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떨어지던 날
w. 이브피아제

 

 

 

프로듀스101 1회가 방송되는 4월 7일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모여 헤어메이크업을 하고, 공식의상인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탔다. 1회 방송을 다같이 시청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내 옆자리에는 관린이가 앉았다. 나는 상남자1조, 관린이는 상남자2조였다. 같은 곡을 하다 보니 마주칠 일도 많아 어느새 말을 튼 상대였다. 기획사 평가를 하던 첫날 잘생긴 얼굴로 기본 루틴을 선보이고 랩을 그럴싸하게 했으면서 선생님과 같이 가사 썼다고 순진하게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대만에서 왔다고 해서 신기했는데,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애가 벌써 어눌하지만 의사소통이 된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방송 시간이 밤 11시라서 버스를 탔을 때 이미 창 밖은 깜깜했다. 버스 창문을 거울 삼아 앞머리를 매만졌다. 제작발표회 사진이 반응이 좋아서 비슷하게 해볼까 했는데 샵에서 오늘은 다른 스타일로 해 보자고 해서 머리를 내렸다.

 

“예뻐? 멋있어? 형.”

“응?”

“형 hairsytle.”

“아… 고마워. 예뻐는 음… pretty?? 멋있어… 멋있어는 nice.”

“ok. 형 pretty.”

“뭐?”

 

관린이는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관린이는 어느정도 친해지고 나서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나한테 자주 물어봤는데, 이런 식으로 이 자식 알면서 이러는 거 아냐??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이 웃고 있으니 화도 안 나서 매번 이렇게 넘어가게 됐다.

카메라가 세팅된 곳에서 다같이 모여 생방송을 봤다. 생각도 못 한 장면이나 말이 방송에 나와서 당황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민망했던 부분이 나오기도 했다. 방송 시작과 함께 투표가 시작해서 1화 마지막에 현재 순위가 발표되었다. 관린이가 10위고, … 내가 1위였다. 나야나 엔딩의 윙크며 제발회 사진이 반응이 좋다고 기사도 많이 났고, 얼마 전에 했던 그룹배틀 현장 평가에서도 같은 조에서는 내가 1등이었지만 아직 방송될려면 멀었다. 그런데 내가 1위라니…

 

 

 

형은 혀를 내미는 버릇이 있었다.

놀랄 때, 기쁠 때, 당황할 때, 자기도 모르는 새 빼꼼 나오는 분홍빛 혀가 마치 형처럼 동그랗고 예뻤다. 오히려 일부러 애교를 부릴 때는 보이지 않았다. 1화 생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다 마지막에 순위발표에서 1위를 했을 때, 고개를 힘껏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그룹배틀 현장 투표에서 1등을 했을 때처럼 귀가 발개지고 입이 벌어지며 혀가 살짝 나왔다. 그 분홍빛 혀를 바라보며 귀뿌리가 간질거리는 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이 부르터 경계선이 흐려진 입술을 핥을 때, 버릇인 듯 다문 입술 사이로 혀를 빼꼼 내밀 때 그 혀에 닿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기의 볼을 찔러보듯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고 싶었다. 부드러울까? 촉촉할까?

엠카운트다운에 나간 나야나 무대 이후에, 형은 무대의 엔딩을 장식한 화사한 윙크로 프로그램 처음부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마치 1등 자리는 형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이 연습하고 같이 촬영한 우리들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엔딩을 위해 형이 얼마나 많이 윙크를 했는지. 그룹배틀에서 같은 곡을 준비하며 친해지고 나서 한국어 공부라는 핑계로 귀찮게 굴어도 형은 한 번도 싫어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줬다. 형이 화를 내는 건 연습하다 문제가 생길 때뿐이었다. 언제나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도 형처럼 되고 싶었다. 빛나는 사람, 빛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형은 순위가 떨어져도 의연했다. 대놓고 곤란한 – 예를 들면 센터를 넘길 생각이 있냐 – 질문을 받아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적당한 대답을 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자신감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관린이는, 그애는 항상 단정했다.

