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타오르면
w. 체채

 

 

이 곳이 어디일까. 잘 모른 채 나는 계속 방황한다. 벌써 2시간 째다. 놀래켜 주려고 온 건데, 괜히 몰래 왔나보다. 찾으려던 이는 못 찾고 털썩 주저 앉는다. 꺼진 핸드폰을 원망스레 쳐다보다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빛을 등지고 선 네가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화재를 많이 겪었었다. 최소 세 달에 한번씩은 불을 봤던 것 같다. 작은 불부터 큰 불까지. 세 달에 한번이면 많은 편이 아닌 것 같지만, 기억을 떠올려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불에 대한 기억이 나만큼 많진 않을 것이다. 내가 있을 때 근처에 불이 잘 나는 건 맞지만, 이건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불이 나는걸 내가 어떻게 통제해. 불이 나는걸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통제되지 않는 불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엔 불만 보면 진저리를 쳤다.  때문에 나는 내 근처에서 불이 잘 난다는 것은 웬만하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불 덕분에 고등학교 때,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났다. 이제 막 내가 고3이 됐을 때였다. 벚꽃이 흩날리며 개나리가 만발하던 봄에, 노후한 학교 건물에서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는 1학년 건물에서 3학년 건물과는 거리가 약간 있었지만 안전 상의 이유로 강당으로 이동해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기다렸다. ‘설마 이게 또 나 때문은 아니겠지.’라며 한탄하며 앉아있었다. 그래도 그냥 앉아 있으려니 심심해서, 1학년 애들을 둘러봤다. 아직 입학의 설렘을 가지고 있는 1학년들 사이에서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다른 애들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분위기, 외모, 하얀 피부.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보통의 학생에겐 어울리진 않을 것 같은 그런 안경이 그에겐 마치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어울렸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차가운 분위기가 흘러 나와 내가 선배였음에도 불고하고 왠지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순간적으로 놀라 고개를 숙였다 몇 초 후 고개를 드니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 말 없이 쳐다보는 상황이 민망해서인지,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곧 다른 아이들과 떠들기 시작했다. 봄날의 눈인사, 그게 나와 그의 첫 만남 이였다.

화재가 진압되자 3학년은 모두 교실로 돌아갔다. 아까 봤던 그 애가 누굴까 궁금하긴 했지만 큰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접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그나마 가끔 길기다 마주치는게 다였는데, 길을 가다 마주칠 때면, 서로 눈만 마주치며 지나쳐가기만 했다. 다만 아예 무관심한 상대를 쳐다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때 보이던 그의 눈빛은 나를 꿰뚫며 탐색하는 듯한 눈빛이어서, 처음엔 눈을 피하고 지나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가 3학년인데 왜 눈을 피해야 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히니 그는 나에게 약간의 미소를 지어주며 지나쳤다. 보통 그런 식으로 잠깐 마주친 사람과는 어색해 그냥 모른 체 하며 지나치거나 친해지기 위해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는 달랐다. 멀어 지지도, 가까워 지지도 않은 채로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관찰했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입의 사람에, 얼굴과 학년 밖에 모르는 애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 상황에서 내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 보기로 했다. 그와 친해졌을 때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서. 하지만 나에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진전 없이 4개월 쯤을 보냈을 때,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 게시판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여름방학 멘토-멘티 프로그램 운영.’ 봉사 시간도 준다 하고, 생기부에도 써준다 하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2시간 씩 멘토링을 해주면 된다고 써있었다. 어차피 하루 중 공부하는 시간은 몇 시간 안되니까 이런 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신청했다. 얼마 후 멘토-멘티 배정 결과가 쓰인 종이를 나눠줬다. ‘박지훈-라이관린’ 라이관린이 누구지? 외국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1학년들을 잘 아는 발이 넓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1학년 중에 키 크고 잘생긴 애라고만 대답해줬다.

 

여름방학 첫 주 토요일, 기대감과 궁금증을 갖고 학교를 가 도서실을 찾아갔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에 지원한 사람이 몇 되지 않는지 도서실엔 10명 남짓밖에 없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 애가 와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름이 라이관린이었구나, 하며 앉아있으니 관린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마주보고 앉아 있으려니 아무래도 불편해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네가 라이관린이었구나.”

“네.”

“…”

“선배는 박지훈 선배님 맞으시죠?”

“응. 마주칠 때 마다 이름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알게 됐네.”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다가, 몇초 후 대답이 들려온다.

