 관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ASA와 EPA의 웬만한 간부들 보다 실제로 20년은 일찍 태어났을 지훈이 제 또래처럼 말하며 분노하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도 피곤하겠네요, 형. 돌아와서 많이 못 잤을 거 아니에요. 인터뷰고 뭐고 하느라.”

“응. 나 집에 가자마자 뻗을 것 같아.”

 

 

말하면서도 피곤한지 지훈은 손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러고 보니 관린과 같이 있는 내내 하품을 자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관린은 와인잔을 들었다가 입을 대기 전에 다시 내려놓고 대신 물을 마셨다.

 

 

“넌 뭐하고 지냈어?”

 

 

조금 당황했다. 빈 세월이 4년이라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지 몰랐다. 지훈이 오랜만에 돌아올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곤 했는데, 관린은 그때마다 제 소개를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이름과 나이 빼고.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길 바랐다.

 

 

“학교는 다닐 만해? 무슨 과야?”

“다닐 만한 것 같아요. 원예학과 다니는데 전공도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진짜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을 거야. 원예학과가 이렇게까지 인기 있는 전공이 될 줄은.”

 

 

지훈은 턱을 괴고 창밖을 다시 내다보았다. 멀리 보이는 저택의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존 관리사, 너랑 잘 어울릴 거 같아.”

“그래요? 근데 그걸 할 생각은 없어요.”

“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다시 관린을 보며 지훈이 물었다. 관린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다들 그거 하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야? 돈도 많이 벌고. EPA 소속이니 알아주는 직장이고.”

“돈이야 뭐, 제가 형의…… 형이랑 살면서 죽을 때까지 부족할 것 같지는 않구요. 벌라고 하면 벌겠지만. 그리고 저는 제 8지구에 있으려구요.”

“너도 되게 특이하다.”

“그래요?”

 

 

지훈은 다시 시선을 정원으로 옮겼고, 관린도 한참 그곳을 응시했다. 벚나무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둘 다 말없이 계속 그렇게 정원만 보고 있다가, 지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는 사이에 관린이 먼저 주차장으로 나갔다. 지훈이 나와보니 관린은 운전석 쪽 차문 앞에 서 있었다.

 

 

“키 주세요, 형 피곤해보여요. 와인도 마셨고.”

“운전도 할 줄 알아?”

“대학 들어가자마자 면허 땄어요.”

 

 

순순히 차 키를 넘겨준 지훈은 조수석에 탔다. 관린도 타자마자 지훈의 안전벨트를 채워주었다. 지훈은 편안히 시트에 등을 기댔다. 관린은 운전을 제법 잘 하는 편이었다.

 

 

“차는 샀어?”

“아니요.”

“왜?”

“형 오면 사달라고 하려구요.”

 

 

관린의 농담에 지훈이 힘없이 웃었다. 얼마 안 가 결국 지훈은 차 안에서 잠이 들어 관린이 운전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단잠을 잤다.

 

 

 

  1. 하얀 국화

 

시대가 바뀌며 많은 예절과 격식은 무의미해졌다. 국가의 개념이 사라지고 온갖 문화권의 사람이 공동체로 묶이며 저마다 지켜오던 전통이 달랐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간소화한 것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장례식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더 이상 향을 피우지도 않았고, 절을 하지도 않았다. 조문객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슬퍼하고, 기도를 하거나 묵념을 했다. 그 장례식에 하얀 국화를 들고 온 것은 지훈이 유일했다. 국화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꽃이기도 했다. 지훈의 정원이 아닌 곳에서는.

 

장례식장에서는 당연한 듯 고인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그녀는 산림학 쪽으로 꽤 권위 있는 박사였다. 그녀는 EPA 소속의 연구원이었는데, 고고식물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지훈과 통하는 곳이 많았다. 지훈은 그녀를 형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했었다. 그녀가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 이후로는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재작년쯤부터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EPA에서는 건강악화의 원인을 제 9지구 개발에서 찾고 개발을 중단했다. 장례식장에서는 제 9지구 개발에 대한 얘기도 오가다가, 고고식물학에 대한 대화도 잠시 흘렀다가, 주제가 곧 홀로 남은 그녀의 어린 아들에 대한 것으로 정착했다.

 

그 어린 아들의 이름은 라이관린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만 7세라는 나이에 비해 똘똘한 아이라고 했다. 관린에게는 그를 돌봐줄 만한 친척도 없었다. 관린의 아버지는, 지훈이 알기로는 관린과 비슷한 사정 속에서 자랐고, 외가 쪽으로도 친척이 없었다.

 

 

“저 이 꽃 알아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를 보고 지훈은 직감적으로 그 아이가 그녀의 아들임을 알았다. 어린 관린은 지훈이 올려둔 국화를 가리켰다.

 

 

“옛날에 장례식에서 쓰이던 꽃이라고. 이름은 까먹었는데……”

“국화.”

“엄마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에 국화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어요.”

 

관린은 국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더 이상 꽃에 의미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어린 아이일 뿐인 관린이 흰 국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제단에 놓인 흰 국화를 들어 만져보는 관린에게서 고고식물학을 연구하던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고고식물학에 대해 연구하면서 종종 지훈이 살던 때의 꽃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 물어보기도 했고 그 때마다 지훈은 아는 만큼 답해주었다. 관린의 아버지는 그럴 때면 별 흥미가 없는 듯 신기하다고 맞장구만 쳤다.

 

지훈은 관린을 뚫어져라 보았다. 장례식장에서도 그 어린 아이는 돌봐줄 사람 없이 혼자였다. 지훈이 다가가니 관린은 만지던 꽃을 내려놓고 지훈을 보았다.

 

 

“관린아. 너 형 누군지 알아?”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훈은 눈높이를 맞추려 관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우주비행사 형이잖아요. 티비에서 봤어요. 아빠 친구라고 엄마가 그랬었어요.”

