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는 지난 계절과의 시리즈 연재입니다.

지난 계절 보러가기 

 

 

 

 

 

아르장퇴유 화가의 정원

(The Artist’s Garden At Argenteuil)

W. 아란드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걸 보아하니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톡처럼 매섭게 뺨을 때리던 겨울바람은 어느덧 코를 간지럽히는 봄바람으로 바뀌었다. 아침 8시, 카페의 불을 밝히기 전 목재 카운터에 턱을 가만히 괴고 서서 여전히 겨울의 분위기가 만연한 인테리어를 훑어보았다. 카페 밖 정원에서 레피(골든리트리버)가 털을 휘날리며 잔디밭을 구르고 있는게 창문 너머로 보인다.

 

난 가계부 옆에 있는 연습장을 끌어당긴 뒤, 빈 페이지를 펼쳐 연필을 들었다. 삐뚤빼뚤 직선을 4개 그리고 사이사이 짧은 선을 그어서 어설프게나마 설계도를 그린 뒤, 생각에 빠졌다. 톱밥을 채운 벽 자체를 허물어야 하는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페인트칠만 다시 하여 분위기만 산뜻하게 바꾸어야 하는지. 일단 전체적으로 겨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저 벽난로부터 손을 봐야한다. 벽난로 근처에 있는 꼬챙이들과 장작들도 창고로 옮겨야 하고. 생각보다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 같은데.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금고에 돈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해보고 은행에 들러 인출해야 하는지 계산을 해봐야겠다.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고 종이 울렸다. 지금 저 종소리도 뭔가 겨울스럽군.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울리는 차임벨 소리 같았어. 난 연습장 한켠에 ‘출입문 차임벨 소리 교체’라고 써두었다. 일요일 아침 8시 20분,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두 명 뿐이었지만 요즘은 한 명으로 줄었다. 한 명은 원두를 가져다주는 원두업체 사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휴, 밖에 나가보셨어요?”

 

“아니요.”

 

 

 

난 손가락 사이로 연필을 빠르게 돌리며 원두집 사장 ‘희재’에게 짧게 대꾸하였다.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터라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이곤 해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싸가지 없는 사장이라며. 하지만 원두집 사장 희재는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한지 원두가 가득 담긴 보따리를 카운터 옆으로 내려두고 손을 털었다. 그의 셔츠에 묻은 담배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다.

 

 

 

 

 

“완전 봄이에요. 괜히 파카입고 나왔다가 땀만 진탕 흘리고 왔네요.”

 

“지금 그거 때문에 저도 고민이에요.”

 

“왜요? 아, 저번부터 이야기했던 인테리어?”

 

“네.”

 

“전화 해봤어요? 저번 달에도 고민하고 있길래 제가 친한 후배 명함 줬잖아요.”

 

“아직요.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결정을 못해서.”

 

 

 

 

 

 

 

희재는 라바쿠르의 내부를 한번 스윽, 훑어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난 연필을 카운터에 놓았다. 담배가 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난 카운터 아래 서랍에서 말보루를 꺼내 희재와 함께 문을 열고 카페 바깥으로 나갔다. 높은 동산 위에 지어진 가게의 앞에 서있으면 저멀리 탁트인 봄의 바닷가와 지평선이 보였다. 밖으로 나오자 잔디밭을 뒹굴던 레피가 기다렸다는 듯 뛰어와 내 주변에서 뛰어논다.

 

 

 

 

 

“안돼, 저리 가. 아빠 담배필거야.”

 

 

 

 

담배를 입에 물고 계단 옆에 놓인 원반을 있는 힘껏 던지자 레피가 그제서야 원반을 따라 본능적으로 뛰어간다. 희재는 내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고 나는 바람을 손으로 막으며 불이 제대로 붙도록 하였다. 담배를 깊게 빨자 머리가 명쾌해진다. 새카만 속눈썹에 덮인 시선의 끝엔 유채꽃이 핀 예쁜 정원이 하나 보였다. 완연한 봄이 온 정원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불쾌해져 인상을 찌푸렸다.

