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W. 비체

 

 

상사(相思) : 1. 서로 생각함  2. 서로 그리워함. 또는 서로 사모(思慕)함

 

 

 

 

 

 

 

 

상사(相思)

 

 

 

 

 

 

 

 

 

 

1765년, 가을의 초입. 무수히 많은 비가 쏟아지던 날. 여인의 여린 주름을 찢고 두 개의 해가 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생명이 살고자, 그리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내는 울음소리에 여인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다.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사내임을 확인한 여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여인의 지아비 역시 그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하늘 아래 두 태양이 공존할 수는 없을지니….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가 저버려야 하는 것이 운명이었다. 폐하, 훗날을 생각하셔서라도…, 결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늙은 태감이 조아렸다. 강보에 싸인 두 아이. 똑 닮은 두 태양. 그리고 그 위로 놓이는 용이 새겨진 단검.

 

 

 

 

황제의 떨리는 손이 단검으로 향했다.

 

 

 

 

 

 

 

*

 

 

 

 

 

 

 

열국에서 쌍둥이의 탄생은 망조였다. 그것도 권력을 다투는 황실에서는 더욱이. 이미 예견된 황좌를 둔 다툼. 이 때문에 활실에서는 사내 다태아가 탄생할 시 둘 중 하나를 죽이는 것이 나라의 안녕을 비는 관례였다.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 그 누구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숨기고 또 감춘 그곳에 또 다른 해가 있다. 스물여섯 해 전, 선황제는 두 태양 중 어떤 태양도 저버리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쥐는 지아비를 향해 아이의 어미가 울부짖었다. 폐하, 신첩을 탓하여 주시옵소서…. 덕이 부족한 어미 탓에 한날 한시에 빛을 봐버린 아이들입니다… 아래의 의복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여인이 성치 않은 몸으로 강보에 싸인 생명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이 낳아준 제 아이. 단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둘 중 늦게 나온 아이는 상궁의 품에 안겨 황궁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상궁은 혹 누가 볼까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불쌍한 우리 아기씨.. 괜찮습니다.. 살았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옵니다… 상궁이 품 안의 아이를 다독이며 울었다. 다음 날, 황제는 황자의 탄생을 공표했다. 그렇게 또 다른 생명은 평생을 황궁 안에서 숨어 살게 되었다. 황제는 형에게 ‘관’이라는 이름을, 아우에게는 ‘림’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빗속을 뚫고 태어나 서로에게 의지하라는 뜻이었다. 두 형제는 빠르게 자랐다. 영특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그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이해했고 서로를 아꼈다. 홀로 온종일 시간을 보낼 아우를 위해 관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림을 찾았다. 하루는 서책을, 또 하루는 제가 지내는 곳을 궁금해할 아우를 위해 황자의 처소 옆에 핀 꽃을 꺾어왔다.

 

 

 

 

두 태양이 열일곱 되던 해, 돌연 열병에 시달렸다. 한날 한시에 쓰러진 두 형제를 들여다본 태의는 조심스레 발현통으로 보인다고 소견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했다. 범(凡)인과 화(花)인. 범인은 말 그대로 보통의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는. 이런 이들과 달리 꽃을 피우고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화인이라 칭했다. 화인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뉘었다. 고유의 꽃을 지닌 이와 이 꽃을 맺을 수 있는 가지. 고유화를 가진 이들은 스스로 향을 뿜어낸다. 가지는 그들의 향을 맡을 수 있는 존재였다. 화인들은 범인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태어난다. 그리고 대게 17~20살 즈음 열을 동반한 발현통을 겪는다. 발현통을 겪고 나서야 진정한 화인이 된다. 발현통 이후 꽃을 피울 수 있는 자는 스스로 고유한 향을 가지게 되며 꽃을 맺을 수 있는 자는 등에 가지를 품게 된다.

 

 

 

 

꽃은 교접을 통해 피울 수 있다. 꽃과 가지가 교접을 하게 되면 가지에 꽃을 지닌 자의 고유화 가지에 피어나게 된다. 가지에 꽃이 만개하여 더이상 피울 곳이 없을 때, 가지는 재발현을 겪는다. 맺힌 꽃들이 모두 져버리고 새로이 가지가 새겨진다. 재발현을 겪는 열흘 간, 가지는 가히 달고 유혹적인 향을 내뿜는다.

 

 

 

 

꽃과 가지의 이야기.

 

 

 

 

1781년, 열국. 꽃내음을 지닌 두 태양과 하나의 가지가 운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1767년. 도성 밖에서 긴 운명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사내 하나가 태어났다. 박 가(家)의 차남, 박 지훈. 지훈의 집안은 황후와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입지가 좁았던 황후의 든든한 정치적 뒷배가 되어주었다. 황후는 쌍둥이의 탄생에 대해 박 가에 일러두었다. 혹, 제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우리 림을 부탁드립니다. 울며 애원하는 황후에 그러겠노라 그를 달랬다.

 

 

 

 

황후는 박 가에 한가지 청을 더 했다. 박 가에서 생명이 태어나거든 호적에 올리지 말아달라 했다. 림의 혼인을 염두에 둔 청이었다.

 

 

 

 

‘예, 마마.’

 

 

 

 

지독한 모성애였다. 이로 인해 박지훈의 탄생은 박 가의 사람들과 황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1776년. 지훈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늦은 발현통에 시달렸다. 출생을 알리지 않은 덕에 의원 하나 들이지 못하고 열흘을 꼬박 앓았다. 발열과 통증에 시달렸던 지훈은 등에 새겨진 가지를 경대에 비추어보았다. 왼쪽 골반에서 시작하여 등을 가로질러 오른쪽 어깨까지 뻗어있는 곧은 가지.

 

 

 

 

“어머니, 이것이 진짜 가지이옵니까?”

 

 

 

 

도통 발현통이 오지 않길래 저는 화인이 아닌가 보다 했습니다. 황후의 청으로, 지훈 역시 스물 평생을 존재를 숨기고 살았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 아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지훈은 반듯하고 천진하게 자랐다. 언제 아팠냐는 듯 신이 나서 이리저리 등을 보려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퍽 어여뻤다.

 

 

 

 

지훈이 가지로 발현하자 지훈의 어머니는 황후에게 은밀하게 연통을 했다.

 

 

 

 

[枝]

 

 

 

 

*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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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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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선황제가 붕어했다. 태자였던 관이 무사히 보위를 이어 황제에 즉위했다. 쌍생으로 태어난 관을 무사히 보위에 앉힌 태후는 그제서야 열아홉해간 졸여왔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부터는 림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관이 황제에 즉위하자 림은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기뻐했다. 아비를 잃은 슬픔보다 제 반쪽의 기쁨이 그 무게가 더했다.

 

 

 

 

관은 상사화였다. 독을 지닌 꽃.

 

 

 

 

꽃은 다시 세 종류로 나뉜다. 보통의 꽃과 독을 가진 꽃, 그리고 그 독을 치유하는 해독화. 독을 가진 꽃과 얽힌 가지는 다른 꽃을 피울 수 없다. 피울 수는 있으나 그 독이 가지를 잠식하여 사흘 내에 중독사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해독화였다. 쌍둥이에게 있어 이 둘은 특별했다. 쌍둥이 중 하나가 독을 가진 꽃이라면 다른 하나는 해독화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었다. 즉위 이후, 첫 합궁에서 나타난 관의 꽃이 독을 지닌 상사화라는 것을 알게 되자 황후는 웃음이 나왔다. 관이 독화라면 림은 해독화일터. 어찌 꽃이 형제의 성미를 닮은 듯했다. 여섯 해 후. 태후가 앓기 시작했다. 지아비 곁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어렴풋이 짐작한 태후는 사람을 시켜 박 가에 길일을 연통했다.

 

 

 

 

 

 

 

혼례 소식을 들은 지훈은 어미의 걱정과는 달리 기뻐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담장 밖으로 나가는 것도 모자라 황궁이라니. 그것도 황제의 숨겨진 동생. 그분 또한 꽃을 피울 수 있는 화인이라 들었다.