“관린아, 형이랑 같이 살래?”

 

 

다소 충동적인 제안이었지만 결코 단순한 동정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동질감이었다. 혈혈단신이기는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관린처럼 어릴 때 가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집안이 어려웠던 게 죄라면 죄였고, 그 와중에 지훈이 훌륭한 인재인 것도 죄라면 죄였다. 다 기울어가는 가세에, 지훈은 아버지의 치료비가 필요했고, ASA는 치료비를 훨씬 넘는 보수를 주는 대신 지훈의 우수함을 요구했다. 고민할 여지도 없는 거래였다. 지훈은 당연히 승낙했고, 우주답사에 뛰어들게 되었으며 첫 비행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었다. 다 늙어버린 지훈의 누나가 아버지는 호전하셔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 가셨다고 알려주었다. 수십 년은 늙어버려서, 제가 알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낯선 누나의 모습을 봤을 때의 그 충격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고 생생했다. 지훈이 두 번째 답사를 끝내고 왔을 때는 정말 혼자였다. 더 이상 치료비를 대야할 가족도 없었지만 지훈은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어차피 돌아갈 곳 없는 자신이 향할 곳은 우주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훈이 아니고서야 관린을 마땅히 부양할 사람도 없었기에 관린은 결국 지훈과 함께 살게 되었다. 관린의 부모님을 알던 지인들과 동료들도 그게 관린에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관린과 함께 살게 된 이후 지훈은 2년 정도 일이 없었다. 그 2년 동안 지훈은 관린에게 부족함이 없는 식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필요할 땐 형 같은, 필요할 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지훈은 어느새 관린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ASA와 재계약을 했다. 먹여 살릴 가족이 생겼으니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사실 그 무렵에도 관린은 여전히 어린 아이였지만 지훈에게는 꽤 큰 의미가 되었다. 가족이 생겼다는 건 지훈에게도 지구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지훈은 ASA에서 제안한 5번의 답사를 승낙하며 관린을 생각했다. 이 5번의 답사가 끝날 때 쯤 관린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1. 정원사

 

 

집 앞에서 차가 멈추고서야 지훈이 잠에서 깨었다. 차고에서 현관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지훈이 걸어서 정원을 가로지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정원 속을 걷는 동안 바람이 불어서 기분 좋은 꽃향기가 났다. 지훈과 관린만이 그 좋은 꽃향기를 알았을 것이다. 더 이상 꽃의 향기라는 것이 의미를 잃은 시대에 지훈만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요즘 시대의 기준으로 치자면 지훈의 정원은 고고식물학의 터전 그 자체였다. 지훈은 꽃과 나무에 대해서 박학다식한 편이었다. 생전 지훈의 어머니께서 플로리스트였기 때문이었다고 관린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꽃을 가꾸는 직업이라고 했다. 플로리스트는 이제 없는 직업이었다.

언제부턴가 정원 관리는 전부 관린의 몫이었다. 관린이 아니고서야 이 많은 꽃과 나무를 돌볼 능력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꽃과 나무에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관린이 지훈의 집에 오고 처음으로 정원의 식물들에 관심을 가질 때 지훈이 아는 만큼 알려주며 관린과 함께 직접 이름을 적어서 걸어둔 것들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관린은 준비해뒀던 꽃다발을 건넸다. 카네이션 여러 송이가 눈에 띄었다. 관린은 그 꽃이 스승 혹은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임을 물론 알았다. 지훈이 돌아올 때면 관린은 언제부턴가 카네이션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했다. 지훈은 꽃다발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향을 맡았다. 이 싱그러움은 오직 관린만이 선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싱그러움을 느끼고 집안을 둘러보며 지훈은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찾았다.

 

 

“형 피곤하죠. 바로 씻을 거예요?”

“응, 근데 잠깐만.”

 

 

지훈은 받은 꽃을 투명한 꽃병에 담아 물을 채웠다. 꽃병을 소파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두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관린이 몇 년 전에 썼던 편지 비슷한 일기였다. 둘은 교환 일기를 주고받았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관린이 일기를 검사 받았던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관린은 이따금씩 지구에서의 일을 일기로 썼고, 지훈은 우주로 갈 때 꼭 그것을 챙겨가 관린의 일기를 읽고서 코멘트를 달곤 했다. 지훈이 다시 우주로 떠나면 관린은 지훈이 남긴 코멘트를 여러 번 읽으며 지훈에 대해 생각했다.

 

 

“아, 이거 좀 이따 줘도 되는데.”

“까먹기 전에 주고 싶어서.”

 

 

관린은 지훈이 건넨 노트를 받아들기 전에 제 방에 있는 책상의 첫 번째 서랍에서 다음 노트를 꺼내왔다. 지훈이 우주에 가 있던 다음 4년의 기록이 있었다. 긴 시간인 만큼 분량도 꽤 많았다. 다음 노트를 건네받은 지훈은 다음 비행 동안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관린도 지훈이 돌려준 노트를 펼쳐보았는데, 몇몇 페이지 사이에 지훈이 찍은 우주 사진이 있었다. 지훈도 하루에 한 번, 우주에서 사진을 찍어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인화해 관린의 노트에 끼워주었다. 가끔 사진 뒤에 별자리 이름이나 성운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관린은 의외로 우주에는 관심이 많이 없는 편이어서 지훈이 우주에 대해 말할 때 조금 멀어 보이기도 하면서 존경심이 새삼 샘솟기도 했다.

