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지난 계절과의 시리즈 연재입니다.

지난 계절 보러가기 

 

 

 

 

우리는 자라 어른이 되겠지만
w. 포인

 

 

누군가의 생애가 끝났다. 사람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고 그러니 누군가의 생애가 끝나는 일은 사실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엄마의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죽을 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과 달리 죽을 날을 미리 받아 놓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그런 셈이었다.
엄마의 생애가 끝났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엄마의 생애만 끝이 났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없는 엄마와 달리 여전히 세상에 남겨진 아빠와 나는 계속해서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이고 살아갈 예정이며 살아가야만 했다.
엄마의 생애가 끝이 났다고 해서 엄마의 존재마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어떤 책에서 진정한 죽음이란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잊혔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했다. 하여, 남겨진 우리에게 남겨진 엄마의 기억은 남겨진 자들이 짊어져야 할 몫으로 생각했으나, 한편으론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은 몫을 져야만 하는 것에 대해 적잖은 불만도 있었다.
그렇게 불만과 자괴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굴러갔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 고작해야 나는 열다섯, 열여섯이었고 그런 내가 내게 주어진 환경과 사건을 이해하기엔 다소 어렵고 난해했던 탓이라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될까. 아니면 그 나이쯤이면 그 정돈 다 이해할 수 있어야지라는 소리를 들으려나.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었으나 누군가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일 수 있었고,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일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모든 감정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얼른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픔에 무뎌지고 상처에 무감각해지는 나이가 오길 바랐다.
그렇게 마냥 어른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열일곱의 어느 날, 나는 아빠와 함께 한국에 왔다.
 

 

 
 

우   리   는

자         라

어   른   이

되 겠 지 만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다. 형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지금은 봄이 오기 직전 마지막 추위가 몰아치는 꽃샘추위 기간이라고 했다. 그럼 봄은 언제 와?

 

“나도 몰라.”
“왜?”
“그냥 잠깐 왔다 가거든. 이제 봄인가 싶으면 바로 여름이 와.”

 

학교생활은 여전히 적응하기가 힘들어 나는 수업이 마치면 형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교실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어 복도 창문에 기대어 형과 얘기를 하다가 돌아가는 게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형은 시답잖은 내 얘기를 잘도 들어줬고 나는 별 쓸데없는 얘기를 잘도 내뱉었다. 그러다 가끔 매점에 같이 가기도 했고 잠시 운동장을 걷기도 했다.
이 낯선 학교에서 낯설지 않은 것은 형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너 이제 이렇게 나 찾아오는 것도 적당히 해.”
“왜?”
“너도 친구 사겨야지.”

 

동네에 퍼진 나의 관한 소문은 좀처럼 종식될 줄 모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곳곳을 부유했다. 손톱만 한 비행이 손바닥만 한비행이 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좁디좁은 이 마을에서 몇 십 년간의 유대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입을 타고 흘러 흘러가는 말들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있었다.
무엇이 첫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담배를 피워서 그런 건지. 그저 공부를 못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동네 애들처럼 지나가는 길에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안 해서 그런 건지.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여기선 내 존재 자체가 마치 피해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동철이 너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잘못이, 실은 잘못인지도 모를 그 일이 모두 아빠의 탓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쏜 화살에 맞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빠였다. 때문에 아빠와 나는 종종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이 요즘 들어 잦았다.

 

“친구 필요 없는데.”
“친구가 왜 필요 없어.”
“그리고 딱히 누가 나랑 친구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입학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지났는데도 형을 제외한 다들 누군가와 길게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편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보이는 내가 그게 전부라면 나도 그게 전부인 사람으로 남는 게 피차 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얼마나 더 있을지, 앞으로 평생 머물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불필요한 관계는 이제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에 소모되는 감정이나 시간 그리고 기억 같은 것들이 이젠 내게 버거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형을 제외하고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은 없다. 무의미한 것들 틈에서 의미있는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므로 더 의미 있는 것이나 다른 의미 있는 것을 찾는 일은 되려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 여기 없으면 누구랑 놀려고.”
“형 어디 가?”
“대학교 가야지.”
“어디로?”
“어디든. 여기는 아니겠지. 오원면엔 대학교가 없으니까.”