 

“전 사실 선배님 이름 알고 있었어요. 몇 달 전부터”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을 보내자, 자신의 명찰을 두드린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름을 궁금해 했으면서 명찰을 볼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니까 그렇지. 다시 정적이 찾아온 채 앉아있으니, 프로그램 담당 쌤이 와 대충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까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라고 해서 이것저것 궁금했던걸 물어봤다.

 

“외국에서 왔어?”

“네. 대만에서 왔어요.”

“한국어 되게 잘하는데 한국엔 언제 온거야?”

“7살쯤에 왔던걸로 기억해요. 아버지 사업 때문에요.”

“키는 몇이야? 180 넘어 보이더라.”

“183이요.”

 

내 쪽에서 하는 질문과, 관린 쪽에서 하는 대답이 이어지자 마치 취조하는 듯 했다.. 관린은 나에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질문에 불필요한 내용들을 많이 붙여 대답하지도 않았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냐고 물어보니, 그건 또 아니랜다. 내가 싫은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기엔 날 쳐다보는 시선이 끊이질 않았다. ‘날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라며 질문을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게다가 내가 저런 질문을 받아도 대답할 말이 딱히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졌다. 대화해보면 뭔가 더 알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오히려 대화를 해보니 그 애에 대해 더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름방학동안 매주 2시간씩 만나다 보니 사이는 꽤 좋아졌다. 호칭도 형으로 바뀌고,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그와의 관계가 편해지자, 그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하는 말들은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배려한 말들이었고, 거절할 때면 늘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꺼낼 줄 알았고, 상황에 맞게 적당히 웃을 줄도 알았다. 그의 말은 나를 기분 좋게 했지만, 침묵도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오히려 그와의 침묵은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아래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친구와 있을 때도 재밌고, 기분이 좋긴 하다. 근데 관린이와 있을 땐, 친구와 있을 때와는 다른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 느낌은 전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었고, 오히려 좋은 쪽 이었기에 굳이 만나야 할 날이 아니여도 만나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만나서 공부를 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공부에 집중하다가도 내가 피곤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피곤하냐고 물어보며 음료수를 사주거나, 같이 산책을 했다. 그런 관린에게 고마움을 느껴, 가끔 카페에서 음료수를 사들고 와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내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아메리카노를 사줘도, 카페라떼를 사줘도, 과일 주스를 사줘도 아이처럼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사실 아메리카노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관린과 나는 가끔 공부 이외의 일로 만나기도 했다. 주로 시험이 끝났을 때 만나서 한두 시간씩 놀곤 했다. 어쩔 땐 영화를 보기도 하고, 또 어쩔 땐 노래방을 가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한가하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관린과의 만남은 내가 시험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관린과 놀던 어느 날, 문득 생각났다. 관린과 알게 된 뒤로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한번도 불을 보지 못했다. 웬일인가 싶어 그 얘기를 관린에게 할까 말까 하다 관린이 이런 얘기 때문에 날 싫어할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자기가 그럼 그 불을 끈 거 아니냐고 하길래 웃어줬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자기 이름 뜻에 장마가 있다고 했다. 신기하다 말하니 그럼 이제 앞으로 불 안 나게 나랑 붙어있어야 겠다고 말하자 어이없어서 관린을 툭 쳤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한번은 관린과 영화를 보러 갔었다. 로맨스 영화였는데, 여주인공을 보고 첫눈에 반해 좋아하게 된 남주인공의 첫사랑 이야기였다. 첫사랑 등 처음을 강조한 영화라 꽤나 풋풋한 느낌이 들었다. 남주인공은 여러 번 고백을 결심하지만 정작 고백을 제대로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 여주인공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남주인공은 결국 고백을 하고 만다. 여주인공도 남주인공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피어 오르던 터라, 고백을 받아들인다. 몇주 간의 연애 후, 여주인공은 떠나게 되고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보내며 그리워한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남주인공은 여전히 여주인공을 잊지 못하고 결국 여주인공을 찾으러 직접 떠난다. 다시 만난 그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며 행복해한다. 로맨스 영화라 그런지 보는 내내 간질간질한 기분이어서 영화를 보다가도 팝콘을 자주 먹었다. 팝콘을 먹다가 관린과 손이 부딪히면, 영화의 분위기에 취해 관린의 얼굴을 몇초 씩 응시했다. 쳐다보다 보니 왠지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곤 했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서로에게 다가가 벚꽃나무 아래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때, 다시 손이 맞부딪힌다. 닿은 손을 움직이려 하지도 않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본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영화의 불빛이 얼굴의 반만을 비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왠지 평소 보던 모습과는 달라 보여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대로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들의 키스신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맞닿은 손은 그대로 잡은 채로. 나는 더 이상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고 온 신경은 내 옆에 앉은 라이관린과,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 쏠려 있었다. 영화가 끝나서 영화관을 나왔을 때도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내가 걔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관린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들었던 생각은 관린도 나를 좋아하느냐 였다. 확실히 그는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 하지만 관린은 원래 천성이 배려심이 넘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베풀던 호의는 그냥 친한 선배에게 아무 감정 없이 베푸는 호의였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침울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관린을 보면 기쁜 마음과 동시에 ‘이러면 안돼. 그 애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게다가 우린….남자 사이잖아. 요즘 추세가 많이 개방적이긴 하지만 관린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거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지만 나는 그가 날 거절했을 때 받을 상처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좋아한다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능을 보고, 겨울방학을 지내고, 다시 봄이 찾아올 동안 관린과 나는 여러 번 만났지만, 영화관 때의 분위기는 한번도 생기지 않았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 결국 내 졸업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떠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애들처럼 부모님의 축하를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며 인사할 동안 계속 주위를 살폈다. 관린이 와줬으면 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관린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좋아하는게 아니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는데 와줄 순 있잖아…. 시간이 지나갈수록 관린을 원망했다. 어느덧 친구들이 하나, 하나 부모님과 함께 떠나고, 교정은 비어갔다. 부모님이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며 얼른 가자고 재촉했지만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채 발걸음을 돌리자, 뒤에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지훈형!!!”

