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密語)
w. 바하리

 

 

아무리 인생이 끊임없는 자기증명과 항변의 연속이라지만, 지훈 만큼이나 사서 시달리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삼형제 중 딱 중간에 끼여 당최 존재감을 발할 일이 없었으니.

 

박영훈, 박지훈, 박정훈. 삼형제가 이름도 비슷하고 생김새나 체격도 비슷한데다가 줄줄이 연년생이어서 남들은 헷갈려했고, 지훈의 입장에서는, 태어나보니 이미 형이 있었던 데다 돌도 되기 전에 동생이 생겨버린지라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해 본 기억도 없었다. 더군다나 형 영훈과 동생 정훈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부터 워낙 공부를 잘했다. 꼬마 지훈이 8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들고 좋아 입이 헤 벌어져서 집에 들어와 봐야 엄마 손에는 이미 두 장의 100 점짜리 시험지가 떡하니 들려있더란 얘기.

 

괜찮아 지훈아. 엄마 아빠는 우리 지훈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돼. 그 따스한 이야기는 비껴들으면 지훈에겐 기대하는 바가 일절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지훈은 야단만 맞아도 춤을 출 기세였다. 형, 동생보다 잘나긴 아무래도 힘들겠다싶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쯤엔 관심 받으려 일부러 시험을 죽 쒀서 망쳐왔는데도 부모는, 학원 등록비가 든 봉투와 함께 ‘다음 달부턴 학원이라도 좀 다니자 아들’ 그 한마디 적힌 메모가 다였다. 그 날이 아마도 영훈이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던 날이었던가.

 

형제 사이도 데면데면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야 같이 놀이터에서 흙장난도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부모님 있으니 얼굴 보고 사는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모형제가 다 남 같은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집에 가산은 제법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태권도도 피아노도 미술도 다니겠다하면 왜 배우겠단거냐 얼마냐 묻지도 않고 덜컥 잘도 보내줬다. 승급심사며 콩쿠르며 백일장 같은데 따라 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였지. 누군가가 들으면 굉장히 배부르다 했을 소리.

 

 

✿✿✿

 

지훈은 쭉 그렇게 독립적으로 커서 어느덧 시팔 같은 낭랑 십팔 세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간만에 조금 뿌듯한 일을 맞이했다. 교내 시화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학교 중앙로비에 지훈의 시화가 전시된 것이었다. 교내에 이 갈고 입시미술 준비하는 애들도 꽤 많은 판국에 그 속에서 이 정도 했으면 나 꽤 장한 거 아닌가. 시도 자작신데. 지훈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오며가며 로비에 서서 본인 시와 그림 보고 자뻑에 심취해있는 시간이 제법 길었다. 아 이거 나 졸업할 때까지 안 내렸음 좋겠다. 그런 우습고도 딱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본인 빼고 누가 그렇게 관심가지고 보기나 할까 생각했는데 사흘 전 부턴가 지훈과 함께 그 시화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노란명찰. 지훈과 같은 2학년. 라이관린.

 

지훈은 슬쩍 들고 있던 파일집으로 명찰을 가리고서 물었다. 모르는 사람의 가감 없는 평이 궁금했달까.

“며칠째 같은 시화를 뭘 그렇게 봐?”

 

질문을 들은 애는 대답 없이 가만히 시화만 살피는데 지훈은 들떠서 대답을 종용했다.

 

“뭐가 맘에 드는데? 시?”

“아니. 나 이거보다 더 잘 쓸 수 있어.”

“…그럼 뭐 봐? 그림?”

 

이번엔 또 무슨 독설이 쏟아질까싶어 지훈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시도 별로고 그림도 별론데 이게 왜 로비에 걸려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뭐 그런 말을 하면 마음 상할 것 같아서.

 

“응. 그림 진짜 너무 예뻐. 색감도 따뜻하고. 이거 그린 사람도 왠지 되게 예쁜 사람일 것 같애.”

 

지훈은 얼굴이 홧홧해져서 명찰을 가렸던 파일집을 꼭 끌어안았다. 별 것 아닌 얘긴데 지금 당장 실내화 바람으로 운동장을 뱅뱅 돌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아서. 그리고 왠지 부끄럽기도. 그 애 얼굴을 바로 볼 자신이 없어서 그 애 너머에 있는 현관 밖 화단의 개나리를 보았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그 애 교복 끝자락을 집게손으로 잡고서 말했다.

“난데.”

“응?”

“이거 그린 사람. 나라고.”

 

궁금해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굳이 알려주고 싶었다. 오며 가며 한번쯤 이 그림을 더 본다면 제 얼굴을 함께 떠올려 주었으면 했다. 그냥 그것뿐이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내 말 맞네.”

“어… 응? ”

“이 그림 그린 사람. 예쁜 사람. 맞잖아. ”

 

은색 테의 안경 너머 반달모양으로 접힌 눈,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드러난 예쁜 빛 윗잇몸. 노란 명찰과 노란 개나리와 노란 햇살. 국자 위에서 달고나가 되려, 샛노랗게 녹아가는 설탕처럼 벅차도록 달디 단 3월의 오후였다.

 

 

✿✿✿

 

지훈이 라이관린에 대해서 여기저기 묻고 다니기도 전에 그 애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소문이 스스로 찾아들었다. 고2지만 1년 월반해서 17살. 대만 출신이고 며칠 전에 이 학교로 전학 왔으며, 집은 재벌에 성적은 최우수, 스포츠는 만능에 외모는 보다시피. 교실에 모여 있는 부박한 입술들은 끊임없이 라이관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영웅담, 서사시, 연예계 찌라시 그 중간쯤 되는.

 

학교 애들도 머리가 클 만큼 컸는데 근거 없는 추측을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늘 교문 앞으로 관린을 데리러 외제차가 왔으니까. 하긴, 귀티가 좔좔 흐르더라니. 원래도 거리랄 것 없이 멀고 먼 남이지만 더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때 얼결에 잡았던 교복 끝단은 헌 교복처럼 약간 헤져있었는데. 갓 전학 온 전학생의 교복이 뭣 때문에? 그냥 좀 털털해서 교복 어디 상하고 그런 거 쯤 신경 안 쓰는 편인건가.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지훈은 외할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에서 종종 봉사시간을 채웠다. 가족들이 자주 문병을 오지 못하는 노인 분들 휠체어 끌어서 산책시켜드리고 손톱도 깎여드리고 그런 소일거리가 주된 봉사활동이었기에 그 날도 4인실에서 웬 할머니 얘길 들어드리며 손톱을 깎아드리고 있었는데, 그 병실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다. 학교에서 한창 모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느라 정신없이 바쁜 그, 라이관린.

 

“어? 지훈. 맞지? 근데 우리 할머니 왜… ”

“아 너희 할머니야? 나 봉사활동 온 건데. ”

 

지훈의 봉사활동이 끝난 후, 둘은 목련꽃이 탐스럽게 핀 병원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지훈은 괜히 목이 타 평소엔 즐겨먹지도 않는 탄산음료를 목구멍 뒤로 끝도 없이 넘겼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아이들이 떠들던 소문과 오늘도 여전한 헤진 교복 끝단, 병원에 계신 관린의 할머니. 자식이 없다던 할머니 말씀이 뒤섞여 떠올라서.

 

이 모든 건 사실 라이관린이 어떤 아이인가와는 무관한 것이고 고로 굳이 지훈이 물어야 할 필요는 없기에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리 억지로 캐묻지 않아도 잠시간의 대화로 얼추 틈새가 메워졌다.

 

라이관린은 부모님이 안계셨다. 외할머니와 단 둘이었고, 대만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다섯 살 이후부터 쭉 한국에서 외조부모님과 살았다고. 그나마도 3년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1년 일찍 패스하는 바람에 열여섯에 고등학교를 입학했으며, 교문 앞에 라이관린을 데리러 오는 차는 최근에 시작한 수학 과외 아르바이트 때문이라 했다.

 

페이는 진짜 센데, 학생이 나보다 형이라 말을 너무 안 들어. 그렇게 말하며 라이관린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입술은 고단한 인생과 바쁜 일상에 대해 말하면서도 눈빛은 총기 있게 빛났고 말투는 여유 있었다.

 

제멋대로인 기대심이 곁들여진 가담들은 가상의 우상을 빚어내는 훌륭한 질료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교 애들의 완성작은 현실의 라이관린과 판이했다. 때문에 누군가는 진짜 라이관린의 어떤 환경을 보고 그의 기대와 달라 실망할 수도 있으리라 지훈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바닥 난지 오래인 캔 음료를 억지로 한 방울 두 방울 입안에 계속 털어 넣으며 지훈은 또 생각했다. 어쩐지 그 소문들이 진짜가 아니어도 이 애를 계속 더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적어도 지훈은.

 

“지훈 잠깐만. 여기…”

 

라이관린의 얼굴이 지훈의 눈앞으로 버썩 다가왔다. 집중하느라 찡그린 미간과 뾰루퉁한 입술이 시야에 꽉 들어차서 지훈은 절로 숨을 참았다. 눈을 질끈 감는데 집게손가락으로 눈 아래 여린 살이 꼬집히는 느낌이 났다.

 

“지훈 여기 속눈썹 묻어있었어. 와 완전 길다. ”

 

바람결에, 마트에서 파는 흔하디흔한 베이비로션 냄새와 화단의 풀냄새가 함께 풍겨왔다. 제법 썰렁한 초봄의 밤공기가 시원했다. 그 애와 살이 닿고 나니 목울대가 울렁거려 죽을 거 같은데 그래도 앞으로 한번은 더, 한번이라도 더 닿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얼굴에 와 닿던 그 손길은 지훈이 난생 처음 느끼는 묘한 자극이었다.

 

집에 와 봉사활동 일지를 쓰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종이엔 라이관린 네 글자만 그득히 쓰여 있었다. 라 이 관 린 네 글자를 꼭꼭 씹어 발음해본다. 라이 하고 부드럽게 발음되다가 관린 두 글자에 니은 받침이 똑똑 부러지게 들어가 야무지게 마무리 되는 게 꼭 멍한 듯 야무진 그 애 같다.

