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라이관린
w. 올리

 

 

 

“박우진, 오늘부터 벚꽃의 꽃말은 미세먼지야. 나 내일 학교 안 나오면 미세먼지 너무 많이 마셔서 뒤진 걸로 알아라.”

“조용히 하고 저기 오는 사람들이나 안내해드려라.”

 

아무래도 알바를 잘못 신청한 것 같다. 이제 봄인데 우리도 과방에만 죽치고 있을 순 없다면서 냉큼 알바를 구해온 박우진에게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중간고사 기간도 남았고 때마침 벚꽃축제에서 알바를 구한다 길래 해서 돈이야 많으면 좋지 라는 생각으로 신청했건만 이렇게 미세먼지가 많을 줄은 몰랐다. 근데 벚꽃이 예쁘긴 하다. 왜 벚꽃축제, 벚꽃 축제 하는지 알겠다. 아, 또 꽃 하니까 누가 생각나네…

 

 

“쌤이 지각한 사람 여기 앞에 와서 춤추래”

“갑자기 춤을 추라고? 나 1분밖에 안 늦었는데?”

“그래도 늦었잖아.”

 

고등학교 3학년, 새로운 학교에 전학 온 김에 문학소년이나 돼 볼까 하고 독서 동아리에 들어온 건데 갑자기 춤을 추라니, 진짜 춰야 되나?

 

“빨리!”

 

하도 재촉하기에 무반주에 온몸 관절을 꺾으며 팝핀을 추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박지훈 거기서 뭐해? 얼른 자리로 들어가.”

 

쟤 지금 나 놀리려고 거짓말 한 거지. 아 쪽팔려 진짜…… 계속 째려보면서 자리로 들어갔더니 무슨 문제 있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겠다며 책상을 두드리시는 소리에 얼른 자리에 앉았다.

 

“나희주”

“네.”

“라이관린”

“네.”

 

뭐야, 중국인이야? 이름이 왜 저래. 근데 저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같은 반이구나. 아무튼 멀끔하게 생겨가지고 남 놀려먹기나 하고 말이야. 저런 애랑은 상종을 안 해야지.

 

“아 좀 찌르지 말라고!!”

 

상종을 하지 않겠다던 10분전의 박지훈의 다짐과는 다르게 라이관린에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바로 앞에 앉은 내 잘못이지……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여기 까지만 할게. 다들 조심히 가라~”

 

드디어 집에 갈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누가 어깨에 팔을 걸쳐왔다.

 

“너 근데 생각보다 키가 작구나?”

“언제 봤다고 시비야.”

“지금 봤잖아.”

 

실없이 웃는 라이관린에 괜히 기분이 나빠져 보폭을 빨리 해 학교를 나가는데 자꾸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뭐 어느 정도 그러고 말겠지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벚꽃 잎이 막 날아다니는 광경이 너무 예뻐서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찍고 있는데 누가 내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머리에 잔뜩 벚꽃 잎이네.”

“너 왜 자꾸 따라와?”

“따라간다니, 난 엄연히 내 집을 가고 있는 거야.”

“너네 집 어딘데.”

“음… 너 앞집.”

“앞집? 너 내 집 어떻게 알아.”

“너 어제 이사 왔잖아. 그걸 왜 모르냐.”

 

말하는 본새하고는, 재수없다니까.

 

 

아무튼 그때 이후로 좀 친해졌었다. 네가 하는 짓마다 애 같고, 나를 맨날 놀리긴 해도 그 시절이 좋았는데.

 

“박지훈!!”

“어, 어? 왜?”

“뭐하길래 정신 팔려 있어. 우리 알바 시간 끝났어.”

“아….”

“무슨 일 있냐? 아까부터 계속 멍 때리길래 내가 안내 다했네.”

“아냐. 아무것도..”

“그러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럼 미안하니까 이 형이 맛있는 밥 쏜다!”

“형은 무슨… 어차피 또 학식 아냐?”

 

박우진 말은 가뿐히 무시하고 터벅터벅 다시 학교로 돌아가 바로 식당으로 가니 식사시간은 아니었는데도 벚꽃 축제 때문인지 사람이 많았다. 특히 그 놈의 커플. 다 커플투성이였다. 붙어서 꽁냥꽁냥 챙겨주는 꼴을 보자니 또 네 생각이 났다. 라이관린, 너도 나 많이 챙겨줬는데.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넥타이에 발 달렸나 봐. 넥타이 잃어버림.”