 

 

 

 

“어머니, 저 정말 황궁으로 가는 것입니까?”

 

 

 

 

들뜬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훈의 어머니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 가기 싫다 하면 어쩌지 고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태후마마께서 오래전부터 너를 점쳐두셨단다. 좋은 분이실 테니 이 어미도 걱정은 되지 않는구나.”

 

 

 

 

너와 같은 운명인 그분의 가지가 되거라.

 

 

 

 

지훈은 태후께서 제 존재를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친히 비밀을 당부해주신 것이 신기했다. 더불어 황궁의 큰 비밀을 알게 되어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당장 열흘 뒤 입궁이라 하였다. 갑작스레 바뀌어버린 제 처지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섯 해전 즉위하신 황제는 그 나이가 아직 앳된 것과는 달리 어진 정치로 백성들의 큰 지지를 받으신다 했다. 그분 역시 천자와 같은 성품을 가지셨겠지…. 지훈은 제 지아비가 되실 분이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졌다.

 

 

 

 

열흘 후, 늦은 밤. 지훈의 사가 앞에 연이 당도했다. 사흘 전, 태후께서 직접 하사하신 의복을 갖춰 입은 지훈이 연에 올랐다. 눈을 피해 입궁을 해야 했기에 늦은 시간 황궁으로 향하는 길목은 고요했다. 흔들리는 연 덕에 애써 진정시켰던 마음마저 요동을 치는 듯했다. 연의 사방을 붉은 비단으로 가려놓은 터라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얼마나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직 당도하려면 멀었냐고 가마꾼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 지훈이 탄 연이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졌다.

 

 

 

 

연의 사위를 가렸던 장막이 거둬지자 지훈은 조심스레 몸을 내렸다. 사가의 담장을 벗어나 처음으로 발걸음하게 되는 이곳. 황궁 가장 깊숙한 곳, 보는 눈을 피해 숨겨진 곳이라 한들 황손이 머무는 곳이었다. 전각의 위용에 지훈의 눈이 커졌다. 안으로 모시려는 상궁의 몸짓에 지훈은 놓고 있던 정신을 다잡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었다. 겹문을 두어 개 지나고 나서야 그분이 계신 방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마지막 문 앞까지 지훈을 모신 상궁이 예를 갖추고는 발걸음을 물렸다.

 

 

 

 

떨렸다. 이 문 너머에 제 남은 평생을 함께 할 나의 지아비, 나의 꽃이 있다. 몇 번 숨길을 다잡던 지훈이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선 곳에는 저를 등진 채로 창밖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기척을 느낀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려 지훈을 마주했다. 나의 지아비. 나의 꽃.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 억겁의 시간 같았다.

 

 

 

 

두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지훈이 급하게 숨을 들이켜 쉬었다.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과 그 빛을 받는 사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 내는 소리. 어렴풋이 느껴지는 꽃내음. 그 순간 둘을 감싼 모든 상황들이 지훈의 얼굴을 붉어지게 했다. 지난 열흘간 수도 없이 상상해보았던 지아비의 얼굴이지만 그보다 훨씬 수려했다.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을 느낀 지훈이 마주했던 시선을 끊어내고 열을 식히고자 고개를 숙여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기를 한참,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저를 바라보는 사내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은 것을 깨달은 지훈이 뒤늦게 예를 올렸다.

 

 

 

 

“소인… 아니, 소첩… 박 가 지훈이라고 하옵니다.”

 

 

 

 

숙어진 고개를 들고 다시 제 지아비의 얼굴을 마주했다. 제 지아비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혹, 제가 마음에 안 드시옵니까… 따위의 걱정을 하던 찰나 지훈의 등 뒤에서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면, 돌아본 게 맞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얼굴을 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 좀 전의 것과는 다른 부류의 꽃내음이었다. 전의 것이 중독성 있고 사람을 이끌리게 만드는 향이었다면 이것은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이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가지와 그런 가지를 바라보는 두 쌍의 같은 눈. 기나긴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어디 다녀오는 모양이구나.”

 

“예, 형님.”

 

 

 

 

똑같이 생긴 두 사내. 늦게 들어온 이가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를 부르는 호칭, 형님. 제 지아비가 되실 분은 황제의 숨겨진 아우라 했으니… 혼란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던 지훈이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고는 제 뒤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급히 무릎을 꿇었다.

 

 

 

 

“화,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실례를 범했다. 천자를 몰라뵈어 진즉 예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뿐이랴. 감히 천자를 향해 스스로를 소첩이라 칭했다. 그로 인해 천자를 비롯하여 내궁의 후궁들을 욕보였다 생각한 지훈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몸을 더욱더 바닥에 붙이는 지훈을 일으켜 세운 건 황제가 아닌 황제의 아우였다.

 

 

 

 

“제 부인이 되실 분께서 착각을 하셨나 봅니다, 형님”

 

 

 

 

제 팔을 강단 있게 잡고 제 몸을 일으켜주는 단단한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바로 코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자 제 지아비는 싱긋이 웃어주었다.

 

 

 

 

“그대의 지아비는 이쪽입니다.”

 

 

 

 

쿵- 쿵-

 

 

 

 

심장의 떨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등 뒤에 펼쳐져 있을 가지들이 화끈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여전히 멍하게 그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자 지아비는 여전히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잠시 뒤, 온 시야가 갑작스레 붉어졌다. 제 머리 위로 덮어져 얼굴에 드리운 붉은 면사. 혼례 시 신부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쓴다는 비단이었다. 혼례 후 첫날 밤, 신랑이 그 면사를 걷어주는 것이 그 관례였다.

 

 

 

 

“형님. 형님께서 증인 서 주셔야겠습니다.”

 

 

 

 

황제가 보는 앞에서 서약을 맺었다. 어느 누구 알아주는 이 없고 성대한 혼례식도 아니었지만, 지훈은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생각했다. 우리는 그 어떤 가지와 꽃보다 조화롭게 만개할 수 있을 거라고, 지훈은 확신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서로에게 섞여 들었다. 존재를 숨기고 살았던 덕에 통하는 것이 많았다. 림(霖). 지아비의 존함이었다. 쏟아지는 장마. 그는 실로 장마와 같은 분이셨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흠뻑 젖어 들었다. 스며들었다. 태후께서는 미령하신 옥체에도 늦은 시간에 자주 걸음 하셨다. 태후가 소박했던 혼례에 림을 타박했다. 아드님. 한 번뿐인 혼례를 그리 치르면 부인께 소박 맞아요. 농을 건네며 퍽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자에 웃음이 베어 나왔다. 태후가 돌아가자 림은 그제야 지훈의 기색을 살폈다.

 

 

 

 

‘부인, 혼례식을 다시 올릴까요?’

 

 

 

 

밤이 깊어가는 소리는 고요했다. 달빛에 빛나는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저를 향한 지아비의 눈빛은 올곧았다. 이 순간 앞에 그깟 혼례가 무어라고… 차오르는 가슴에 지훈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첩, 행복합니다.’

 

 

 

 

그 날, 지훈은 림의 꽃을 피웠다. 림은 매화였다.

 

 

 

 

 

 

 

 

 

 

/

 

 

 

 

 

 

 

피어오르는 향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관이 인상을 쓴 채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숙비와의 합궁일이었다. 한 시진이 다 되어가도록 술만 연거푸 들이키는 천자를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숙비가 입을 떼었다.

 

 

 

 

“폐하. 혹, 무슨 근심이 있으신지요. 신첩이 들어드리겠사옵니다.”

