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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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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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우물가 옆에는 유독 큰 벚나무가 있다. 그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벚꽃요정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애들 사이에서 그 말은 마치 유행처럼 퍼졌다. 그렇게 어느 유행처럼 벚꽃 잎 잡기는 금방 시들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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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야 박지훈 너 그 말 수업시간마다 하는 거 알지?”

“그냥 혼잣말이야. 혼잣말.”

 

언제 나와 이야기 나눴냐는 듯이 내 짝꿍 배진영은 수업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고 계셨다.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아 공책에 꽃그림을 그리다가 창문을 보니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정말 봄이 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봄. 하릴없이 창문 밖 벚꽃구경만 하다가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평소처럼 내 옆에 진영이는 열심히 공부할 책들을 챙기고 있었다.

 

“너 오늘도 바로 독서실 갈 거지?”

“응. 그래야지. 나 오늘 계획한 거 다 끝내야해.”

“진짜 너는 분명 전생에 공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었을 거야! 쳇, 나간다.”

 

그렇게 진영이를 두고 먼저 학교를 나와서 걸어가는데 내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우물가 옆 벚나무. 그날따라 벚나무가 굉장히 화사해 보였다. 마치 집에 가는 나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처럼. 괜히 벚나무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근래에 다시 학교에 퍼진 벚꽃 잎 잡기 유행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벚꽃이 피기 시작했던 때부터 인 것 같았다. 학교 애 중 누가 벚꽃 잎을 잡고는 소원을 빌었는데 이루어졌다나 뭐라나. 그 때부터 벚꽃 잎 잡기가 유행이 되었다. 그 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오늘은 꼭 그게 진짜일 것만 같았다.

 

“저… 벚나무님 정말 벚꽃요정이 있나요?”

 

나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처럼 바람이 불 더니 벚꽃들이 흩날렸다. 그 앞에 서서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흩날리던 벚꽃 잎 하나가 내 손바닥 안으로 떨어졌다.

 

“오 잡았다.”

 

진짜 잡히다니. 나도 모르게 손 안에 내려온 벚꽃 잎을 쥐고 두 손바닥을 모아 소원을 빌 준비를 했다.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안녕?”

 

응?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이상하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내 앞에는 벚나무만 보였다. 잘못 들은 건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는 핑크색옷을 입고 핑크색 선글라스를 쓴 남자 한명이 서있었다.

 

“안녕?”

“누구세요? 저 부르신 거예요?”

“응 맞아.”

“누구신데요?”

“나? 벚꽃요정.”

 

어? 벚꽃요정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지? 순간 나는 내가 헛것을 보나 생각이 들었다. 진짠가 싶어 자기를 벚꽃요정이라고 부르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도 지지 않고 내 눈을 빤히 마주했다. 곧 우리의 눈 마주침은 알 수 없는 눈싸움이 되었다. 다시 눈을 감고 뜨는데 내 앞에는 여전히 그 남자가 서있었다.

 

“진짜로 벚꽃요정님이세요?”

“그래. 네가 벚꽃 잎을 잡아서 내가 나타난 거야.”

“그러면 저 소원 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 소원을 말해봐 들어줄게.”

“소원 몇 개 들어줄 수 있는데요?”

“한개.”

“한개요?”

“응. 그리고 기한이 있어. 벚꽃이 지기 전까지야.”

“…….”

“벚꽃이 지면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어. 네가 잡은 그 벚꽃 잎을 쥐고 나를 부르면 내가 다시 나타날 거야.”

“어…”

“그럼 소원이 정해지면 나를 불러.”

 

그 말과 함께 벚꽃요정이라고 자신을 말하던 남자가 사라졌다. 바람은 언제 불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리가 조용했다. 잠시 무언가 홀린 건가. 그렇다 기엔 내 손에 있는 벚꽃 잎의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손안에 고이 담겨있던 벚꽃 잎을 얼른 책상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책상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그걸 지켜보았다. 정말 이게 꿈이 아닌가?

 

“악!”