 

그 애와 같이 있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져서 아까, 버스 어디서 타고 집에 가는 줄 아느냔 그 애의 말에 모른다 답했었다. 그 버스. 지훈이 여태껏 수십 번은 더 탔을, 배차 간격조차 훤한 그 버스를.

 

 

✿✿✿

 

지훈은 초등학교 때도 안하던 주먹다짐을 했다. 관린 때문에. 아니 정확히는 관린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드는 어떤 개새끼들 때문에. 교무실에서 어쩌다가 옆 반 담임 컴퓨터화면을 보고 왔는지 몰라도 웬 촉새새끼가 교실에 오자마자 전쟁뉴스라도 난 듯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야 존나 대박사건.”

 

걘 돌아보는 애들의 머릿수가 꽤 된다 싶자 그 관심의 눈길에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라이관린 무료 급식자 명단에 있어.”

“엥? 걔가 왜?”

“그러니까 내말이! 대박이지 응? 대박이지?”

 

누군가의 배고픔이 누군가의 가십거리가 된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이가 갈리는 상황인데, 거기에 대고 누군가는 또 저열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막 고아에 달동네 살고 그런 거 아냐? 그런 애가 우리학교는 어떻게 왔대? ”

“그럼 맨날 걔 데리러 오는 그 차 뭐냐? ”

“그거 아냐? 원조교제 조건만남 그런 거. 왜 그 새끼 낯짝 반반하고 키도 훤칠한 게 그런 거 존나 잘…”

 

지훈은 그 이상 가만있지 못하고 상스런 소릴 하는 그 주둥이에 냅다, 앞니를 깨버릴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야 씨발 박지훈 미쳤냐? 네가 뭔데 지랄이야?”

 

뭐라도 더 듣기 싫은 말이 새나올까 두 세대 연속으로 턱주가리를 갈기다, 맞던 애가 잇새로 빨간 핏물을 머금고 하는 일갈에 지훈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뭔데 이렇게 열이 받을까.

 

답을 찾지 못해 넋이 빠져있는데 맞은 놈이 그 틈을 타 난데없이 달려들어 지훈을 죽자고 두드려 팼다. 주먹에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면서도 생각은 한 군데에 맺혔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걔에 대해 이렇게 쉽게들 떠드는 게.

 

 

나는 라이관린이 너무 어려운데. 성을 떼서 부를지 붙여 부를지 요즘 매일 고민하거든. 2교시 쉬는 시간에 보러갈지, 6교시가 마치고 갈지 고민하거든. 그러다 아직 한 번도 보러 못 갔거든.

 

걔가 기분나쁠까봐 속상할까봐 그런 게 너무 무섭거든.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걔 웃는 것만 보면 내가 뭐라도 아는 것 같이 착각하거든 자꾸. 그게 또 미안해지는데… 근데 이 새끼들은…

 

 

결국 지훈은 한참을 엉겨 싸우다 교무실에 불려가서 출석부로 머리를 쥐어터지고 학교에서 뛰쳐나왔다. 가난이 나쁜 게 아니잖아. 가난을 조롱하는 게 나쁜 거잖아. 그런 맥락은 다 잘라먹고 그냥 그런 새끼와 싸잡혀 학교에서 쌈박질이나 하는 애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엿 같아서. 홧김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오니 갈 곳을 모르게 됐다. 교문에서 몇 발짝 멀어지지 못했을 때,

 

“지훈! 같이 가.”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대뜸 같이 가자 말하는 라이관린이 나타났다. 따라 걷던 그 애는 어느새 지훈의 옷소매를 붙잡아 이끌고 앞장서서 한도 끝도 없이 걸었다.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단 걸 알아챈 듯이. 얼마를 말없이 걸었을까. 뒤돌아 지훈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좀 다리 아플 수도 있는데.

많이 아프면 말해. 업어 줄 테니까.”

“누가 누굴… 우리 어디 가는데.”

“우리 집. 초대할게 오늘.”

 

너는 왜 입가가 터져있냐, 너는 왜 학교를 빼고 여기 있냐. 그런 건 서로 굳이 묻지 않았다. 백팩을 메고 한도 끝도 없이 경사진 길을 걷다보니 몸에 열이 올라 봄인데도 더웠다. 긴 계단을 오르는 게 너무 고단했다. 너는 매일매일 이 힘든 걸 오르내려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거구나. 그러면서도 그렇게 티 없이 웃는 거구나. 지훈이 난생 처음 느낀 가난은 초입부터 너무 고단했다. 그렇다고 죽는소릴 하기 너무 한심해서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니려니 포기하고 생각 없이 걸었다. 한참 올라갔을 때, 그게 그것으로 죄다 비슷한 와중 어떤 집 앞에 라이관린이 우뚝 멈춰 섰다.

 

“다 왔어. 여기야.”

 

그 집서 서울 전경이 다 보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꽤 많은 게 내려다보였다. 싸구려 자동차나 비싼 고급세단이나 똑같이 개미콩알딱지만큼 작아져 도로 위를 굴러갔다. 지훈은 그걸 보자 라이관린의 의연함을 어딘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를 동경하는 사람도 너를 힐난하는 사람도 너에겐 다 같은 사람들이겠구나. 그저 다 먼 다른 세계 사람들.

 

둘은 끼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벌린 철문 사이로 발을 들여 넣었다. 마당이랄 수도 없이 좁은 마당엔 낡은 평상 하나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일 없을 위태로운 빨랫대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거기 널려 휘날리는 여벌의 교복셔츠 하나와 볼품없는 속옷 몇 벌.

 

“오느라 힘들었지?”

 

라이관린이 건넨 파란 싸구려 플라스틱 컵에 담긴 생수를 지훈은 맛있게도 들이켰다. 근래 먹고 마신 것 중 제일 달가웠다. 그 좋아하던 치킨보다 더. 있으나마나 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낡은 싱크대와 책상 같은 나무 밥상과 정갈히 개어진 이불이 한 눈에 들어왔다. 라이관린은 책상 위에서 조그만 구급약상자를 들고 와 지훈 앞에 다가앉았다. 연고를 꺼내들더니 약지에 조금 짜서 지훈의 터진 입가에 펴 발랐다.

 

“내… 내가 할게.”

“가만 있어봐.”

저것만 떼버려도 이 단칸방이 조금은 넓어 보이겠다 싶은 촌스러운 일력. 그 옆의 투박한 시계. 그 초침소리에도 덮이지 않는 심장소리. 지훈은 도망갈 곳 없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기도 지쳐서, 제발 그렇게 얼굴 좀 버썩 들이대지 말라고 차마 그 말은 못하고 다가온 얼굴만 가만히 보았다. 라이관린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연고를 발라주며 괜히 제가 쓰리고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지훈은 터진 입가보다 그 입가에 손이 스치자마자 난데없이 피가 몰린 아랫도리가 더 괴로웠다.

 

“지훈. 가난은 나쁜 거 맞아. 그런 소리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사람 무뎌지게 하거든. 그러니까…”

 

그런걸 알 리 없는 라이관린이 지훈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연고 뚜껑을 돌려 잠그며 말했다.

 

“내 대신 화내지 않아도 돼. 나 괜찮아.”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지훈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설프게 말을 돌렸다.

 

“나 너 관린이라고 불러도 돼? 라이관린 말고.”

 

넌 날 지훈이라고 부르니까. 나만 네 글자로 부르면 네가 나 두 번 부를 때 난 한 번 밖에 못 부르니까. 내가 니 모든 걸 해결해 줄 돈은 없지만 그래도 세상 누구보다 널 많이 불러줄 순 있거든. 외롭지 않게.

 

지훈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린의 가난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을 그런 감상적인 위로를 속으로 건넸다. 그렇게 지훈이 난생 처음 뿌린 꽃씨는 죽어도 꽃피기 힘들 자리에 내려앉아 뿌릴 내렸다.

 

관린이 도로 데려다 주겠다는 걸 한사코 말렸다. 그럼 또다시 혼자 올라와야할 것 아냐. 관린의 상박을 붙들고서 단호한 눈빛으로 말하자 관린은 알았다며 우뚝 멈춰 서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 하늘같이 높은 집에서 혼자 땅을 향해 내려오며 지훈은 관린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지훈, 달동네. 달 보고 사는 동네. 그 말 진짜 이쁘지 않아? 난 그래서 좋아. 우리 집이 달동네인거.

 

세상에 몇 되지 않을, 관린을 웃게 하는 것들. 그 모든 걸 낡은 리어카 하나에 죄다 실어 그 집 문 앞에 놓고 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게 달이든 뭐든.

 

집에 돌아간 지훈은 제 형 영훈을 닦달해 그가 다 보고서 내다버리려 묶어둔 참고서며 문제집을 죄다 제 방으로 옮겨두었다. 그날 밤 지훈은 그걸 받아들고 달처럼 웃을 관린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해 괜스레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누가 계속 터진 입가를 약지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것 같아 배시시 웃음만 나왔다.

 

 

✿✿✿

 

그 후, 지훈은 그 달동네 관린의 집에서 관린과 함께 잠드는 날이 늘었다. 핑계는 많았다. 영훈에게서 빼앗아 온 책 뭉치라던가, 집 냉장고에서 몰래 훔친 오징어젓갈이나 갓김치라던가. 다리아파서 도로 들고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하면 관린도 이내 돌려보내려던 손을 거뒀고 지훈은 힘들단 핑계로 은근슬쩍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집에 놀 거리라곤 겨우겨우 공중파나 나오는 브라운관 티브이 한 대. 그리고 이제는 멸종 된 줄로만 알았던 VCR 기기. 뭐든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있기 마련임을 방증 하듯 동네 초입 만화방엔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대여한 것들은 <타이타닉>이나 <델마와 루이스> 같은, 죄다 관린과 지훈이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였지만, 함께 있을 수 있는 핑계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작은 밥상 앞에서 몸을 구기고 종종 식사도 함께 했다. 그 집에서 함께 먹는 식사의 메뉴는 항상 김과 김치, 라면, 짜장라면. 그런 간소한 것들.