 

 

 

 

애살스레 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자 관은 그 손을 차갑게 쳐냈다. 생각에 잠긴 관은 아우의 혼례날을 눈앞에 그려냈다. 지난 한 달간 관은 수없이 많은 밤 동안 그 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태후께서 마음을 다해 잡은 길일이라 하셨다. 모두가 잠든 밤, 제 아우의 혼례를 위해 궁 깊숙한 곳을 찾았다. 아우는 저를 증인으로 혼례를 간략하게 치렀다. 림의 부인이 될 가지. 그 가지를 마주한 순간 숨이 멎는 듯했었다. 저를 림이라 생각하고 해사하게 웃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 뇌리에 깊게 박힌 듯했다. 그와 동시에 갖고 싶다라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갖고 싶다. 잠 못 이루던 수많은 밤들의 결론이었다. 제 아우의 가지를 빼앗아 제 꽃을 피우고 싶었다. 쌍둥이로 태어나 림은 저에게 단 한 가지를 양보했다. 천자의 자리. 그리고서는 모든 것을 가졌다. 평생을 황궁 안에서 숨어 살게 될 아들을 가엽게 여긴 어머니의 관심. 천자는 감히 누릴 수 없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와 여유로운 삶으로부터 나오는 다정하고 온화한 성품. 나는 절대 갖지 못할 것들이었다.

 

 

 

 

황제의 자리는 늘 고단했다. 마음에도 없는 여인들과 살을 섞고 의미 없이 꽃을 피워야 했고, 행동 하나하나 사사건건 참견을 받아야 했다. 편전에서 대신들과 기 싸움을 벌이느라 늘 불편함 심기… 그와 반대로 림은 자유로웠다. 서책이 읽고 싶을 땐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문득 뜰에서 봄바람이 맞고 싶거든 언제든 또 얼마든 그리하여도 괜찮았다. 단 하나, 천자의 자리를 놓쳤다는 것만으로.

 

 

 

 

한순간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그동안의 시기들에 헛웃음이 났다. 억울했다. 고작 천자의 자리 하나만을 가졌을 뿐인데 저와 아우의 어머니이신 태후께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기실, 다 가진 것은 내가 아닌 아우인데…

 

 

 

 

생각에 잠긴 관의 가슴께로 다시금 숙비의 손이 얹어졌다. 그제야 다시 또렷해지는 정신. 림은 이런 순간 역시 겪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울컥하고 차오르는 감정에 관은 애써 숙비의 옷고름으로 손을 뻗었다. 침의를 벗겨내자 어깨를 타고 넘어온 가지에 상사화가 드문드문 피어있었다.

 

 

 

 

숙비의 가지를 훑어보던 관이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건청궁으로 간다.”

 

 

 

 

*건청궁 : 황제의 침소

 

 

 

 

황급히 명을 받드는 태감의 표정이 밝지 못하였다. 근 한 달간 제 주인은 웃음을 잃었다.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돌보았던 분이셨다. 두 형제의 사이는 늘 좋았다. 조정에서의 일로 골머리를 앓을 때면 아우를 찾아가 마음을 진정시키던 천자께서 림의 혼롓날 이후 아우에게 가시던 걸음을 끊으셨다. 오늘처럼 후궁의 시침을 거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관이 침소로 돌아와 침상에 드는 순간까지도 태감은 쉬이 자리를 물리지 못했다. 그저 자리를 지키는 태감으로서가 아닌 날 때부터 늘 곁에서 봐왔던 사람으로서 이 정도 걱정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두운 낯빛으로 주인을 살피는 태감을 알아챈 관은 그를 다독였다.

 

 

 

 

“괜찮으니, 그만 물러가게. 혼자있고 싶으니….”

 

 

 

 

또다시 홀로 걷는 외로운 밤이었다.

 

 

 

 

 

 

 

 

 

 

*

 

 

 

 

 

 

 

다음 날, 관은 실로 오랜 시간 만에 림에게 발걸음을 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비어있는 림의 전각.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선황제께서는 림에게 이런 이른 시각에 전각을 비우는 것은 금하라 명했다. 가까이서 모신 태감만이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똑 닮은 형제였다. 혹, 아직 퇴궁하지 않은 대신들에게 림의 모습을 들켰다가는 저와 림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태후와 태감 역시 그 책임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너는 다 가지고도 그것 하나마저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냐….

 

 

 

 

속에서 차오르는 열 사이로 말들이 부서졌다. 차게 굳어가는 천자의 옥안을 본 태감이 문득 불안을 느꼈다. 근래 들어 웃음을 잃긴 하셨으나 이리 분노에 찬 표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급히 림을 찾아 나서려던 순간, 닫혀있던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두 사람분의 발걸음 소리와 웃음소리… 곧이어 림과 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계셨습니까, 형님. 이른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관의 차가운 시선이 림에게 머물더니 곁에선 지훈에게 향했다. 관의 시선이 저에게 닿자 지훈은 황급히 예를 갖추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홍복을 누리소서. 림의 옷 소매를 꼭 붙잡고서 제 눈치를 보는 모습에 정염이 일었다.

 

 

 

 

“외출이 잦구나. 금하라 명했거늘….”

 

“부인께서 꽃이 궁금하다 하셔,”

 

“림”

 

 

 

 

린아-.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음이었다. 애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예, 형님.”

 

“황제로서 하문하는 것이다.”

 

“…예, 폐하.”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 가진 천자의 자리, 이렇게 해서라도 유세를 떨고 싶었다. 처음 천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저에게 가벼이 폐하라 부르며 농을 치던 순간들이 있었다. 림이 저를 폐하라 부른 것은 그때를 지우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의 시선이 지훈의 손에 들린 매화꽃이 핀 가지로 향했다. 너의 꽃은 매화인가 보구나. 고결한 마음.. 기품.. 림과 사뭇 어울리는 꽃이었다. 어찌 너는 또 나를 지울 수 있는 해독화로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관은 급작스레 이는 호승심에 괴로웠다.

 

 

 

 

“금족령을 내린 선황제와 짐의 뜻을 모르지 않을 터, 허나 이를 어기고 이 이른 시각에 전각 밖을 나돌아다닌다는 것은 짐을 향한 역모의 뜻인가, 림.”

 

“형님!”

 

“예를 갖추어라 일렀거늘.”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두 사내의 싸움에 돌연 지훈이 무릎을 꿇었다.

 

 

 

 

“폐하, 소인이…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소인을 벌하여주시옵소서…”

 

“지훈아.”

 

“소인이… 지아비의 꽃이 궁금하다 하여 일어난 일이옵니다. 부디…”

 

 

 

 

지훈아…. 지아비…. 이미 얽힐 대로 얽힌 모양이었다. 제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가지가 제 모든 것을 앗아간 아우의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싶었다. 추악한 감정. 관은 그 끝을 보기로 했다.

 

 

 

 

“그래…. 내 친히 그 청을 들어주겠다.”

 

 

 

 

형님! 다시 한번 림이 소리쳤다.

 

 

 

 

“림은 오늘 제 처지를 망각하고 가벼이 행동하여 짐에게 불경을 저질렀다. 그 의도가 역모로 보이나 짐이 다른 반 쪽에게 내리는 넓은 아량으로 금족령에서 그치겠노라. 림은 이 시간 이후 전각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가는 것을 금한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아우에게 금족령을 내린 관이 시선이 제 가지에게 향하자 림은 지훈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폐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서로 같은 처지라….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 형님, 폐하. 림이 무어라 애원하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지훈만 눈에 담을 뿐이었다. 자유. 자유를 빼앗겼다 했다.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이, 어떤것인 줄 아느냐….”

 

 

 

 

관이 순식간에 지훈의 다른 쪽 손목을 잡아챘다. 빼앗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림. 똑똑히 봐두거라.

 

 

 

 

“벌해달라 하였느냐.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내리는 벌이다.”

 

 

 

 

말을 마친 관이 지훈을 그대로 전각 밖으로 이끌었다. 림의 전각을 벗어나 황궁의 중심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궁의 지리를 잘 모르는 지훈이지만, 이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폐, 폐하…. 안돼요. 아니 되옵니다…. 이리 가시다가는…!”

 

 

 

 

지훈의 애원에도, 림이 내지르는 소리에도, 태감이 다급히 저를 말리는 소리에도 관은 기어코 건청궁까지 지훈을 끌고 왔다. 궁내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숨겨져 있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궁인들의 시선 속에서 관이 잡고 있던 지훈의 손목을 거칠게 놓았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지훈은 두려움에 떨었다.