 

나도 모르게 내가 볼을 꼬집고 있었다. 아 진짜 아픈데. 그래도 그걸 로는 부족했다. 방을 나와서 티비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지금 꿈 아니지? 하고 말을 걸었다가 가서 공부나 하라고 혼이 났다. 그날 꿈에도 우물가 옆 벚나무가 나왔다. 그 앞에서 나는 요정님과 흩날리는 벚꽃 잎 사이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니 키스라니! 나는 너무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내가 외롭고 연애가 하고 싶은 나이라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남자요정이랑 키스를… 원래는 아침알람을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일찍 일어난 데다 잠도 안 오고 해서 그냥 일찍 준비를 했다. 방을 나서려는데 책상 위 벚꽃 잎이 눈에 밟혔다. 너무 작기도 하고, 또 엄마가 청소하다가 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되어 집에 두고 가기가 괜히 마음에 걸렸다. 결국 책상 위에 있는 벚꽃 잎을 쥐고 집 밖을 나왔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벚꽃요정님하고 불렀는데 정말 내 눈앞에 어제 본 핑크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소원은 정했어?”

“우와. 진짜 꿈이 아니었구나.”

 

조금 짜증나는 듯 인상을 쓰던 벚꽃요정님은 핑크색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내 눈을 쳐다봤다.

 

“내가 소원이루고 싶을 때 부르라고 했지?”

“근데 벚꽃요정님은 이름이 뭐예요?”

“그건 왜 궁금한데”

“아니 요정님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안 맞아서요. 요정은 아담하고 귀염 귀염 한 이미지인데 지금 요정님은 키도 크고 잘생기고 그냥 모델 같아요.”

“내 이름은 라이관린이야. 아직 못 정했다는 거지? 그럼 소원 정해지면 다시 불러.”

“어 잠깐만요!!”

“왜?”

“저 지금 학교 가는 길인데 보다시피 혼자거든요. 학교까지만 같이 가주면 안 돼요? 이건 절대 소원이 아니에요.”

 

관린요정님이 날 흘끗 보았다. 정말 귀찮네 싶은 표정을 지어서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아무런 말 없이 그냥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 주었다. 나는 힐끔힐끔 요정님을 관찰했다. 그런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요정님이 나를 쳐다봤다.

 

“근데 관린요정님은 언제부터 벚나무 안에 있던 거예요?”

“그런 거는 생각 안 해봤어. 그냥 봄이 되면 이렇게 밖에 나올 수가 있어”

“그러면 여름, 가을, 겨울에는 어디에 있어요?”

“그냥 그 나무 안에서 잠을 자”

“그럼 저 벚나무한테만 해당하는 거예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는 한 번도 저 나무 말고 다른 나무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깐”

 

 

학교 앞에 도착하자 관린요정님은 언제 옆에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인사라도 해주고 가지. 서운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학교 옆 문구점으로 가서 손 코팅지를 사 조심스럽게 벚꽃 잎을 올리고 코팅을 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너무 작고 얇아서 어디로 없어질지, 언제 그 잎이 찢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코팅한 벚꽃 잎을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요정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까만 눈, 오뚝한 코, 빨간 입술. 입술 하니깐 괜히 아침에 나온 키스 꿈이 생각났다. 아니 키스라니! 괜히 혼자 귀가 빨개지고 목이 간지러워서 목을 긁었다.

 

“야 박지훈 너 광대 왜케 올라갔냐?”

“어..? 어?! 어 진영아 안녕”

“뭐야 무슨 생각하기에 그렇게 놀래.”

“아니 그냥 봄이라서.”

“봄바람이 제대로 들었네. 1교시 숙제는 했어?”

“숙제! 아 맞다 나 보여줘!”

“으이그 너 그럴 줄 알았다. 여기”

 

무슨 소원을 빌어야할까 하는 고민과 함께 수업을 듣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괜히 입맛도 없고 젓가락을 휘적휘적하고 있는데 앞에서 나 한번 반찬 한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왜 또 뭔데 뭐야.”

“응? 뭐가?”

“너 무슨 고민 있으면 밥 안 먹고 괜히 반찬한테 심술부리잖아”

“흠… 그게 있잖아”

“응 뭔데.”

“너는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무엇을 제일 말하고 싶어?”

“나 건물주? 서울대 장학생? 그건 왜 갑자기.”

“내가 사실 어제 하굣길에 우리 예전에 유행처럼 퍼졌던 벚꽃 잎 잡기 있잖아. 그걸 했는데 진짜로 벚꽃요정이 나타났어.”

“……………”

“그래서 나한테 소원을 말하라고 한 개만 들어줄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막상 생각나는 소원이 없는 거 있지.”

내 말을 유심히 듣던 진영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찡그린 얼굴을 하고 한참 나를 보던 진영이가 그랬다.

“너…”

“응!”

“꿈꾼 거 아니야? 벚꽃요정이 어디 있냐. 더 안 먹을 거면 이제 일어나자 나 오늘도 계획한 공부 끝내야해.”