 

 

 

 

 

“항구도시 예술가들은 오감이 예민해서 계절을 따라 가요.”

 

“아아…. 그림쟁이들 때문에?”

 

“그림쟁이뿐 아니라 글쟁이들도 그렇고 음악쟁이도 그렇고,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해요.”

 

“음, 하긴. 그 친구들이 카페 테라스에서 이젤을 놓고 그림 그리는 광경보고 유입되는 손님들도 많으니까.”

 

“네.”

 

“아! 그래서 요새 그 친구가 안 보이는구나.”

 

“…….”

 

 

 

 

 

 

 

그 친구.

 

 

 

4월이 오기전에 ‘라바쿠르’의 이름과 인테리어, 분위기 모든걸 바꿔야한다. 이 예민한 항구도시의 사람들은 계절이 바꼈음에도 겨울의 분위기가 만연한 곳은 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선 피곤하더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그러하듯, 뒤쳐지면 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돈이 중요한게 아니였다. 나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부모님은 돈이 많다. 폴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풍경이 뛰어난 항구도시의 부지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 덕이였다. 마르지 않는 우물에서 퍼나르는 물처럼 돈은 끝없이 나왔고 나는 돈 걱정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가게 주인들은 인테리어를 바꾸는데 큰 결단력과 온갖 계산이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그런 골칫거리 또한 없었다.

 

사실 내겐 손이 많이 가는 인테리어를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 지금 이대로 가게를 운영해서 돈이 벌리든 안벌리든 내 생활에 별다른 타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어? 저기있네? 저 친구도 양반은 못되겠어.”

 

“…….”

 

“라바쿠르 오면 항상 벽난로 옆에 앉아있었는데, 이제 저 카페 꽃밭에서 그림 그리는건가?”

 

“진짜 짜증나네.”

 

“뭐가요?”

 

“아, 담뱃재가 바지에 묻어서요.”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담뱃재를 결벽증스럽게 털어보았고, 희재는 그런 나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와 같은 곳을 보게 되었다. 그 시선은 동산 아래에서 정원을 품고 있는 봄이 완연한 카페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두고 이젤을 펴고 있는 한 예술가의 동태를 훔쳐본다.

 

돈이 있는 항구도시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아지트를 찾은 뒤, 겨울잠에 드는 뱀처럼 또아리를 트고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 아지트는 곧 자신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는 중대한 곳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고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현재 나와 희재가 바라보고 있는 ‘그 친구’는 원래 라바쿠르에서 그림을 그리던 녀석이었다.

 

라바쿠르 벽난로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녀석.’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만을 지칭하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더이상 저 타이틀을 붙이지 못하게끔 도장을 찍으려는것인지, 라바쿠르에 오는 발길이 끊겼다. 가위로 실을 자르는 것처럼 ‘뚝’하고. 어쩜 사람이 저렇게 냉정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항구도시에 사는 다른 화가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는 겨울의 냄새가 풍기는 라바쿠르에서 아래에 있는 스프링 카페로 갈아탔다.

 

아니, 너무 단순하잖아. 봄이라고 Spring cafe로 갈아타면, 여름엔 summer고, 가을엔 fall이야? 만일 autumn cafe와 fall cafe가 공존하면 도대체 어디로 갈건데? 이젤을 펴고 캔버스에 앉은 그의 뒷통수를 보니 얄미워져서 속으로 비아냥 대본다.

 

 

 

 

 

“아무튼 저는 지금 라바쿠르의 인테리어가 좋은데. 북유럽 느낌도 나고. 물론 가보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에서 봤단 말이죠. 돈도 꽤 많이 들었을거 아니에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이 안 오니까 문제지.”