 

 

 

 

“짐의, 하… 짐의, 승은을 입은… 가지다.”

 

 

 

 

화를 참는 탓에 관의 말이 뚝뚝 끊겼다. 아아… 지훈의 입에서 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 극진히 모시도록. 천자의 명에 나인들이 지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손길에도 지훈은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이튿날, 지훈은 상재의 첩지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태후의 병세가 깊어졌다. 천자는 태후의 가는 길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제 주인의 행보에도 태감은 무어라 할 수 없었다. 림의 가지를 빼앗았던 날, 태감 역시 처음 보았던 관의 화였다. 관은 그렇게 아우의 가지를 빼앗고 석 달이 되도록 가지를 찾지 않았다. 그저 정 6품, 상재의 첩지를 내릴 뿐이었다. 처음 상재가 입궁한 이후로 천자의 기색이 불편해진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관의 화를 풀 사람 역시, 지훈 뿐이라 생각했다.

 

 

 

 

얼마 후, 태감은 관과 지훈의 첫 합궁 길일을 올렸다. 림이 떠올랐지만 저는 천자의 사람이었다.

 

 

 

 

 

 

 

 

 

근 넉 달째 머물고 있는 곳이지만 오늘은 유독 낯설다. 온통 붉게 치장된 침상. 그 가운데 지훈이 단장을 한 채로 앉아있었다. 앞으로 몇 번이고 돌아올 시침일, 후궁으로서 황제의 밤 시중을 드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복잡한 마음에 지훈은 눈을 감고 번지는 생각을 다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자가 들어섰다. 관이 자리를 잡자 지훈은 주안상에 올려진 술병을 들고 천자의 잔을 채웠다. 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불안했다. 잔을 받아든 관이 고개를 숙이고 손만 뜯어대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아우와 있을 때와는 달리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호승심이 타올랐다. 술을 반 정도만 삼켜낸 관이 잔을 지훈에게 건넸다. 갑작스러운 천자의 행동에 어찌할 줄 몰라 멈칫한 지훈이 이내 조심스레 잔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틀어 목을 축였다. 떨리는 손으로 잔을 내려놓은 지훈이 이내 왈칵 눈물을 떨궜다.

 

 

 

 

작은 손이 스스로 의복을 풀어낸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자로부터 등을 돌린 상재가 몸을 감싸고 있던 침의를 벗어내 떨구고는 침상을 향해 걸어갔다. 하얀 등을 길게 가로지르는 가지와 그 가지에 수줍게 피어난 두어 송이의 매화. 아우의 꽃이었다. 지우고 싶다. 나의 상사화로 가득 채우고 싶다. 나만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급격하게 이는 소유욕과 독점욕에 관이 몸을 일으켜 가지에게 향했다.

 

 

 

 

상사화가 매화를 누르고 피어났다.

 

 

 

 

 

 

 

 

\

 

 

 

 

 

 

 

상재는 첫 합궁 이후 지난 몇 해 간 줄곧 천자의 총애를 받았다. 한순간에 내궁에 던져진 지훈은 홀로 천자의 열을 받아내며 바뀐 제 처지에 익숙해져 갔다. 천자가 자주 걸음 하시는 것과는 달리 오고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상사화만이 가지를 채워나갈 뿐이었다. 사랑 없이, 마음 없이 하나 둘 피어나던 상사화는 다섯 해 만에 만개하였다.

 

 

 

 

가지가 처음으로 만개하면 그 가지는 이내 시들고 새로이 가지가 새겨진다. 두 번째 가지는 곧 마지막 가지이다. 마지막 가지마저 가득히 만개하면 가지는 영영 시들게 된다.

 

 

 

 

다섯 해 만에 첫 번째 가지가 만개하자, 지훈은 예전처럼 열병을 앓았다. 꼬박 열흘간 열과 복통에 시달렸다. 두 번째 가지가 돋아나는 것이었다. 열흘 만에 겨우 몸을 털고 일어난 지훈의 등에 새겨진 가지는 이전과는 달리 그 크기가 작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관은 태의를 들였고 태의는 독을 품은 꽃을 짧은 기간에 많이 피워 화를 불러온 것 같다며 소견했다. 그 말을 들은 지훈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또… 또 저 때문이었다.

 

 

 

 

지훈의 몸을 뒤집어 침상 위로 내리누르면서 열을 풀어내던 관의 눈에 문득 만개한 상사화 가지가 들어왔다. 그 작은 가지를 따라 손가락을 등 위로 놀리자 소리를 참아내며 천자를 받아내던 지훈이 놀라 신음을 흘렸다. 아흑…. 그 소리에 잠시 멈춘 관의 손이 이내 다시 움직이며 빈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또다시 얼마 남지 않은 빈 공간. 림에게서 지훈을 뺏었다는 것에 도취하여 앞뒤가리지 않고 꽃을 피운 탓이었다. 관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해독화는 독화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

 

 

 

 

황궁에 유일한 해독화. 나의 아우. 림. 지금의 선택이 지훈을 아프게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마음이 기우는 것은 눈앞의 가지 때문이었다. 영영 잃을 것이 두려운 제 마음이 먼저였다.

 

 

 

 

“상재.”

 

“…예, 폐하.”

 

“해독화에 대해, 아느냐.”

 

 

 

 

해독화. 림이 해독화인 것을 아는 지훈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또 무엇을 위해 림을 언급하는 것인지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답하지 않는 후궁에 관은 아프게 허리 짓을 했다.

 

 

 

 

“아윽, 예. 폐하….”

 

“허면, 그 해독화가 독을 가진 꽃을, 하아, 모두 지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겠구나.”

 

“예….”

 

 

 

 

가지가 가득 찼구나. 제 등을 다시 쓸어내리는 천자의 손길에 지훈이 순간 불안에 휩싸였다. 폐하. 다급히 저를 부르는 소리에도 관은 정사 내내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상재에게 명했다.

 

 

 

 

“해독을 하려면 해독화와 합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황제의 가지를 다른 이가 품을 수는 없으니…”

 

 

 

 

림과 꽃을 지우거라.

 

 

 

 

지훈이 천자의 명에 눈을 꾹 감자, 눈가에 아슬히 걸려있던 눈물이 이내 후둑 흘러내렸다. 벌을 받겠다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하여 벌을 받는 것인데…. 무엇이 이리도 가슴 아픈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곱게 단장시키라는 천자의 명이 있었다. 이에 상궁이 이리저리 만지는 손길에도 지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에 분칠이 지워져도 상궁은 아무 말 없이 몇 번이고 물기를 닦아내고 분을 덧댈 뿐이었다.

 

 

 

 

“마마….”

 

 

 

 

조심스레 저를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지훈이 제 상궁을 바라봤다. 입궁을 하게 되면서부터 제 곁을 지킨 상궁이었다. 가지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함께한 이였다. 또다시 눈물을 떨구는 제 주인에 상궁은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내었다. 모두가 무시하는 지훈을 누구보다 위했고, 그를 아는 지훈 역시 상궁을 아꼈다.

 

 

 

 

“실로 오랜만이잖습니까.”

 

“…”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옵니다, 마마. 좋은 모습 보이셔야지요 상궁이 결국 제 주인을 따라 눈물을 보였다. 상궁이 갈아입을 의복을 제 주인에게 건넸다. 비색의 비단으로 지어진…

 

 

 

 

“마마께서 처음 입궁하셨을 때를 소인은 기억하옵니다. 이 소인마저 기억하고 있사온데 그분 역시 잊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처음 이 황궁에 들어와 그분을 뵈었던 날 역시 비색의 의복을 입은 채였다. 멍하니 상궁의 손에 들린 의복을 바라보던 지훈이 눈앞에 그날의 기억을 그려냈다. 그래. 저 또한 이리 또렷했다. 기억을 더듬던 지훈이 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지었다.