 

 

“그럼 나 먼저 씻을게.”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지훈이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욕조에 온수를 채우고 그 안에 들어갔다.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지훈의 어깨까지 잠겼다. 이제야 긴장이 풀려 나른해졌다. 다시 잠이 들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밖에선 관린이 통화를 하는지 말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Y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어, 지훈이 목욕을 하러 들어간 사이 관린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Y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관린이 말을 건네기도 전에 Y가 급하게 물어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아까 그 사람 박지훈 맞지?”

“그럼 지훈이 형 아니고 누구겠냐.”

“둘이 어떻게 알아? 원래 아는 사이야?”

“그, 전에. 내가 너한테 같이 사는 형 있댔잖아.”

“그 형이 박지훈이라고는 말 안 했잖아. 숨길 게 따로 있지!”

“숨기려던 건 아니었고…….”

 

 

관린은 Y와 바로 앞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말로 숨기려던 건 아니었지만, 굳이 먼저 지훈이 자신을 키워준 형이라고 밝힐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그 사실이 알려지고는 떠들썩해지곤 했었는데 대학교는, 우주에 대해 배우는 그런 곳에서는 훨씬 더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지금 학교 커뮤니티에 온통 박지훈 얘기뿐인 것처럼.

 

 

“신기하다, 진짜. 언제부터 같이 살았는데?”

“나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으니까.”

“그럼 일곱 살 아냐?”

“아 맞다. 그러네.”

 

 

무심코 지훈이 세는 기준에 맞춰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지훈은 독특한 방법으로 나이를 세었다. 출생년도 기준이라고 했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해서, 그 다음 해가 되면 한 살을 더 먹고,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만 20세인 관린도, 지훈의 기준으로 스물 두 살이었다. 지훈이 태어난 나라가 나이를 세던 방법이라고 했다.

 

 

“나 진짜 궁금했는데, 그 지훈이 형? 진짜 나이 안 들어?”

“여기 있을 땐 들지. 근데 워낙 오래 안 있어서. 게다가 원래 조금 앳된 얼굴이기도 하고.”

“좋겠다, 그럼.”

“뭐가?”

“나이 안 들면 오랜만에 봐도 그대로일 거 아니야.”

 

 

그 말에 관린은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생각했다. 지훈은 확실히 떠나기 전과 거의 같은 모습이긴 했다. 그렇다고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변한 자신만큼 변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다. 새삼 세월이 빗겨가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면 지훈이 낯설었다.

 

 

“모습은 그렇긴 한데. 나랑 다르다는 게 느껴지니까.”

“하긴, 게다가 거의 같이 있는 시간도 없겠네.”

“그렇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기도.”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Y도 관린의 목소리에 묻어난 분위기를 이해한 것 같았다. 관린은 굳이 외로움을 숨기지 않았다. 지훈이 없는 시간에도 지훈의 부탁으로 관린을 챙겨주는 사람들이야 있었지만 그들도 관린에게 있어 지훈만큼의 의미를 가지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외로움으로 인해 지훈을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지훈을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관린은 지훈과 함께하길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보면 가족이라고 해도 좀 낯설고 그러지 않아? 난 방학 때 본가에 돌아가면 조금 어색하던데.”

“그렇긴 한데…….”

 

 

솔직히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가족 같은 존재라도 4년 만에 만나면 그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4년만큼 변한 자신이 고작 몇 주 달라진 지훈을 만난다는 게 묘한 위화감을 줬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아마 자신보다 지훈이 몇 배는 더 강하게 느낄 것들이었다.

 

 

“나보다는 지훈이 형이 더 힘들 거니까. 형은 불과 어제오늘 정도의 일일 건데도 난 네 살이나 더 먹었으니까.”

“그건 그러네.”

 

 

관린은 Y와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곧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서 지훈이 돌려준 노트를 다시 펼쳐보았다.

 

 

 

  1. Commentary

 

 

6329

 

날이 진짜 춥다. 지훈이 형은 어제 우주로 떠났다. 그래도 형이 중학교 졸업식에는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이 한 달 만에 돌아와서 입학식에 오는 일은 없겠지? 섭섭한 건 아닌데 조금 걱정 된다. 입학을 혼자 하는 건 처음이다. 어제 학교 배정을 받아서 오늘 교복을 샀다. 입학식에서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둬야겠다.

  • 이런 건 섭섭해 해도 괜찮아 관린아. 못가서 미안해. 졸업식에는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6332

 

입학식 했다. 지훈이 형이 왔으면 꽃다발을 받을 수 있었을까? 입학식은 원래 꽃다발 받는 날이 아닌가? 모르겠다. 어차피 꽃다발 주고받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 교복 진짜 어색하다. 고등학교는 좀 멀어서 권 비서님이 태워다 주셨다. 교실에 갔더니 선생님이 자기 소개서 써오라고 했다. 가족 관계 쓰는 거 있는데 뭐라고 쓰면 될지 모르겠다. 이번 학기 끝날 때 쯤 지훈이 형이 오지 않을까? 일단 지훈이 형 이름은 썼는데 관계에다가 뭐라고 쓸지 모르겠다. 일단 형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형이라고 썼다.

  • 입학식 잘했을지 궁금하다. 사진으로 남겨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지구를 떠날 때 네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지구에 돌아가면 너는 아직도 고등학생일까? 아니면 시간이 더 흘렀을까? 졸업식은 꼭 가고 싶으니까 아직 졸업 안 했으면 좋겠어.

 

 

6333

 

자기 소개서 냈는데 담임 선생님한테 불려갔다. 처음에는 성이 다른데 어떻게 형이냐고 물어보셨다. 일단 같이 사는 형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보호자는 없냐고 하시기에 가족이 형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 가정환경에 대해 궁금하셨는지 부모님에 대해 여쭈어보셨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형에 대해 물으셨다. 형이 나를 키워주었다고 대답했다. 진짜 그랬으니까. 형은 내가 아홉 살일 때부터 지금까지 키워줬다. 선생님은 그제야 형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셨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진짜 모른다. 가끔 형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내 할아버지뻘이라고 말하긴 했었다. 어떻게 형 나이를 모르냐고 물어보셔서 그냥…… 더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 박지훈이라고 말했다. 단번에 이해하신 것 같았다. 진짜 궁금해졌다. 형 몇 살인 걸까? 솔직히 그 얼굴에 할아버지라니 말도 안 된다. 형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 64년 기준 86. 진짜 할아버지뻘이라니까? 형이 좀 많이 동안이긴 하지?