 

그럼 그렇지. 배진영이 믿어줄 리가 없었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진영이와 함께 급식실을 나왔다. 자연스레 나는 운동장 쪽을 보았다. 벚꽃 잎이 마구 마구 흩날리고 있었다. 이제는 벚꽃만 봐도 관린요정님이 생각났다. 아 나 진짜 봄바람 든 건가. 큰일이네.

 

“진영아, 근데 벚꽃요정님 사실 남자였다? 그것도 되게 모델같이 키 크고 잘생겼어.”

“응, 그래. 지훈아 너 드라마작가해도 되겠다.”

진영이는 무심한 듯한 표정을 하고는 로봇처럼 감정 없이 대꾸했다.

“아 진짠데! 내가 너니깐 말해주는 거지!”

“그래그래. 꼭 요정 만나서 소원 빌어라.”

 

옆에서 계속 말을 걸까 봐 배진영은 잽싸게 자기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고 귀에 꽂았다. 그래 너는 정말 꼭 서울대 갈 거야. 내가 얼마 없는 내 공부 운까지 다 너 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코팅해두었던 벚꽃 잎을 꺼내서 괜히 이러 보고 저리보고 하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점심시간도 아직 남았고 배도 고프기에 매점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오늘 점심메뉴가 맛있었는지 매점을 가는 길이 한가했다. 아 진짜 무슨 소원을 빌지? 치킨 무제한 먹기? 그러면 어디 치킨 집으로 무제한 먹어야 하지? 아 어떡하죠 요정님? 혼잣말을 하며 매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너 그냥 나 또 불렀지?”

 

거짓말처럼 요정님이 눈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봤다고 그새 요정님의 존재가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 관린 요정님. 밥은 드셨어요?”

“밥? 아니 왜?”

“저 매점 가는데 매점에서 파는 컵 떡볶이가 진짜 맛있어요. 여기 앉아있으면 제가 사올게요. 기다려요!”

 

나의 최애간식 떡볶이를 관린요정님에게 맛보여 드릴생각에 신이 난 나머지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매점까지 달려가 떡볶이를 샀다. 그렇게 매점에서 떡볶이를 사서 걸어가는데 운동장을 보며 앉아있는 요정님이 보였다. 그 뒷모습이 왠지 되게 씁쓸해 보여서 순간 나도 모르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정님 여기 떡볶이요!”

 

관린요정님은 핑크색선글라스를 벗고 종이컵 안에 담긴 떡볶이를 요리조리 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괜스레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을 했다.

 

“어때요? 맛있죠?”

“…….”

 

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관린 요정님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순식간에 다 비우고 그때서야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아니 가만히 있을 땐 그렇게 냉 미남이 따로 없더니 웃으니깐 뭐야. 진짜 사람 설레게. 그 순간 가슴에서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느껴졌다. 뭔가 머리도 멍해지고 괜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요정님의 쥐고 있는 종이컵을 쳐다봤다. 종이컵을 잡고 있는 손이 보였다. 손도 크고 멋있네. 하면서 나도 모르게 손만 보고 있었는지 요정님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거 진짜 맛있다. 다음에도 나 불러줘. 나 이거 먹을래 떡볶이.”

“……”

“왜 대답이 없어? 너 설마 이거 너 혼자 다 먹을 거야?”

 

갑자기 아까의 그 미소를 또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떡볶이를 다 사다가 요정님께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떡볶이 먹으러 갈 때마다 요정님 부를게요!”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요정님은 한 번 더 웃어주셨다. 관린요정님이랑 더 있고 싶은데. 점심시간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괜히 교실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못 들은 척 관린요정님에게 말을 걸려고 하자,

“너 이제 수업 들으러 가야겠네. 수업 잘 들어. 떡볶이 잘 먹었어.”

 

관린요정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고는 사라지셨다. 난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고 요정님이 앉아있던 자리를 멍하니 보았다. 비워진 종이컵만이 요정님이 왔다 간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박지훈 미쳤어.”

 

쿵쿵 울리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나는 얼른 교실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그래야 지금의 이 두근거림과 숨 가쁨이 단지 뛰어서라고, 관린요정님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

 

“숨넘어가겠다. 누가 쫓아오냐?”

“종소리 듣고 뛰어와서 그래”

 

숨이 거의 제자리를 찾아갈 때 쯤 국어선생님이 들어왔다. 칠판에 오늘 배울 시라면서 김춘수시인의 꽃을 적으셨다.