 

이불은 자주 빨아도 오래된 솜냄새가 쿰쿰하게 났지만 잘 시간이 되면 관린은 지훈이 춥지 않도록 그걸 악착같이 어깨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이불을 도닥이는 그 길고 하얀 손에선 항상 베이비로션 향이 짙게 풍겼다.

 

한 날은 관린이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훈. 이제 이 집에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어. 초대 안 할 거야 이젠.”

 

따지고 보면 별 소리도 아닌데 지훈은 그 소릴 듣고 대번에 숨구멍이 다 턱 막혔다. 마음은 상냥한 표정보다 거절의 언어를 먼저 받아들였다.

 

“왜? 내가 니 공부 방해했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지 않겠다 말하고서 얼마든지 매달려 볼 참으로 두 주먹을 이불 밑으로 꾹 말아 쥐고 관린의 대답만 기다렸다.

 

“그런 거 아니야.”

 

관린의 커다란 손이 지훈의 머리를 헝클었다. 지훈의 흐트러진 머리에서 관린과 같은 샴푸 향이 훅 끼쳤다. 이제 거의 항상 이 집에서 머릴 감아 집에 돌아가면 모든 것이 낯설 것 같았다. 쭉 써오던 샴푸 향까지도.

 

“습관 들까봐. 그냥 그래서 그래.”

 

덜 마른 머리카락처럼 눅진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지훈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문장을 파고들어선 안 된다는 건 본능으로 알았다.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 말의 뜻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관린이 너 알아버린 거지? 너 스스로 외로운지 자각도 못할 만큼 사무치게 외로웠던 거. 내가 이래놓고 어느 날 멀리 가 버릴까봐 무서운 거잖아. 외로움을 알게 해 놓고서.

 

“싫어. 올 거야.”

네 고독은 얼마나 메마른 흙으로, 얼마나 엉성하게 쌓여 있었기에 고작 나 같은 거에 이렇게 무너졌니. 우리 처음본지 겨우 두 달도 안 됐는데. 나도 그래. 언제부터 알았다고 너 안보고선 이틀도 막막해. 같이 있다고 우리가 딱히 뭘 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그냥 그래.

 

지훈은 몸을 벌떡 일으켜, 가만히 그림처럼 누운 관린을 보았다. 관린은 지훈 편하라고 한껏 요 모퉁이로 비켜나 한 쪽 맨 어깨가 차가운 방바닥에 닿아있었다.

 

“더 안 쪽으로 누워. 바닥 차다. 불편해도 오늘만 붙어서 자. 나 다음에 올 때 내 이불 들고 올 거야.”

 

용기내서 쳐냈는데 내가 안 가면.. 넌 나 두 번은 못 쳐내. 그럴만한 기력 없잖아 너. 그치 관린아.

 

지훈은 등 돌려 구부리고 잠든 관린의 겁먹은 등을 바라보았다. 그 등 뒤에 버썩 붙어 혹시 등에 숨결이 닿을까 부러 숨을 얕게 쉬었다. 얼굴도 아니고 등짝만 보고 있는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좋을까. 진짜 중증이다. 문이 바람에 덜컥거려 지훈은 관린의 티셔츠 자락을 움켜쥐고 제 쪽으로 더 당겼다. 관린이 바람맞으며 자서 감기들까 싶어서.

 

 

✿✿✿

 

아무도 관린에게 들러붙어 다니는 지훈을 말리지 않았다. 지훈의 성적은 오히려 더 올랐다. 그도 그럴게 공부 핑계로 관린을 따라 생전 가지도 않던 도서관을 다 따라다녔으니까. 1년은 왜 365일 밖에 되지 않을까. 그 갑절이나 곱절은 됐으면 좋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관린과 함께 하는 매일이 그처럼 벅찬 날들이었다.

 

아침부터 밥상머리에서 뜻 없이 실실 거리는 지훈을 보며 정훈은 질겁했다.

 

“엄마! 박지훈 미쳤나봐. 자꾸 이유도 없이 쪼개.”

“박정훈. 너 엄마가 형한테 반말하지 말랬지.”

 

그런 투닥거림과 핀잔조차도 즐거웠다. 요즘 자꾸 날도 좋고 기분도 간지러워 지훈은 매일매일 관린 앞에서 고백을 삼켜 넘기느라 바빴다. 좋아한다고 관린에게 말하고 싶다가도 그러다 관린이 혹시 친구도 못 하겠다고 그러면… 그런 상상 근처만 가도 그 좋던 기분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5월 달력엔 빨간 날이 많아 좋았다. 너 어린이 대공원 가봤어? 남산타워는? 지훈은 자신의 물음에 관린이 번번이 고개를 가로젓는 게 좋았다. 관린이 못 가본 곳이 천지여서 그 애의 모든 처음들을 함께 만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용돈을 아껴뒀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도 2장 샀다. 한사코 거절하던 관린은 이미 무르지도 못한다는 지훈의 거짓말에 끝내 속아주었다.

 

입장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자유이용권이 아깝지 않게 둘이서 웬만한 놀이기구는 다 섭렵했지만, 관린은 지훈이 시시하다고 거들떠도 안 본 대관람차가 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해질 무렵 마침내 좁다랗고 동그란 그 대관람차 통 안에 갇히자 괜히 잘 참아왔던 지훈의 마음은 자꾸 비질비질 입 밖으로 기어 나오려 했다.

 

“관린아. 너는 살면서 제일 동화 같았던 순간이 언제야?”

 

관린이 뭐라 답하든, 그 후에 지훈에게 되묻는다면 지금이라 말할 참이었다. 세련되진 못해도 진심은 전해줄만한 말이라 생각했다. 관린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할아버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형편이 더 안 좋아졌었는데, 그 때 외할머니 보러 병원 갔다 알바하고 집 가는데 갈비탕이 너무 먹고 싶은 거야…”

아 뭔 갈비탕이야. 얘기가 이상한대로 새네. 지훈은 대체 무슨 얘기가 이어질지 몰라 초조하게 대관람차 속도만 가늠하며 저 얘기가 금세 끝나길 기다렸다.

 

“근데 가게 문 앞에 써있더라. 맛없으면 돈 안 받습니다. 그래서 냅다 뛰어 들어가서 갈비탕을 시켜 먹었어. 남기고서 맛없다고 돈을 안 내려고 그랬거든 내가.

그럴랬는데 너무 맛있는 거야. 억지로 고기 한 점을 남겼어 밥 한 세 숟갈이랑. 그리고 카운터에 계산하러가서 맛없다고 그렇게 말을 하려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줄줄 나는 거야. 미안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거의 들리지도 않게 맛없다고 중얼중얼 거리는데, 아저씨가 주방에 가시더니 갈비탕 하나를 포장해서 나오시는 거야. 맛없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담엔 더 맛있게 해 주겠다고.”

 

관린이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그 때 지훈은 직감했다. 대관람차가 아무리 늦게 돌아도 이제 고백 같은 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 다 아시는 눈이었거든. 그러면서도 그러시는데. 그게 그렇게 꿈같고.. 그래. 동화 같고. 그렇드라. 뱃속도 마음속도 다 따뜻해서… 지훈 너는? 언제 그랬는데?”

“나는… 관린아 난…”

 

그 때 관린의 폰에 알람이 울렸다. ‘알바 갈 준비’라는 알림 메시지가 액정에 떠올랐다. 띠디딕 띠디딕 듣기 싫은 소리가 재촉을 해댔다.

 

자신이 없어졌다. 초라한 고백이 그 날 손에 쥐어진 그 갈비탕 봉투만도 못할 것 같아서. 너의 어느 한 구석 따뜻하게 데워줄 수 없는 이기적인 외침 같아서. 내가 널 좋아하면.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고. 너도 나 좋아해 달라고 어떻게 채근해. 그게 널 고단하게 할 거라면 내가 어떻게 그래. 넌 그냥 이렇게 살아 있기도 바쁜데. 난 너랑 같이 행복 했으면 좋겠어. 서로 바라보면서. 근데.. 돈 앞에서, 사는 거 앞에서 내 진심은 너무 시시하네.

 

“지훈… 왜 울어. 울지 마.”

 

괜찮아. 괜찮아. 관린은 지훈을 품에 안고 애 달래듯 다독였다.

 

아니, 관린아. 나 안 괜찮아. 겁나서 고백 같은 거 못할 거 같아. 넌 마음 타령할 겨를 같은 거 없어 보여서. 부담스럽다고 나 밀어낼까봐. 그런데 너 좋아하는 거 앞으로도 절대 못 멈출 것 같아. 나 무서워 관린아.

관린은 대관람차에서 내리자마자 근처로 뛰어가 연분홍빛 솜사탕을 사왔다. 꿀꿀할 때 단거 먹으면 기분 좋아진대. 옅게 웃으며 예쁜 손가락으로 실타래 같은 솜사탕을 뚝 떼어 지훈의 입에 넣어주었다.

살짝 아랫입술에 스친 그 차가운 손끝이 솜사탕보다 더 달았다. 지훈은 말하지 못해 벅차오르는 마음을 입 안에서 모두 녹여 그 솜사탕과 함께 다 속으로 넘겼다.

 

 

✿✿✿

 

지훈은 이제 관린의 빈 집보다 관린네 외할머니를 보러 봉사활동 핑계로 병원에 가는 날이 더 잦아졌다. 바쁜 애 붙들고 맛집이나 유원지 끌고 다니는 것보단 이 편이 관린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눈도 침침하고 기억도 온전치 않은 할머니는 지훈이 자꾸 눈에 보이자 이젠 종종 지훈과 관린을 헷갈려했다.

 

“불쌍한 내 새끼….”

 

가끔은 울음을 삼키면서, 지훈의 팔을 붙들고 손으로 쓸며 다짜고짜 불쌍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니 아버지 찾아 대만에나 가라고 화를 내기도 하셨다.

“할머니 걔더러 자꾸 대만 가라고 그러지 마세요. 걔 거기 가면 저 큰일 나요.”