 

 

관린은 3월 3일의 코멘트를 보다가 지훈의 글씨 밑에 또 글을 추가했다. 형 이제 90살이네요…… 동안인 정도가 아니잖아요.

 

 

6349

 

벚꽃이 폈다. 바람이 불어서 날리는 게 진짜 예쁘다. 형도 같이 봤으면 좋겠어서 동영상 찍어 놨다. 학교 친구들한테도 자랑하려고 했는데 걔네는 벚꽃이 뭔지도 모른다. 얼른 지훈이 형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 그래도 올해 벚꽃은 보고 출발해서 다행이다. 영상 남겨줘서 작년 벚꽃도 잘 봤어. 학교 친구들은 벚꽃 본 적 없대?

 

 

관린은 페이지를 조금 많이 넘겼다.

 

 

63714

 

대박. 곧 방학이다. 진짜 날씨 엄청 덥다. 그래도 정원에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게 진짜 기분 좋다. 나랑 지훈이 형만 아는 거겠지? 그리고 어제 뉴스에서 WING호 다음 달쯤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 진짜 ASA 연구원들 부럽다. ASAWING호로 연락할 수 있는 거지?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우주랑 연락 되는 통신 기술 하나 없다니 진짜 말도 안 된다.

  • 관린이가 ASA로 취직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굳이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ASA 일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추천하진 않음. 우리 관린이 ASA에 못 내어준다…… 설마 진짜 ASA에 취직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63718

 

방학 일주일 남았다. 방학 때 지훈이 형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같은 반 여자애한테 고백 받았다. 왜냐고 물어봤는데 잘생겼다고 대답해서 별 감흥은 없었다. 재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거울만 봐도 안다. 일단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굳이 사귀어볼 생각은 없다. 벚꽃 떨어지는 거 보면서 예쁘다고 하는 사람 만나고 싶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지훈이 형도 진짜 잘생겼는데 고등학교 때 고백 받아봤을까? 받아봤겠지?

  • 고등학교 때 좀 받았었는데 그 때는 미쳤었는지 공부하는 게 좋다고 연애 안 했다. 그 시간에 천체 공부를 했다. 진짜 떡잎부터 남달랐던 고등학교 시절 박지훈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진짜 모를 일. 교복 입고하는 연애 진짜 귀여운데 관린이는 지금쯤 해봤으려나? 벚꽃 길 같이 걸어줄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63723

 

방학 이틀 앞두고 아마존 견학 가는 거 진짜 말도 안 된다. 누가 기획한 건지 진짜 정신 나갔다. 이 더운 날씨에. 게다가 진짜 볼 것도 없었다. 우리 집 정원 한 바퀴 도는 게 아마존 세 바퀴 도는 것보다 나을걸?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데려올 생각은 죽어도 없다. 나무 몇 종류 있지도 않고 꽃은 진짜 거의 없었다. 아무리 중요한 건 산소 생산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미적 감각이 없을 수가 있나?

  • 친구 데려와도 되긴 하는데. 네가 싫으면 싫은 거지만. 관린이가 나무랑 꽃 좋아하는 것 같아서 진짜 반갑다. 관린이네 엄마 생각도 나고. 집에 아직도 고고식물학 책 있을 텐데 갑자기 생각나서 읽고 싶다.

 

 

9번째 탐사

돌아가면 관린이한테 해줄 얘기가 많다. 돌아가면 관린이는 지금 몇 살일까. 졸업식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관린이가 성인이 되었다면 정말 면목 없을 것 같다. 빨리 지구에 가고 싶다. 관린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항상 궁금하다. 기대도 되면서 동시에 걱정도 된다. 보고 싶다. 항상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1. 너의 의미

 

지훈이 목욕을 하는 사이 관린도 다른 욕실에서 간단하게 씻었다. 지훈의 일기를 대충 끝까지 읽었는데,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다. 언제나 그랬을 테지만 마지막으로 지훈의 코멘트가 담긴 일기를 읽었을 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그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제가 쓰는 표현들도 예전과는 많이 달랐고, 지훈이 하는 말의 무게도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지훈은 언제나 보고 싶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관린의 일기에 남기고는 했는데, 그렇다고 이 말이 이렇게 가슴에 얹힌 적이 있었던가. 관린은 갑자기 할 말이 많아진 것만 같았다.

 

마침 지훈이 욕실에서 나왔다.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조금 남아 있지만 수건으로 마저 말리려는지 수건을 걸치고 나왔다.

 

 

“씻었어?”

“네. 형 내일은 뭐해요?”

“별로 일정 없는데. 내일 가봐야 알 듯? 왜?”

“그냥요. 바쁜가 해서.”

“근데 아마 보고서 관련해서 연락은 좀 올 것 같아. 제발 다시 제 1지구로 부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상상만 해도 피곤한 일이었다. 지훈은 불과 오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매정한 ASA는 필요하다면 지훈을 또 소환하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몸이 뻐근한지 지훈은 어깨와 목을 연신 스트레칭 하다가 하품을 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관린은 한 걸음에 쫓아와 지훈의 방문을 붙잡고 섰다.

 

 

“자려구요?”

“피곤해서 누워 있으려고.”

“형. 같이 자도 돼요?”

