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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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남자가 보인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남자는 자신의 키처럼 긴 코트를 입은 채 커다란 캐리어를 갖고 있다. 어디선가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관린! 관린은 자신의 이름이 불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익숙한 얼굴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관린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계속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관린이 한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간 곳에 몇 년 만에 만나는 사촌 D가 있었다. 둘은 반갑게 웃으며 한 차례 포옹을 한 뒤, 형식적인 안부를 물으며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관린은 이번 겨울을 D의 집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공항에서 나온 관린은 조금 쌀쌀함을 느꼈다. 쌀쌀한 초겨울의 공기 속에서 알딸딸하게 드는 설렘을 안고 관린은 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보는 탓에 궁금한 게 많은 D의 질문에 가끔 농담을 섞어 대답하며, 관린의 시선이 향한 곳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는 창밖 풍경이었다. 스물의 처음을 한국에서. 관린은 물감이 번진 듯한 노을을 보며 이번 여행은 한국을 방문했던 여러 번의 여행 중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관린이 한국에 도착하고 벌써 세 번째로 맞는 일요일이었다. 쌀쌀했던 날씨도 완벽하게 추워지고 있었다. 3주 동안 D는 관린에게 한국의 많은 것들을 보여 주고 소개해 주었다. 아직까지는 모든 게 완벽하고 즐거웠다. 한국은 재밌는 곳이었다. 소파에 앉아 대만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무엇을 할까 생각 중이던 관린에게 D가 물었다.

“관린, 오늘 축제 안 갈래?”
“무슨 축제?”
“빙어 축제. 아는 형 공연 있다길래. 연예인도 오고, 거리도 가까움! 어떡할래?”

관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긍적적인 대답이었다. 그럼 바로 준비하고 나가자. 동시에 화장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관린도 소파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섰다. 밖은 추웠다. 바람이 무언가를 없앨 작정인 것처럼 거셌다. 오늘 추운데, 공연 잘하려나. D는 날씨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축제 장소로 향했다.

축제는 생각보다 컸다. 아직 밤이 되지 않았음에도 화려했다. 사람은 붐볐으며, 공기 자체가 들떠 있었다. 축제의 첫인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 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으니 관린과 D는 일단 축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꼬치도 사 먹고, 축제를 기념하는 기념품도 사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공연 시간에 맞춰 공연이 시작될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무대는 큰 편에 속했다. 앞자리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아이돌의 출연으로 인해 그 아이돌의 팬들로 채워져 있었다. 관린과 D는 중간 정도가 좋다고 판단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직전 시작되었다.

***

노래가 끊겼다. 지훈이 숨을 고른다. 여기까지 하자, 내일 공연 있으니까 푹 쉬고. 지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 명씩 정리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연습실을 나갔다. 꿈지럭 짐을 정리하며 연습실을 나서는 이들에게 인사를 나누던 지훈은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한숨을 푹 내쉬곤 자리를 고쳐 앉았다. 지훈은 혼자 연습실에 있는 것이 가장 편안했다. 나만의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한 달 뒤면 스물 한 살이 된다. 년수론 5년. 그래도 최근 들어 지훈은 가망 없던 연습생 생활에 그나마 광명이 생기는 듯했다. 데뷔 임박이 말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것처럼 크다고 알려진 무대에도 여러 번 얼굴을 비췄고, 봄엔 리얼리티를 찍는다는 말이 돌았다. 빛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지훈은 내일 공연할 춤을 몇 번 더 연습한 후, 불을 끄고 연습실을 나섰다. 내일 설 무대가 기대되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잠을 설쳐 약간의 피로감이 쌓인 것 빼곤 문제가 없었다. 꽤 오래 준비하고 연습했던 무대라 지훈은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날씨는 야외 활동을 하기엔 조금 추운 편이다. 하지만 거슬릴 정도로 춥지 않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훈은 무대에 설수록 무대가 감질났다. 무대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갔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고, 기회가 생긴다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지훈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라 해도.