 

세숫대야에 온수를 담아와 발을 씻겨 드리며 말하니 할머니는 그 이후로 잠시간 아무 말도 없으시다가 이내 또 다시 우는 소릴 했다.

 

“너거 애비는 너 걷기도 전에 애미랑 너 놔두고 집 나가불고… 니 애미는 너 데꼬 한국 온지 얼마 되도 안 해가꼬 니랑 우리 놔두고 그리 앞서 죽어불고… 버려부는 게 특기인 년놈덜 사이에서 났으면 니도 이깟 노친네 없는 셈 치고 도망을 갔어야제. 뭣 헌다고 이라고 진을 빼고 있냐. 으이? 이 불쌍한 것아… 아이고 내가 죽어야제. 내가…”

 

어땠을까 넌. 이런 얘기 다 들어가며 여기 있는 게 덜 아팠을까 아님 그 낡고 허름한 집에서 혼자 쪼그려 자는 게 덜 외로웠을까. 사람 참 이기적이지. 니가 어쨌건 난, 너 없으면 힘들 내가 더 무서워.

 

지훈은 말없이 할머니의 다른 쪽 발을 씻겨드렸다.

 

“…너무 미련하게 살지 말어. 너무 멍충하니 착하게 굴지도 말고. 알긋제, 아가?”

“네.”

 

그건 관린이 대신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걔 그렇게 바보같이 살게 안 둘 거예요.

 

지훈이 대야에 담긴 다 식어빠진 물을 버리러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할머니는 이미 잠들어 계시고 방금 막 병실에 도착 한 듯 관린은 간이침대에 책가방을 내려두고 있었다.

 

“과외 해주고 오는 거야?”

“응. 아! 지훈 있어서 잘 됐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책가방에서 밀폐용기 두개를 꺼냈다. 하나는 수제쿠키 하나는 과일도시락. 과외 하는 집 아주머니가 주신 거. 안 그래도 혼자 먹긴 좀 많을 것 같았는데. 중얼거리며 관린이 가방 지퍼를 도로 닫았다. 가방엔 늘 책이며 노트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웬만한 공사판 벽돌짐이 저것보다 가볍지 않을까 지훈은 그걸 보며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간이침대에 관린과 마주앉아 쿠키를 씹었다. 연달아 이것저것 먹으니 입 안에서 맛이 뒤섞여 달근하다 못해 텁텁했다. 그 뒤에 파인애플이나 귤, 포도 같은 과일을 먹으니 순 맹맛이었다. 과일부터 먹을 걸 그랬나. 지훈은 포크를 들고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랬으면 이것도 저것도 다 달게 먹을 수 있었을까.

 

좋아하지 말걸 그랬어. 아니 조금이라도 늦게 좋아할 걸. 얼마간이라도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 동안은 그냥 뜻 없이 달갑게 즐거울 수도 있었을걸. 너 고생스러운 거, 네가 짊어진 무거운 거 못 본 체 하는 게… 그게 좀 됐을지도 모르는데….

 

“관린아 너 혹시 과외 아르바이트 하나 더 할래?”

“누구 주변에 할 만한 사람 있어?”

“응. 나 과외 해 줘. 수학.”

 

 

✿✿✿

 

지훈의 모친은, 처음엔 지훈이 또래에게 수학 과외를 받겠다는 걸 못 미더워 했지만 관린의 성적이나 수상 경력 같은 것을 듣고서는 퍽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친구는 목표 대학이 어디라고? 지훈의 모친 질문에 관린은 ‘한국대 의대요.’ 라고 짧게 대답했다. 지훈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수업을 하기로 결정이 되고 관린은 처음으로 지훈의 방에 들어섰다.

 

“너 의대 가고 싶었어?”

“아니.”

“근데…”

“가야 돼.”

 

할머니 때문이지? 지훈은 물으려다 집어치우고 수학 책을 책상 위에 펴 놓았다.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 민망스러울 정도로 새 책인 문제집이 자꾸 저절로 도로 접히려 하는 통에 가운데를 쿵쿵 눌러 쳐서 억지로 폈더니 그걸 보곤 관린이 피식 웃었다.

 

“앞으론 진짜 책 많이 봐야 돼, 지훈. 나 공부 가르칠 땐 엄청 엄한 선생님야.”

 

말하지 않아도 앞으론 엄청 많이 봐야겠다 싶었다. 관린을 따라 무려 한국대 씩이나 들어가려면. 문과니까 과까지 따라 가긴 도저히 텄고. 아, 지금부터 밥 안 먹고 똥 안 싸고 공부만 해도 이 내신에 한국대 문턱은 밟아볼 수 있을까. 탄식이 절로 나왔다.

 

“(e^x-1)/x 에서 x가 0으로 수렴하면…”

 

관린이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지훈은 당황해서 토끼 눈이 됐다. 이게 수학이야 외국어야 뭐야. 뭐가 뭐로 뭘 해?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데 관린은 당황하지 않고 연습장에 그래프를 그렸다.

 

“우선 이것부터 이해해보자. 이게 1/x 그래프야. x가 점점 커진다고 생각해봐. 뭐 하나를 나눠먹는 사람 머릿수가 많아지면 어때. 점점 몫이 줄어들잖아. 그래서 x가 무한대로 가면 1/x은 0에 수렴하는 거야. 반면에 x가 계속 작아지면 역수인 1/x은 계속 커지지. x가 0에 가까워질수록 1/x은 무한대에 가까워져.”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두 시간 뒤, 지훈은 관린을 돌려보내고 나서 혼자 관린이 내준 숙제를 푸는데 골몰하다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극한값에 대해. 다가가고 다가가지만 그래서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무엇에 대해. 그런 주제에 영원을 가정해서 답을 내버리는 어떤 규칙에 대해. 아 나 이거 진짜 짜증나. 역시 싫다. 수학.

 

내가 너한테 다가가고 다가가면, 그러다가 네가 사는 게 여유가 좀 생기면… 그 시간이 길어지고 길어지면 결국 할 수 있을까? 사랑…. 너랑 내가.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찬 듯이 속이 답답해졌다. 다른 우주처럼, 무한처럼 멀고 먼 얘기 같았다.

 

사실 그런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감히 바라지도 못해.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요즘처럼.

 

 

✿✿✿

 

지훈에게 과외수업을 해 주기로 하고서 관린은 과외 두 건 외의 다른 알바를 다 관둘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자 지훈은 과외를 핑계로 또다시 예전처럼 관린의 집에 눌러 붙었다. 공기가 서서히 더워지더니 어느덧 장마철이 찾아들고 관린네 지붕이 녹아내릴 듯이 거센 비가 연일 왔다. 그 낡은 집 안에 비가 새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그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집중이 꽤나 잘 됐다.

 

지훈의 집중을 방해하는 건 단 하나, 가끔씩 좁은 좌식 책상 아래서 맞부딪히는 관린의 발. 관린은 손발이 찬 편이었고 지훈은 반대로 뜨끈뜨끈한 편이었다. 관린이 접은 다리가 저려 잠시 발을 뻗다 발가락이 지훈의 발목에 슬쩍 스쳤을 때 지훈은 차갑고 부드러운 느낌에 저도 모르게 아아, 하는 소릴 내고서 깜짝 놀랐다. 다행히 관린은 당황한 기색 없이 계속해서 문제집을 풀어내려갔다.

 

책을 향해 내리깔린 관린의 시선, 이따금씩 나른하게 팔랑이는 속눈썹과 도톰한 입술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지훈은 첫 만남 때 관린이 그 입술로 해주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예쁜 사람. 조개 안에 갇혀 뻘 속에 묻혀 살던 진주 같던 지훈을 단숨에 건져 올려 꺼내준 것 같았던 그 말. 그 때 그 순간, 그 애 눈 속에 가득 찼던 지훈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아주 중요하고 값진, 빛나는 사람 같았으니까.

 

“지훈, 집중해야지.”

“넌 뭐… 정수리에도 눈 달렸어?”

 

관린은 그 말에 여전히 문제집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씨익 웃었다. 이젠 적응할 때도 됐는데, 대체 왜 저 미소엔 적응이 안 되는 건지. 지훈은 요즘 미소 짓는 관린의 입술을 볼 때면 입맞추고 싶어져서 눈빛이 흐늘흐늘 해졌다. 하지만 다행히 본능을 다스리는 기술도 절로 늘어 사고치지 않고 하루하루 친구의 이름 아래 버티고 있었다.

 

만일 입맞춤을 한다면. 없던 일을 만드는 건 순간 이었지만, 있던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건 영원이 지나도 불가능 하니까. 그렇게 해서 잃게 될 것들을 생각해보자고. 참자고. 참아보자고. 지훈은 매일 허벅지를 꾹꾹 엄지손톱으로 눌렀지만 것도 자꾸만 내성이 생기고 있었다.

 

가볍게 먹은 마음이 아닌데, 무겁고 숨 막힐 정도로 농밀한 마음인데 자꾸 이것이 밀도를 무시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려 하는 통에 지훈은 요즘 힘든 순간이 많았다. 혼자 멍해지고, 혼자 붉어지고, 혼자 입맞추고 싶어져서 몸이 괜히 배배 꼬였다. 뭐든 오래 참으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그 밤, 예고 없는 열병이 찾아왔다. 이상하다 했다. 날이 덥고 몸에 열감이 가득한데도 종종 오한이 났고 난데없이 눈 앞이 어지럽기도 했으며 목 안이 깔끄럽고 간지러웠다. 이게 꼭, 평소 앓던 마음과도 증상이 비슷해서 지훈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잠자리에 누웠다가, 밤이 깊어갈수록 통증이 심해져 끙끙 아파 앓는 소리를 냈다.