 

 

지훈의 침대는 넓은 편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훈은 꽤 당황했다. 어릴 때 관린과 자주 그러긴 했었는데, 다 큰 성인 둘이 한 침대에서 자자고 하는 게 조금 황당했다. 어쨌든 지훈은 허락했다. 관린에게 허락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지훈이 먼저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고, 관린이 제 방에서 베개를 가져오더니 지훈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지훈은 어느 방향으로 누우면 좋을지 몰랐는데, 관린이 지훈을 보고 누웠기에 자신도 관린을 마주보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바로 앞에 관린의 얼굴이 보였다. 관린은 또렷한 눈빛으로 지훈만을 보고 있었다.

 

지훈은 천천히 관린의 얼굴을 살폈다. 알아볼 정도이긴 했지만 4년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일단 얼굴 살이 많이 빠졌다. 그 때문인지 인상이 강해졌다. 얼굴선이 뚜렷해서 더 말끔하고 잘생겨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서 손을 뻗어 관린의 뺨 위에 얹었다.

 

 

“너 진짜 잘생겼다, 큰일 났다.”

 

흔하게 듣는 말임에도 지훈이 나른한 목소리로 건네는 게 어쩐지 쑥스러워서 관린은 말없이 웃었다. 저도 지훈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봤다. 문득 이런 얼굴을 우주에만 내어주기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형. 나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뭔데?”

“형 왜 우주 비행사 된 거에요? 어쩌다가 프로젝트 맡게 됐는지 궁금해서.”

 

 

분명 지훈은 관린이 어렸을 때도 이런 질문에 대답해준 적이 있었다. 다만 그 때는 관린이 정말 어렸기에 모범답안을 말했었다.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었다. 실제로 그런 사명감이 전혀 없다고 하면, 애초에 이런 직업을 택하지도 않았겠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관린의 질문도 대충 그런 의도일 것이었다. 사실 사명감 하나 때문이라면 굳이 스스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설 필요는 없었다. 답사 플랜을 짜는 일을 하든지, ASA의 다른 간부직을 맡든지 하면 되는 것이었다.

 

 

“보수가 좋았어. 나 그때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거든. ASA에서 치료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했어.”

“그래서 나으셨어요?”

“응. 나으셨지. 근데 첫 프로젝트를 여러모로 헤맸거든. 돌아왔을 땐 이미 20년이 넘게 지나 있었어.”

 

 

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전히 관린의 뺨 위에 얹어진 손으로는 얼굴을 살살 어루만졌다. 손끝으로 관린을 느끼면서 하지 않는 이상 쓸쓸함이 몰려올 것 같았다.

 

 

“아버지는 병이 아니었어도 노쇠하신 편이셔서, 병이 나았어도 그 후로 오래 살지 못하셨던 거야.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누나도 많이 늙어 있었어. 갑자기 스물다섯 살 차이나는 누나가 되어 있더라.”

 

 

지훈은 눈을 크게 뜨고 관린을 봤다. 그 표정이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지훈에게 있어서 쓸쓸하긴 해도 그렇게 힘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일 이후로 언제나 또 다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그렇게 일을 세 번 정도 하고 나니까, 진짜 돈은 많았는데. 그 돈을 이제 쓸 데가 없더라. 더 이상 누군가의 치료비를 대야할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돈을 다 쓸 만큼 지구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고.”

“그럼 일을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에요?”

 

관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훈이 왜 일을 그만두지 않는 걸까, 하고 궁금해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누가 해도 이런 일을 감수해야할 거야. 그렇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내가 하는 게 낫잖아. 어차피 더 이상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없으니까.”

“형, 그럼…….”

 

 

저는 형한테 어떤 의미에요? 관린은 물어보고 싶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지훈에게서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혹시나 제가 지훈의 발목을 잡는 것일까. 제 존재가 지훈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관린은 언제나 지훈이 미안해하는 것을 보고 미안해해야만 했다.

 

 

“응?”

 

물어보려던 것을 물어볼 수가 없어서 관린은 고작 이런 질문을 뱉었다.

 

 

“형도 저 보고 싶었어요?”

 

 

뺨을 쓰다듬던 손이 멈추었다. 지훈은 손을 떼고, 팔로 관린을 안았다. 자신보다 한참 커버린 관린은 이제 한 팔에 다 안기지 않았다. 그래도 버겁게 관린을 안았다.

 

 

“당연하지.”

 

 

제가 떠나있던 건 보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보고 싶었다고. 우주를 보면서도 지구에 있을 너를 생각했다고. 네가 얼마나 자라고 얼마나 변했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고. 박지훈이 지구에 돌아올 이유는 라이관린이라고. 지훈은 말하지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그 한 마디에 전부 전해지길 바랐다. 관린은 긴 팔로 지훈을 마주 안았다.

 

 

“관린아. 나는 우주보다 네가…….”

 

 

지훈은 입모양으로 말하다가 차마 뒷내용을 말하지 못했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와중에도 졸음이 몰려와 지훈은 자신도 모르는 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관린은 홀로 깨어 지훈의 뒷말을 고민했다.

 

 

 

  1. LAI-144

 

그렇게 우려했건만, 지훈은 인터뷰며, 회의며 일주일에도 몇 번씩 다른 지구에 가야했다. 몇 밤은 그곳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관린은 조금 섭섭했다. 지훈에게 섭섭한 것이 아니라 지훈을 자신으로부터 앗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랬다. 이제 겨우 지구로 돌아와 자신과의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야속하게도 지훈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지훈은 피로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그래서 자는 시간이라도 소중했다. 피곤한 지훈을 배려한 관린 때문에, 둘의 대화는 대부분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내일부터는 진짜 제 8지구 밖으로 나갈 일 없어.”

“이제야 좀 쉬겠네요, 형.”

“근데 내일은 너랑 갈 곳이 있어.”