 

“원두 소진량을 보면 아니던데요. 그리고 매번 올때마다 만석이라 앉을 자리 없다고 도시에 소문이 자자한데 무슨 소리에요. 다른 커피숍 주인들이 들으면 분개할걸요.”

 

“수가 문제가 아니에요.”

 

“네?”

 

 

 

 

 

내 시선은 여전히 이젤을 펼친 채 연필은 든 화가에게 꽂혀있다. 담배는 필터 끝까지 타버렸기에 재떨이에 비벼 껐다. 원반을 물고 온 레피가 내 앞에서 헥헥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쭈그려 앉아 레피의 부드러운 크림색 털을 쓰다듬었다. 잘했어, 레피.

 

허리를 펴 원반을 다시 던져 본다. 이번엔 오른쪽 방향으로. 푸른 하늘과 꽃을 배경으로 원반이 시원하게 날아갔다. 레피는 열심히 달려갔다. 그 방향으로. 원반이 그의 앞으로 떨어졌고, 그는 레피를 알아보고 반갑게 웃으며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라바쿠르의 방향을 봐주지 않고 제 앞에 펴있는 스프링 카페의 정원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고 연필을 다잡는다.

 

 

 

 

 

“누가 오느냐가 문제죠.”

 

 

 

 

 

내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선 저 까다로운 화가가 필요하다. 레피가 원반과 함께 물고왔으면 하는데.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개는 꽃밭에서 원반만을 주둥이로 집어 물고 달려온다.

 

두 팔을 뻗어 그를 안았다.

 

 

 

 

 

 

 

“사장님, 혹시 화훼하는 후배는 없나요?”

 

“꽃이요?”

 

 

 

 

 

시선은 여전히 꽃밭이 가득한 스프링카페에 둔채로.

 

 

 

 

 

“네.”

 

 

 

 

 

 

 

 

 

*

 

 

 

 

 

 

 

꽃향기가 나면 나비와 꿀벌이 꼬이기 마련이다. 잘 다듬어진 푸른 동산은 부드러운 잔디가 뺨과 몸을 감싸주었기에 다칠 염려가 없던 곳이였다. 동산은 이제 탈바꿈을 하였다. 작은 인공 연못이 생겼고 그 위엔 활짝 핀 파란색 수련이 떠있었다. 그리고 연못의 주변을 감싼 블루 세이지와 백합, 각양각색의 팬지꽃들이 만개하여 피어났다. 안타깝게도 레피는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꽃을 밟으면 죽는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는지 꽃이 피지 않은 좁은 공간만을 밟으며 뛰어노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조금 쓰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내 카페를 ‘눈 덮인 라바쿠르’라고 부르지 않는다. 프랑스 아르장퇴유 정원을 보는 것 같다고 한 화가가 극찬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클로드 모네를 사랑하는 ‘그 친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모네의 정원을 모방했다.

 

계단에 올려져 있는 원반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있는 힘껏 던져본다. 원반은 하늘을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시원하게 날아가 내가 생각한 방향에 떨어졌다. 레피가 털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레피를 알아본 그 녀석은 그때처럼 반갑게 웃으며 털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스프링 카페로 몸을 돌리려다 멈추며.

 

 

 

시선이,

 

 

 

마주쳤다.

 

 

 

 

 

레피가 원반을 물고 뛰어왔고 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식을 물려줬다. 녀석은 목이 마른지 간식을 허겁지겁 먹은 뒤, 식수대가 있는 뒷마당으로 잽싸게 사라지더라.

 

 

 

 

 

“와, 사장님 가게 느낌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네, 예쁘죠.”

 

“완전 베르사이유의 궁전같아요. 아니면 지베르니 정원? 갑자기 왜 바꾸셨어요?”

 

 

 

 

 

그녀석이다. 스프링 카페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꽃을 보면 벌과 나비가 꼬이듯, 이 녀석이 꼬여들었다. 이렇게 감정적이고 예민한 화가를 사계절 내내 카페에 잡아두려면 매 계절마다 이 난리를 피워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여름엔 어떻게 해야하지. 바다를 옮겨다 놓을 수도 없고.