 

반가우면서도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봤다. 한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을 든 관린이 숨을 헉헉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눈물이 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나는 그가 내 바로 앞에 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형, 졸업 축하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관린이 내게 안겨준 꽃다발을 품에 안고, 그를 보며 웃었다. 그를 한없이 원망하다가도 이렇게 와주니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이 나에게 누구냐고 물으며 눈치를 주길래, 친한 후배라고 설명한다. 관린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잠시 얘기 하고 오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관린과 함께 걸어가는 동안, 그와 함께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커다란 꽃다발과 두근거리는 느낌을 안고 그를 마주봤다. 그러자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쉬움과 슬픔이 얼굴에서 살짝 엿보인다.

 

“졸업 축하해요. 형 덕분에 많이 즐거웠어요.”

 

그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고는 느릿하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많이 좋아해요. 형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지금까지 말은 못해왔지만 형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대답은…안해주셔도 돼요. 잘 지내요 형. 갈게요.”

 

그 말을 하고선, 내 옆을 지나쳐간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고백을 받은 건가. 드디어 받은 고백인데, 그는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날 좋아한다면서 왜 그렇게 미련없이 떠나가는 거야. 나도 널 좋아하는데, 왜 떠나가는 거야. 지금 보내면 관린이 평생 떠나갈 것 같아 나는 뒤로 돌아, 관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얼굴을 등에 파묻은 채 뭉개진 발음으로 그에게 말했다.

 

“가긴 어딜 가. 대답은 듣고 가야지….”

“…”

“나도, 나도 너 많이 좋아해. 그러니까 가지마.”

 

그는 당황한 경직된 채로 서있다가, 내 말을 듣곤 천천히 뒤로 돌아 나를 부드럽게 안았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관린은 붉어진 귀와 눈물이 차오른 눈을 하고 나를 애틋하게 쳐다봤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서로의 모든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우리의 행복한 연애 생활은 꽤 지속되었다. 거의 매일마다 전화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주말마다 과외라는 명목으로 만나고, 가끔 같이 데이트를 나갔다. 관린과 사귀기 이전에도 연애를 해본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보통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던 채로, 받은 고백을 거절하기 미안해서 사귀었던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귄 기간이 100일을 넘긴 적이 없었다. 나가본 진도라곤 손잡기 뿐. 나와 사귀었던 애들은 내가 자기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고백한 건 자기였으면서 자기가 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이별을 고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애들과 데이트를 했을 때에는 데이트는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관린과 한 데이트는 전혀 달랐다. 함께하는 매순간이 행복하고, 보고 있어도 더 보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이면 정말 평생을 함께해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와의 데이트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관린과 사귄 후 첫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관린의 집으로 들어서자, 심플하지만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테이블 위에 케이크가 놓여있길래 그쪽으로 다가갔더니 관린이 옆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래켰다. 예상했던 행동이라 놀라진 않았지만 연하 남친의 귀여운 행동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한참동안 그러고 있다가 케이크를 먹기 위해 의자에 앉으니, 관린이 어디선가 초를 꺼내든다. 초를 꽂아 불을 붙인 후, 관린이 영어로 부르는 생일축하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저와 관린이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소원을 다 빌고 촛불을 후- 하고 껐다. 관린이 무슨 소원을 빌었냐 물어봤지만 소원은 알려주면 안 이루어진다고 하며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 뒤, 우리는 전에 함께 봤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손을 잡고 있다가, 마지막 부분에 키스신이 나오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린을 보고 싶어져서 그를 쳐다보니 그도 때마침 날 바라봤다. 잠시 동안 아무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사르륵 눈을 감으며 입을 맞췄다. 내 첫사랑과의 달콤한 첫키스 였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관린도 대학생이 되었다. 기필코 나와 같은 대학을 가겠다던 관린은 보란듯이 나와 같은 대학에 합격했다. 그의 성적이라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극구 반대를 했었지만, 그가 그걸 원한다고 했고 그게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 하니 내가 어쩌겠는가.