“어디요?”

“아버지…… 뵌 적 없지?”

 

 

그 말에 관린은 그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었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조차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지훈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놀라웠다.

 

 

“내일 너랑 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네. 내일 가요.”

“나 그리고 네 일기 봤어. 궁금해서.”

 

 

지훈은 다정한 손길로 관린의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시원시원한 이마와 눈썹이 드러났다. 앞머리가 걷히니 관린의 큰 눈이 분명하게 지훈에게로 향했다.

 

 

“그새 여자 친구도 사귀어보고, 다 컸네.”

“형 눈엔 제가 아직도 아홉 살 애기 같아요?”

“아니. 스물두 살 애기 같아.”

 

 

배시시 웃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관린은 저도 모르게 지훈의 뺨을 감쌌다. 제가 커서 그런가, 지훈이 문득 작게 느껴졌다. 아빠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때와 지훈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지금은 그저 제 작은 형처럼 느껴졌다. 관린의 손이 얼굴에 닿자 지훈은 점차 웃음기가 빠지고 관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참을 서로의 얼굴을 시선으로 만지듯이 훑다가, 지훈이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관린아. 내가 여전히 낯설어?”

“…….”

“너도 변하지 않는 내가 이상해?”

 

 

그런 질문을 좀처럼 하지 않는 지훈이기에, 관린은 화들짝 놀랐다가 그날 Y와의 통화를 지훈이 어렴풋이 들었을 거라 짐작했다. 지훈의 뺨을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 목소리가 눈물 나게 자상했다.

 

 

“저는 언제나 형을 존경해요. 형이 너무 멋있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게 다예요.”

“나는 또 벌써 4년을 널 혼자 뒀는데.”

“형이 날 두고 간 게 아니에요. 시간이 형을 두고 흐른 거지.”

 

 

지훈이 울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의 눈가가 반짝여서, 관린은 뺨을 잡고 있던 손의 엄지를 뻗어 눈가를 살살 쓸어주었다.

 

 

“형. 너무 미안해하지 마요. 저는 형이 낯설었다기 보단 항상 형을 두고 변해버린 내가 낯설었어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시간도 지훈처럼 멈추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 지훈이 나이를 먹는 만큼만 먹고 지훈이 변하는 만큼만 변하고. 그럼 자신도 지훈도 덜 외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형. 뭐가 그렇게 불안해요?”

 

 

자신을 만지고 있는 손을 겹쳐 잡고, 지훈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눈을 질끈 감은 모습이 꼭 우는 것만 같아서 관린은 걱정이 됐다. 관린은 팔을 뻗어 지훈을 제 품에 안아주었다. 제 삶을 이끌어주었던 형을 안을 수 있을 만큼 이제 관린은 컸다.

 

 

“네가 나를 두고 이렇게 커버려서 어떡하지.”

“아직 스물두 살 애기에요.”

“스무 살 되던 해에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괜찮아요.”

“관린아, 나는 네가…….”

 

 

나를 두고 갈까봐 무서워. 지훈은 뒷말을 삼키고 관린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늙어버린 누나를 마주치던 때를 떠올렸다. 또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지구의 관린이 얼마나 변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나이를 먹는 것만의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대학교 입학식도, 스물 살의 첫 생일도 함께 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이제 다 커버린 관린이 제 둥지를 떠날까봐 그게 무섭다.

 

관린은 자꾸만 지훈의 등을 쓸어주며 괜찮다고 했다. 지훈만 두고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긴 관린도 마찬가지였다. 지훈이 돌아올 때까지, 하루만큼이라도 덜 변하길 바란다. 관린은 지훈을 놓아주기 싫다는 듯 품에 꼭 안았다.

 

 

 

둘은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정원에서 꽃을 조금 꺾었다. 관린은 꽃다발을 만드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카네이션의 의미를 기억하는 관린이 기특했다. 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관린은 벚꽃으로도 꽃다발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 모습을 지훈은 조금 멀리서 지켜보았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과 관린이 그림처럼 어울렸다.

 

 

“관린아.”

“네!”

“이제 이 정원, 네 거야.”

“네?”

“다른 거 하지 말고 정원 가꾸면서 나랑 계속 살자.”

 

 

지훈은 꽃밭으로 뛰어 들어가 관린의 손을 잡았다. 이 정원의 정원사가 돼서, 꽃과 나무를 돌보고, 또 한아름 꽃다발을 선물하고. 산소의 생산이니 그런 것보단 꽃을 꽃으로 가꾸는. 지훈은 관린이 제 8지구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게 꽃을 선물해줄 유일한 사람.

 

정원에 있는 꽃을 다 딸 것처럼 굴더니 결국 만들어진 꽃다발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지훈은 운전하는 내내 꽃다발을 들고 긴장한 모습으로 밖을 보는 관린을 의식했다. 도착한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언덕이었다. 나무가 자란지 얼마 안 되었는지 키가 별로 크지 않았다. 언덕을 오르며 숨이 차다고 생각할 때쯤, 지훈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다른 곳에는 비석이 있었다. 그 언덕에 묘라고는 딱 하나이기도 했고, 비석의 ‘LAI’라는 글씨를 보고 관린은 그게 제 아버지의 것임을 알았다. 그저 얼떨떨했다.

 

 

“사실 너희 부모님 같이 모시고 싶었는데, LAI는 유해를 찾지 못해서.”

“……왜요?”

 

 

지훈은 낯빛이 어두웠다. 풀 위에 털썩 앉았다. 관린은 비석 앞에 꽃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는 지훈 옆에 앉았다. 지훈은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관린은 지훈을 재촉하지 않고 할 말을 정리하도록 기다려주었다.

 

 

“관린아. 내가 탐사 중인 행성 이름이 뭔지 알아?”

“LAI-144요?”