 

관린이 그 소리를 듣고서 얕은 잠에서 깨어 지훈의 이마를 짚었다. 데일 듯 뜨거웠다. 쓴 적이 거의 없던 수은 체온계를 낡은 구급상자에서 꺼내, 지훈의 티셔츠 안에 손을 넣고서 겨드랑이 사이에 체온계를 끼웠다. 39도. 힘겹게 밭은 숨을 내쉬는 지훈을 도저히 가만 두고 볼 수 없어서, 관린은 지훈을 업고 동네를 내려가 응급실에 가기로 결정했다. 밖에는 사정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왔다. 늘 하늘은 관린의 사정 같은 건 헤아려주지 않았으니까. 길을 나서기 전, 집에 하나 있는 비옷을 찾아서 지훈에게 입혔다.

 

지훈은 고열에 시달리며 앓는 소리를 내면서 실눈을 떴다. 꿈인가. 귀도 먹먹하고 시야도 흐릿한 게 왠지 현실감이 없었다. 눈앞에 관린의 얼굴만 꽉 들어찼다.

 

“괜찮아?”

 

관린의 빨간 입술이 계속 눈앞을 알짱거리며 달싹였다. 지훈은 이런저런 고민이나 생각도 해볼 겨를 없이 꿈결이라 생각하고, 관린의 뒷목을 붙들고 몸을 일으켜 입술을 맞부딪혔다. 열감에 갈라진 지훈의 입술과 관린의 부드러운 입술은 꽤 오래간 붙었다가, 정신이 든 관린이 뒤로 풀썩 넘어져 나앉으면서 떨어졌다.

 

지훈의 그 마음을 그렇게 미련하게 몰랐냐고 관린더러 누가 묻는다면 글쎄, 세상엔 몰라야만 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그런 것들.

 

관린은 잠시 얼이 빠져 있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려서 지훈을 들쳐 업고 비를 쫄딱 맞아가며 그 많은 계단을 다 내려갔다. 빗물에 그리고 땀에 흠뻑 젖어 엉망이 되어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훈이 다행히 그냥 일반적인 감기몸살이란 사실에 안도했다. 해열제를 먹고서 잠든 지훈의 두 손을 꼭 붙들었다. 그제야 으슬으슬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어휴, 이러다 학생도 병 나.”

 

간호사는 젖은 옷을 입은 채 앉은 관린이 안쓰러웠는지 남는 환자복을 하나 챙겨주었다. 그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관린은 잠이 든 지훈의 얼굴을 한참 앉아 바라보다 침대에 엎드려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말 지훈에게서 감기가 옮은 걸까. 아까 스친 입술이 화끈거렸다.

 

“몰라, 나는. 모를래. 지훈아.”

 

 

✿✿✿

 

그렇게 많은 비를 퍼붓고도 하늘은 허물어지지 않았고 어느새 계절은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관린의 생일을 조금 앞두고 관린의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식사량이 점점 줄어들고 체력이 약해져 있던 차에 급성 폐렴에 걸린 것이 원인이었다.

 

지훈은, 사람 하나 죽어 없어지는 데에도 그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걸 관린의 할머니 장례식을 통해 깨달았다. 보통은 천만 원 넘게 든데, 장례비용. 관린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다행히 조손가정 무료장례지원을 알아 봤기에 장례는 잘 치를 수 있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신에 식장을 하루밖에 못 빌려. 2일장 해야지 뭐. 어차피 조문객도 없을 거고. 씁쓸한 듯 웃었다. 지훈은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제 양 손 손톱만 티각티각 맞부딪혔다.

빈소가 차려질 때부터, 운구하고 화장장에 갈 때까지 지훈이 줄곧 함께 하며 지켜보는 동안 관린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화장 후, 유골함을 들고서 지훈과 함께 바다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다에 뿌려드리는 게 납골당이나 수목장보다 훨씬 싸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담담했었고. 바다장을 치르기 위해 승선을 하고나서도 관린은 쭉 멀쩡한 표정이었다.

 

이제 병원 말고 여기저기 잘 다니시겠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관린의 말에 지훈은 괜히 제가 대신 눈시울이 시큰해져 계속 땅에 발끝만 비볐다.

 

병원에 계신지도 워낙 오래되었고, 짐 정리랄 것도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빈 집에 돌아왔을 때, 고마웠다고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손짓하는 관린의 말을 한사코 무시하고서 지훈은 밥을 끓여 죽을 만들었다.

 

“너 요 이틀 거의 계속 굶었잖아.”

 

맨 흰 죽에 간장종지. 김치 조금. 관린은 숟가락 끄트머리로 조금씩 죽을 떠서 호호 불어먹었다. 뭘 먹어보려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본 지훈이 안심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관린이 커흡 컥컥 소리를 내며 가슴팍을 치는 뒷모습이 보였다.

“왜? 사레 들렸어? 물 줄 테니까 있어봐.”

 

물 잔을 상에 내려놓는데 암만해도 기침 같지 않아 고개를 숙여 관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욱욱 계속 치미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지훈은 마주 앉아 관린의 몸을 당겨 안아 토닥여주었다. 도저히 위로의 말을 고를 수 없어 등만 쓰다듬는데 관린이 먼저 지난 후회를 토해냈다.

 

“가끔 병원비 내기 너무 힘들어서, 너무 다 지긋지긋해서 돌아가셨음 했어. 가끔 그랬어. 나… 때문에. 그래서 갑자기 나 때문에…”

 

너 때문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이런 말을 한다고 괜찮지 않을 걸 잘 알면서도 지훈은 계속 관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할머니한텐 나밖에 없었는데 난 그런 생각했어. 미안해요. 미안해. 울음에 다 허물어진 목소리로 말하는 관린을 언제까지고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작고 눅눅한 방에 서럽게 우는 소리만 가득 찼다. 지훈은 그 소릴 듣고만 있는데도 맨살이 바늘로 꿰뚫리는 듯 아팠다.

 

나 이제 어떻게 살까 지훈아. 자겠다고 불 끄고 누워있기를 한참, 관린은 코가 맹맹해진 목소리로 지훈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 사실… 쭉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주 오랫동안. 나 의대 안가고 그거 해도 될까?”

관린은, 지훈에게도 누구에도 굳이 물을 필요 없는 사실을 괜히 깜깜한 허공에 대고 물었다. 누군가의 흔쾌한 허락을 기다리듯이. 지훈은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잠긴 목소리를 다듬어 물었다.

 

“뭐 하고 싶은데.”

“…시인. 나, 시 쓰고 싶어.”

 

도리어 좀 더 형편이 살만한 친구가 그런 얘길 했다면 정강이를 차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굶어죽기 딱 좋다 너. 무슨 시를 써. 시 써서 잘 되는 사람도 물론 있지. 잘 버는 사람도 있어. 근데 그게 네가 되리란 보장이 어딨어? 그런 말 쉽게 하며 마음껏 뜯어 말렸을 텐데. 어쩐지 지훈은 관린에겐 한마디 섣부른 응원도, 반대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꿈마저 꾸지 못하면 관린은 이제 뭘 바라보고 살아야할까 싶어서.

 

“써. 관린아.”

 

한참 고민하다 한 얘기란 게 고작 그게 다였다. 내가 꿈을 바꾸면 되지 뭐. 너희 집 문 앞에서 짖어 가난을 내쫓는 개로. 네 펜촉을 마르지 않게 적시는 잉크로. 내가 꿈을 바꾸면 되지. 내가 너의 시가 되면 돼.

 

 

✿✿✿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지훈과 관린은 같은 반에 배정받았다. 관린은 결국 담임과 한참 실랑이 끝에 겨우 진학 목표를 한국대 국어국문학과로 바꾸었고, 지훈은 한국대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늦은 시작이긴 했지만, 그나마 한국대 문턱을 밟기에 성적이 좋지 않은 지훈에겐 이 길이 조금 더 승산 있는 길이었다. 요행히 미술 쪽에 생각보다 재능이 있어 학교 선생이나 학원 선생이나 뜯어말리진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한국대 타령이야?”

 

누가 그렇게 말해도 지훈은 그냥 웃고 말았다. 제가 관린이랑 같은 대학을 다녀야, 같이 살아서 걔가 집세를 안내게 하죠. 그 얘길 누구한테 하겠냐고. 좋아하는 애 돈 안 들게 하려고 진로를 바꿨어요. 그렇게 말할 순 없잖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지훈은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벚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또다시 휴일 많은 5월이 되었다. 한 날, 관린이 지훈의 손을 잡고 산으로 향했다. 편하게 입고 나오라 할 때부터 뭔가 수상하긴 했는데. 등산에 취미가 없는 지훈은 한숨부터 쉬었다. 지훈, 요즘 너무 열심이더라. 우리 오늘 하루만 딱 쉬자. 매일매일 일정한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리던 관린 답지 않은 소리였다.

 

“지훈. 공부는 잘 돼?”

 

같은 반에 있는데다가, 방과 후에도 과외 핑계로 곧잘 붙어있는 사이에 주고받을 인사는 아니지만 워낙 요즘은 대화할 시간이 없으니 그런 질문도 무리는 아니었다.

 

“생각보단 잘 돼.”

 

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곤 한참 더 걷더니 아카시아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러더니 모처럼 책 없이 홀쭉한 가방에서 도시락 통을 꺼냈다.

 

“이거 김밥. 내가 만들었어. 날이 생각보다 더워서 상하기 전에 지금 먹는 게 좋겠다.”

 

비좁은 부엌의 낮은 조리대에서 새벽부터 온갖 야채들을 붙들고 씨름을 했을 관린을 생각하니 지훈은 자꾸 웃음이 비져나왔다. 인터넷 완전 열심히 뒤져서 만들었어. 단무지도 치자물 쪽쪽 빼서 잘게 썰고 또.. 보면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공부밖에 모르는 애가 피크닉 한번 가겠다고 그걸 다 준비하고 있는 게.

 

“관린아 근데 이거 왜…”

 

김밥은 칼집 하나 안 난 통김밥이었다. 내가 시험 삼아 하나 쓸어봤는데 칼날이 무딘지 내가 요령이 없는지 옆구리가 다 터지드라 계속. 그냥 손으로 잡고 먹어. 비닐장갑 챙겨왔어. 관린은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비닐장갑을 가방서 꺼냈다. 지훈은 그걸 보곤 그 해 들어 가장 크게 웃었다.

