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파는 남자
w. TWinKle

 

 

향기를 파는 남자

 

 

 

 

“이봐 자네, 그 소식 들었나?”

“향기를 파는 사람이 왔다는 소식 말이지?”

 

 

때 한창 저잣거리가 난리였다. 궁궐 아니면 보기 힘들다는 귀하디 귀한 향香초를 파는 상인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만으로도 떠들썩하기 쉽지만, 그를 넘어 난리가 일어난 통은 상인이 파는 향초가 일반 향초와는 다르다는 얘기가 퍼지면서였다. 그는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향초를 팔고 있는데, 이 향초가 보통 향초가 아니라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갖가지 특별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특별함’이란 구매하고자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몇 안 되는 구매자들의 말이었다. 그것은 지루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가지게 했고, 욕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구미를 당기게 했다. 때문에 저잣거리는 향초 상인이 들어온 지 하루도 안 되어 소문이 퍼져나갔고, 인산인해를 이루어 움직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그 상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야”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알 수가 있어야지, 원.”

 

 

해가 떨어질 때쯤, 허기져 찾아온 주막에도 온통 향초 상인 얘기뿐이었다. 사람들은 국밥을 시키고도 먹을 생각도 안한 채 향초 상인이 어디에 있을까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저잣거리의 중심, 전통 있는 주막 주모의 아들! 지훈이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지훈은 저잣거리 중심에 있는 주막 주모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주막 일을 도우며 생활하여 거리 소문을 빠르게 주워들으며 가끔은 손님들의 부탁으로 소액의 돈을 받고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손님들이 향초 상인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 향초가 특별한 것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달라며 지훈에게 부탁해왔다. 그들이 부탁하지 않아도 지훈의 구미에 당기는 소문이었기에 움직일 심산이었지만 들어오는 돈을 막을 주막 주모의 아들, 지훈이 아니었다. 황급히 주변 사람 아무나 일으켜 세워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부탁한 뒤, 지훈은 서둘러 주막을 나왔다.

 

어둑해진 거리 치고는 아직도 사람이 꽤나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지, 낮처럼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훈은 우선 저잣거리를 천천히 쭉 훑어보려 뒷짐을 지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향초에 특별할 게 뭐가 있을까?”

“아까 낮에 누가 그러던데, 소원을 이뤄주는 거랑 비슷하다고.”

“상인이 생각보다 어리다는데?”

“키가 엄청 쪼그맣대.”

“멀리서 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키를 가졌다고 하더라!”

“사실 특별하다는 건 다 거짓말이래. 장사 잘되려고 거짓말 한 거라던데?”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향초 상인의 얘기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디서는 키가 크다, 작다 얘기를 하며 어디서는 특별한 향초가 맞다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고, 나이가 어리다고도, 많다고도 얘기를 했다. 지훈은 중구난방인 이야기 속에서 진짜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만하고, 향초 상인의 향초를 샀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도….도와주시오..”

 

 

콜록, 콜록. 아주 조그만 소리로 도와달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적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꽤 많은 편이라서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뚜렷하고 선명하게 귓가에 박혔다. 지훈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상가 사이 좁은 틈에는 거의 다 죽어가다시피 쓰러진 남자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서둘러 달려간 지훈이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쓰러져 있기에 노인인줄 알았더니 웬걸,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사내였다. 게다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와 방금 당한 듯한 얼굴과 목 주변의 생채기, 더불어 화려한 비단 옷을 걸쳤지만 여기저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는 꼴이 매우 이질감을 주었다. 워낙 외지 상인들도 자주 들락거리는 마을이라지만, 이정도로 수상해 보이는 꼴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지훈은 이 사내를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뻐끔뻐끔. 다 쉰 소리로 지훈을 부르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선 귀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배….배가…”

 

 

배가? 밀항하여 이곳까지 온 사람인 것일까?

 

 

“배가 고파….”

 

 

이내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지훈은 아. 실소를 터트렸다.

 

주막에서 나오기 전, 이것저것 음식을 싸가지고 나온 것은 참 다행이었다. 먹성이 좋은 지훈이 자신을 위해 챙겨 나온 것이지만 한 입도 먹을 새 없이 수상한 사내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가슴이 아픈 지훈이었다. 사내는 이제 살 것 같은지 배까지 퉁퉁 두들기며 헤헤 웃었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서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꽤 시간을 지체했으니 더 서둘러야 했다. 오늘 안에 향초 상인의 작은 단서라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수고하시오. 말만 남기고 움직이려는데, 수상한 사내가 지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세웠다.

 

 

“뭐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요?”

“찾을 게 있어서요.”

“날 구해준 은인인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내 조금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은데.”