“행성에는 주로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LAI-144라는 건 네 할아버지가 발견하신 거고. 그 아들인 LAI가 나와 일했던, 네 아버지인 거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훈은 관린의 어머니가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배제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마저 우주에 내주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LAI-144의 탐사 계획은, 하나부터 열까지 LAI가 짠 거야. LAI도 그 일을 하고 싶어 했어. 아버지가 발견한 행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댔나?”

“그럼…… 아버지도 지훈이 형 같은…….”

“그리고 LAI-144 두 번째 탐사에서 사고가 났어.”

 

 

그 이야기를 하는 지훈은 초조한지 자꾸만 손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관린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언론 보도에는 없는 얘기야. 이 프로젝트는 지금껏 그렇게 사고를 숨겨왔어. 그날은 우주선에 결함이 생겼고……”

“형.”

 

 

더 말하는 것이 괴로워보여서 관린은 지훈의 손을 잡고 말을 끊었다. 관린은 지훈이 이토록 흔들리는 순간을 본 적이 없었다. 자꾸만 제 앞에서 작아지는 형의 모습에 어딘가 서글펐다. 지훈에게는 아직 그 순간이 얼마 전의 일처럼 생생할 것이었다. 15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지훈에게는 그만큼의 세월이 아닐 것이었다. 지훈은 제 손을 놓고 끝없는 공허로 빨려 들어가던 LAI의 마지막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이번에 처음 죽을 뻔했어.”

“…….”

“두 번째로 착륙한 지점은 바다였고 바람도 많이 불었거든. 손을 놓친 순간 이대로 바다에 먹히겠구나 싶었어.”

 

 

비교적 자기 이야기는 담담하게 했다. 사실 관린에게는 아버지의 이야기나 지훈의 이야기나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기억나지도 않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그 빈자리를 메워준 지훈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지냐 하면 솔직히 후자였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

“네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그러다가도…….”

 

 

관린이 꼭 잡고 있는 지훈의 손이 떨렸다.

 

 

“네가 더 이상 나를 안 기다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

“형.”

 

 

몇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관린은 지훈을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지훈의 시간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가 느꼈을 고독감과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빗겨간 세월만큼 더 외로웠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혼자였을 사람.

 

 

“그 사람이랑 약속한 게 있었어. 하나는 너를 만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LAI-144의 탐사를 완료해주는 것. 당연히 나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LAI-144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관린은 인류의 궁극적인 발전 따위엔 관심 없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지금이었고, 어쨌든 지훈이었다. 지훈을 강하게 안았다.

 

 

“근데 그 사이에 너는 나에게 약속 이상의 의미가 됐고. 나는 이제 지구에서의 삶이 부러워.”

“형.”

“나 그 약속 끝까지 지켜야하는 걸까. 나는 너한테 너무 면목이 없어…….”

 

 

이대로 욕심껏 지구에서의 삶을 택해도 괜찮을까. 우주는 관린의 가족을 앗아갔는데 그게 무섭다고 약속을 깨도 관린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곧 다시 관린이 지훈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관린은 조금 망설이다가 지훈의 왼쪽 볼에 입을 맞췄다. 복합적인 애정의 표현이었다.

 

 

“형. 나는 형이 없으면 진짜 안 될 것 같아요.”

 

 

 

  1. 계약 만료

 

 

지훈은 관린을 집에 내려주고는 급한 회의가 생겼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다시 나섰다. 당황한 관린이 연락을 해보았지만 지훈은 몇 시간 후에야 겨우 연락을 받았다. 비행기를 타느라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 지훈은 지금 제 1지구에 도착했다. 관린은 조금 화가 났다. 지훈 때문이냐고 하면 물론 아니었다. 정말 곧장 회의에 참석한 것인지 그 후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관린은 ASA를 욕하며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제 입술이 지훈의 볼에 닿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지훈을 본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인사치레로 뽀뽀를 할 나이는 한참 지나도 지났다. 분명히 지훈도 얼굴을 붉혔다.

 

관린은 지훈이 돌아온 이후로 자신들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자신의 마음이 들었다. 제 앞에서 처음으로 무너지는 지훈의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 원하는 것이 관린이 평생 그의 곁에 있어주는 거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관린은 언제부턴가 지훈과 자신의 사이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한 때 지훈은 어린 관린에게 아버지 같았다가, 형 같았다가. 이젠…… 관린은 더 이상 이 관계를 단순한 형 동생으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지훈에게 애틋함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지훈이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일단 분명한 것은, 지훈은 관린에게 한없이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다.

 

해가 져도 지훈이 돌아오지 않아서 관린은 결국 혼자 저녁 식사를 차렸다. 집안이 적적해서 TV를 틀었다. 이 시간이면 뉴스를 트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여전히 ASA 회의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리고 지훈이 나왔다. 관린은 상을 차리다 말고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관린은 제가 본 자막이 제대로 된 것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J.Park ASA와 재계약 않기로 결정’ 화면에서는 ASA 회의장을 나서며 플래시 세례를 받는 지훈의 모습이 지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지훈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회의 끝났어, 지금 갈게. 뉴스에서는 지훈의 다음 비행으로 계약이 만료된다고 했다. ASA 당국은 다음 프로젝트 인수자를 찾는데 착수했다고도 밝혔다.

 

지훈의 결정은 과감했다. 관린은 다시 물어보고 싶었다. 성급하게 문자로 말고, 앞에서 제대로 묻고 싶었다.

 

 

 

  1. J.Park의 인터뷰

 

 

한 때는 이 한 몸을 우주에 바친다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결국 제가 향할 곳은 우주라는 생각 하나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딱히 인류의 영웅이 되거나, 거대한 발전을 가져오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세월 속에 혼자 남겨진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웠습니다.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제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구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저는 우주로 저를 내던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 할 곳이 생겼습니다. 지구에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탐사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가야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고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졌습니다.