“역시 칠칠이 박지훈 어디 안가네.”

“야 근데 너 중국인 아니야? 어휘가 한국인을 능가하는데?”

“빨리도 물어본다. 부모님 두분 다 대만사람. 어렸을 때 한국 왔어.”

“한국이름은 없어?”

“금방 다시 갈 줄 알고 안 지었는데.”

 

금방 다시 간다는 말에 뾰로통해진 나를 보더니 라이관린은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 좋아서 다시 안 가려고.”

 

하여간 눈치 빠른 놈. 별로 티 안 냈는데도 바로 다시 안 간다 그러는 거봐.

 

“아 근데 진짜 넥타이 어떡하냐. 그냥 맨날 벌점 먹을까?”

“자.”

“뭐야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나긴. 나는 누구랑은 다르게 여분도 갖고 다니는 사람이라서요~”

 

아 방금 조금 설렌 거 취소. 역시 라이관린은 재수탱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 티격태격 하고 있는데 누가 라이관린을 불렀다.

 

“관린아, 뭐하고 있었어?”

“배 안고파?”

“나랑 같이 매점 갈래?”

 

 

쟨 또 뭐야, 엄청 치대네. 설마 라이관린 좋아하나? 아니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고3이기도 하고, 아무리 라이관린 이어도 이제 공부만 해야 되니까 연애하면 안되니까. 내가 딱 한번만 도와주는 거다.

 

“나도 같이 매점 갈까?”

“역시 우리 뚱시!”

“이씨!!”

 

 

아 기억났다. 그 여우 같은 여자애. 진짜 라이관린한테 엄청 치댔었는데. 걔가 한동안 내 스트레스의 원인 이기도 했지…

 

“개 빡치네 진짜.”

“왜 또 밥 잘 먹다가 빡치는데, 일단 침착하고…”

“아니 누굴 호구로 보나,  PPT 제작 맡은 애가 갑자기 컴퓨터 쉬프트키가 안 빠져서 PPT 제작을 못하겠대, 말이 돼???”

“훈아 여기 사람 많다, 조금만 조용ㅎ“

“와 미친 그 와중에 선배한테 대신 해줄 수 있냐며 애교도 부려? 진짜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지금도 있다. 내 스트레스의 주범, 여우 같은 여자애. 도대체 조별과제는 왜 있는 건지, 나는 조만 짰다 하면 이런 사람들이랑 조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우진아, 진짜 미안한데 나 먼저 간다.”

“야, 같이 가. 야! 박지훈!!!”

 

그냥 내가 PPT만들고 이름 빼버리지 뭐. 인생 별거 있나. 과제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이관린 생각이었다. 한번 내 머릿속을 차지한 라이관린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아 몰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떠올려보지 뭐.

 

“와, 이게 아직도 있네.”

 

나는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가 사귈 때의 추억들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못 버렸다는 게 맞겠지. 아무튼 지금에서야 다시 꺼내본 4년 전 우리의 추억은 풋풋하고, 설레고, 귀여웠다.

 

 

“박-지-훈”

“박-지-훈”

 

아니 어디서 이상한 앵무새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는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 내내 저러더니 우리 집에 놀러 와서도 내 귀에 대고 저러는데 진짜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하도 저러고 있어서 왜 부르냐고 물어보면 또 모르는 척, 진짜 애냐 라이관린.

 

“박-지-훈”

“그만해라 좀.”

“박-지-훈”

“야”

“사-귀-자”

“아오 진ㅉ… 어? 잠깐만 뭐라고?”

 

나는 잠시 얼이 빠진 채로 가만히 서있다가 상황 파악을 했다. 그니까 라이관린이 저 앵무새 장난감으로 나보고 사귀자고 한 거지, 지금?

 

“야 너는 무슨 고백을 그렇게 하냐.”

“그럼 어떻게 하는데.”

“딱 분위기 잡고 좀 진지하게 해야지.”