 

 

어리둥절해하는 지훈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던 사내는 품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정체불명의 물건을 하나 꺼냈는데, 한주먹도 안 되어 보이는 크기의 것이었다. 납작하면서도 둥그스름한 모양에, 그 가운데에는 촛대와 같아 보이는 심지가 꽂혀있었다. 촛대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촛대가 아닌 것이라 무엇인지 궁금하던 찰나, 사내가 지훈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선물이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지훈의 말에 사내는 다시 품 안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는데, 그것은 부싯돌이었다. 지훈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사내를 보았으나 사내는 금세 불을 지펴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내 화륵, 타오른 불꽃으로 인해 어두웠던 공간이 환해지며 사내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어두웠을 때 봐도 수상했지만, 환해진 상태에서 본 사내는 더욱이 수상했다. 험한 일을 할 것같은 얼굴이 아닌데도, 생채기가 꽤나 있는 것도 수상했고, 불빛이 더해지니 그가 입고 있는 비단 옷은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아니, 입고 있다기보다 ‘걸치고’있다는 표현이 더욱 올바르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어두웠을 땐 보이지 않았던 수상한 짐 꾸러미가 그의 옆에 있었다. 지훈은 수상한 사내와 눈을 맞췄다. 그도 지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짙은 흑색의 눈동자에 속에는 작은 불빛이 일렁였다. 곧, 알 수 없는 향기가 지훈의 코끝으로 들어왔다.

 

 

“라이관린.”

 

 

내 이름이오. 그가 말했다. 라이관린, 낯선 이름. 낯선 얼굴, 수상한 행색과 수상한 물건…지훈은 커다래진 눈으로 관린을 쳐다봤다. 관린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향기는 기분 좋은 향기가 되어 지훈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어디서든 맡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향기.

 

 

“그대가 찾던 게 이 물건이 아닐까 싶은데.”

 

 

관린은 다시 지훈에게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지훈은 신기한 듯이 향초를 쳐다보았다. 아까도 향기가 났지만, 지금 나는 향은 전과 확실히 다르다. 둘 다 좋은 향인 것은 분명하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런데, 향이 바뀌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것이 사람들이 말한 특별한 향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관린은 지훈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짐 꾸러미에서 새로운 향초를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 부싯돌과 함께 지훈에게 건냈다. 지훈은 얼결에 받아드리며 관린을 쳐다보았다.

 

 

“그건 방금 내가 불을 붙여 내 향초가 되었으니, 새로운 걸 주는 거요.”

“정말 향초 상인…?”

“아, 그 말은 안 좋아하니까 그냥 라이관린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이, 이렇게 만날 줄은..그러니까, 그…”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마주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러다 가면 안 되는데, 하는 급한 마음과 자꾸만 밀려드는 향기에 기분 좋은 마음과, 향초에 대한 궁금함, 관린에 대한 궁금함이 자꾸만 지훈을 버벅 거리게 했다. 관린은 그런 지훈이 웃긴지 쿡쿡 소리 내 웃었다.

 

 

“혹시 바라던 게 있다면 지금 말해보시오.”

 

 

어…그….저, 이 말만 반복하던 지훈에게 관린이 물었다. 지훈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저게 사람들이 말한 특별한 향초의 비밀이라면, 아주 기상천외한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주막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돈을 주고 부탁한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하면, 이 향초로 바라던 게 이뤄지나요?”

“어떤 것이냐에 따라.”

 

 

진짜다! 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까지 고민하던 것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관린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재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소문이 진짜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훈이 쭉 바란 것은 하나였으니. 하지만 관린이 너무 심하게 웃는 통에 약간은 괜한 말을 한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훈은 인기가 많아지게 해달라고 했다. 주모의 아들로, 한 평생을 주막에서만 지내 온 지훈은 여성을 만날 일이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외모라고 스스로도 잔뜩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연애는 잘 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겨보지 못한 것이 고민이던 지훈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자신과 뒤지지 않을 정도의 외모를 갖고 있던 관린을, 특별한 향초를 판다는 그의 소문을 덥석 믿어 열심히-찾으려 하기도 전에 찾아버렸지만- 찾은 것이었다.

 

 

“아무리 특별한 향초라지만, 그런 것을 불 한 번 지핀다고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지.”

“아…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군요.”

 

 

지훈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그리고 금세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소문만 믿고 자신의 치부를 말해버린 것만 같았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말은 끝까지 듣지?”

“…..네?”

“그런 바람에는 재료가 필요하다네.”

“어떤 거죠?”

 

 

 

 

 

 

 

 

 

 

지훈은 지금 난생 처음, 도둑질을 하려하고 있다. 주모의 아들로서, 주막의 담조차도 넘어본 적 없는 지훈은 낑낑거리며 어느 한 기방의 담벼락을 넘으려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나 제대로 달려보지도, 국밥 그릇 말고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본 적도 없는 지훈에게 높은 담벼락을 오를 만한 힘과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날, 지훈이 얼결에 향초 상인인 관린을 만나 특별한 향초를 받은 날. 지훈의 바람을 듣고 관린은 이 마을에서 최고로 인기 많은 사람의 속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할 수 없다며 난리를 쳤지만 그 외에는 다른 바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애 한 번, 사람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지훈이 그런 상스러운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관린은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하는 지훈을 뒤로 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자는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관린이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기분 좋은 향기와 괴로워하는 지훈만이 남아 있었다.