입을 크게 벌리는 일도 별로 없었고, 가끔 입을 벌리며 웃어도 입 속이 잘 보이지 않는 묘한 단정함을 갖고 있었다. 프로그램 내내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자켓 단추를 여미는 희고 큰 손도, 동그랗고 크고 반짝이는 눈동자도, 붉은 입술과 그 속에 흰 치아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일락말락 하는 붉은 혀도, 촬영 초반에 자신감을 잃었을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2위에서 방출 위기인 20위 후보,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을 것 같은 순간에도 표정이 굳어질 뿐 그애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흔들렸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잘 해 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당연히 20위 안에 있을 거라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아무런 위로도 격려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입이 제멋대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걸 물어봐서 어쩔 건데? 쟨들 알겠어? 지금 제일 멘탈 나간게 누군데 뭐하는거야? 높디높은 2등 자리에서 까만 뒤통수를 보다 도저히 발표를 볼 자신이 없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듣지 못할 그애에게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직은 아니야, 관린아.”

 

너는 11등 안에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니 괜찮다고 의연하게 말했지만 나는 손이 덜덜 떨렸다. 카메라 앞이니까 필사적으로 버텼다. … 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4분할에 관린이가 없을 때부터 표정이 엉망진창이었다. 동공지진이라는 말 그대로에 아직은 아니야 관린아, 는 심지어 방송에 나왔다. 자리에서 혼잣말로 한 건데… 관린이도 이걸 봤을거라 생각하니 어디 숨어버리고 싶었다.

 

 

 

악몽 같았던 3차 순발식이 끝나고 작별의 시간이 왔다. 형의 뒤에 바짝 붙어 졸졸 따라다녔다. 아까 단상 위에서 여기서 끝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더니 형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가 꺼지고 하나 둘 촬영장을 떠났다. 형은 그제야 기운이 빠진 듯 의자에 털썩 앉았다. 조금 눈치를 보다 옆자리에 슬쩍 엉덩이를 걸쳤다.

 

“너 괜찮아?”

“뭐가요?”

“미안”

“뭐가?”

 

형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한번 핥고 말했다.

 

“아까… 너가 제일 힘들었을 텐데 그런 말 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손이 움직일 것 같아서. 잠깐 드러난 혀를 만지고 싶어서.

“아니, 아냐. 괜찮아요.”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소속사에서 함께 온 형들은 모두 떠났고 나는 혼자였다. 101명일 때는 카메라 한 번 받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받으면 긴장부터 했다. 언제 어디서 한 말이 맥락과 상관없이 편집에 이용될 지 모르니까. 누군가와 같이 데뷔하고 싶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내 순위를 지키는 것만 해도 힘겨웠다.

여기서 친해진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같이 데뷔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조용히 옆에 앉아있는 그애. 오늘 어쩌면 가장 힘들었을, 그런데도 멋있게 버텨내고 살아남은 그애. 옆을 보지 않아도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는 그애와 같이 데뷔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같은 실수가 될까봐 목젖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눌렀다.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2위를 해 놓고 같이 데뷔하고 싶다니, 약올리는 것처럼 들리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 때, 그애가 말했다.

 

“형, 같이 데뷔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애가 했을 때 뜨거운 덩어리가 토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그 덩어리를 다시 욱여넣기 위해. 하지만 꾹꾹 누르지 못한 한 모금이 튀어나왔다.

 

“… 나도.”

 

어느 새 손에 힘이 풀렸고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스탭이 이제 그만 가라고 할 때까지.

 

 

 

마지막 데뷔평가가 시작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마지막까지도 그애와 나는 같은 팀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같은 팀을 해 보고 싶었는데. 그나마 이번에는 팀별 순위라든가 그런 대결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화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 지금까지 방출된 연습생들도 모두 불러서 무대를 같이 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느긋하게 대화는커녕 바로 리허설에 들어가야 해서 인사만 겨우 했다. 사실 다음 날 모든 게 결정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이제 자다가도 음악만 들리면 일어나서 출 수 있을 듯 한 나야나 리허설은 금방 끝났다. 그리고 남은 건 데뷔평가곡 핸즈온미, 수퍼핫이었다. 두 조 모두 짧은 시간에 안무를 만들어서 익히느라 힘겨웠다. 리허설을 마치고 마지막 모니터링을 하는 사이에, 그애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지훈형, 잠깐만… 괜찮아?”