“아아 박지후운~ 그러지 말고 나랑 사귀자아~”

 

진짜 사귀자는 말을 이렇게 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 거야. 근데 이렇게 고백해도 받아주는 사람도 나밖에 없어, 라이관린. 아무튼 뭔가 2퍼센트 부족한 고백을 난 받아들였고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라이관린은 장마라는 이름 뜻과는 다르게 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나서 집에 같이 간 날에도 벚꽃 사진을 찍던 날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근데 그렇게 길가에 핀 꽃을 좋아하고 꽃의 꽃말도 외우고 다니는 애가 이상하리 만치 꽃을 직접 사는걸 본적이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박지훈!”

“뭐야, 우와 주황색 장미?”

“응.”

 

빨간색이나 분홍색 장미는 봤어도 주황색 장미를 보는 건, 그것도 라이관린이 직접 산 꽃을 보는 건 처음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이관린에게 다가갔다.

 

“어제 내가 너무 멋없게 고백한 것 같아서 다시 하려고.”

“오, 그래서 안 사던 꽃까지.”

“주황색 장미, 꽃말은 첫 사랑의 고백.”

“…”

“좋아해, 지훈아.”

“나도… 나도 좋아해, 관린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뜻 깊은 꽃을 받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알고 보니 라이관린은 꽃은 자연 그대로 있는 게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굳이 사지 않는 거였다.

 

라이관린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점점 나는 행복해졌다. 특히 맨날 나를 놀리다가도 챙겨주는 자상함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라이관린은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절했으며, 나는 그 점이 싫었다.

 

「지훈아ㅜㅜ 나 오늘 친구 대신 선도 서느라 같이 등교 못할 것 같아ㅠㅠ」

「알겠어.」

「미안ㅜㅜㅜ 학교에서 봐!」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라이관린이 우리 반 회장이기도 하고, 진짜 싫은 건 싫다고 할 줄 아는 애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러나 라이관린의 친절은 멈출 줄을 몰랐고 따라서 내 스트레스 지수도 점점 상승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라이관린과 빙수를 먹을 생각에 들떠서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 마자 라이관린의 자리로 질주 했다.

 

“이관린! 가자!!”

“지훈아… 재현이가 오늘 청소 못한다고 해서 대신 해주기로 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어?”

“알았어. 나 운동장에 내려가 있을 테니까 얼른 와!”

 

그래, 그럴 수 있지 뭐. 대청소 날이어서 좀 걸리겠지만 길어봤자 20분이면 끝나겠지. 하지만 20분은 무슨 30분이 지났는데도 내려오지를 않아서 나는 다시 반으로 올라가 라이관린을 찾았다.

 

“관린아, 이거 너무 무거워서 그러는데 좀 들어주면 안돼?”

“쌤이 이거 반납하고 가라고 했는데… 대신 해줄 수 있어?”

 

라이관린은 호구인 건지 애들이 하는 부탁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있었다. 지금 자기 애인이 더운 날 30분째 기다리는 건 생각도 안 하나?

결국 그 이후에도 애들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마지막에 문까지 혼자 잠그고 나오는 라이관린을 보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이관린!!”

“아 지훈아 미안… 많이 기다렸어?”

 

평소에는 나만 보면 놀리질 못해서 안달이었던 애가 내 눈치를 보는 걸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지다가도 그 동안 내가 참은 걸 생각하면 화를 안 내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네가 왜 애들 부탁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있냐고. 너 당번도 아니었잖아.”

“그래도 내가 회장이고… 애들이 도와달라 하니까…”

 

나는 라이관린이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으며, 항상 라이관린이 손해 볼 것을 알기에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너 밖에서 기다리는 내 생각은 안 했어? 애들 부탁하는 건 다 들어주면서 이 더운 날 밖에서 혼자 있었던 나는 생각 안 했냐고.”

“진짜 미안해 지훈아.”

“너 전에도 계속 나 기다리게 했잖아. 내가 너한테 다른 애들이랑 다를 게 뭐야!!”

 

괜히 감정이 격해져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내뱉었다. 이 말을 하면 라이관린이 상처 받을 걸 알면서도 뾰족이 가시세운 말, 그 말 한마디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관린아, 너 나한테 되게 특별한 사람이야. 근데 나는 네가 나보다 다른 애들이 더 특별한 거 같아서… 되게 외로워.”