 

어쨌든 형은 나보다 한 학년이 높다. 실제 나이 차이만큼 두 학년 차이 나지 않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할지 차라리 일 년 꿇은 거 일 년만 더 꿇어서 나랑 같이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냐고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뭐가 됐건 간에 지금 중요한 건 형이 나보다 한 학년이 높단 사실이었다. 고로 그 말은 형은 언젠가 이 학교를 떠날 것이고 나 혼자만 이 학교에 남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는 말과도 같단 얘기.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안 가면 안 돼?”
“뭔 소리야. 붙으라고 기도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형 어차피 공무원 할 거라며. 공무원은 대학교 안 가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나도 청춘다운 청춘은 보내야 할 거 아냐. 뭐 넌 대학교 안 갈 거야?”

 

그런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죽은 이후론 아무렴 어떻게 되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온 게 전부다. 나는 막연히 엄마가 두고 간 이 몫을 해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는 게 벅차서 내 다음 미래나 꿈같은 것엔 조금도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그래서 무엇으로 남아야 할지에 대한 건 달리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막연히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막연한 바람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상처에 딱지가 앉는 과정에서 딱지가 나는 어떤 딱지가 되어야지하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냥 나는 자랄 것이고 그렇게 자라다보면 결국 어른이 될테니까. 단지 얼른 자랐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생각 안 해봤는데.”
“그럼 이제부터 생각해 봐.”
“남들이 다 간다고 꼭 나도 가야 해?”
“남들이 다 간다고 가는 게 아니야.”
“그럼.”
“나한테 이건 필사적인 문제라고.”

 

형은 아프다고 했다. 정확히 어디가 어픈지 얼마나 아픈 것인지에 대해 들은 것은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입원 기간이 길어진 탓에 학교를 유급 당했다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형이 말하는 그 필사적이라는 말은 어쩐지 생의 다짐과도 같이 들렸다. 오버 같겠지만, 나한텐 진짜로 그랬다. 반드시 스물까지 살아 대학에 가겠다, 그런 포부와도 같은 말처럼 들렸다. 순간 왠지 모를 기시감에 나는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나는 창틀에 기대고 있던 팔을 떼고선 둥글게 말았던 허리를 곧게 폈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나 갈게. 곧 내 시야에서 형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매스꺼운 배를 붙잡고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점심으로 먹었던 온갖 것들이 밀려 올라와 이내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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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에도 꽃은 핀다. 도저히 꽃이 필 수 없을 것 같은 추위에도 어느새 교정 한가득 벚꽃이 드리웠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부였던 운동장에 분홍빛이 넘실거리니 어쩐지 이곳이 그동안 내가 지낸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교실 창틀에 기대어 나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벚꽃잎을 부지런히 쫓아갔다.
쉬는 시간의 전부였던 박지훈 찾아가기는 며칠 전에 끝이 났다. 형은 어쩐 일이냐며 기대하지도 않은 칭찬을 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내가 형을 찾아가는 것을 그만두는 것뿐만 아니라 형과 만나는 것 자체를 일절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기보단, 약간 본능에 가까웠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형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드디어 친구를 사귈 맘이 생긴 거냐 가벼이 묻고 말았던 형도 최근엔 내 행동에 문제를 느꼈는지 요 며칠 새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오곤 했다. 내가 형에게 하던 행동을 형을 통해서 보는 것이 신기하다 가도 한편으론 이상했고 그러면서 안도하다 다시 불안해했다. 형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무수하다. 다분히 긍정적인 기운만을 받으며 앞으로도 막연히 그럴 것으로만 생각하다 그러지 못함을 깨달았을 때, 내 최선은 그냥 형을 피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됐고, 형의 말대로 형이 대학교에 가는 것이 필사적이라면 나는 상처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필사적인 인간이었다.
나는 내 멋대로 형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좀처럼 멈출줄을 몰랐다. 형을 볼때면 생각이 났다. 필사적이라고 하는 형의 말이. 아팠다고 하던 형의 얘기가. 한국으로 오기전 내 모습이. 그런 나를 만들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나를 급습하여 숨을 멎게 하고 다시 그 시간으로 그 공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형이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은 상실은 내 생에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실이었고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상실 따위는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이 건강하지 못 해서, 그래서 치졸하게 이렇게 피하고만 마는 것이 나 스스로도 화가 나다가도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계속 형과 관계를 유지하고 형과 친하게 지내고 그러다 깊어지고 정말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서. 그러고 난 뒤에 다시 나 혼자 남겨지고 만다면. 나는 애초에 그러기 전에 시작을 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없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의 공허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다. 나는 형의 빈자리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형이 죽을 병에 걸렸을지 아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애초부터 알고 싶어 하기를 꺼렸다. 모르겠다. 내가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냥 비정상으로 살아도 좋을 만큼, 그래, 비정상인 상태다.