 

락커실까지 나를 데려가서 그애가 한 얘기는…

 

 

 

우리는 프로그램 내내 겉으로 접점이 없었다. 기획사 평가, 나야나 등급평가, 그룹 배틀, 포지션 평가, 컨셉평가까지. 그래서 방을 같이 쓴 적도 없었다. 아직 팬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우리를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그냥 TV를 보는 시청자들도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친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친할 수 있었다. 나는 형처럼 되고 싶었고 거침없이 형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형은 형을 경쟁자로 대하지 않는 나를 편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합숙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끼리 붙어 다녀야 했다. 같이 일어나서, 같이 연습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 사이에 시간이 나면 우리는 약속한 듯 연습실 복도에서, 정수기가 있던 휴게실에서 만났다. 휴게실에는 대부분 누군가가 있었고, 남자애들 여럿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떠들썩했다. 아주 가끔 둘이 있을 때에는 오히려 둘 다 말이 없었다. 어느 새 우린 침묵 속에서 편안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이 다가오니 문득 두려워졌다. 몇 달을 함께 했지만 우린 소속사가 다르다. 만약 같이 데뷔한다면, 적어도 내년까지는 같이 활동할 수 있었다. 같은 방을 써 볼 수도, 같은 의상을 입어볼 수도, 지금처럼 말없는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형은 데뷔할거다. 늘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단 한번도 3위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형의 태도를 생각하며 순발식에서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20위에서 11위 안으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을까? 이제 남은 20명은 대부분 11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형처럼 한 번도 11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사람도 몇 명이나 있었다.

생방송 전날, 긴장과 걱정이 극에 달한 나는 약간 넋이 나간 상태에서 형을 붙잡았다. 락커룸까지 형을 데려와서 마주보니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하려던 거지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형,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그래.”

“내일, 내일 같이 11위 안에 들면 뽀뽀해줘.”

“뭐??”

“그러면 나 진짜 열심히 할 수 있을것 같아. 물론! 열심히 할 건데, 더 열심히…”

“… 알았어.”

“어?”

“해줄게. 그러니까… 같이 데뷔하자, 꼭.”

 

형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휙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려 도망가버렸지만 귀가 빨개진 게 다 보였다.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내일, 정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해야지.

 

 

 

프로듀스101의 마지막 회, 생방송 날이었다. 사실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한쪽 눈에는 다래끼가 생기려는 것인지 붓기 시작했고 뱃속이 부글거렸다. 오프닝 나야나 무대를 마치고 나자 땀이 뚝뚝 떨어졌다. 모든 VCR과 무대가 끝나고 마지막 순발식이 시작됐다. 삼각형 모양으로 공연장 한가운데에 서있으니 수천 명의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선의 무게가 느껴졌다. 땀방울이 맺혀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손을 움직여 닦는 것조차 힘겨웠다. 처음으로 이름이 불린 진영이가 너무 행복해보였다. 시선에서 벗어나 앉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한명 한명 이름이 불렸다. 7위, 드디어 그애의 이름이 불렸다. 맨 뒷줄에서 축하를 받으며 한걸음씩 나오는 관린이를 – 나중에 알았지만 –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그애가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콱 끌어안고 마구 흔들었다. 체격이 큰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팔이 길어서인가 내 어깨가 다 감싸였다. 포옹을 풀면서 잠깐 눈이 마주친 그애는 행복 100%의 얼굴로 웃고 있었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소감을 말하고 맨 처음 선보인 루틴을 보여주고 7위 자리에 가서 앉으면서 그애는 여전히 자켓 단추를 풀었다. 방송의 긴장감을 위해서일까, 순위 사이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 3위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아 다니엘 형과 저쪽 단상으로 이동했다. 못박힌 듯 서 있다가 잠깐이라도 걸으니 살 것 같았다. 장내에 다니엘 형의 슬로건이 많아 내가 1등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예상대로 2위였다. 소감을 마치고 한 명씩 포옹하며 자리로 향하는데, 그 애가 잊고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형, 뽀뽀해주기로 했잖아요.”