 

차마 상처받은 라이관린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그대로 되돌아 집으로 갔다. 나는 라이관린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놓고서는 어이없게도 라이관린이 상처를 받지 않았기를 바랬다. 나는 라이관린처럼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좀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다음날 라이관린은 의도적으로 나를 피했다. 티가 나는 건지 티를 내는 건지 나랑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시선을 피했고 무언가 나랑 접촉할 일이 생기면 다른 친구와 바꿔서 절대 나와 같이 있지 않았다. 원래 라이관린이라면 진작 나한테 와서 사과를 하거나 말을 걸었을 텐데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화내서 진짜 자기 마음대로 살기로 마음먹은 건가? 아니 나한테 그러라는 뜻은 아니었지!!

 

“지훈아.”

“….”

“잠깐 나올 수 있어?”

 

쟤가 왜 저러나 생각하다가 집중을 왜 이렇게 못하냐며 학교에서만 지적을 5번이나 당했다. 그리고 혼자 하교해 집에 가서도 집중이 안돼서 오늘 공부는 망했다 생각하고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 라이관린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학교에서 라이관린의 행동을 곱씹어 봤을 때 쟤가 이러다 이별선언이라도 할 것 같아 마음을 졸이며 밖으로 나갔다.

 

“미안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 앞으로는 너를 더 챙길게.”

“…”

“이 꽃 이름은 개망초야. 꽃말은 화해.”

 

내 걱정과는 다르게 라이관린은 나를 보자마자 사과했다. 나는 오히려 라이관린이 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 나를 좀 더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라이관린을 위한다며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화내고. 바보 같은 라이관린,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미안해 하는 건지.

 

“내가 더 미안해. 괜히 화내고, 너 상처 줘서.”

“괜찮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근데 왜 아까 나 피했어.”

“너한테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아무튼 너 이제 다른 애들 챙겨주지 마!”

“알았어. 너만 볼게 지훈아~”

“그래. 근데 개망초 예쁘다!”

 

 

우리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 둘 꺼내보다 보니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못 본지도 벌써 4년이 지났더라.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솔직히 말하자면 라이관린을 한번도 잊은 적 없었다. 항상 내 머릿속 한 켠엔 라이관린이 존재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라이관린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적은 손에 꼽았다. 라이관린, 넌 요즘 뭐하고 지내? 항상 나를 놀려도 꼭 나를 챙겨주던, 네 모습 그대로야?

 

“여보세요.”

 

헐, 미친, 진짜 받았어. 번호 안 바꿨네. 아 뭐라고 하지 그냥 끊을까?

 

“여보세요?”

“아… 라이관린?”

“누구세요?”

“나 그 박지훈…”

“박지훈? 파닝고 3학년 2반 박지훈?”

“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일 잠시 만날 수 있냐는 라이관린의 말에 나는 얼결에 괜찮다고 대답 했다.

 

“아악 망할 박지훈. 걔를 만나서 뭘 어쩌겠다고…”

“아냐 만나서 얘기 하고 얼굴도 오랜만에 보면 좋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냐고!!”

 

자아가 1분에도 수십 번 바뀌어 가며 고민했지만 그래도 다음날은 찾아왔다.

 

“안녕, 관린아.”

“YO, 이관린!”

“오, 라이관린~”

“응 지훈아.”

 

멘트를 수십 개씩 준비해가서 인사말로 뭐가 좋을지 연습을 해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라이관린이 나타났다. 망했다, 아니 4년 만에 만나면서 ‘오, 라이관린~’ 이 뭐냐고….

 

“잘 지냈어?”

“응, 너도?”

“뭐, 그렇지…”

“근데 왜 갑자기 연락 하게 된 거야?”

“…그냥 동창들 연락 돌리는 김에. 우리 못 본지 오래 됐잖아.”

“아, 나는 너 보고 싶었는데.”

 

미친. 예나 지금이나 저렇게 훅 들어 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나도 너 보고 싶었는데, 그냥 문득 네가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관린아.

 

“뭐 마실래? 너 아메리카노 좋아했잖아.”

“어… 아메리카노.”

 

4년 전이랑 변한 게 없네. 그때도 내가 아메리카노 좋아한다니까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항상 카페 가면 기억해서 그거 시켜줬었잖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

 

“우리 이제 일어날까?”

“그래.”