 

“우리 지금 되게… 석기시대 사람들 같은 거 알아?”

 

우물우물 통김밥을 뜯어 씹으며 지훈이 말했다. 너 고기 좋아해서 햄 두 줄 넣었어. 진작 김밥에서 손을 떼고 멍하니 지훈만 보고 있던 관린은, 딴소릴 하며 지훈의 머리칼에서 나뭇이파리를 떼어냈다. 나무 밑에 있으니 머리에 자꾸 뭐가 묻네 하고 웃으며.

 

“관린아. 넌 왜 얼마 먹지도 않아? 내가 다 먹고 있다 지금.”

“몰라. 배가 별로 안고파. 너 많이 먹어.”

 

그러더니 냅다 지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김밥을 다 먹고 도시락 통을 치우고 나니 참기름 냄새에 감춰져 있던 아카시아 꽃향기가 제대로 나기 시작했다. 하늘 진짜 파랗다. 그 하늘처럼 청아하게 웃으며 관린이 말했다. 그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다 그만 또 기분이 묘해진 지훈이 관린을 냅다 일으켜 앉혔다.

 

“야 밥 먹자마자 드러누우면 소 돼. 일어나.”

“변하면 어때. 소 좋겠다. 그거 좋네. 아무 걱정도 없고.

누워 너도.”

 

그러더니 돗자리에 팔을 베고 덜렁 누워선 지훈도 끌어당겨 눕혔다. 몸을 구기고 모로 누워 관린의 옆얼굴을 보자 맥동하는 제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진짜 미치겠네. 관린은 이런 속도 모르고 돌아누워 지훈을 마주보았다. 가까이서 눈을 어찌나 또롱또롱 뜨고 있는지 지훈은 관린 눈동자에 고스란히 비친 제 모습에 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말없이 한참을 숨소리만 내며 서로 바라보았다. 관린의 눈이 느리게 꿈뻑였다. 손을 뻗어 지훈의 얼굴을 매만지기도 했다. 영화 보면 보통 이럴 때 키스하던데. 지훈은 괜히 입이 말라 침을 삼켰다. 그러나 관린은 도로 손을 거둬가며 물을 뿐이었다.

 

“아카시아 꽃말이 뭔 줄 알아, 지훈?”

“아니. 나 꽃말 같은 거 잘 몰라….”

관린이 말을 이을 듯 말듯 입술을 들썩이다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우정.”

 

듣고 싶지 않았는데. 지훈은 아무래도 아카시아 향기가 새삼 속이 아파 싫었다. 그냥 얼른 집에나 가서 이불을 머리까지 눌러쓰고 좀 자고 싶었다.

 

“그리고 또…”

“우리 그냥, 내려가자 관린아.”

관린은 잠시간 지훈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몰라. 다른 꽃말은 생각이 안 나네. 까먹었다. 내려가자 그냥.”

 

산을 오를 때도 말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내려올 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카시아가 아니라 라일락이 피는 델 갔었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그러면 지금쯤 돗자리에 누워서 다정하게 서로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입맞추고 있었을까. 지훈은 내려오는 내내 그런 하나마나한 생각들을 했다. 그러느라 관린이 종종 깊이 한숨을 내쉬는 걸 듣지 못했다.

 

 

✿✿✿

 

고3 여름 쯤 되니 대부분의 선생들이 자습을 시켰다. 은근슬쩍 턱을 괴고 자는 아이들도 있었고, 멍하니 공상에 잠긴 애들도 더러 있었지만 관린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문제집을 기계처럼 풀어 내렸다. 한 분단 건너 앉은 지훈은 늘 문제집 모퉁이에 관린을 그렸다. 쳐다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된 게 유감이었다. 이미 보고 그릴 필요가 없을 만큼, 그만큼 그려 왔다. 그립다의 어원이 ‘그리다’ 라 했다. 아무리 지척에 있어도 끝내 닿을 수 없는 것은 늘 그립기 마련이었다. 저기 앉아 있는 관린도 그림 속에 들어앉은 듯 멀게만 느껴졌다. 언제나 그리웠다.

 

“그렇게 끙끙 앓지 말고, 누구한텐진 몰라도 고백이나 한 번 해봐. 차일 때 차이더라도.”

 

어느 날, 정훈이 난데없이 조언 했다.

 

“집에서 존나 나까지 진 빠지게 한숨 푹푹 쉬지 말고 고백을 하라고 그냥.”

한 번 입에 담아보지도 않은 마음을 남이 그렇게 쉽게 알아채서 냅다 말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명확한 걸 정작 당사자인 관린은 모른다는 건 더 싫었다. 그리고 고백을 할 용기가 도통 나지 않는 스스로가 제일 싫었다.

 

비겁하다 하겠지만 이대로도 나쁘진 않았다. 관린은 연애 같은 건 도통 생각이 없어 보였고, 달리 주변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고백이란 게 말 뜻대로 그랬다. 숨김없이 마음 안의 모든 걸 다 말하는 것. 이제와 그런 걸 했다가는 지금보다 더 관린을 좋아하는 게 힘들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을 걸고 괜한 도박을 하기엔 너무 큰 마음이었다. 어느 새 버리지도 채우지도 못하게 거대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 스케치북 안 가득해진 관린을 보았다. 그리고 관린이 습작을 하는 노트에 지훈을 함의하는 시어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카시아의 꽃말을 이야기 하던 관린의 빨간 입술이 떠올랐다. 너무도 무정한 우정이라는 그 단어가. 그래서 우정이든 뭐든, 그래도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자신이 관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희망사항을 바꿔보았다. 그제야 마음이 따끔거리던 게 조금은 가라앉았다. 한 번도 사랑이라 이름 해주지 못한 첫 마음도 심해로 가라앉았다.

 

 

✿✿✿

 

지훈이 수능을 쳐야하는 고3 수험생이라는 사실은 본인보다 주변에서 더 의식하는 것 같았다. 11월 초쯤 되자 가족들은 어디서 자꾸만 초콜릿이나 엿 사탕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배들도 쪼들리는 용돈을 모아 지훈의 품에 안겼다. 단 걸 아무리 먹어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기에 그제야 실감했다. 그 날이 다가온걸.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무조건 관린과 같은 학교에 가야했다. 재수를 해서라도. 그 일념 하나로 지난 시간 꼴같잖은 공부를 애처로울 정도로 붙들고 있었던 거니까. 시험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끝났고, 관린의 집에 함께 가 가채점을 해보고는 함성을 지르고 서로 목을 끌어안았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실기고사만 잘 치러 내면 무리한 꿈도 아닌 것 같았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건너가는 겨울은 층운이 가득 낀 산허리 같았다. 눈을 뜨고 갈 길을 살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두려웠고, 그러면서도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세토소어 ‘subuhlellana’에서 유래한 ‘스물’은 꽉 차서 넘치는 것을 의미했다. 마음도 나이를 먹는 듯했다. 스무 살이 된 마음은 이제 꽉 차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게 새어나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훈은 그런 고민을 안은 채로 관린의 집에서 관린과 첫 술잔을 기울였다.

 

“지훈, 이제 이 방에 놀러오는 거 마지막이네.”

 

관린은 거의 합격이 확실했다. 학교 기숙사가 거리 순으로 제공되는 까닭에, 서울에 사는 둘은 아마 방을 얻어야할 터였다. 때문에 관린은 최근 인터넷을 뒤적여 학교 근처 고시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근황들을 대화로 나누다 별안간 관린은 어느 순간 저 혼자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마시는 술인데다 잘 받지 않는 모양인지 지훈은 발간 볼을 하고서 풀린 눈을 연신 깜빡였다.

 

“관린아, 좋아해.”

 

줄곧 외면해왔다. 그리고 휴화산처럼 멎어 있는 지훈의 마음을 보고 안심했었다. 딱 이만큼이 안전거리였다. 이기심이겠지만, 멀리할 수 없으면서도 이 이상 지훈을 가까기 하기가 두려웠다. 자신의 불행과 가난이 지훈에게 전염병마냥 옮아가 버리진 않을까 가슴 깊이 두려웠다. 그래서 지훈에 대한 마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생각 끝의 감정이 사랑이 아닐 리 없었고, 사랑하다보면 멈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좋아한다고, 관린아.”

“나 너 좋아해. 관린아.”

“진짜 너무 많이 좋아해.”

 

속이 꽉 찬 과실을 비틀어 짜는 것 같은 고백이었다. 여물어 스물이 된 첫사랑에서는 향긋한 향이 났고 그 고백을 즙처럼 한 번씩 내뱉을 때마다 지훈은 점점 몸이 쭈그러들어 술상 앞으로 기울었고, 그 새콤한 즙이 눈에 튀어 관린은 자꾸 눈이 시큰거렸다.

 

“좋아해… 관린아.”

 

지훈과의 사랑은 선악과 같은 금단의 열매였다. 한번 먹고 나면 사랑과 이별을 모두 알아버릴 것 같았다. 지훈과 함께 했던 에덴에서 내쳐질 것만 같았다.

 

이제 아예 술상에 쿵 머리를 박고 엎어져 잠든 지훈을 조심히 이불 위에 눕혔다. 열이 올라 꼼지락대는 발가락에서 양말을 벗겨내고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불 위로 빼꼼 나온 빨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기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는지. 티끌만한 흠결도 보이지 않았다. 이마로 입술을 가져가다 도로 거두고 그 옆에 누워 자그만 손을 제 손 안에 넣어 꼭 쥐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이제 열아홉이 된 관린은 아홉의 불완전함에 대해 감사했다. 아직까지 제 마음에 대해 모른 척 할 수 있는 일말의 여유에 대해.

 

 

✿✿✿

 

간밤의 고백은 날이 밝아오면서 달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고백을 한 사람은 기억을 하지 못했고, 고백을 들은 사람도 끝내 못들은 채 했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 지훈은 실기를 무사히 잘 치렀고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둘은 합격 통보를 받고서 함께 자축하며 두 번째 술잔을 기울였다. 그 날의 배경은 꽤 시끌벅적한 음악이 나오는 술집이었고 둘은 뜻없는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정신없이 웃었으며 고백 같은 건 다시 나오지 않았다.