***

드디어. 관린은 옆에서 들썩이는 D를 보고 D의 아는 형이라는 사람의 무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슬슬 지루해지는 참이었다. 꽤나 이름을 알아주는 소속사 연습생들의 무대라 했다. 그래서인지 노래 선곡은 유명한 아이돌 소속사 선배의 노래였다. 다 합쳐 두 곡이었다. 연습생이 이 정도 무대에 서는 것은 행운이라고 D는 지나가듯 얘기했다. 그들은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편이었는지 호응도 컸고, D도 자신의 지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려는 듯 이름을 크게 부르며 응원했다. 마지막 두 번째 곡의 후렴 부분이었다. 아. 누군가를 보고 관린이 나지막하게 감탄을 뱉었다. 貫通관통. 지훈의 윙크였다. 관린은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순간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사랑은 너무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D는 어째서인지 멍하니 있는 관린을 데리고 무대 뒤 대기실로 향했다, 아는 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D, 다른 분들이랑도 친해? 대기실로 가는 도중 관린이 물었다, 누구. 대기실 밖은 복잡했다. 기다려야 되나. 걱정스럽게 얘기하는 D다. 그, 제일 잘생긴 분. 아, 지훈이 형. 말을 끝낸 D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한 신호음 사이로 관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지훈? D가 대답하려는 순간, 신호음이 멈추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그 이후론 둘의 대화였다, 몇 마디 안 나누어 D는 전화를 끊었다. 저쪽으로 가자. 관린은 아무 말 없이 D의 뒤를 따랐다.

D와 K는 오랜만인 것처럼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이기도 했다. 그 사이 관린의 시선은 지훈을 향했다. 다른 이들도 D를 안다는 듯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D. D, 잘 지냈냐? D가 K 뿐 아니라 다른 연습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관린의 시선은 지훈을 향해 있었다. 지훈은 D에게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를 건넸을 뿐, 별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짐 정리에 열중하던 지훈은 관린의 집요한 시선을 눈치채고, 힐끔 관린을 바라봤다. 와, 잘생겼네. 키도 크고. 관린은 지훈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는 것을 깨닫고 성큼성큼 지훈에게 다가갔다. 다들 이야기에 열중하는 사이였다. 지훈은 관린이 자신에게 다가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관린은 지훈에게 다가가 눈을 빤히 바라봤다. 가까이서 본 지훈은 더욱 아름다웠다. 지훈의 눈에 온전히 자신을 담고 싶었다. 지훈의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묘한 열망이 들었다. 지훈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관린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관린의 시선이, 관린의 말간 눈이 지훈을 옭아매고 있었다. 짧지만 긴 눈 맞춤을 멈추고 관린이 입을 열었다.

“번호, 줄 수 있어요?”
“저요?”
“네. 안 돼요?”

잘생기고 뻔뻔한 그 얼굴에 지훈을 잠시 말을 잃는다. 관린은 지훈의 황당한 표정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토끼, 같아. 관린이 혼자 지훈의 귀여움에 대해 탐구를 하고 있을 때, 지훈은 마음속 혼란과 싸우는 중이었다. 고민을 하던 지훈은 결심했다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정중한 사과였다. 관린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정한 미소와 함께 관린은 D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지훈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관린은 D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대기실을 나갔다.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훈은 관린의 마지막 언어를 곱씹고, 곱씹었다. 곱씹을수록 관린이 남긴 언어에선 단내가 풍겼다.

 

 

 

축제가 있고 일주일 뒤 관린은 집 주변에 축제가 하나 더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저번 축제에 대한 좋은 감정 덕분에 관린은 이번 축제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저번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어도. 관린은 일단 D에게 물었다. 눈꽃 축제 같이 갈래? D는 처음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약속이 있던 것을 깨닫고 못 갈 것 같다며 사과를 전했다. 아쉬웠지만 혼자 가면 된다고 D를 달랜 관린은 나갈 준비를 했다.