 

오랜만에 가까이서 본 녀석은 앞에 핀 붉은 팬지꽃으로 연지라도 찍었는지 볼이 발그레 하였다. 겨울엔 항상 두터운 머플러와 스웨터를 입고 왔었는데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내게 하여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원래 꽃을 좋아해요.”

 

 

 

 

 

좋아하기는 개뿔. 봄이 오면 꽃이 피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상하게도 봄에 대한 설렘이 없었다. 꽃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그저 꽃밭 한가운데에 서있는 이 녀석을 눈에 담을 뿐이다.

 

감탄사를 연달아 내뱉은 그는 허리를 숙여 꽃향기를 맡아본다. 허리를 숙이자 살짝 보이는 그의 쇄골에 나도 모르게 바짝 마른 입술을 조용히 핥아보았다.

 

 

 

 

 

“어때요? 그림 그리고 싶은 욕구가 막 치솟고 그런가요?”

 

“흠, 글쎄요. 사실 이렇게 광활한 대지에 핀 꽃들은 멀리서 봤을때 예쁘기 마련이죠.”

 

 

 

 

 

어라, 이게 아닌데. 내 얼굴은 티가 나게 굳었다. 담배가 피고 싶은 순간이다. 제 턱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내 정원을 훑어보던 그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와, 스프링 카페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면 완전 예쁠 것 같아요. 푸른 하늘과 점묘화 찍듯이 만들어내는 수백 가지의 알록달록한 꽃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안에 감싸져있는 폴란드 느낌의 나무집. 이건 안 팔릴수가 없을걸요.”

 

“지금 스프링 카페에 앉아서 라바쿠르를 그린다는거에요?”

 

“네, 그럼 안돼요?”

 

“네.”

 

“왜요?”

 

 

 

 

 

왜긴 왜야. 내가 지금 수천만원을 들여서 만들어둔 정원인데. 이걸 왜 했는데. 그런데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고 그 곳에서 배를 불리겠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자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매일 같이 난로 옆에 앉아 나를 노골적으로 보는 갈색 눈동자와 거침없이 연필을 움직이던 손가락을.

 

예상치 못한 반응과 질문에 갈피를 잃었다. 그러나 목적 하나는 뚜렷했기에 더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스프링 카페, 커피 맛없지 않아요?”

 

“네?”

 

 

 

 

 

막돼먹은 네거티브. 사실 저 곳의 커피맛따위는 모른다.

 

 

 

 

 

“거기 원두 싸구려 쓰거든요. 이번에 저희 자메이카에서 들여온 원두콩으로 바꿨는데 드셔보실래요?”

 

“저는 커피때문에 카페에 가는게 아니라는거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제 가게가 더 예뻐요.”

 

“알아요. 방금 스프링 카페에서 이 방향을 봤을때 환상적이였어요.”

 

“가까이서 봐도 예뻐요.”

 

“저기서 보는게 더 예뻐요. 그럼, 정원구경 잘했습니다.”

 

 

 

 

 

 

 

망설임없이 돌아가는 얄미운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떡하라고.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제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석의 모습을 보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작은 스프링 카페의 안으로 쏙 들어가선 의자에 엉덩이를 단단히 붙인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가까워질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레피. 정원이 많이 좁아져도 이해해줄거지?”

 

 

 

 

 

물을 마시고 돌아온 레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는 웡웡, 크게 소리내어 짖었고 난 필터를 빨며 전화를 하기 위해 카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문패를 돌린다.

 

 

 

 

 

‘CLOSED’

 

 

 

 

 

 

 

 

 

*

 

 

 

 

 

 

 

“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에요.”

 

“레피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도저히 라바쿠르에 있을수가 없어요.”