나는 당시 학교와 꽤 먼 곳에 집이 있었으므로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독립했다. 뭐, 근처라 하기에도 뭐한 세 정거장 거리였지만, 그 정도면 만족했다. 원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자취를 하는게 관린과 지내기에 편할 것 같았다. 관린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눈을 뜨면 관린이 있고, 나란히 걸으며 등교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밤을 보내고, 또… 어쨌든 내 인생의 작은 순간까지도 관린이 함께 했었다. 가까이 지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서로에게 사랑을 말하며 사과하고, 용서했다.

 

사귀고 나서부터 해보고 싶던 게 있었는데 관린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게 있었다. 4월이 되면 언제나 피어나는 벚꽃들을 보며, 관린과 벚꽃놀이를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린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벚꽃이 피는 4월이면 어김없이 중간고사가 있었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관린이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맞는 봄에, 바로 벚꽃놀이를 가기로 했다. 지금도 중간고사가 있긴 하지만, 고등학교 때 보다는 압박감이 적었기에 결국 벚꽃놀이를 갔다. 그렇게 같이 간 벚꽃놀이는 함께 간 사람 때문인지 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벚꽃을 보며 손을 잡고 걷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걸 먹으니 관린과 내가 연인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와닿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찍었던 셀카는 한동안 우리의 프사가 되었다. 지금도 그 사진들을 돌려보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언제 한 번은 오랫동안 담아왔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와 함께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데, 문득 몇 년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떠오른게 이유였다.

 

“꽌리나,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그러자 그는 몰두하고 있던 과제에서 눈을 떼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내가 고3이었을 때잖아,”

“네.”

“그때 너랑 마주칠 때 마다 너는 나를 막 이렇게-“

 

말을 하며 그가 항상 나에게 지었었던 무표정과 시선을 그에게 지어 보였다.

 

“이렇게 하면서 지나갔었는데 날 왜 그렇게 쳐다본거야?”

“제가 그랬었어요?”

“응. 완전.”

“어….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형이 제 첫사랑이어서 그랬던 거 아닐까요.”

“….?”

“음, 첫사랑이다 보니까 누굴 좋아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서 그냥 무작정 쳐다봤던 것 같아요.”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지만, 내가 첫사랑이라는 말은 여전히 들을 때마다 기분 좋고 간질거리는 느낌이 나 괜히 빨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공부를 하며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게 궁금해 하고 경계했던 그 무표정과 시선 속에 ‘어 그 선배다. 이름이 박지훈이었구나!’ ‘걸어가는 거 귀여워’ ‘오늘은 많이 힘든가봐 어떡해.’ 등의 생각이 숨어 있을걸 생각하니 관린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첫인상만 보고 차가운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라이관린은 우주 최고 존잘귀염스윗청순인 사람이었다. 특히 ‘첫눈에 반한 첫사랑’인 연상 남친에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학교 앞에서 공사 중이었던 가게를 발견했다. 디저트 카페였는데, 분위기도 좋고 디저트도 맛있어 보여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공부하느라 쓴 당을 보충할 겸 카페에 들어갔다. 우산을 접어 우산 꽂이에 꽂고,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각 케이크와 마카롱을 시키니 문득 혼자 먹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관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린린아 나 지금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인데 올래? 비도 오는데 집에만 있지 말고 여기서 같이 공부하자.]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근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거에요?]

[전부터 공사하던 곳 있잖아. 일식집 옆에]

[오케이! 그럼 20분 내에 봐요!!]

 

올 때까지만 핸드폰 하고 있어야지 싶어서 게임도 하고, 웹툰도 봤다. 게임에 열중하다가 퍼뜩 생각이 들었다. ‘관린이가 왜 아직까지 안 오지? 이렇게 늦을 애가 아닌데’ 시간을 보니 아까 문자 했던 시간에서 40분이나 지나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많이 늦네… 빨리 와 보구싶어♡]

 

문자를 하나 보내놓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10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자 결국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 메시지만 나왔다. 괜히 걱정이 되어서 역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역 쪽으로 가도 관린은 보이지 않았다. 카드를 찍고 내려가보니, 어디선가 옅게 타는 냄새가 난다. 주위를 둘러봐도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지하철 전광판을 보니, 열차에 대한 정보가 떴다.