 

입학이 확정되자 지훈은 관린을 설득해 끝내 같이 방을 얻었다. 방을 늦게 구하기 시작한 바람에 투룸이 없어 원룸을 얻긴 했지만 평수가 꽤나 넓게 빠져 둘이 함께 지내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예전에, 그 방에서도 둘이 꽤 지냈는데 여긴 천국이지. 관린은 달동네에 있던 그 집을 떠올리며 웃었다.

 

같이 살 집에 들여 넣을 침구나 자질구레한 소형가전을 고르면서 지훈은,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보다 행복하고 들뜬 얼굴을 했다. 다 꾸며진 집 사진을 영훈과 정훈에게 보냈더니, 미친. 장가 가냐? 그런 류의 비슷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같이 지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같이 지낸다고 뭐가 막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지훈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개강을 하고나자 둘 다 각종 모임이며 술자리에 불려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통에 같이 살기로 한 것이 -지훈의 입장에서는- 무의미 해질 지경이었다. 고등학교 땐, 세상 둘 밖에 없는 듯 진종일 붙어 다녔지만 대학 오고부터는 아무래도 과가 다른지라 한 집에 살아도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았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전혀 겹치지 않았다.

 

생활패턴도 크게 달랐다. 관린은 중간, 기말 시험 때 도서관에서 날밤을 새느라 죽을 맛이었지만, 지훈은 미대 특성상 이렇다 할 시험기간이 없는 대신에 날마다 과제에 치어 죽을 맛이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담배를 권하는 동기 세진에게 이끌려 스모킹 존까지 따라 들어가 순간 받아들어 필 뻔도 했지만 흡연을 시작하면 함께 생활하는 관린에게 해가 될까 해서 꾹 참았다.

 

“야, 박지훈. 너 니 룸메 좋아하지.”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 파묻혀 멍청하게 서 있는 지훈에게 세진이 물었다.

 

“뭔 소리야 뜬금없이.”

“빼지 마. 존나 티 나니까.”

 

너 예전에 엠티 가서 술 먹고 걔 이름 부르면서 울었잖아. 지훈은 그렇게 말하는 세진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와씨 내가 언제 그랬지.

 

“괜찮아. 그거 나밖에 아무도 못 들었어.”

“너도 모른 척 해.”

“너 근데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만 있어도 되냐? 걔 아주 그냥.. 인문대에서 라이관린 모르는 사람 없던데?”

 

고등학교 때도 그랬어. 잘생겼지. 공부 잘하지. 착하지. 지훈이 멀뚱히 바라보며 뻔뻔하게 대꾸했다. 와, 이 새끼 완전 팔불출이네. 세진은 골 때린단 듯이 웃으며 재떨이에 꽁초를 지져 불을 껐다.

 

“걘 알아?”

“알면 나랑 살겠냐.”

“글쎄…”

 

너 신입생 환영회 날 뻗었을 때, 걔가 너 데리러 와서는 니 앞에 앉은 해승이 형이랑 진호 형 아주 죽일 기세로 노려보던데. 진짜 눈으로 쌍욕을 하더라니까. 너 술 먹였다고. 그래서 말인데.

 

“관린이 걔도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걔가 그냥 나 걱정해서 그래. 엄청 친하니까.”

“아냐. 아닐 텐데. 아닐 걸….”

“너야말로 아니야. 그만해. 들어가자 수업 늦겠다.”

 

남이 그렇게 말해봤자 본인이 아무 말 없는데 다 무슨 소용이야.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강의 듣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

 

음운론, 의미론, 형태론, 통사론 등등…. 관린은 말과 글, 이론에 시달렸다. 틈틈이 공모전이나 신춘문예 준비도 하고 습작도 계속했다. 고단하지만 행복했다. 괜히 의대에 들어갔더라면 말의 뼈대와 살점 다신에 사람의 그것들에 파묻혀 흥미도 없는 것들을 공부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훈 말고는 달리 친구가 없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 와서는 그냥저냥 마음 잘 맞는 동기들도 제법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무민이었다. 왜 너도 나보면 그 하마새끼 닮은 트롤 생각 나냐? 관린은 그 남자앨 처음 보고 입가에 묻은 밥풀이 우스워 웃었는데, 걘 다짜고짜 저런 얘길 하며 버럭 화를 냈다. 본명이 김무민 인데 생긴 것도 무민 닮았다고 놀림 받는 통에 개명을 꿈꾸고 있다고. 관린은 알지도 못했던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그제야 알았다.

 

황당한 첫 만남과는 달리 얘기가 잘 통했다. 특히나 지훈 얘길 어디 가서 터놓고 할 수 있는 곳은 무민 뿐이었다. 시작은 잠시 놓고 온 과제를 가지러 둘이 같이 관린 집에 들렀을 때였다.

 

“관린아. 너 애인이랑 살아?”

“무슨 소리야?”

“애인 맞는 거 같은데.”

“친구야. 친구.”

 

친구랑 더블베드에서 같이 잔다고? 무민은 양 손을 끌어다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친구라 쳐도 그냥 친구는 아닐 텐데.

 

“친구가 그냥 친구 아님 뭐가 있는데.”

“연애하는 친구, 사랑하는 친구, 같이 자는…”

“아 그런 거 아니야.”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친했어. 진짜야.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도 옆에 있어줬고. 내가 걔 과외도 해줬고. 그냥 우리 집에서도 워낙 많이 놀고.. 그냥 단순히 친했던 것뿐이라는 설명이 길어질수록 무민의 의심의 눈초리는 짙어졌다. 그게 좋아하는 거잖아 임마. 관린이 3년 가까이 숨겨 밀어두고 있는 마음을 그는 명쾌하게도 한 마디로 입 밖에 툭툭 내뱉었다. 얄밉기도 하고, 속이 조금 시원하기도 했다.

 

하루는 관린의 습작노트를 힐끗 보곤 그랬다. 넌 시 쓰는 사람이 아니라, 박지훈 쓰는 사람이네. 다 걔밖에 없어. 문장도 단어도 다 걔 하나네.

 

“인정해. 너 걔 좋아해.”

“아니야. 나는… 몰라.”

 

좋아 그럼.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말해주면, 놀리지도 않고 이 문제로 성가시게 묻지도 않을게.

관린은 말을 할까 말까 한참을 입을 오물거리다 힘들게 운을 뗐다.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할래?”

 

집 앞의 술집에 가 냉장고에서 술을 잔뜩 빼왔다. 안주는 간단히 탕으로 시키고. 그러고선 안주도 없이 내리 한 병 가까이 소주를 들이부었다. 꽉 찬 5잔 쯤.

 

“엑. 이만큼이나 쓴 얘기야?”

“아니, 이만큼이나 맹탕인 얘기.”

 

물 타서 희석되고 희석된 얘기야. 이 얘기 듣고 나도 넌 내가 왜 걔한테 못 다가가는지 납득 못할 걸.

 

“자 이제 본론. 들어 줄게.”

“지훈이 걘 부족한 거 없이 살았어. 맑고 밝은 애고, 어디 가서도 사랑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어. 그럴 수밖에 없는 애야, 걘.”

 

야, 잠깐. 나 지금 속 좀 안 좋을라 그래. 무민은 신경질적으로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근데 난 가난하고. 메마르고. 표현 같은 것도 잘 못해.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왔어. 걜 알고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느끼고, 얼마나 과분한 걸 받았는지 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난 걔 옆에 있으면 몇 시든 아침이고 몇 월이든 봄이었어. 늘 밝았고, 늘 따뜻했거든.

 

“대체 뭐가 문제…”

 

그는 딴지를 걸려다, 우는 것 보다 더 쓰게 미소 짓는 관린을 보며 도로 말을 삼켰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줄 수 있는 건 걔가 마땅히 누리고 살아야 할 것들보다 너무 적을 거야. 난 자책할거고 불행할거야. 그럼 걔도 힘들 거잖아.”

 

어떻게 내가 감히 걔를 사랑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애한테 어떻게 평생 내 옆에서 울어달라고 말을 해. 그냥 걘 항상 웃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내 맘 모르는 거로 하고 살 거니까.”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하며 무민이 관린의 빈 잔에 소주를 꽉 채워 따랐다.

“딱 한마디만 잔소리 좀 하고.”

“뭔데.”

“너 진짜 이기적이야, 관린아. 위해주는 마음은 알겠지만 너 걔한테 안 물어봤잖아. 뭐가 걔한테 행복일지.”

“당연히 그 바보는 자기 생각 같은 건 안 하고 자꾸 그렇게 나 위해서 뭘 자꾸 하려고 하고… 무리하고…”

 

그러니까 임마. 그게 그 사람 행복이고 그 사람 사랑일 수도 있는 건데. 네가 없으면 걔가 웃지 못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너 그냥 비겁한 거야. 그냥 자신 없어서 뒤에서 찌질대는 거야 임마. 자 이제 잔소리 끝.”

 

그 날, 관린은 생각도 안 날만큼 술을 속에 들이붓고 반송장이 되어 집까지 실려 갔다.

 

 

✿✿✿

 

초인종이 울려 현관문을 열고, 문 틈새로 쏟아져 흐르듯 들어오는 관린을 안은 지훈은 깜짝 놀랐다.

 

“야 너 무슨 술을 이렇게…”

“응… 어? 지훈. 지훈…”

 

숨만 쉬어도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귓가에 대고 자꾸 입술을 푸르르 떨며 한숨을 쉬어대는 통에 지훈은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침대까지 관린을 질질 끌다시피 데려가 겉옷을 벗기고 재우려고 셔츠를 벗겼다. 소매 단추 양쪽을 풀고, 목에서부터 차례로 단추를 풀어 내렸다. 단추가 하나, 둘, 세 개쯤 풀어져 가슴팍이 드러났을 때 관린이 취한 사람의 기운이라곤 생각할 수 없이 세차게 지훈의 손목을 낚아챘다.