“어?”

 

잊고 있었는지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괜히 골이 났다. 나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그 생각만 했는데. 이제 우리 같이 데뷔하는거라고. 심지어 나랑은 포옹도 아니고 엄지척으로 지나가려고 하는 걸 우진이형이 보내줬다.

 

“여기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약속은 지켜야 되잖아요, 형.”

 

포옹은 풀었지만 팔을 붙잡은 채 조금 졸라봤다. 하지만 형이 계속 곤란해하면 포기하려고 했는데, 잠시 고민하던 형이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볼 대봐, 볼 대봐.”

 

고개를 살짝 숙였더니 쪽 하고 볼에 따뜻하고 말랑한 입술이 닿았다.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렸다. 형은 부끄러운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음 사람에게 가 버렸지만 이제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볼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꺼질 때까지 꾹 참기로 했다. 방송이 끝나고 대기실에서는 형의 어머니가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을 걸어주셨다. 광대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형이 부모님에게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을 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은 지켜야 되잖아요, 라는 한 마디에 결심했다. 볼을 대라고 손짓하니 그 애가 고개를 숙여왔다. 약간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볼에 뽀뽀를 쪽 했는데 굉장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내적 비명을 지르며 최대한 태연하게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중에 서치를 해 보니 팬이 촬영한 동영상도 있고, M2에서 찍어 올린 영상은 심지어 고화질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뽀뽀를 해 달라고 한 그애도 그애지만, 나는 왜 해준다고 했을까? 나중에 해주겠다고 거절하면 될 걸 왜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것도 생방송 중이었는데 거절하지 못하고 해줬을까? 그런 내 감정이나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데뷔 스케줄이 몰아쳤다. 대충 짐을 싸서 리얼리티 촬영과 함께 숙소에 들어가고, 녹음과 안무 그리고 광고촬영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매칭 컨셉의 리얼리티에서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다. 하루종일 팔이 연결된 채 지내는 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둘 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유일하게 불편했던 시간은 잘 때였다. 안 그래도 좁은 침대에서 남자 둘이 같이 자라니… 바짝 붙어 누우니 긴장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느리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렸다. 잠든 걸까? 순간 그애가 뒤척이더니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팔이 얹혔다. 순간 흡 하고 숨을 멈췄다. 침대가 너무 좁아 팔을 내려둘 자리도 없어 가슴 위에 양팔을 두고 있었는데 그 위에 그애의 팔이 얽혔다. 길고 말랐지만 체온이 높은 손이 손가락의 모양까지 느껴져 잠이 다 깨버렸다. 옴짝달싹 못 하고 긴장한 채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싶었다.

 

 

 

처음 쓰는 숙소에서 우리는 (다른 형들과 함께) 같은 방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고개만 슬쩍 돌리면 형의 침대가 보였다. 생방송 이후로 계속 생각했다. 왜 나는 뽀뽀해달라는 얘길 꺼냈지? 형은 왜 해줬지? 왜 나는 형이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가 궁금할까? 친한 동생이 강아지 키우고싶다고 하면 여깄잖아, 라며 강아지 흉내를 내 주는 게 한국에서는 보통인가? 솔직히 대만에서는 동성을 좋아하는 게 보편적이지는 않아도, 그렇게 낯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번화가에 가면 껴안다시피 스킨십을 하고 있는 동성 커플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다르다고 알고 있었는데 형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가끔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형을 대하는 내 태도도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자꾸 형에게 시선이 가고, 형을 끌어안고 싶어지고, 내 옆에 두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런 나를 형은 그냥 뒀다. 심지어 받아주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8월 17일 엠카운트다운 무대를 마치고 간 팬사인회 포토타임에서 형을 끌어안고 볼에 입술을 들이댔는데도 형은 밀쳐내지 않았다. 그러더니 다같이 앉아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사진을 찍을 때 혼자 반대쪽, 그러니까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 때는 모른 체 했지만 어차피 팬들이 촬영한 영상이 다 떴다. 형은 심지어 쉿!하고 모른척해달라는 듯 웃었다. 형, 대체 나한테 왜 그래…? 형이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웃고 있으면 괜히 심통이 났다. 형은 나랑만 놀아야 한다고 칭얼대는 어린애처럼 자꾸 옆에 가서 형에게 치대거나 형을 데려왔다.