관린의 눈앞에 새하얀 눈밭이 널리 펼쳐져 있었다. 물들이고 싶은 욕구가 드는 풍경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눈밭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이 났다. 지훈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곳을 보고 있으니, 아름다운 사람이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내가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관린은 눈밭에서 눈을 밟기도, 눈을 만지기도 했다.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녹아 버리는 눈.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걸까. 대만에선 이렇게 많은 눈을 볼 수 없었기에 더 소중했다. 뽀득뽀득 멍하니 눈을 밟던 관린이 누군가와 부딪혔다. 어. 관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바보 같은 소리라 생각했다. 눈이 마주쳤다. 지훈이었다. 어떻게 여기…. 말을 흐렸다. 관린도 지훈도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마주하게 되어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관린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 기억나요?”
“기억 못하는 게 이상하죠.”
“혼자 왔어요?”

“네. 그쪽도? D는?”
“약속이 있대서. 밥은 먹었어요?”
“아뇨, 아직.”
“그럼 제가 밥 사 드리고 싶은데.”
“어….”
“저도 안 먹어서 그래요. 같이 먹어요.”
“그쪽이 원한다면….”
“근데 언제까지 그쪽이라 부를 거예요.”
“이름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죠.”
“라이관린입니다. 관린이라 불러 주세요.”
“몇 살?”
“한국 나이로 몇 주 뒤면 스물이요.”
“한 살 어리네? 형이라고 불러요.”
“넹, 지훈이 형.”
“어, 이름 어떻게 알지.”
“D가 알려줬어요.”

 

 

아, 그래? 지훈이 갸웃 고개를 저었다. 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관린이 자연스럽게 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훈은 관린의 손을 힐끔 쳐다본 후 대답했다. 음, 아마 초밥. 지훈의 대답을 들은 관린이 웃음을 퍼트렸다. 아마는 뭐예요. 그리고 저도 초밥 좋아해요. 지훈은 그런 관린의 웃음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랑스럽다. 지훈의 사소한 행동에서 오는 소소하면서 큰 감정들이었다. 둘은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화를 나누던 둘은 서로 맞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낀 대화였다. 식사가 끝난 둘은 역 앞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그럼요. 형도 혼자 갈 수 있죠?”
“그럼. 여기서 몇 년을 살았는데.”
“알겠어요. 걱정 안 할게.”
“이제 반말도 하네?”
“잘생겼으니까 봐주기.”
“오케이. 한 번만이다.”
“그럼 이제 번호 주면 안 돼요?”

와, 훅 들어오네. 지훈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으로 관린을 바라봤다. 안 돼요? 관린은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처럼 지훈이 자신에게 번호를 넘길 수 있도록 최대한 불쌍하게 지훈을 보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지훈은 그 표정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관린의 휴대폰에 번호를 남겼다. 지훈이 번호를 저장하는 것까지 확인한 관린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연락한다고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지훈도 기분이 좋아져 손을 흔들며, 관린이 사라질 때까지 관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오랜만에 기분 전환이 된 하루였다. 집에 돌아간 지훈이 메신저를 확인했을 땐, 관린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그 이후로 둘은 빠르진 않더라도 꾸준히 연락했다. 보통 먼저 답을 보내는 쪽은 관린이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훈이 연습이 안 될 땐 잠깐 만나 관린이 지훈을 위로하기도 했고, 목소리였지만 하나의 해를 끝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스물의 관린과 스물 하나의 지훈이었다. 어떤 날은 지훈의 작고 온전한 원룸에서 하루 종일 함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함께 지훈의 연습실 주변 맛집을 함께 탐방하기도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둘은 차곡차곡 둘만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해지는 기억들이었다. 지훈은 관린처럼 좋은 동생을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관린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2월이었다. 오랜만에 연습이 없던 지훈은 관린과 약속을 잡았다. 어딜 가고 싶냐 묻는 지훈의 질문에 관린은 서점에 가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서점은 가 본 적이 없어 궁금했던 터였다. 책과는 거리가 먼 지훈이었지만, 관린의 부탁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지훈의 동네에 있는 규모가 있는 서점에서 둘은 만났다. 열심히 구경을 하다 한국말 배우기 코너에서 지훈은 자기가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큼 가르쳐 주겠다며, 관린에게 초록색으로 된 한국어를 배우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관린은 잘 간직하겠다는 말과 함께 꽤 오랫동안 책 표지를 쓰다듬었다. 지훈은 그런 관린을 보고 있으니 어딘가 미치도록 간질거렸다. 왜 얘를 보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책을 계산하고 서점 밖을 나서니, 눈이 천천히 휘날리고 있었다. 관린은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봤다. 눈과 지훈. 벅찬 감정이 들었다. 지훈을 감싼 분위기가 관린을 사로잡았다. 관린이 입을 열었다. 관린 자신도 모르게.