 

“오늘 며칠이야?”

“23일이요“

“그래 23번 일어나서 시 읽어봐”

 

나는 교실창문으로 요정님과 내가 앉아있었던 벤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란히 종이컵두개가 놓여있었다. 옆에서 배진영이 나를 툭툭 쳤다.

 

“왜?”

“너 23번이잖아. 시 읽으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읽었다.

 

“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래, 잘 읽었어. 이 시는…..”

 

나는 시를 몇 번이고 혼자서 계속 읽고 또 읽었다. 그 전 까지는 단 한 번도 시를 읽고 재미있거나 감흥이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는데 이상했다. 괜히 그 시의 내용이 관린요정님과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그 덕에 처음으로 식곤증을 이기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옆에서 진영이가 그런 나를 신기하게 보는 것이 느껴졌다.

 

“지훈아 가자.”

“어? 너 오늘 독서실은 안가?”

“응. 오늘은 집에 바로 갈 거야. 그래도 틈틈이 해서 오늘 계획한 공부는 끝냈어.”

“정말 너는 대단해. 가자가자.”

 

원래대로면 진영이랑 같이 하교하는 게 신이 났을 텐데. 관린요정님과 같이 집에 못 간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뭔가 다운되었다. 우리는 학교를 나와 집을 향해 걸어갔다. 곧 우물가가 보이고 관린요정님이 있는 벚나무가 보였다. 오늘 그래도 2번 봤으니깐 내일 보면 되겠지. 생각을 하고 그냥 지나쳐 걸어갔다. 곧 갈림길이 나왔다.

 

“와 진짜 벚꽃 천지네.”

“그러니깐 정말 봄이야.”

“맞다! 낼이면 비 온다더라. 우산 챙겨 낼 보자.”

“응 잘 가.”

 

 

 

 

**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에 눈이 바로 떠졌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오는데 생각보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에 벚꽃 잎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니 괜스레 마음이 이상해져 갔다. 화창한 날씨보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봄비를 제일 좋아했다. 그러나 이번 봄비는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물가 옆 벚나무가 보였다. 그 앞에 서서 주머니에 넣어둔 코팅지를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요정님을 불렀다.

 

“관린요정님”

 

나의 부름에 핑크색우산을 들고 그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의 모습을 계속 눈에 담았다. 아이러니하게 산뜻한 봄비와 요정님이 너무 잘 어울렸다.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곧 벚꽃이 다 질 거야. 너 얼른 소원 말해.”

“조금만 더 생각할게요.”

“너 이렇게 시간 끌다가 소원 안 들어줬다고 나 원망하면 안 된다?”

관린요정님은 뭔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나를 계속 쳐다봤다. 나는 내 마음이 들킬까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직 이 소원을 말하기엔 나에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저 그럼 학교 갈게요!”

“….알았어.”

 

그날따라 요정님은 먼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서 나를 보았다. 나는 느껴지는 시선에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고 또 확인해보고를 반복 했다. 내가 확인할 것 을 마치 아는 것처럼 관린요정님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시야에서 안 보일 때 까지.

 

**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비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나한테 보란 듯이 더 쏟아졌다.

“아 이러다 진짜 벚꽃 다 떨어지겠다.”

“벚꽃지면 지는 거지.”

“안 돼! 벚꽃요정님 못 본단 말야.”

“너 아직도 벚꽃요정타령이야?”

 

평상시라면 그냥 원래 배진영 말투가 그렇지 하고 넘어 갔을 텐데 오늘은 배진영이 너무 얄밉고 미웠다. 그래서 괜히 진영이에게 심술을 부릴 것만 같았다.

“됐어! 너 좋아하는 공부나 해.”

 

더 이상 진영이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트는데 수많은 곡들 중에 벚꽃엔딩이 나왔다. 아씨, 왜 노래 제목이 벚꽃엔딩이야 짜증나게. 하필이면 나온 그 노래에 화가 나서 음악도 꺼버리고 책상에 엎드렸다. 아. 비가 얼른 멈췄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수업시간 틈틈이 창문 밖을 확인했다. 나의 간절함이 느껴졌는지 하교를 할 때쯤 비가 멈춰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려서 꼭 내 심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교 길 학교 앞 포장마차 떡볶이를 보고 요정님이 생각났지만 그 날은 집으로 바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관린요정님을 부르고 내가 결심한 소원을 말했어야 했다. 바보처럼 기회를 날리는 게 아니라.