 

‘지연’

 

사고가 난 걸까? 알 방법이 없어 안내 센터까지 달려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

“저기, 혹시 지하철 왜 지연된 건지 아세요?”

“아, 그거요. 전 역 오는 길에 폭발사고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진화 중 인걸로 알고있어요. 아마 거의 정리 돼서 금방 복구 될 거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을 듣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됐다. 설마 사고에 휩쓸린 건 아니겠지? 설마 다친 건 아니겠지? 설마… 나 때문인 건 아니겠지? 아니야, 요즘엔 괜찮았잖아. 모든 화재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돼.

초조하게 지하철 역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전 역까지 쉬지 않고 뛰어갔다. 몸이 비에 젖어 옷이 달라붙어도, 쉬지 않고 달려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출구는 복작거렸고, 그 틈에서 소방대원들이 바삐 움직인다. 어떻게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어수선한 지하철 역과 연기 냄새가 나를 맞았다.

 

“관린아!!! 라이관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늘 보던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애가 타서 무작정 소방대원 중 한 분을 붙잡고 물어봤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애 하나 못보셨어요? 이름이 라이관린이라고, 대만에서 왔는데.”

“아, 죄송합니다. 저는 진화 담당이라 찾으시는 분이 있는진 잘 모르겠어요. 환자분들은 저쪽에 계시니까 가서 찾아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소방대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가니 열 명 남짓의 사람이 누워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상처를 붙들고 앉아있었다. 내 눈이 사람들을 빠르게 좇다가 한 사람에서 멈추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몸 곳곳에 그을음이 있는 그 남자는 손목에 노란색 띠를 차고 있었다. 그를 보자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훈…?”

 

남자가 쉰 목소리로 나를 부르자, 나는 눈물을 닦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관린아…? 너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어?”

“형…”

“아니야,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일단 쉬어.”

“손… 잡아줘요.”

.

나는 묵묵히 관린의 손을 잡고 그를 축축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친 건 관린인데, 내 마음이 다 아팠다. 그런 순간에 그의 손을 소중히 잡고 있으니, 내가 오히려 그에게 위로를 받는 기분이어서 왠지 관린에게 미안해졌다. 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지금의 나를 원망하며 나는 그의 손을 꼬옥 잡아줬다. 그러다 누군가 근처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구급대원이 있었다.

 

“이분 보호자신가요? 병원으로 이송해야 돼요.”

“아, 보호자는 아닌데….친한 친구에요.”

“몇가지 질문 좀 하게 같이 이동해 주실 수 있나요?”

“네.”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린은 응급처치를 받았다.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관린은 별 말이 없었다. 그저 내 손을 계속 잡고 있었을 뿐. 응급처치 후 구급대원이 말하길 팔과 등 쪽에 약한 화상과 찰과상만 입었을 뿐 큰 상처는 없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흡입 화상을 입었을 수도 있어 병원으로 가 검진을 받아봐야 한단다. 나는 관린이 제발 다치지 않았기를 기도하며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구급대원은 나에게 관린의 신원과 가족에 관한 질문을 했고, 나는 그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으니 약한 흡입 화상이 있어 일 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병원 측에서 관린의 부모님께 연락을 취했는지 치료를 받는 관린 곁으로 부모님께서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나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그냥 관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관린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 안도한 부모님께서 나를 발견 하시자 나에게 누군지 물어왔다. 남자 친구라는 말은 잠시 넣어두고, 친구라고 답했다. 나를 몇 번 훑어보시더니 별안간 다시 관린으로 관심을 돌리셨다.

 

“린, 괜찮니?”

“네 전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너만 무사하면 괜찮다. 근데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지하철에서 뭔가 폭발한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불이 나서….. 몇 분 동안은 허둥지둥하다가 겨우 선로 밖으로 탈출했어요.”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관린은 나를 발견하곤 말을 멈춘다.

 

“너 병원 올 때 이 친구가 같이 왔다 하더라고. 엄청 운 것 같던데, 많이 친한 친구 인가봐?”

 

관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다친 관린과 그 부모님 사이게 끼어있는 그 상황이 숨 막혀서, 결국 그냥 돌아 가기로 했다.

 

“저는….부모님께서도 오셨으니까 이만 가 볼게요. 푹 쉬고 빨리 나아. 그럼 난 갈게.”