 

 

 

 

 

 

 

해가 지자 지훈이 몸을 일으켰다. 림을 뵈러 갈 시각이 되었다. 휘청이는 제 몸을 부축하는 상궁의 손길에 몸을 기대어 밖으로 나왔다. 가마만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는 관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천자의 등장에 지훈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저를 말없이 바라보는… 제 지아비. 뒤늦게 예를 갖추었다.

 

 

 

 

“늦은 시간인데 어찌…”

 

 

 

 

관의 시선이 지훈이 입은 의복에 머물렀다. 이내 시선을 거둔 황제는 상재의 상궁에 눈짓하여 주인을 가마에 태우라 일렀다. 가마에 올라타는 지훈의 시선에 붉게 튼 황제의 옥수가 걸렸다. 문득 느껴지는 찬밤기운. 혹, 밖에서 저를 기다리셨던 것일까…. 생각에 빠진 지훈이 그 옥수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 황제가 다시 한번 명을 내렸다.

 

 

 

 

“황명을 따르러 가는 것이다.”

 

“…예, 폐하.”

 

 

 

 

경고였다. 오로지 그 꽃을 지우는 것에만 마음을 쓰라는 뜻이었다. 뻗으려던 손을 거둔 지훈이 고개를 숙이며 답을 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걸음 하게 된 곳, 안으로 들기 머뭇거리는 지훈이었다. 태감은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지난 시간 동안 마주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의 재회였다. 건청궁이 있을 방향으로 한번 돌아본 지훈이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문 앞을 어렵사리 열자 림의 모습이 보였다. 창이 나 있는 곳 앞을 서성인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자신을 바라보는 림의 모습에 지훈이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지훈아.”

 

 

 

 

저를 불러주는 다정한 림의 목소리에 입가의 미소는 이내 울음으로 번졌다. 천자의 명을 따르러 왔습니다…. 림이 한걸음에 지훈의 앞으로 다가왔다. 눈가로 그려진 눈물 선을 지워내는 손이 따스했다. 괜찮다…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 울지말거라….

 

 

 

 

 

 

 

 

 

 

지훈의 가지는 어느덧 상사화가 만개해있었다. 림의 매화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덧 새로운 가지가 새겨져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러것들이 섞여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관에 대한 분노와 질투… 이 많은 상사화를 만개하는 동안 홀로 버텼을 지훈에 대한 연민… 그 모든 것들을 담은 손길이 가지를 따라 지훈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을 알아챈 지훈이 애써 등을 보이지 않으려 몸을 움직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아껴주시느냐.”

 

 

 

 

지훈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림은 그런 지훈의 얼굴로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쓸어주고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그럼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감사해.

 

 

 

 

림의 열을 받아내는 내내 지훈은 눈물을 흘렸다. 흔들리는 시야에도 정신만은 다잡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영영 마지막일지 몰랐다. 그리 헤어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림을 마주하는 것이다. 한순간도 잊고 싶지 않았다. 수없이 피어난 상사화 위로 매화 단 한 송이를 피우는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합궁이 끝났다. 림은 매화가 새겨지고 조금 뒤 모든 꽃들이 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며 열이 몰리는 눈가를 눌렀다. 그 시선을 느낀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의복을 갖춰 입었다. 비색의 고운 비단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가지가 안타까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황명을 어기고 전각 밖을 돌아다닌 것을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지훈을 바라보는 관의 눈빛을 알고도 모른 척했을 때부터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관과 제가 한날한시에 태어난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내 가지였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 나는 해독화이다. 가지에 독을 뿌리깊이 내리는 독화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순수히 지킬 수 있는 것은 나였다. 제 형이 아니라. 근데 왜… 나는 갖지 못하는 것이야. 왜, 나의 가지는 그 독에 아파해야 하는 것인가. 림이 말없이 분노했다.

 

 

 

 

의복을 모두 갖춰 입은 상재가 몸을 일으켰다. 림은 급하게 몸을 돌려 나가려는 지훈의 손목을 잡아채 돌려세웠다. 내 가지가 울고 있었다. 안된다 저를 밀어내는 손길에도 림은 지훈을 당겨안았다. 괜찮노라…. 잘했노라 저를 다독이는 림의 손길에 지훈은 림의 품에 고개를 묻고 그간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픈 울음소리는 밖을 지키던 태감과 상궁에게도 닿았다. 바람이 찼다.

 

 

 

 

 

 

 

*

 

 

 

 

 

 

 

상재가 명을 따르고 돌아오자 황제는 또다시 한동안 애첩을 찾지 않았다.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사사로운 감정을 비추지 말라 명했거늘… 그러나 황제는 제 명을 어긴 애첩에게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제 손에 쥐었지만 가지는 온전히 제 것이 아닌 듯했다.

 

 

 

 

 

 

 

*

 

 

 

 

림과 지훈의 합궁 이후, 관은 림을 찾았다. 아우는 전처럼 저를 반겨주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자 온 것은 아니었으나 아우는 그런 제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뿐이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폐하.”

 

“…린아.”

 

“그리 부르지 마십시오.”

 

 

 

 

어머니는 폐하 때문에 그리 가셨습니다. 날카로운 말에 관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또 너에게서 어머니마저 뺏어간 것이 되었구나. 제 반쪽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시려 참을 수가 없었다. 쓸모 없는 감정에 눈이 멀어 지훈을 아프게 하고 아우를 저버린 스스로가 한심했다.

 

 

 

 

“원하시는 것은 다 가지졌습니까, 폐하.”

 

“…”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다 이루셨습니까.”

 

 

 

 

관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원하던 모든 것을 전부 가졌는가. 속으로 삼켜지는 물음에 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저를 향한 아우의 눈을 덤덤히 마주하던 관이 이내 몸을 일으켰다. 더이상 저는 림에게 든든한 형제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자가 방 밖으로 나오자 태감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어디로 걸음을 하시겠습니까.”

 

“건청, 아니, 상재에게 기별을 넣어라.”

 

 

 

 

 

 

 

갑작스러운 기별에 상궁은 제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림과의 합궁 이후 지훈은 줄곧 지친 눈을 했다. 한동안 천자가 저를 찾지 않아도 늘 마음이 불편했다. 꽃을 지우라는 명에 따랐건만, 어찌 그동안 걸음을 하지 않으시는 건지. 혹 그 품에서 눈물을 흘린 저를 벌하시는 것인지. 걱정에 걱정이 뒤섞여 그간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몸을 단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이 안으로 들었다. 그 밤 이후 이리 독대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천자의 등장에 후궁은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었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관의 손짓에 무릎을 꿇으려던 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불편한 자세로 굳어버린 애첩을 잡아끌어 침상에 앉힌 천자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 그 옥안을 어루만졌다. 뒤늦게 깨달은 지훈이 급하게 손을 치우려 하자 관이 그를 저지했다. 손목이 잡혀버린 지훈은 어쩔 수 없이 옥안을 쓸어주었다.

 

 

 

“혹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천자를 살피는 상재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애첩의 진심 어린 눈길… 그를 아프게 바라보던 황제가 이내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천자를 거부하지 않는 애첩. 이내 지훈의 몸이 뒤로 눕혀졌다. 상사화가 새로이 꽃을 피웠다.

 

 

 

 

*

 

 

 

 

뒤바뀌어버린 지아비. 바람 속에 놓아버린 시위를 ㄸㅓ난 화살처럼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제 마음… 관은 불이었다. 늘 일렁이며 집어삼킬 듯이 타오르는 불길. 황제가 불같은 성정이라면 림은 물과 같았다. 그는 평온하고 차분했지만, 순식간에 밀려와 모든 것을 삼켜 잠식시키는 듯했다.

 

 

 

 

두 형제의 우애는 깊고 단단했다고 했다. 제가 그사이에 엉켜버리기 전까지는.

 

 

 

 

얼마 전, 관은 저와의 합궁에서 눈물을 보였다. 림을 만나고 돌아온 날이었다. 열이 오른 저를 품에 가득 안고서는 저에게, 또 림에게 미안하다 되뇌셨다. 모두 저 때문이었다. 저만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지는 스스로 꺾일 것을 선택했다.