좋아해요.

지훈이 멍하니 고개를 돌려 관린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관린은 지훈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매번 사랑에 빠졌다. 이 이상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순간 마음은 더 커졌다. 지훈은 관린의 눈에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일렁거림을 느꼈다. 관린이 덧붙인다. 한 번쯤은 얘기해 주고 싶었어요. 지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훈은 그대로 도망쳤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관린의 표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친 후, 지훈은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연습에 몰중했다. 지훈은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연습에 빠져있었다. 그래야만 관린의 생각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연락은 없었다.

빠르게 시간은 흘렀다. 일주일이 지나도 관린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훈의 데뷔가 확정이 났다. 6월 데뷔 예정이었다. 조금 늦다고 생각했지만, 더 앞당기게 될 수도 있었다. 지훈은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잡았다. 데뷔 확정이 나자 지훈은 관린부터 생각났다. 그날 이후 관린과의 조용한 메신저 창을 보며 지훈은 몇 시간 정도 고민하다 꾹꾹 메시지를 보냈다.

[나 데뷔 확정이래]
답은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가 지나자 지훈은 해탈했다. 기대는 지훈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지훈은 전보다 더 열심히 달렸다. 예전처럼 관린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포화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깨어났을 때부터 다시 잠에 들기까지 어떨 때는 꿈에서까지 관린을 생각했다.

지훈은 숙소 생활을 위해 자신의 원룸을 정리했다. 원룸이었기에 짐은 많지 않았다. 지훈이 숙소 생활을 앞둔 이틀 전이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떠 있었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귀로 가져갔다. 다정한 관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기 전에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가기 전?”
“저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요. 몇 년 동안은 다시 안 올 것 같아요.”
“…언제, 언제 가는데?”
“오늘.”
“오늘?”
“네.”
“몇 시 비행기?”
“네 시요. 인천 공항”
“아, 그렇구나. 잘 가.”
“응. 보고 싶을 거예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시계는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시간은 확인한 지훈은 지갑을 들고 밖을 나섰다. 당황하고 있을 시간조차 부족하고 아까웠다. 도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탄 지훈은 급하게 인천공항으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관린을 만났던 날부터 둘의 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관린은 지훈도 모르게 지훈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4시 10분 전, 지훈은 계산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에서 내린 지훈은 관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몇 번 가지 않아 끊긴다. 지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택시로 향했다. 다시 택시를 탄 지훈은 다시 원룸이 있는 주택가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올 때의 풍경은 공항으로갈 때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

집에 도착한 지훈은 아직 정리하지 않은 티비를 켰다. 예전에 관린과 봤던 영화를 재생한다. 관린이 좋아하던 영화였다. 소리가 쏟아진다. 지훈의 원룸과 이질감이 생겼다.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답답해졌다. 지훈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후회가 지훈을 덮쳤다. 더 일찍 알았다면, 그랬다면. 뒤늦게 깨달은 감정은 파도처럼 빠르게 밀려 들어왔다. 부정하고 부정한, 빌어먹을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