 

“언제까지 이럴 건데.”
“뭐가.”
“너 자꾸 나 피하고 있잖아.”
“내가 언제.”
“봐, 지금도. 내 얼굴 안 보고 있잖아.”
“뭘 안 봐. 자, 보고 있잖아.”

 

실로 오랜만에 보는 형의 얼굴이었다. 잠시간 마음이 요동쳤으나 이내 잠잠해지는 것은 별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주 요동친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도가 튼 사람이었고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이내 차분하게 만드는 것도 일이 아닌 사람이었다. 형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는 것쯤은 이미 오래전 수십 번의 연습과 또 수십 번의 실행으로 인해 나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이라고.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형의 얼굴에서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봤고 그 얼굴을 보면서 보았던 내 얼굴을 봤고 그러다 다시 형의 얼굴을 봤다. 속이 울렁 거린다.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말로 해. 이렇게 피하지 말고.”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언제는 형이 친구 좀 사귀라고 찾아오지 말라며.”
“그 얘기가 나를 버려도 좋단 얘긴 아니었어.”

 

버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형을 버리고 말고 할 수 있겠냐고. 그저 나는 더 깊어질 관계에 선 몇 개를 그어 놓은 것뿐이었다. 형은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나를 보고, 내 눈을 보고, 그러다 내 교복 셔츠 끝자락을 붙잡고. 버려도 좋단 얘기는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며, 그렇게 다시 나를 보는 형을 보는 것이 힘겨웠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아주 큰 상실을 겪지 않을 만큼만 형을 대하고 관계를 쌓아가면 문제가 없을 텐데 어쩐지 형의 앞에선 그 모든 것이 무력해진다. 그러니까 발목 정도만 담그고 말아야 할 강에서 나도 모르는 새 무릎이 젖고 이내 가슴까지 젖고 나서야 내가 그 강물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봤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면 이미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후 나는 그 물안에서 질식하고 말겠지.

 

“그런 적 없어.”

 

그러나 나는 다시 형 앞에서 무력해지고 어쩌면 내가 적당히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희망을 느끼고 그러다 다시 형이 없어질 미래를 상상하면서 절망을 맛본다.
남겨지는 걸 이토록 두려워하면서 나는 형을 남겨두고서 도망쳤다. 그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여겨 나는 그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택했다. 여전히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만한 방법은 더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럼으로 인해 형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타당한가. 그것이 공정한 일인가. 무서우면 무섭다고, 나는 그저 형과 깊어진 이후 형이 내게 남길 빈자리에 대해 아주 끔찍한 상상을 한다고. 그런 솔직한 얘기들을 털어놓고 그에 대한 형의 얘기를 듣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나는 이렇게, 이토록 피하기만 하는 것일까.

 

“너보고 대학교 가라고 안 할게.”
“…….”
“뭐가 되라는 말 안 할게.”
“…….”
“그땐 내가 잘못 했어.”

 

되려 내가 해야 할 사과를 형이 하고, 되려 사과를 받아야 할 형이 사과를 하고. 받을 자격 없는 나는 사과를 받고.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처음 내게 이곳에서 말을 걸어준 사람도, 나를 챙겨준 사람도, 나를 나로 봐준 사람도 형뿐이었는데 나는 고작 내가 받을 상처만을 생각하고 도망치기만 하다 결국 형에게 붙잡혀 내 전체를 탈탈 털리고야 만다. 정말 뒤통수를 세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나는 형을 보는 게 힘겹고 지금 이 순간도 돌아서고 싶으나 형의 말대로 내내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동네에서 죽어있는 모든 것들 중 형은 유일하게 내게 살아있는 것이었고 그러니 내가 눈을 둘 곳도 형 하나 뿐이었다.