 

대만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나는 형에 대한 마음을 결국 깨달았다.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는 형의 뒷모습만 바라봐도 즐거웠다. 호텔에 준비된 웰컴푸드는 간편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과자 종류였는데, 한 개밖에 없는 화과자가 있었다.

 

“형 이거 내가 반만 먹을테니까 나머지 반은 형 먹어.”

“지금 줘. 아~~”

 

눈은 모니터를 보고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턱만 움직여 과자를 달라고 벌어지는 입술 안으로 도톰한 분홍색 혀가 보였다. 과자를 먹여주는데 입술에 손가락이 닿았다. 따뜻하고 폭신했다. 순간 거기가 뻣뻣해졌다. 급히 소파에 앉아 대충 벗어둔 집업으로 덮어버렸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가라앉히려고 해 봤지만 아직도 손 끝에 형의 입술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감촉이 생각날때마다 계속 딱딱해지는 게 느껴졌다.

 

“관린아, 안 심심해?”

“히끅!”

 

그 때 갑자기 형이 나를 불렀고, 깜짝 놀라 씹던 화과자가 꿀떡 넘어가며 딸꾹질을 했다. 내가 딸꾹질을 하자 형이 나를 돌아봤는데, 과자를 오물오물 씹는 입술이 크게 확대된 것처럼 입술밖에 안 보였다. 한편으론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지만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저 입 안에서 아까 본 분홍빛 혀가 움직이고 있을 거라는 상상까지 하자 어느 새 딸꾹질은 멈추고 침이 꼴깍 삼켜졌다. 형이 뭔가 말을 걸려는 순간 화면에서 두다다 총소리가 나고 형은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아까처럼 게임하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음 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첫사랑을 하고 있었다.

 

 

 

프듀 방송때부터 그애가 나를 잘 따르고 있다는 건 유명했다. 그래서 그애가 내 주변에 있는 거에 익숙해진 나였지만, 언제부턴가 그애는 조금씩 느낌이 달라졌다. 먼저, 키가 쑥쑥 컸다. 마른 몸이었지만 원래 골격이 있어 후리후리했다. 짧은 리패키지 앨범에서 우리는 등을 맞대는 안무를 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봤더니 그애의 어깨가 부쩍 올라가 있었다. 분명히 생방송에서 뽀뽀할때까지만 해도 저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다음엔, 손이 달라졌다. 손의 생김새나 크기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게 닿는 손의 느낌이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냐고 하면 정확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마지막으로는 거리감이 달라졌다. 그애가 내 가까이에 있는 건 익숙했지만 예전에는 두 발짝 옆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한 발짝… 아니 거의 반 발짝에 가까웠다. 가끔 어, 이건 좀 너무 가까운데?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아서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대낮에도 늦가을의 평창은 추워서 우린 롱패딩을 둘러입은 채 리허설 중이었다. 늘 그렇듯 동선을 맞춰보는 무대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는 놀고 있었는데, 저 쪽에 있던 그애가 어느 새 나타나더니 툭툭 치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은근슬쩍 뒤에서 껴안아 왔다. 그애가 이럴 때마다 묘하게 소유권이랄까 영역표시랄까 그런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 때마다 싫지 않은 내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애가 나를 여자처럼 대하는 건 또 아니어서 혼란스러웠다. 좋아하는 여자를 대하듯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한 형을 대하듯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애의 마음도 내 마음도 모르겠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스무살이 되는 12월 31일 밤, 우리는 MBC 가요대제전 무대 위에 있었다. 스무 살이 된 소감을 간단하게 인터뷰했다. 하지만 정작 스무살이 실감난 건 숙소에서 형들이 준 맥주캔이었다. 그 전에도 숙소에서 간혹 술을 마시길 했지만 나와 우진이에게 건네진 맥주캔은 처음이었다. 처음 마셔보는 맥주는 씁쓸하고 고소한 탄산음료같았다. 우리가 어색하게 술을 홀짝거리는 동안 제일 먼저 씻고 온 그애는 내 등 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들이 치킨을 권했지만 그애는 양치질을 했다며 거절하고는 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500ml 캔 하나를 마시고 나니 이게 알딸딸하다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붕 뜬 것 같은 기분. 형들은 얼굴이 빨개졌다며 나를 놀렸다.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그애를 돌아봤다.