 

LAI-144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행성입니다. 제가 아니어도 ASA는 분명히 LAI-144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1. 작약

 

정말로 마지막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또 오고 말았다. 이번엔 지구에 생각보다 오래 머무는 것 같았는데 이제와 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지구의 시간은 지훈의 생각보다 빨랐다. 지구에 있는 동안에도 많은 것이 변했다. 우주로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밤에 지훈은 잠이 좀처럼 오질 않았다. 지훈이 계속 뒤척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관린도 잠들지 못했다. 관린은 지훈의 머리를 살살 만져주었다. 앞머리가 넘어가면서 지훈의 짙은 눈썹이 드러났다. 관린은 제가 지훈의 눈썹이 드러난 얼굴을 꽤 좋아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관린은 손끝으로 지훈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입술을 꾹 다물며 갑작스럽게 껴안았다.

 

 

“아, 보내기 싫다. 진짜로.”

 

관린이 흔드는 대로 지훈도 따라 흔들렸다. 이제 지훈도 자연스럽게 관린의 허리를 마주 안았다. 관린은 지훈의 얼굴을 붙잡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곤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었다.

 

 

“안 가면 안 되지?”

“안 되지.”

“얼마나 있다 오는데?”

“그건 가 봐야 알 것 같대. 경우에 따라 탐사 내용을 초기화 하게 될 수도 있어서.”

 

 

관린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해서 지훈은 수많은 케이스 중 한 가지일 뿐이라며 그를 달랬다. 삐진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볼을 살짝 꼬집자 금세 표정이 풀렸다. 그러다가 곧 달래던 지훈도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몇 년을 떨어져 있어야 할까.”

“난 기다릴 수 있어.”

“이래 놓고 막 다음 달에 돌아올 수도 있어.”

“그럼 왜 벌써 오냐고 다시 가라고 하진 않을게.”

 

 

관린은 보조개가 파이도록 웃었다. 이 정도 농담은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지훈이 가자마자 돌아오긴 바랐다. 지훈과 깊어진 만큼 다시 그를 보내는 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마지막이었다. 관린은 다시 지훈을 제 품에 가두었다.

 

 

“나 돌아왔을 때 너 졸업 했으려나? 취직은?”

“취직은 우리 집 정원사로 형이 시켰잖아. 졸업하면 집에 더 붙어 있을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갔다 와.”

“부담 안 갖고 갔다 오면 너 막 꼬부랑 할아버지 돼 있을 텐데.”

“그럼 부담 좀 가지고 갔다 와.”

 

 

미간까지 좁히며 진지하게 대답하는 관린의 모습에 지훈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뭔가 다음에 오면 네가 나보다 나이 더 먹었을 것 같아. 그 전에 와야겠다.”

“그럼 형이 나한테 형이라고 부르는 건가?”

“까분다. 그래도 내가 형이거든?”

 

 

지훈은 아프지 않게 관린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쳤다. 관린은 최대한 아픈 척을 하지만 그 정도 연기에 넘어갈 지훈이 아니었다. 그새 장난기가 가시고 지훈이 관린의 볼을 붙잡았다.

 

 

“아 진짜 잘생겨서. 그 사이에 누가 데려가면 어떡해?”

“누가 데려간다고.”

“나 갔다 오면 너 결혼해 있고 그러면 어떡해?”

 

 

그 말에 관린의 표정이 순간 굳어서 지훈은 서둘러 손을 뗐다. 관린은 떨어지려는 지훈의 손을 붙잡고 되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해?”

“미안. 그냥 해본 말인데……”

“형이 그렇게 말했잖아. 난 형이 돌아올 곳이야. 항상 여기 있을 거야.”

 

 

관린은 지훈의 손을 잡고 그 위에 연신 키스를 해댔다. 손바닥의 간질거림이 심장 안쪽까지 닿는 느낌이었다. 이 간질거림을 우주에 가져가겠노라 다짐했다.

 

 

제 8지구의 공항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비행기를 타고 제 1지구로 가서 우주선에 올라탈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지훈의 마지막 비행을 응원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했다. 관린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둘 다였다. 우주 비행사로서의 지훈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시원섭섭했다. 지훈은 출국하면서 손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갔다. 물론 관린이 선물한 것이었다. 작약 여러 송이가 메인이었다. 기특하게도 관린은 고문서를 뒤져 꽃말까지 공부해본 것 같았다. 지훈은 꼭 그 꽃다발이 결혼식의 부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를 지나기 전에, 지훈은 돌아서서 관린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곧 작약이 한 가득인 꽃다발은 지훈의 손을 떠나 관린에게로 안착했다. 지훈은 그 의미를 지구에 돌아온 후 관린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1. 관린의 일기

 

 

표지 뒤에는 관린이 얼마 전 새로 쓴 것 같은 글씨가 있었다. 지훈은 가장 먼저 그것을 읽어 내렸다.

사실 우주에 관심 많이 없는데 지훈이 형만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주 사진을 아예 안 찍어오면 섭섭하겠지만 우주 사진 보다 지훈이 형 얼굴을 더 많이 찍어왔으면 좋겠다. 나는 우주보다는 꽃에 관심이 많고 사실 그것도 절반은 박지훈 때문인데.

언제까지고 형에게 돌아올 곳이 되어주고 싶다. 형의 인터뷰는 하루에 세 번씩은 돌려본 것 같다. 우주는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지훈이 형만큼은 안 된다. 지훈이 형은 내 가족이고, 형이고. 이제는……

 

관린은 부끄러웠던 건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던 건지 점만 계속 찍고는 뒷말을 쓰지 못했다. 지훈은 관린이 부탁한 대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는 뒷말을 적었다.

 

 

이제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