 

**

비가 온 뒤의 벚나무는 언제 꽃을 피웠냐는 것처럼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있었다.

그 가지들을 보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넣어놓은 코팅된 벚꽃 잎을 꺼냈다.

 

“관린요정님”

“…….”

“관린요정님, 나와요.”

 

아무리 외쳐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내 눈앞에 나타나줬었는데. 나는 다급하게 우물가 옆 벚꽃나무를 향해 달렸다. 제발 거기에는 벚꽃이 남아있기를. 도착해서 본 나무는 그저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 안돼. 아직은 아니야”

“관린요정님 거기 있는 거죠?“

“저 이제 소원 말할 거니깐 나와요.”

“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혼자서 나무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계속 울면서 관린요정님을 외치기를 반복했다. 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눈을 뜨니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손에서 따뜻한 느낌이 들자,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

“어 지훈아 일어났어? 괜찮아?”

“나 왜 여기 있어?”

“너 우물가 앞에 쓰러져 있는 거 진영이가 발견해줬어.”

“……”

“감기가 걸렸으면 병원을 갔어야지. 겨울 감기보다 봄 감기가 더 독한 거 몰랐어?”

“나 학교는?”

“선생님한테 말해놨어. 푹 쉬어.”

 

며칠 동안 봄 감기는 나를 괴롭혔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거의 잠만 자면서 지냈다. 그러나 나의 기대를 무시하는 것처럼 어떤 꿈에도 요정님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봄 감기 핑계로 학교를 며칠 더 쉬었다. 사실 집 밖을 나오기가 무서웠다. 우물가 옆 벚나무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방 책상위에 있는 김춘수시인의 시집에 꽂혀있는 코팅된 벚꽃만이 요정님과의 만남이 꿈이 아니었음을 나타내주었다.

 

 

**

 

언제 봄이었냐는 듯이 금방 더워지고 습해지는 여름이 다가왔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진영이와 같이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서는 우물가 옆을 지나갈 자신도 없었고, 국어시간에 시를 보고 느꼈던 그 감정이 좋아서 국어 선생님이라는 목표가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요정님과의 만남이 가끔씩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확실히 시간이 약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등 고3의 생활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게다가 목표가 생기니 공부도 훨씬 수월해져서 나는 그것에 집중하느라 온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

 

“와 눈 오는 거 봐.”

“대박 엄청 펑펑 오네.”

“이제 수능도 얼마 안 남았어.”

“넌 수시로 붙어서 좋겠다.”

“그래서 내가 너 미리 공부 좀 하라고 했지.”

“지금 열심히 하고 있거든? 야 우리 눈사람 만들고 집에 갈래?”

“추운데 감기 걸릴 일 있냐. 그냥 집에 가자.”

“너 먼저가. 나는 눈사람 만들고 갈게.”

“그래놓고 감기 걸렸다고 나한테 옮기지나 말아라. 간다!”

 

집 가는 배진영을 보내고 우물가로 향했다. 그 근처에 제법 쌓인 눈들을 모아서 꼬마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코끝이 빨개지고 입김이 마구 났지만 눈사람 만드는 거에 집중을 하다 보니 금방 추위가 무뎌졌다. 얼추 모양이 다 완성되자 마지막으로 눈, 코, 입을 만들고 집에서 챙겨 온 인형 목에 둘러졌던 분홍색 목도리까지 두르니 관린요정님을 닮은 꼬마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안녕? 너의 이름은 린린이야. 녹지 말고 오래오래 가자!”

 

그렇게 완성된 린린이를 벚나무 앞에 나뒀다.

 

“요정님. 이제 곧 봄이 와요. 많이 보고 싶어요.”

 

 

 

 

**

나는 서울에 있는 g대로 입학을 했다. 국어선생님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역시 단기간에 성적 올리기는 쉽지가 않았다. 결국 교대는 실패하고 국어교육과로 정했다. 캠퍼스에 들어서니 봄을 알리는 벚나무들이 하나 둘 보였다. 벚나무를 지나쳐 신입생 OT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장소는 먹자골목에 있는 술집.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동기들이 열심히 선배 앞에서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있었다. 급하게 들어가 눈치를 보며 자리 맨 끝자락에 앉았다. 신입생들의 자기소개를 끝으로 여기저기 자리 이동하는 선배들이 주는 잔을 한잔, 두 잔 받아보니 나도 모르게 술에 취해갔다. 주량을 모르고 마신 게 화근이었다.

 

“지훈이 취한 거 같은데?”

“어 저 안 취했어요!!”