 

“나 얼굴 빨개에?”

“… 쫌.”

 

얼굴이 뜨끈하고 둥둥 뜨는 느낌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한 캔을 마시고 나니 술도 별 거 아닌데? 싶어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만 마시라며 주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서운해서 입이 댓발 나왔다.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내가 왜 이렇게 실실거리다 삐죽거리는 거지. 이게 술에 취했다는 건가?’ 하고 있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엔 졸음이 밀려와서 하품을 쩌억 했다.

 

“지훈이 자야겠다. 졸려?”

“내가 지훈형 데려다줄께요.”

 

그애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붙잡아 일으켰다. 팔이 가뿐하게 잡혔다. 언제 이렇게 손이 커졌지? 아니 원래 크긴 했지만 이 정도로 컸던가? 갑자기 일어났더니 눈앞이 핑글 돌아 휘청거렸다. 어깨를 감싸오는 팔도 길었다. 그 움직임에 힘없이 흔들리던 머리가 어깨에 얹혔다. 언제 이렇게 어깨가 높아졌지? 우진이는 아직 술자리에 있어 큰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형 침대 올라갈 수 있어? 아니다 그냥 여기서 자요.”

“아냥 올라갈랭…”

“형 지금 올라가다 떨어져.”

“안 떨어졍…”

 

나도 모르게 칭얼거리며 그애를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고개를 더 젖혀야 했다. 반 년 전에만 해도 고개만 살짝 숙이면 볼에 뽀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허리를 굽혀야 할 것 같았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병아리같았는데 이제는 기린같이 커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애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내가 그래도 한 어깨 하는데 품에 쑥 들어갔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낯선 기분에 꼼지락댔더니 더 꽉 안았다. 이렇게 힘이 셌었나?

 

“알았어 여기서 잘께…”

 

어물어물 그애의 침대에 누웠다. 그애는 이불을 살뜰히 덮어주고 내 침대에 가서 누웠다. 계속 이상한 기분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 아기같던 관린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왜 나를 그렇게 끌어안았지? 난… 왜 싫지 않지?

 

 

 

형을 좋아한다고 자각한지는 오래됐지만 도저히 고백을 할 수가 없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절당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아팠다. 내가 형을 좋아해서일까, 형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것도 거절하지 않고, 그때처럼 끌어안는 것도 받아주는데,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나면서 마음은 조금씩 쌓여서 굳어갔는데, 숙소를 옮기면서 우리는 아예 다른 집으로 갈라졌다. 굳어진 마음이 형의 빈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형을 볼 때마다 당장 팔을 잡아당겨 안고 싶다가도 내버려두고 싶고, 형의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으면 화가 났다가도 옆에 가는 건 주저하게 되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형이 야속하다가도 다른 사람을 보고 웃는 형이 미웠다. 첫사랑은 그렇게 나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스케줄에 떠밀리고 첫사랑에 휘둘리다 보니 어느새 다시 봄이었다. 새로 옮긴 숙소에도 벚나무가 있었다. 꽃봉오리가 생기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터지듯 꽃이 우르르 폈다. 아침 일찍 샵으로 출근하는 길에 아침 햇빛에 비친 벚꽃이 너무 예쁘다고 모두들 감탄했다. 그 때, 거센 아침 바람이 불어 꽃잎이 비처럼 내렸다.