“형…!”

 

관린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병실을 나가자 마자, 벽에 기대 털썩 주저 앉았다. 관린이 다쳐서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부모님까지 마주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결국 나중에 다시 찾아 오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보통 집에 들어오면 관린이 있거나 아니면 관린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는데,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관린과 계속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한없이 우울했다. 한참을 누워 있다 보니, 아까 맞은 비 때문에 느껴지는 찝찝함에 몸을 억지로 움직여 샤워를 했다.

 

부모님께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바로 관린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어제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쇠약한 모습에 괜히 마음 한 쪽이 시렸다. 평소에 밝게 행동하던 애라서 그런지 말수가 적고 아픈 모습이 더 와 닿았다. 그래도 나를 발견하니,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모습은 똑같이 기분이 한결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들고 온 음료수를 옆에 두고 조심스레 관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왼쪽 뺨에 밴드를 붙이고 있길래 ‘다쳤어?’라고 물어보니 살짝, 아주 살짝 다친 거라고 한다. 그러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왠지 형이 뽀뽀 해주면 나을 것 같은데..’하며 말꼬리를 늘리며 애교를 부렸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니 보조개가 올라오도록 미소를 짓는다.

 

“형, 형은…. 장거리 연애 어떻게 생각해요.”

 

갑작스레 표정이 어두워진 관린이 이렇게 말하는걸 보니 뭔가 일이 있나 보다 싶어 되물었다.

 

“왜?”

“아무래도 저 치료 다 끝나면 대만으로 다시 돌아가야 될 것 같아요…아빠만 한국에 남으시고 저랑 엄마는 대만으로 돌아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자고 말하시더라구요.”

“전에 나한테 그런 말 한적 없잖아. 왜 갑자기?”

“미안해요. 미안해요 형. 저도 너무 갑작스레 알게 돼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일단 형한테 말한 거에요.”

“안 가면 안돼? 꼭 가야 돼는 거야?”

“저도 성인이니까 엄마한테 안 가면 안돼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사고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걱정되신다고 꼭 보고싶다고 하셔서 짧게든 길게든 다녀와야 될 것 같아요…”

 

할 말을 찾지 못해 관린을 보며 눈물을 삼키고만 있었다.

 

“만약에 제가 떠난다고 해도… 계속 저 좋아해 줄 거에요?”

“내가 널 왜 안 좋아해 바보야. 난 너가 우주로 떠난다 해도 계속 좋아 할거야. 평생! 나는 그냥, 너를 못본다는게 싫을 뿐이야.”

“알았어요 형. 의심해서 미안해요.”

“너도 나 계속 좋아해 줄 거지?

“뻔한 걸 뭐하러 물어요. 저는 형이 저를 싫어할 때까지 좋아해줄 거에요. 아니, 형이 날 싫어해도 언제든 형이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 좋아할게요.”

 

새삼 남친의 스윗함을 느끼며 그나마 기분이 나아진다. 그나저나, 진짜 갑작스럽다. 정말 사고 때문인 건가. 사고만 아니었어도 관린은 가지 않았을까.

 

“정확히 언제 떠날지 정해진 거야?”

“네. 치료 끝나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 예매한다고 했어요.”

“그럼….6일 남은거네.”

“…”

“그 6일 동안, 축 쳐져 있지 말고 뭐라도 해보자.”

“하지만 제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뭘…”

 

관린의 말을 끊고 나는 관린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몇 초 후 입술을 떼고 관린에게 말했다.

 

“봐봐. 이런걸 할 수 있잖아.”

 

내 말을 듣고 빙그레 웃은 관린은 곧 내 머리를 붙잡고 입술을 빨아들였다. 그에 가세해 나도 입술을 살짝 씩 깨물며 빨아들이니, 이번엔 관린의 혀가 내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의 키스 뒤에 하는 말이,

 

“이런 거 말이죠.”

 

길래 말 없이 관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진짜 너 보내기 싫다 관린아…”

“저도요. 어떻게 형을 두고 떠나죠.”

“나도 그냥 대만 갈까?”

“안돼요. 형 학교 다녀야 되잖아요.”

“그러는 너는. 너도 학교 다녀야 될 거 아니야.”

“학교 다닌지 아직 1년도 안됐다고 대만에서 새로 다니래요. 안 그래도 한국에서 취업하긴 힘들다면서 취업마저 대만에서 하라고 하긴 했는데 그건 일단 보류해 놓기로 했어요.”

“라이관린 나빴어 진짜.”

“저 진짜 싫어요?”

“…아니. 완전 좋아.”