 

“내가… 할…거…ㅇ…”

 

관린은 자꾸 헛 손짓을 하며 엄한 셔츠자락만 꼬집었다. 보다 못한 지훈이 다시 셔츠로 손을 뻗었을 때 관린이 다시 손목을 세게 잡았다. 꼬여드는 혀가 제가 생각해도 초라했는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기에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지만 원망스러운 듯 슬픈 듯 물기어린 그 눈빛은 너무도 선명했다.

 

둘은 한참동안 말없이 눈만 맞추고 있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해 창문을 열어뒀더니 간혹 차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렸다. 부엌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 취침등 하나만 옅게 켜진 방안은 어두웠지만 그 어둠에 눈이 익어 서로의 얼굴은 너무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 얼굴이 끝내 닿을지 않을 듯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까워졌다. 그러다 관린이 먼저 지훈의 뒷목을 끌어당겨 색을 잃고 까맣게 물든 지훈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볼에 오래간 붙어있던 그 입술은 지훈의 얼굴을 쓸며 내려와 마침내 입술을 찾아 맞부딪혔다. 늘 지훈에게 상냥하기만 했던 관린은 지훈의 혀뿌리를 뽑아버릴 듯이 빨아들였다. 그 덕에 지훈은 힘들게 밑바닥에 침전시킨 그 마음들을 이제와 전부 다 게워낼 것 같았다.

 

얼떨떨했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혀를 섞기 바빴다. 관린을 만난 지 세 번째 봄만의 첫 키스였다. 그리고 마지막 키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혀를 마주비비다 잠시간 입을 떼고 다시금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둘 다 밭은 숨을 몰아쉬어서 그런지 입술 사이를 감도는 공기가 농밀했다. 둘은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입술을 맞부딪혀 혀를 섞다가 끌어안고 침대 위로 넘어졌다.

 

한참을 이불 위에서 부스럭대며 키스하다가 열에 들떠 뜨거운 다리를 겹쳐 감았다. 그 때 관린이 지훈에게 매달려 안기듯 끌어안고 물었다.

 

“지훈, 너는 내가 왜 좋아?”

 

그 밤, 지훈은 관린을 만난 이후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을 했고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 관린이 모든 마음을 알고 있었음이 새삼 슬퍼졌다. 그냥 눈치가 없어도 여간 없는 게 아닐 뿐이길 바랐는데. 모른 척 했었다는 게. 그리고 오늘 밤 일들을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게.

 

다 알면서도 그 날 기어이 지훈은 관린을 데리고 선을 넘었다. 결코 오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참의 정사와 순간의 파정 끝에 지훈은 관린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그 다음날, 아무리 숙취해소제를 마셔대도 관린은 목이 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나마 주말이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지훈은 어디론가 외출을 하고 없었다. 대체 어젯밤에 어떻게 들어와 어떻게 잠이 든 건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관린은 필사 할 시집을 들고 카페로 가 요거트 스무디를 한 잔 시켜놓고 틈틈이 빨대를 빨며 베낄 시를 훑었다. 그러다 꼭 제 마음 같아 단숨에 눈길을 끄는 시를 찾았다.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어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던 지훈의 얼굴이 기억났다.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천년 만에 하늘과 조우한 이무기처럼, 조갈 나고 조갈 난 나그네들처럼 키스하던 게 기억났다.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

 

개처럼 거리낌 없이 발정하면서도

주인 잃은 개들처럼 애처롭게 서로 핥아대던

지난밤이 기억났다.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마침내, 다 기억났다.

 

관린은 카페 테이블에 모든 짐을 다 내버려두고 미친 듯이 집을 향해 달렸다. 여기서 일 초라도 늦으면 영원히 늦을 것 같았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지훈의 짐은 깔끔하게도 빠져 있었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이미 아주 많이 늦었을 거란 슬픈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지훈의 옷이 빠져나간 옷장 안을 살펴보는데 속이 벌레에 좀먹혀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울 기운도 없어 침대 위에 풀썩 엎어져 머리 꼭대기까지 이불을 덮어썼다.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지훈이 떠나고 나니 웃는 방법은 물론, 우는 방법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

 

“박지훈 미쳤어? 웬 유학 갑자기? 학교는?”

“휴학. 유학 때문에 특별휴학 하는 건 기말고사 기간 전까지만 신청하면 된대.”

 

갑자기 유학을 선언한 지훈 때문에 세진은 놀라 거품을 다 물 지경이었다.

 

“어디 가는데?”

“파리.”

 

이럴 땐 역시나 집에서 적당히 내놓은, 돈 많은 집 자식인 게 다행이다 싶었다. 지훈의 모친은 지훈이 한국대 입학한 것만으로도 의외의 결과라 뿌듯해 했는데, 저 알아서 진로에 걸맞은 곳을 알아보고 유학까지 준비했다니 길게 듣지도 않고 오케이 싸인을 했다. 사실 급하게 알아본 거라 가서 자리 잡는데 보통 사람들보다 갑절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무작정 당장 떠나야 했다.

“관린이 때문이지 너.”

 

여기 온 것도, 거기 가는 것도 전부. 그렇게 말하는 세진은 다행히도 지훈을 한심해 하는 투는 아니었다. 걔가 너 깠냐? 내가 가서 패줄까? 그렇게 말하는 걸 봐서는 분명 동정이나 연민 같은 그런 것에 좀 더 가까웠다.

 

“나 좀, 걔한테서 떼어내야 될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안 하면 도저히 멈출 방법을 모르겠어서. 몇 시간의 시차와 몇 개의 대양 정도는 사이에 끼워놔야 돌아올 용기를 못 낼 거 같아서.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휴학계를 내고 집에 가서 초대형 사이즈의 짐 가방에 꾸역꾸역 짐을 꾸렸다. 책상 서랍을 뒤지자 기도 안 찰만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고2 때, 관린이 쥐어줬던 사탕의 껍데기 같은 것들. 떠날 마음이 약해질 때쯤 그런 것들의 동기부여를 해줬다. 이 정도 불치병이면, 그 정도 멀어져야 잊을 공산이 있는 거라고.

 

혹시나,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관린이 따라 나올까 싶어 아무에게도 비행기 시간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청승맞게 밤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로 떠났다. 에콜 데 보자르 (ENSBA) 에 입학해서 온종일 프랑스어와 그림에만 골몰했다. 관린의 얼굴을 그리지 않으면 그리워하지 않는 거라 생각했는데, 무엇이 애초에 붓을 잡게 했는가를 생각하다 무너져 내렸다.

 

그림 진짜 너무 예뻐. 색감도 따뜻하고. 이거 그린 사람도 왠지 되게 예쁜 사람일 것 같애.’

 

잊으면 한국에 돌아가자, 매일 그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이 지켜지려면 그 다짐부터 잊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참 꼴같잖게 대단한 첫사랑이었다. 8976km의 거리와 8시간의 시차와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경들 중 그 어느 것도 관린을 잊는데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해가 바뀌어 지훈은 이제 스물 하나가 되었다. 또다시 다른 열을 향해 채워져 가야 할 시간들이었다.

 

새해 선물이라며 세진이 보낸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곱게 포장된 시집 한 권이 들어있었다.

 

‘라이관린 등단했다. 신춘문예 당선 됐대. 다른 작품이랑 같이 엮어서 벌써 시집도 냈어. 읽어나 보라고.’

 

지훈은 그 시집을 받아든 순간, 한국에 돌아갈 날이 몇 년은 더 길어지겠다 생각했다. 하여간 한세진, 도움 안 되는 새끼. 시집을 포장지 채로 거실 테이블 위에 던지고 꾸역꾸역 입게 저녁밥을, 아니지 파스타를 밀어 넣었다. 면을 삶다 정신을 빼놓고 있던 바람에 면이 팅팅 불어 더럽게도 맛이 없었다. 먹다 반 가까이 남겨버리고 소파에 앉아 한참을 그 포장지를 뜯을까 말까 고민했다. 그래 여차하면 프랑스에 눌러 살지 뭐. 처음부터 답은 하나였다. 지훈은 포장지를 찢어발기듯이 급하게 뜯었다. 첫 시를 읽자마자 지훈은 황급히 집에서 나설 준비를 했다.

 

 

密語 (밀어)

 

감춰온 모든 것이 죄 같아서

어젯밤은 나신으로 잠들었다

 

꿈결의 진공 그 속에서

밝아 사라지는 어둠을 붙잡고

헐벗은 목소리로 외쳤다

 

밥을 넘겨 삼키는 네 입만 봐도

나는 공복을 모르게 된다고

네가 모르는 아카시아의 꽃말은

숨겨진 사랑이라고

 

그리고

정작 내가 모른다 했던 것들은

결코 내 마음이 모를 수 없었음을

 

너는 여전히 모르길 바란다고

 

 

관린이 모른다고 했던 그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사랑 하나 쓰여 있지 않은 시가, 사랑 말고는 설명할 단어가 없어서 마음이 갈퀴손으로 다 긁히는 것 같았다.

 

저 짧은 시 하나 삼키지 못해 얹히고 체해서, 이제 아예 영영 관린을 잊을 마음은 접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어디로 도망해도 결국 사랑 안이라면. 눈이 돌아 당장 걷고 헤엄쳐서라도 한국에 가야할 것 같아 무작정 집을 나선 지훈은 아파트 초입에서 커다란 짐 가방을 끌고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서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박지훈.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주저앉아 우는 지훈 옆에 똑같이 쪼그리고 앉아 지훈을 끌어안은 관린이 말했다.

나 여기 오는 티켓 사느라 알바비 다 털었어. 이제 한국 가도 당분간 너 맛있는 거 못 사줘. 너 잘 알겠지만, 나 주머니도 가난하고 마음도 무지 가난해. 그래서 너 하나한테 밖에 줄 사랑이 없는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멀리 도망가면 어떡해.

 

“사랑해. 네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그렇게 말하며 이마에 입맞추는 관린의 품에 안겼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골목에 부는 겨울바람에서 자꾸만 아카시아 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