 

“레피요?”

 

“네, 제가 키우는 리트리버입니다.”

 

“하지만 저희 카페 주변도 꽃이 만발한데…. 그리고 그 사장님 개가 꽃밭에서 잘 뛰노는걸 몇 번 봤는….”

 

“팬지요. 특히 팬지 꽃가루때문에 애가 죽을려고 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평수 차이에다 인테리어 차이도 어마어마한데 그렇게 바꾸시는건 저도 부담스러워서.”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이에요.”

 

“…….”

 

“만일 그게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가 이 카페를 살게요.”

 

“네?!”

 

“제가 Spring cafe를 살테니, 그 돈으로 라바쿠르를 사주세요.”

 

“…도대체 왜그러시는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사장님. 원두는 이쪽에 놔주세요.”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일에요. 나 진짜 기절초풍하는줄 알았잖아요.”

 

“사정이 그렇게 됐어요. 사람일이라는건 항상 한치 앞도 모르죠.”

 

“그러게 내가 꽃을 그렇게 많이 심을때부터 알아봤어. 파산났죠?”

 

“비슷해요.”

 

 

 

 

 

좁아진 카운터에 턱을 괸채, 원두를 바닥에 내려두는 희재를 보며 웃어보았다. 그의 너머로 창문이 보인다. 창문에 비추는 것은 레피가 좁은 정원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장면이었다. 시선을 조금 오른쪽으로 돌리려다가 희재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나를 보며 안타깝다는듯 혀를 찼다.

 

 

 

 

 

“완전 가게 크기가 반토막이 났잖아요. 슬프지도 않으세요? 여기서 라바쿠르를 바라보면 난 가슴 찢어질 것 같아.”

 

“그런 감정이 없지않아 있죠.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걸.”

 

“이미 항구의 예술가들은 라바쿠르가 봄의 정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저기로 다 몰려들었던데. 죽 쒀서 남준격 아닌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에효. 내가 사장님만 보면 가슴이 쓰리네, 쓰려.”

 

 

 

 

 

수가 문제가 아니다.

 

 

 

 

 

“어, 저 친구는 라바쿠르로 가지 않네요?”

 

“네. 물론 라바쿠르를 그리기는 하는데, 저 곳으로 가지는 않더라구요.”

 

“왜지? 너무 자리 싸움이 치열해서 밀려난 것일까요?”

 

 

 

 

 

이젤과 팔레트, 화구통을 들고 테라스로 걸어 들어오는 녀석이 보인다. 레피는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다가갔고 녀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왜 레피가 여기있지?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으로 이리저리 둘러본다. 난 바체어에서 일어나 좁은 카페를 가로질러 건너가 문을 열었다. 낮은 문 덕에 불편하게 허리를 잔뜩 숙이고 나가야 했다.

 

얼마없는 꽃들이 휘날리고 그녀석과 난 마주보고 섰다. 그녀석의 갈색 눈동자가 커졌다. 나보다 키가 작은 그는 날 올려다 보아야 했다.

 

 

 

 

 

“라바쿠르 사장님이 왜 여기 계세요?”

 

“사람이 망하는건 한 순간이더라구요.”

 

“세상에. 망했어요? 어쩌다가요?!”

 

 

 

 

 

 

 

놀라서 펄쩍 뛰는 하얀 셔츠 사이로 보이는 쇄골뼈와 목선에 눈이 간다. 갈색 눈동자와 머리칼, 그리고 그 뒤로 일렁이는 라바쿠르의 멋드러진 배경이 보인다. 난 손을 뻗어 가슴팍이 보이는 그의 셔츠를 여며주었다. 단추를 잠궈주자 더이상 쇄골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절경이다.

 

네가 이 맛에 스프링 카페에 있었구나.

 

 

 

 

 

“꽃을 잘못 심어서요.”

 

 

 

 

 

 

 

난 배경이 되고 싶었던게 아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