 

“우와아- 너무 예뻐. 그치 관린아?”

 

동그랗게 커진 눈이 반짝거리고, 상기된 볼은 꽃잎보다 붉었다. 나를 보며 웃는 얼굴 뒤로 형을 위한 배경처럼 꽃잎이 휘날렸다. 활짝 웃어서 벌어진 입술 사이로 또다시 분홍빛 혀가 잠깐 비쳤다. 그 순간 가득 찬 마음이 꽃잎 가득한 풍선처럼 터지는 게 느껴졌다. 형의 팔을 붙잡아 살짝 당기고 허리를 굽혔다. 형은 늘 그렇듯 거부감 없이 끌려왔다. 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 좋아해. 정말 좋아해요.”

 

몸을 일으켜 형을 마주보고 씩 웃었다. 형이 거절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상처받겠지만 그래도 형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좋아한다는 게, 그, 그, 그러니까… 그 “좋아한다”는 말인가? 순간 그 동안 관린이의 행동과 내 마음과…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관린이가 그렇게 내 주위를 맴돌고 치댔던 건 나를 좋아해서였고, 그게 싫지 않았던 건 나도 관린이를 조, 좋, 좋아해서였던 거다. 내가 라이관린을 좋아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관린이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원래도 잘생겼는데 더 잘생겨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마구 뛰어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대답, 어, 대답을 해줘야 되는데 근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나? 으악!! 그런 말을 어떻게 하지? 그냥 알았다고 해? 알긴 뭘 알아 이 바보야!!!

 

“괜찮아, 형.”

 

놀라서 고개를 드니 관린이가 약간 슬프게 웃고 있었다. 뭐가 괜찮다는 건데?? 그리고 내 머리를 토닥토닥하더니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이게 아닌데, 그게 아냐 관린아!!!

 

“관린아!!!!!!”

 

관린이를 부른다는 게 너무 큰 소리가 나와서 합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매니저형이랑 멤버들이 왜 그러냐고 쳐다봤지만 고개를 붕붕 소리가 나도록 저었다. 그리고 후다닥 관린이 옆에 가서 같이 걸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미친듯이 고민하면서… 하지만 결국 차에 탈 때까지 나도 관린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차에 올라타서 뒷좌석으로 가려는 관린이의 소맷자락을 붙잡아 옆에 앉혔다. 어깨와 팔이 닿는 게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부분에서 맥박이 뛰는 것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렇다고 팔을 떼기는 싫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말하면 다 들릴텐데 어떡하지? 하지만 관린이가 내가 싫다고 하는 줄 알면 어떡해? 빨리 말해야 하는데… 머리가 터질 것 같이 고민하던 도중에 관린이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잡아본 적 없는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됐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웬걸, 과장하면 손을 때리나 싶을 정도로 세게 내려놨다. 내 손이 달달 떨리는 게 느껴졌다. 와 진짜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을 조금씩 움직여 손깍지를 꼈다. 깍지를 끼고 한번 꼬옥 잡았다. 제발 마음이 전달되길 기도하면서.

 

“형…”

 

관린이도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겠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관린이가 손에 힘을 꾸욱 주더니, 갑자기 반대쪽 손으로 나를 확 끌어안고 와하하 웃었다. 뒤에서 멤버들이 “뭐야 뭐?? 왜??” “잠좀 자자…” 하고 웅성거렸고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했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왠지 기뻐져서 같이 웃어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마침 벚꽃길을 지나고 있었는지 꽃잎이 몇 장 날아들어왔다. 또다시 봄, 하지만 조금 달라진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