 

 

그렇게 남은 6일간 나는 매일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들렸다. 가서는 자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노래를 같이 듣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다를 게 없는 일이었지만, 그 시간 하나 하나가 내겐 소중했다. 언제 한 번 맛있는걸 사다 줘야겠다 생각해서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전에 내가 오라고 했던 가게의 마카롱이 먹어보고 싶다길래 한 박스를 사다 줬다. 앉은 자리에서 다 먹을 줄 알았는데 하나만 먹길래 이유를 물어봤다.

 

“기껏 사왔는데 왜 한 개만 먹어? 맛 없어?”

“아뇨. 맛있긴 한데 이건 지훈 형이 준 선물 이잖아요. 함부로 다 먹으면 안돼요.”

“…”

“…같이 그 가게에서 먹어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게.”

“형, 저 사고 난 게 형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마요.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니까.”

 

약간 뜨끔해서 그냥 멋쩍게 웃어줬다. 그러면서 날 생각하고 해준 저 말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웠다.

 

6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관린이 퇴원을 했다.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짐을 싸야 하는 관린 때문에 짐 싸는 걸 옆에서 도와줬다. 관린과 나의 추억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이제 정말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는 본인도 안 우는데 내가 울면 너무 주책일 것 같아 눈물을 삼키고 괜히 잘 놓여있는 짐을 다시 놓았다.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형 잠시만요.”

 

관린이 꺼내든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저 사진은 벚꽃놀이 가서 찍었던 사진인데. 언제 인화 해놓은 거지.

 

“떠나기 전에 주고 싶어서 미리 인화 해놓은 거에요. 가져요.”

 

사진을 받아 들고는 멍하니 사진을 쳐다봤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데, 까마득한 옛날 같았다. 그 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처럼 밝고 빛났구나. 사진을 품 안에 안고 고맙다 말한 뒤, 가방에 구겨지지 않게 고이 넣었다.

 

“다 챙긴 것 같아요.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다행이네요.”

 

배도 고프고, 저녁 시간도 되어서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뭐 먹고 싶어요?”

“니가 떠나는 건데 니가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내가 사줄 테니까 아무거나 골라봐.”

“전 진짜 다 괜찮으니까 형이 먹고 싶은 거 골라요.”

“그럼 파스타 어때?”

“네 좋아요.”

 

그렇게 관린을 끌고 간 곳은 크리스마스 때 같이 가고 싶었던 비싼 레스토랑. 크리스마스고 뭐고 일단 난 지금이 중요하니 예약도 안한 채 레스토랑으로 무작정 도착했다. 도착하니 자리가 없을까 봐 약간 불안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앉고 나서야 입고 있는 후줄근한 티셔츠가 신경 쓰였지만 어쩌겠는가. 어쨌든 자리에 앉아 우리는 메뉴판을 훑기 시작했다.

 

“여기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야 내가 그래도 너 떠나는데 이런데 한번을 못 데려다 주겠어. 빨리 골라 봐.”

 

잔뜩 허세를 부렸지만 나도 이런 곳은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기에 메뉴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제일 위에 있는 스테이크와 하우스 와인을 시켰다. 그래도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비싼 소고기의 맛에 감동하며 관린에게도 한 조각을 주니 관린도 맛있다며 인정을 한다. 관린의 파스타의 맛이 궁금해 한 입 먹어보니 역시나 맛이 있어 장소를 꽤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무르익어가는 분위기와 술 때문인지 평소보다 잘생겨 보이는 얼굴을 보다 내일이면 못 본다는 생각에 다시 슬퍼진다.

 

“우리 지금 헤어져도 평생 헤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제가 외국에 있어도 맨날 문자 할 수 있고, 영상 통화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만지지는 못하잖아.”

 

손을 들어 뺨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관린이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자주 올게요. 울지 말아요.”

 

 

평생 잊지 못할 저녁 식사 후, 우리는 관린의 짐이 모두 빠져나간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날 밤 우리는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열정적인 밤을 보냈고 잠이 든 건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짧은 숙면으로 피로 했지만 관린의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미리 공항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나는 관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관린의 어깨에 살포시 내 머리를 기댔다. 관린이 떠난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이 따뜻한 온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관린도 같은 마음인지 연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공항에 도착해 관린이 어머님께 연락해 보니 거의 다 오셨다 길래 미리 작별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우리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 키스를 나눴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포옹을 했다. 곧 어머님께서 오실 것 같아 나는 떠나기로 하고 정말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가서도 잘 지내고, 연락 자주 해.”

“네.”

“…”

“사랑해요.”

“나도.”