 

“그런 게 아냐.”
“그럼 뭔데.”
“…….”
“…….”
“…….”
“…….”

 

여전히 추운 바람, 그러나 낯선 온도에도 계절에 맞춰 피어난 꽃. 어차피 시들어버리고 말 것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들.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 모든 것의 생애엔 반드시 죽음이 있고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너무도 잘 알지 않는 일이지 않던가. 그러니, 내가 무엇을 듣던 그리고 다시 무엇을 겪던 그것은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형 혹시 죽어?”
“뭐?”

 

바람에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비가 내리는 것처럼 그랬다. 형은 내 말을 듣고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이내 떨어지는 깔깔깔거리며 웃었다. 형의 머리와 어깨 위로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쩐지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달려 있는 것도 같았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웃기라고 한 소리 아니야. 나는, 나는 진짜로.

 

“내가 아팠다고 하니까 무슨 죽을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였어?”
“대학교에 가는 게 필사적이라고 했잖아.”
“필사적이지. 대한민국 수험생들에게 대학교는 다 필사적인 거야.”
“그럼 형 안 죽어?”
“나 안 죽어.”
“정말?”
“정말.”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고 그럼으로 인해 불안해했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 일도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형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며 또다시 배를 잡고 웃었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나는 형을 따라 같이 웃었다.

 

“근데 다 나은 거 아니라며.”
“다 나은 건 아니지.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죽을 거란 얘기도 아니었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그냥 수술하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아직 수술을 못 해서 완치를 못 한 거지 위험한 게 아니라 나는 굉장히 굿럭인 케이스라고. 그래서 그냥, 다 나은 게 아니라고 말한 거야. 나중에 수술 받으면 괜찮아 져.”
“나는 형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한 번도 너한테 내가 죽는다고 얘기한 적 없어.”

 

왜 네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해 나를 이렇게 괴롭힌 거야? 형은 뵤로퉁한 얼굴을 하고서 내 배를 가볍게 때렸다. 형의 말이 맞다. 누군가를 멋대로 속단하는 일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하단 이유만으로 그저 형을 피하고, 피하고, 피하기만 했던 것이다.
아빠와 싸우고 무작정 길만 따라가던 나를 쫓아와 달래주던 형을 까맣게 잊고서, 그렇게 나를 찾고 부르고 또 안아주던 형을 잊어버리고서. 형이라고 나를 챙겨줘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는데. 그저 아줌마의 부탁을 받고 고작해야 마을 한번 구경시켜주는 게 전부였던 형에게 내가 말도 안 되게 기대고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고 그랬으면서. 나는 형에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또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음으로 인해 상처를 줬다.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모두 다 내 잘못이다.
여전히 상처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형이 죽지 않는다고 해서 형이 아픈 걸 온전히 바라볼 용기 또한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도대체 형이 뭐라고 형이 어쨌다고 그래서 형이 나한테 어떤 존재길래 내가 형의 부재에 대해서 이렇게 겁을 먹고 무서워하는 건진 지금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차차 알아가면 될 문제라 생각했다.

 

“네가 그런 이유로 날 피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 잊어줘. 너무 창피하니까.”
“아니. 맨날 이걸로 놀릴 건데.”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여 발악하듯 부는 바람에도 반드시 봄은 온다. 얼어붙은 땅에서도 꽃은 핀다. 그렇게 다시는 피지 않을 것 같은 나무에도 잎사귀는 자란다.
나의 상처에도 딱지가 앉고 딱지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고 그런 순간이 끝끝내는 찾아올 것이다. 남은 흉터를 보며 종종 그때를 생각하고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어느 날의 냄새나 풍경 같은 것을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렇게 차차 나아가는 거지 뭐. 나아지지는 거지, 뭐.
마침내 봄이 태동한다.
우리의 관계처럼.

 

다음 계절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