 

 

 

*

 

 

 

늦은 시간에도 천자는 침수에 들지 아니하고 제 가지를 돌보았다. 수일 째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지훈을 내려다보는 관의 눈빛이 아팠다. 처음 만났을 때, 그 곱던 얼굴이 이리도 많이 상해있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제 욕심을 채우는 것에 급급하여 시들어가는 가지를 살피지 못해 가지는 스스로 저버리려 했다.

 

 

 

 

가져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내 곁에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내려한다.

 

 

 

지난 며칠이 지옥 같았다. 지훈이 자진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관은 예법을 잊고 달렸다. 태의와 궁인들에 둘러싸인 제 가지를 보았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 가져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내 곁에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내려 한다.

 

 

 

 

관은 도성 밖에 사람을 보내 림과 지훈이 살아갈 만한 곳을 알아보라 명했다. 아주 먼 곳이어도 괜찮으니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을 수 있게끔 해야 했다. 홀로 천천히 제 사랑과 또 제 형제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지훈의 소식을 들은 림이 만나기를 청해왔으나 관은 그를 무시했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는 제가 아우에게 모진 말을 듣고 버틸 자신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자유를 네게 줄 테니

 

 

며칠 후, 태감은 모든 준비를 마쳤노라 고했다. 지훈이 깨어나거든 잠시 사가에 다가오는 것을 핑계로 가마에 태울 생각이었다. 가마는, 사가가 아닌 자유를 향해 갈 것이었다. 그를 명하는 천자의 옥안에 가득한 슬픔에 태감이 긴 한숨을 삼켜냈다.

 

얼마 후, 지훈이 의식을 찾았다. 태감은 상재에게 가보실 것을 권했지만, 관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림을 찾았다. 림은, 예상대로 제게 분노했다. 어찌 아껴주지 않으시냐고. 그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하게끔 하셨냐고. 관은 덤덤히 쏟아지는 말들은 들었다. 림의 말이 끝나자 오랜 계획을 전했다. 황명이었다.

 

 

 

 

‘상재와 함께 황궁을 떠나거라.’

 

‘…형님!’

 

‘짐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떠나라.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나를 떠나 자유롭고 행복하고. 그렇게 살거라.’

 

 

 

 

지쳐 보이는 관의 얼굴에 림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두 형제의 똑닮은 눈이 서로를 향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관이 먼저 그 시선을 거두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제 반쪽.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둔 황제는 말없이 뒤돌아 방을 벗어났다.

 

 

 

 

림과 지훈이 떠나는 날, 관은 지훈의 상궁에게 비색의 비단으로 지어진 의복을 건넸다. 처음 지훈을 보았던 그 날을 잊지 않았다. 그 자태가 어찌나 고왔는지… 지훈이 황명을 따르러 림에게 향하던 날 역시 비색의 의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저와 마찬가지로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을 림을 위한 것이었을 터. 오늘만큼은. 마지막만큼은… 나를 위해 이 의복을 입어주었으면 했다.

 

 

 

관은 지훈이 황궁을 떠나기 전까지 결국엔 제 가지를 마주하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떠나는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비색의 비단을 두른 모습에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여전히 너는 곱구나. 전각에서 나와 가마에 몸을 싣는 그 모든 순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으려 애썼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또렷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아직 성치 않은 몸 상태에 상궁의 부축을 받아 가마에 오르려던 지훈이 이내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가 있는 곳까지는 그 시선이 닿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관의 몸이 멈칫하였다. 무엇을 찾는 듯한 행동. 지훈은 끝까지 저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들었다. 저를 찾는 것이 아닐게 분명한데… 이내 고개를 떨구고 몸을 싣자 가마꾼들에 의해 들린 가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궁을 벗어났다. 관은 그 모습이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

 

 

 

가마에 오른 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감히 황제의 후궁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려 했는데 황제는 제게 어떤 벌도 내리지 않았다. 깨어난 자신을 찾지도 않았다. 다만, 사가에 가 아직 미령한 몸을 풀고 돌아오라 명할 뿐이었다. 기약 없는 출궁이었다. 오늘만큼은 천자 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관은 끝내 제게 그 옥체를 보여주지 않으셨다.

 

 

몸이 낫거든 또 돌아올 황궁임을 알면서도 어쩐지 가마에 올라타는 것이 주저되어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 천자께서 뒤늦게라도 오는 것이 아닐지… 그렇게 기대하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흔들리는 가마에 지훈은 눈을 감았다. 그러기를 한참, 가마가 내려졌다. 도착하였다 여긴 지훈이 의복을 다잡았다. 가마의 문이 열리고 상궁의 손을 잡고 몸을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곳은, 제 집이 아닌 한적한 산길이었다. 어찌… 상궁을 돌아보자 그는 제 주인을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살펴본 주변에는 제가 타고 온 가마와 똑같은 가마가 두 채 더 있었다. 이윽고 다른 가마 중 한 곳에서 사내가 몸을 내렸다. 림. 림이었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인물에 지훈의 입이 벌어졌다.

 

 

 

“어찌… 어찌 이곳에 계신 겁니까.”

 

 

“황제 폐하의 지엄하신 명이다.”

 

 

 

이 곳에서 네가 탔던 가마는 가마꾼들의 실족에 의해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너는 그리 죽은 것으로 알려질것이다. 그리고 너는 나와 함께 열국을 떠난다. 덤덤히 말을 잇는 림을 바라보던 지훈의 표정이 이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모든 것이 관의 계획이었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대신, 관은 그 지옥에 홀로 남겨진 채 갇힌다. 나를 영원히 그리워하게 될 족쇄에 스스로 그 발을 넣으셨다. 사랑하니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멀어지게 된다. 닿을 수 없는 공간에 놓이게 된다.

 

 

 

 

마음속이 엉망이었다. 커다란 구멍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 구멍으로 자꾸만 감정이 흘러 나를 아프게 했다. 왜… 왜… 나를 사랑하면서… 구멍으로 모든 것이 새어나가 가슴이 공허했다. 외로워졌다. 그리워졌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

 

 

 

 

지훈과 림을 태우고 떠난 가마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관이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 너를 보냈는데 돌아왔단 말이냐. 두번 보낼 용기 따위는 내게 없는데…

 

 

 

 

“폐하.”

 

“…”

 

“정녕…, 신첩을 저버리시는 것이옵니까?”

 

 

 

 

지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을 찾아왔다. 그제야 관이 지훈을 돌아보았다. 지훈은 독을 가진 제 옆에서 행복할 수 없었다. 림의 곁이어야했다. 관은 스스로가 림이 될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고, 림이 될 수 없음에 슬퍼했다.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것을 림에게서 빼앗고 두 손에 쥐어내려는 소유욕에 눈이 멀어 아우와 지훈을 모두 아프게 했다. 그렇게 해서 제 속이 조금 편하자고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다.

 

 

 

 

림은 해독화로서 관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것을 지훈에게 줄 수 있었다. 축복받은 꽃. 그는 모든독을 지워낼 뿐만 아니라 무한히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뿌리 깊숙이 침투한 제 독을 모두 지우고 지훈에게 긴 삶을 줄 수 있다. 제가 사랑한 두 사람이 저를 떠나 행복하길 바랐다.

 

 

 

 

꼭 나를 사랑하는 듯한 눈이구나…

 

 

 

 

지훈은 저를 아픈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네 꽃과 함께 놓아주겠다는데 어찌 그런 눈을 하는 것인지…

 

 

 

 

“가거라.”

 

“폐하!”

 

“가거라, 지훈아. 림과 함께 떠나… 그렇게 살거라.”

 

“폐하. 신첩, 이대로 못가옵니다… 안 가요. 보내지 마세요….”

 

“내가 너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려 했는데. 너는 내 마음을 봐주지 않으려 또 이리 돌아온 것이냐.”

 

 

 

 

관은 당장이라도 지훈을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며 조용히 분노했다. 갔어야지. 나 같은 것은 잊고 림의 옆에서 잘 살며 행복했어야지. 왜… 왜 또 욕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어.