 

나는 그렇게 미련을 뚝뚝 흘리면서 관린을 뒤로 한 채 걸어갔다. 걸어가다 보니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뒤에서 관린의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마지막 보는 모습인데 이왕이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관린이가 떠난 지 벌써 1년 남짓이 흘렀다. 자주 오겠다 한 관린은 치열한 대만 입시로 인해 한 번도 오지 못했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전화와 영상 통화도 1시간도 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로 인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극심한 외로움 겪었다. 처음엔 그냥 외로움일 뿐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을 버티기 힘들어져 관린이 떠나게 된 원인을 탓하기 시작했다. 불 말이다. 다만 형체가 없는 것을 탓하기는 매우 힘든 법이어서 결국 후엔 내가 스스로 지쳐 나가 떨어졌다. 그 다음엔,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불이 나 때문에 생긴 거라고 세뇌를 하며 나 자신을 한없이 낮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흔들릴 때 마다 관린은 공부에 대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날 위로해줬고, 그 덕분에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관린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폰에서 알림이 하나 떴다. 관린이 생일 D-10. 이제 곧 관린이 생일이구나. 보고싶어. 만나서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 안아주고 싶어. 이런 생각에 당장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봤고 9월 23일 오전에 대만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곧장 예매했다. 관린이에게 연락을 하려 메신저를 키다, 생각을 바꿨다. 미리 언질을 하지 않고 찾아갔다가 놀래켜 주면 더 좋아하겠지. 무작정 관린이 산다는 동네인 린커우로 떠날 계획을 짰다. 만날 방법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저 자주 간다는 카페에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대망의 날이 다가왔다. 최대한 예쁘고 자연스럽게 옷을 차려 입고 대만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하며 관린과의 시간을 상상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대만에 도착하자, 한국과는 다른 공기가 나를 반겼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가 택시를 잡은 다음, 지도에 미리 찍어 놓은 카페를 보여드렸다. 카페로 가는 동안은 긴장을 풀고 대만의 거리를 천천히 구경했다. 이곳이 바로 관린이가 있는 곳이구나. 특별할 것 없는 마을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비행기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해 피곤해서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잠에서 깨어보니 거의 다 도착한 것 같다. 택시가 천천히 멈춰서고 나는 택시비를 지불한 후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낭만적인 도시인 것 같다.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 뒤, 음료수 하나를 시키고 창가 쪽에 앉아 관린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있다 보니 든 생각인데, 카페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건 관린을 만나기에 별로 좋은 방법인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계속 기다렸다. 점점 시간이 지나 해가 저물고, 달이 떴다. 뒤에서 누군가가 건드리길래 돌아봤더니 직원이 곧 닫을 시간이라며 나가달라 했다. 아,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연락 해야겠다. 관린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관린은 내가 전화를 5번 걸 동안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될지 막막하고 두려워 근처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전화를 걸던 폰은 배터리가 다 나가 꺼져버리고 말았다. 이미 해가 져 어두워진 거리를 걸었다. 이 곳이 어디일까. 잘 모른 채 나는 계속 방황한다. 벌써 2시간 째다. 놀래켜 주려고 온 건데, 괜히 몰래 왔나보다. 찾으려던 이는 못 찾고 털썩 주저 앉는다. 꺼진 핸드폰을 원망스레 쳐다보다 고개를 드니 빛을 등지고 선 네가 있다.

 

“…라이관린?”

“지훈…?”

 

얼떨떨한 기분과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여기에…”

“생일 축하해 관린아.”

“형…”

 

관린이 있는 힘껏 나를 껴안았고 나는 그에 응답하듯이 천천히 관린의 등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촉, 여전히 기분 좋다.

 

“왜 말도 안하고 왔어요.”

“너 놀래켜 주려고 했지.”

“길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래도 이렇게 만났잖아. 그럼 된 거지.”

“그렇네요.”

 

갑자기 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란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에선 불꽃이 아름답게 터지고 있었다.

 

“와, 불꽃놀이 하나 봐.”

“예뻐요. 형처럼.”

 

터지는 불꽃을 옆으로 하고, 우리는 일 년 만의 키스를 했다. 내가 비행기에서 상상하던 것 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랑하고, 뜨거우며, 좋았다.

우리는 근처 벤치에 앉아 본격적으로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너 생일이라고 이렇게 터져주나 보다.”

“형이 전에 형 주위에는 불이 많이 난다고 했잖아요, 불꽃놀이도 불이니까 어쩌면 이건 형이 불러온 거 아닐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형.”

“응?”

“와줘서 너무 반갑고, 너무 기쁘고, 너무 사랑해요.”

“나도 너가 나를 찾아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우리는 린커우의 불꽃놀이 앞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