 

나는 커피를 반납하는 라이관린의 손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정확히는 반지를 발견했다. 마냥 애인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근데 저게 꼭 커플링 이라는 법도 없잖아. 아, 그냥 물어볼까? 카페를 나서 주변을 걷는 동안에 나는 라이관린의 커플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훈아.”

“관린아.”

“아, 먼저 말해.”

“아냐, 너 먼저 말해.”

“혹시, 애인 있어?”

“아니…. 너는?”

“나도 없어.”

 

짤막한 대답을 하고 해사하게 웃는 라이관린에 나는 4년 전 우리의 추억이 떠올라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뻔 했다.

 

“벚꽃이 엄청 예쁘네.”

“응. 우리 학교 옆에도 많이 폈어.”

 

이렇게 있으니 꼭 우리 커플 같다. 4년 전 우리의 이별은 여느 커플과 다름 없이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3, 수험생의 신분으로 언제까지나 마냥 행복한 연애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날이 갈수록 만나는 시간이 줄었다. 라이관린은 머리가 좋아 나보다는 상대적으로 공부에 힘을 쏟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의 갈등이 발생했었다.

 

 

“아 박지후운, 나랑 놀아달라고오…”

“이것만 끝내고.”

“아까부터 그것만 끝내고 놀아준다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며 펜을 내려놓고 벌러덩 누운 라이관린은 지치지도 않는지 옆에서 계속 자기랑 놀아달라며 졸라댔다. 라이관린은 이미 인서울은 따놓은 당상일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옆에 있다 보면 자연히 내 자신과 라이관린을 비교하게 되었고 그럴 때 마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초라해 보여 힘들었다. 그리고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 보니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주긴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주, 몇 달째 반복되다 보니 나는  점점 지쳐갔고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많아졌다.

 

“관린아, 우리… 그만 할까?”

 

내가 조심스레 꺼낸 한마디에 라이관린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유는 묻지도 않은 채 알겠다고 대답했다. 벚꽃이 떨어지던 봄에 시작된 내 첫사랑은 단풍잎이 흩날리는 가을에 끝났다. 나는 그 길로 휴대폰을 없앴고 따라서 라이관린과 연락도 하지 못했다.

 

“박지훈.”

“….”

“시험 잘 봤어?”

“그냥…”

“힘들겠다. 푹 쉬어.”

 

수능이 끝나고 학교 정문을 나서는데 라이관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관린은 별다른 말 대신 나를 한번 꼭 끌어 안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몇 분 후 도착 한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나와 라이관린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차를 타고 가며 눈물을 흘렸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냥 슬펐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랑이 맞는지 의문을 가졌고 나 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라이관린은 그 때도 내 생각을 먼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훈아. 무슨 생각해?”

“4년 전 우리 생각.”

 

내가 그때 너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 뒷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채 떨어지는 벚꽃 잎만 쳐다보고 있는데 라이관린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우리 이제 고3 아닌데.”

“….”

“다시 만날까?”

 

라이관린의 말을 듣자 마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4년 동안 너 한번도 잊은 적 없어 지훈아.”

 

계속 벚꽃만 쳐다보는 나를 보던 라이관린은 떨어지던 벚꽃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어 잡았다! 벚꽃 잎 잡으면 소원 이루어 지는 거 알지?”

“소원이 뭔데.”

“네가 나랑 다시 사귀는 거.”

 

벚꽃 잎을 잡고 신나 하는 라이관린을 보며 4년 전 라이관린의 고백이 생각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웃어. 박지훈!”

“귀여워서.”

“그래서 우리 다시 사귀는 거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나쁘게 했는데. 아직도 내가 좋아?”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라이관린은 조금 고민하는가 하더니 나에게 대답했다.

 

“나쁘게 안 했어. 했더라도 네가 나한테 나쁘게 하게 만든 내 잘못이지.”

 

말도 예쁘게 하는 라이관린. 이런 너를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 손!”

 

내 손을 가져간 라이관린은 손바닥을 피고 아까 잡았던 벚꽃 잎을 올려줬다.

 

“벚꽃 잎의 꽃말은 절세미인.”

“오늘도 예뻐, 지훈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처럼 벚꽃이 예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꽃의 꽃말을 말해주며 나에게 고백 하는 라이관린이 있다. 4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나도 사랑해, 관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