 

 

 

 

“짐은… 독을 지닌 상사화다.”

 

 

 

 

이 독 때문에 너를 죽게 하는 것이 나라고. 언젠가부터 나는 너에게 기쁨을 줄 수 없고, 기쁨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폐하가 계시지 않는 곳이라면 신첩 또한 어디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의 꽃을 피운 가지입니다.”

 

 

 

 

관은 처음으로 제 존재를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늘 숨어 살던 제가 다른 이 앞에 설 수 있게… 그들이 나를 부르고 인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스로 숨어 사는 것에 익숙해졌었다.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방안에 갇힐 것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관을 통해 깨달았으니까. 그런 관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결국 지훈의 눈가로 물길이 트였다.

 

 

 

 

“두 번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보내지 마십시오. 신첩… 폐하에게서 잊혀지지 않고 싶습니다. 폐하를 잊고 싶지 않습니다.”

 

 

 

 

지훈이 관의 두 눈을 마주하고 말했다. 둘을 감싼 주변의 소음이 멎는 듯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니…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

 

 

 

 

만개해 저를 꺾는 것이 폐하의 꽃이라면 그것마저 행복할 것이옵니다.

 

 

 

 

관이 참지 않고 지훈을 끌어안았다. 한 손은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은 머리를 감싸 더 깊게 품에 당겨 안자 지훈은 손을 들어 관의 등을 마주 안았다. 숨결이 서로에게 닿았다.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온 밖의 찬 공기에 냉기가 방 안에 내려앉았으나 마주 안은 두 사람만큼은 뜨거웠다. 지훈을 돌려보내지 못하고 품에 안은 것을 후회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롯이 저만을 담아내는 지훈의 눈을 마주하자 자신이 없어졌다. 이 가지 없이 살아갈 자신.

 

 

 

 

 

 

 

지훈과 림이 다시 돌아오고 얼마 후, 관이 림을 찾았다. 두 형제 사이에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전에 독대와는 사뭇 다른 공기였다. 서로를 향한 화는 모두 사라져 없었다. 먼저 그 흐름을 깬 것은 림이었다.

 

 

 

 

“형님. 저는 괜찮으니 얼굴 펴세요.”

 

 

 

 

이전과 같이 웃으며 말을 꺼낸 림에 관이 결국 고개를 떨궜다. 내가 밉지 않느냐… 마지막으로 아우를 위해 하고자 했던 일들이 결국엔 림에게서 지훈을 완벽하게 뺏어버린 꼴이 되었다. 정녕… 모든 것을 앗아간 자신이었다.

 

 

 

 

“제겐 형님이 남아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성품이었다. 아우인 림의 성숙한 태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을 하고자 이리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우가 그리웠을 뿐이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 것인지 림은 오래전, 좋았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저를 맞이한다. 입술을 축이던 관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

 

“미안하다, 린아.”

 

 

 

 

린아라고 부르는 관에 차를 마시던 림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저 웃으며 다시 찻잔을 입가로 옮겼다.

 

 

 

 

“애초에 제 것이 아닐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음 쓰지 마세요.”

 

 

 

 

또다시 지훈이를 울게 하시면 그때는 제가 데려갈 터이니 긴장하세요, 형님. 언제나 그랬듯이, 형제는 다시 마주하고 웃었다.

 

 

 

 

 

*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총애가 이어졌다. 그저 합궁의 횟수로 단정 지어버렸던 과거가 아닌, 천자의 마음이 움직인 듯 보였다. 지훈은 빈의 첩지를 받았다. 빈이 되고 난 후, 내궁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저들의 시침까지 거르고 숙빈만을 찾는 천자에 후궁들은 입을 모아 지훈을 폄하했다. 지훈이 상재였을 때에도 천자의 총애는 있었다. 허나, 후궁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천자는 상재에게 다정한 눈빛 한번 건넨 적이 없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갈 어심이라 여겼던 후궁들은 진작에 싹을 잘라내지 못했음에 통탄하였다. 낮밤 가리지 않고 애첩에게 걸음 하시는 황제. 후원에서 다정히 손을 맞잡고 산책을 하는 황제와 그의 애첩. 연회 날이면 애첩의 손을 잡아끌어 먼저 자리를 비우시는 황제. 한순간에 지아비를 빼앗긴 후궁들이었다.

 

 

 

 

 

 

 

 

 

 

피워놓은 향이 방안을 가득히 메웠다. 황제의 입술을 받아내는 숙비의 몸이 뒤로 기울더니 침상에 눕혀질 때 쯤,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열을 잃은 입술에 지훈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음을 전한 그날 이후 수도 없이 반복되는 그림이었다. 자주 걸음을 하시나 그뿐이었다. 교접은 좀처럼 없었다. 욕심에 그 마음이 얼룩져 첫 번째 가지를 그리 허망하게 보낸 탓에 관은 이렇듯 지훈과의 합궁을 피했다. 지훈은 이미 각오했음에도 관은 꽃을 피우길 꺼려했다. 맞닿았던 몸에서 서로의 정욕을 읽었음에도 또다시 그냥 돌아가려는 관에 지훈이 다급히 손을 뻗어 멀어지는 옥수를 붙잡았다.

 

 

 

 

“폐하…. 오늘도 이리 가시는 것이옵니까….”

 

 

 

 

다시금 저를 침상으로 이끄는 교태에 관이 곤란한 듯한 표정을 옥안에 띠웠다. 두 번째 가지마저 만개하면 꺾여버릴 것이다. 허망하게 보내버린 첫 번째 가지, 또다시 그리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조금 더 참으면 될 것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리 교태를 부리는 애첩의 모습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신첩 또한 알고 있사옵니다. 정말… 신첩은 괜찮으니, 열을 풀어내세요.”

 

 

 

 

저를 괜찮다 다독이는 지훈의 손길에 관은 참지 않고 몸을 겹쳤다.

 

 

 

 

 

 

 

*

 

 

 

 

참아왔던 열을 한 번에 풀어낸 탓에 지훈은 관의 아침시중을 들지 못했다. 뒤늦게 기침한 지훈이 경대를 가져와 제 등의 가지를 확인했다. 비어있던 어깨쯤에 피어난 상사화 세 송이. 다른 상사화들을 누르고 가장 위에 새겨진 간밤의 꽃들을 조심스레 쓸었다. 이제 비어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었다. 허무하게 꺾여버린 첫 번째 가지가 아쉽지 않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 역시 관의 상사화로 가득 만개 했었으니 그것으로 행복하다 말할 수 있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해째, 꽃을 피울수록 불안에 떠는 관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지…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긴 이별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 한 송이가 필 곳이 남을 때까지, 지훈은 좀처럼 제 가지를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다 이어진 합궁, 황제가 그 가지를 확인하려하면 애써 몸을 뒤집으며 숨겨왔다. 그저…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뜻을 담아 웃어 보일 뿐이었다.

 

 

 

 

 

 

 

 

 

 

/

 

 

 

 

 

 

 

 

 

달빛을 받은 숙빈의 얼굴이 단장한 덕인지 유난히 고왔다. 관이 친히 하사한 비색의 비단으로 지은 의복까지 갖춰 입은 모양새였다. 곱구나. 관의 말에 지훈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옵니다.”

 

“무엇이.”

 

 

 

 

하문하는 황제의 말에 상재가 숙어진 고개를 들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유독 웃음을 짓는 가지의 얼굴에서 관이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꽃을 피우는 가지라고는 하나, 여인이 아닌지라… 단장한 모습이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마음이 쓰였습니다.”

 

 

 

 

오늘 이리 단장한 것은 오직 관을 위한 것이었다. 제 가지에 꽃이 필 공간이 한 자리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홀로 긴 이별을 준비했다. 떠나고자 마음먹으니 그제서야 아쉬운 것들이 많았다. 어찌 제 지아비는 저를 다정히 불러주시지 않는 것인지, 또는 그때 그랬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 관계는 조금 더 유했을는지… 감정을 정리하며 홀로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기실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드는 아쉬움과 욕심에 조금씩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와있었다. 탄신일을 경하드리고 싶어 미루고, 또 봄을 함께 맞고 싶어 미루고… 더 이상은 핑계가 없었다.