“아니야 원래 취한 사람이 안 취했다고 그래.”

“아닌데 더 마실 수 있는데?”

“말이 짧아지는 걸 보니 취했네. 취했어.”

“우씨 나 주량 쎄다구!!”

“야 쟤 얼른 집에 보내.”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을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괜히 쿵쿵 울리는 버스에 나의 몸도 쿵쿵 심장도 쿵쿵 뛰었다. 아 술에 취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되게 몽롱하고 기분이 좋네.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다보니 곧 내릴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우물가 옆 벚나무가 보였다. 나뭇가지를 보니 벚꽃 잎이 곧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뒤져 코팅된 벚꽃 잎을 쥐고 벚나무 앞에 앉았다.

 

“요정님.. 보고 싶어요.”

“내가 진짜 많이 좋아해요.”

 

“나도 널 좋아해. 지훈아”

 

분명 누가 나에게 대답한 거 같은데 나의 정신은 이미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따뜻한 느낌이 들었던 거 같다. 마치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

아침에 눈을 뜨니 내 방 천장이 보였다. 어 나 어제 집에 잘 들어 왔나보네. 아 속 쓰려. 꿈에서 요정님을 만난 거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간만에 잠을 푹 자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흥얼거리며 방에 나오는 나를 보고 엄마는 해장하라고 밥을 차려 주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엄마 눈치를 보며 흡입했다. 얼른 씻고 학교 갈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오니 벚꽃이 만개한 모습이 보였다. 와 진짜 봄이야. 요정님을 만날 수 가 있어. 나는 얼른 우물가를 향해 달려갔다. 한 손에 코팅된 벚꽃 잎을 든 채로.

 

“헉,,헉,.. 요정님 관린요정님”

“…….”

“저 왔어요. 나와요!”

“…..”

 

아무리 주변을 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 아닌가. 아직은 아닌가? 벚꽃 잎을 다시 잡아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면서 벚나무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안녕?”

 

어? 요정님 목소리다. 나는 얼른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봤다. 거기에는 1년 전 옷차림 그대로 핑크색 옷을 입은 나의 요정님이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안녕? 박지훈?”

“………”

“되게 반가워 할 줄 알았는데 이 반응은 뭐야?”

“….흐…흑…흑……”

“어.. 왜..!! 왜 울어?”

 

관린요정님을 본 순간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1년 동안 나의 기다림이 헛된 게 아녔구나 하는 안심과 나를 기억해주는 요정님의 다정함에 괜스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놀란 요정님은 내 앞으로 와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만 할 뿐이었다.

 

“어. 울지마. 아니.. 어..”

“흐흑…흑…. 그냥 안아주면 되자나요.”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요정님은 나를 꽉 안아주었다. 어제 느꼈던 따뜻한 느낌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계속 서럽게 우는 나를 요정님은 가만히 계속 안아주었다. 요정님을 다신 놓치지 않을 생각으로 나도 꽉 안았다. 점점 울음이 진정이 되고 잊고 있었던 소원 생각이 들었다.

 

“요정님”

“응?”

“저 소원 아직 유효하죠.”

“그럼, 자 소원을 말해봐”

“이제부터 사라지지 말고 저랑 연애해요.”

 

나의 소원소리에 요정님은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미 토마토처럼 빨갛게 얼굴이 붉어진 나는 괜히 땅바닥 쪽을 쳐다보며 발끝으로 톡톡 바닥을 찼다.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나의 얼굴을 올리는 손길에 천천히 요정님과 눈이 마주쳤다.

 

“소원 들어주는거예…”

“쪽”

“어?”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에 뭔가가 왔다가 떨어졌다. 따뜻하고 말캉한 느낌. 물고기처럼 뻐끔뻐끔하는 표정으로 요정님을 쳐다보았다. 요정님은 싱긋 한 번 웃더니 내 얼굴에 양손을 올리고 다시 한번 찐하게 뽀뽀를 했다.

 

“쪽쪽.”

“아니 이렇게 무드 없게 첫 뽀뽀를 하는 게 어디 있어요!!!”

“쪽.”

“어.!..! 아니”

“쪽.”

“…..”

“나도 너 좋아해. 매일 나무 안에서 너를 다시 만나길 기다렸어.”

 

벚나무가 우리를 축하해주는 것처럼 바람과 함께 벚꽃 잎들이 흩날렸다. 우리는 그 흩날리는 벚꽃사이에서 달달한 키스를 나눴다. 이번 봄은 나에게 너무나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