 

 

 

 

마지막 욕심으로 시침을 준비하며 곱게 치장을 했다. 끝까지 고와 보이고 싶었다. 다행히, 천자는 이런 제모습이 퍽 마음에 드시는 듯 보였다. 손을 들어 관의 얼굴을 쓸었다. 예가 아니라 하여도 좋았다. 가득 차버린 가지를 의식하여 도통 저와는 살을 맞대려하지 않는 관이기에 침상으로 먼저 이끌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구나. 혹… 무슨 일이 있는 것이더냐.”

 

 

 

 

정욕에 가득 찬 눈을 하고서도 관은 애써 참으며 저를 걱정했다.

 

 

 

 

“신첩, 지아비의 품이 그립습니다.”

 

 

 

 

낯선 제 교태에 관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이내 두 입술이 급하게 겹쳐졌다. 마지막 개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정사의 막바지였다. 끝을 향해가던 관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지훈의 호흡이 유독 거친 탓이었다. 움직임을 멈추고 제 몸 위에 올라탄 가지의 안색을 살피자 가지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폐하, 어찌… 하, 어찌 멈추…, 아아…”

 

 

 

 

손으로 관의 가슴팍을 짚고 버티던 지훈의 몸이 앞으로 꺾여 쓰러졌다. 가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낌새를 알아차린 관이 쏟아지는 몸을 받쳐안고는 등의 가지를 살폈다. 가지 가득 만개한 상사화. 마지막 남은 한자리에 상사화가 새겨지고 있었다.

 

 

 

 

아아… 안 돼.

 

 

 

 

두 번째 가지 역시 만개하게 되면 그 순간 모든 꽃이 지고 가지는 꺾이게 된다. 예고 없이 마주하게 된 이별이었다.

 

 

 

 

“태감! 밖에 아무도 없느냐… 태의를…! 아니, 림… 림을 불러오거라!”

 

“폐하….”

 

 

 

 

지훈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를 찾는 가지의 부름에 관이 지훈을 품에 안아 들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급격히 더뎌지는 움직임에 관이 다시 한번 림을 찾자 지훈이 그를 말렸다. 그러지마세요…

 

 

 

 

“아아- 아니 된다, 지훈아…. 제발… 림이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폐하…. 언제까지 이렇게 둘 수 없다는 것…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관이 결국 눈물을 쏟아낸다.

 

 

 

 

“신첩으로부터 시작된 악연… 신첩이 끊어내고 싶사옵니다…”

 

“무엇을, 대체 무엇을… 지훈아… 안된다. 이리 떠나면 아니된다.”

 

 

 

 

지훈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눈물에 젖은 제 지아비의 옥안. 지훈이 관의 얼굴에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내었다. 관의 시선이 흔들렸다. 지훈의 목소리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찌 옥루를 보이십니까… 제 꽃이 울고 있었다. 떠나는 것은 저인데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아프고 애절하게. 그렇게 꺾여버린 가지를 품에 안고 울고 있었다.

 

 

 

 

“지훈아, 제발…”

 

 

 

 

너는 어찌 이리 매번 내게 모질게 하는 것이야. 느려지는 눈의 깜빡임에 그는 오열했다. 땀에 젖은 머리칼 사이로 언뜻 비치는 이마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었다. 지훈아… 하고 다정히 불러주는 목소리. 그 말에 지훈은 웃었다. 왜 이제서야 그리 불러주시는 거냐고, 신첩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냐고 타박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폐하의 품에서… 이리 뵙고 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입을 열어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몸이 굳어지고 차게 식어갔다. 눈에 보일 정도로 급격한 변화에 관이 결국 지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토해냈다. 미안하다, 지훈아…아… 지훈아… 내 지훈아… 시야가 점차 흐릿해져 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듣고 가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 폐, 폐… 하…”

 

 

 

 

가늘게 들려오는 숨소리 같은 목소리에 관이 고개를 들고 지훈의 얼굴을 살폈다. 꽃이 지고 있었다.

 

 

 

 

“폐하… 신첩…, 신첩이… 하…”

 

 

 

 

 

 

 

 

 

 

사랑해요.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마음을 뱉었다. 그 말에 관은 나를 품에 껴안으며 무너졌다. 그리고는 귀에 속삭여주었다. 사랑한다. 지훈아, 사랑한다. 처음부터…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는 적이 없었어. 그토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말이었다. 들었으니 되었다. 지훈이 눈을 감았다. 폐하… 이제 가려 합니다.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처음 관을 마주한 그 날로 돌아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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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혹 기억하고 계시옵니까. 신첩이 처음 황궁에 들어왔던 그 날. 처음 뵌 분이 폐하이셨습니다. 아마, 신첩… 처음부터 폐하를 마음에 품었나 봅니다. 매화를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사옵니다. 오직…상사화뿐이었습니다.

 

 

 

 

 

 

 

 

 

 

나의 꽃. 나의 그리움. 부디, 안녕히.

 

 

 

 

 

 

 

 

 

 

 

 

 

 

 

 

 

지훈의 장례는 천자의 애도를 담아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꺾인 가지를 안고 슬퍼하던 천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달팠다.

 

 

 

 

가지가 꺾인 지 어느덧 1년, 관이 담담한 표정으로 가지가 머물던 곳으로 들어섰다. 지난 한 해, 지훈이 그리운 날이면 이렇듯 찾아와 기억을 더듬곤 했다. 지훈아… 관의 입에서 그리움이 새어 나왔다.

 

 

 

 

내 감각의 끝엔 항상 네가 있었다. 너를 처음 마주한 내 눈은 오직 너만을 좇았고 내 손끝은 너의 살결만을 기억했다. 네 가지가 품어내는 향만을 맡았으며 입속의 네 이름마저 달았다. 나는 그렇게 영위해왔다. 그 감각을 잃은 나는 너만을 그리워한다. 지훈아. 너를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네가 내게 준 봄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네가 없이 맞는 봄은… 나에겐 너무 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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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청량했다. 유난히 파아란 하늘, 잘 닦여진 돌길을 따라 남겨진 반쪽이 제가 사랑한 이들을 향해 걸음 했다. 나란히 잠든 두 사람. 제가 사랑한 가지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주군. 나의 형. 나의… 반쪽. 관이 자진하자 림은 더이상 황궁에서 숨어 살지 않게 되었다. 제 형님은 아우에게 가지를 빼앗은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미안해하셨다고 태감은 전했다. 그를 사죄하고자 천자는 자진을 택하셨다. 스스로를 저버리시고 남겨진 아우에게 자유를 주셨다. 형님…. 림의 입에서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묘 주변에 피어난 상사화. 모든 것이 그리운 날이었다.

 

 

 

 

 

 

 

 

 

 

 

열국 태종(*관)의 아끼던 상사화 가지가 그 꽃을 만개하여 세상을 떠났다. 가지가 꺾이자 태종은 가지에게 비의 첩지를 내려 그 호를 화(花)라 내릴 지 어니, 화비라 기록하라 명했다. 화비가 떠나고 그를 그리워하고 깊은 어심으로 애도하던 태종은 가지가 꺾인 지 한 해가 되던 날, 생전 화비에게 하사한 그 처소에서 자진하였다. 태종의 능은 박 화비의 묘 바로 옆에 받들어졌다. 이듬해, 두 묘 주변에 상사화가 만개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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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꽃내음이 자욱했다. 만개한 복사꽃… 그 사이로 관과 지훈이 손을 맞잡은 채로 거닌다. 잔잔하던 바람이 일순간 조금은 강하게 일었다. 바람에 비처럼 흩날리는 복사꽃 비. 놀란 표정을 지은 지훈이 이내 꽃비를 보며 해사하게 웃음을 보였다. 폐하, 아름답습니다. 제 가지를 바라보던 관이 이내 지훈의 얼굴을 조심히 잡았다. 이내 접문하는 두 입술. 그토록 그리던 도원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