 

여튼 그런 이유로, 오늘은 벌써 관린과 만나기로 한 당일이었다. 왜 지금까지 속옷 한 장 가져오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일주일 중 하루는 그 날 도망간 지훈의 등짝을 때리며 나가지도 못하게 한 주모로 인해 시도도 해보지 못했고, 사흘은 못한다며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며 자기 자신과의 사투와 방황을 하다 시간을 날려버렸고, 이틀은 친한 친구, 손님들에게 겨우겨우 말을 해봤지만 미친놈이라는 소리만 듣고 말아버렸다. -지훈은 주먹질 당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마지막으로 지훈은 인생 최대의 일을 벌이고 있었다. 차마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기생에게 속옷을 달라 할 용기가 없어, 몰래 훔쳐 가지고나오는 것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지훈은 열심히 벽을 오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화나서 벽을 차는 모습으로 보일만한 행동뿐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내버린 지훈은, 결국 포기에 이르렀다. 그래, 내가 뭔 도둑질이야! 잡혀갈 일 있어? 그냥 다른 바람을 말해버리자.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꿨다.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지훈은 관린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가져오셨소?”

 

 

여전히 이곳은 어두웠다. 미리 와 있던 관린은 태연하게 웃으며 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훈은 관린이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관린의 얼굴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

“관린, 당신도 인기 많지 않아요?”

 

 

관린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훈의 눈동자는 음식을 발견한 것 마냥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얼굴이 인기 없을 리 없어요! 그쵸? 인기 많죠? 지훈은 관린의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칭얼거렸다. 제발 속옷 좀 주세요. 엉엉엉!

 

 

“뭐, 뭐하는 짓이오?!”

“그치만…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했단 말입니다…”

 

 

제발요, 네? 지훈은 관린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무, 무슨… 저번과는 다르게 관린이 말을 버벅였다. 그 와중에 지훈은 관린의 반응이 귀여웠다. 그래서 더욱 행동을 크게하며 과하게 했는데, 결국 관린의 바지까지 붙잡았다. 내릴 생각은 없지만 내릴 것처럼 동작을 취하자 관린이 놀라며 몸을 뒤로 뺐고, 관린을 잡고 있던 지훈과 힘의 균형이 무너져 결국 둘이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으으…..”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공간에 가득 퍼졌다. 다행히도 관린의 바지가 벗겨진다거나 하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관린은 뒤로, 지훈은 앞으로 넘어진 탓에 안겨버린 꼴로 누워버렸다. 괜찮아요?! 지훈이 놀라 일어섰지만 관린의 가슴팍을 눌러버려 쿨럭, 하며 관린을 더욱 괴롭혔다.

 

 

“으아, 죄송해요…괜찮아요?”

“정말…”

 

 

관린이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아 지훈을 노려봤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긁혔는지 그의 얼굴에 핏방울이 맺혔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지훈은 그 핏방울을 보며 관린의 얼굴과 목에 왜 상처가 많았는지, 그 비싼 비단 옷이 왜 다 헤진 것인지 이해가 됐다.

 

관린은 옷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그리고 지훈을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훈은 미안한 마음에 뒷머리만 긁적였다.

 

 

“그래서 속옷을 가져오는 것엔 실패했단 말이죠?”

“……네에.”

 

 

지훈은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관린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 한숨을 내쉰 관린은 가져온 짐 꾸러미를 다시 뒤적였다. 그리고 두 개의 향초를 꺼내 하나는 불을 붙어 바닥에 내려두고, 하나는 다시 지훈에게 건넸다.

 

 

“저번에 준 것은, 이미 실패한 바람이니 평범한 향초가 되었소.”

“…..”

“이번에 주는 것은, 다른 바람. 속옷보다야 효과가 덜하겠지만,”

 

 

내 바람을 더했으니 부족하진 않을 것이오.

 

여전히 그가 불붙인 향초는 가슴을 간지럽혔다. 저잣거리 음식의 잡내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관린의 향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만 같았다. 그는 엄지로 입술을 훑고, 그 손으로 지훈의 얼굴을 매만졌다. 촛불은 바닥에 있는데 마치 눈앞에 있는 것 마냥 얼굴이 뜨거워지고 어지럽게 일렁였다. 관린은 지훈의 입술도 천천히 훑었다. 낯설고, 갑작스런 상황인데도 지훈은 관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오래, 긴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다. 향초를 들고 있는 지훈의 손을 받쳐 잡으며 관린이 입술을 훑은 손가락으로 심지 주변을 매만졌다. 그리고 부싯돌을 꺼내 지훈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지금 불을 붙여 보시오.”

 

 

지훈은 손에 쥔 부싯돌을 손에 꼭 쥐었다. 이 불을 지금 붙여버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속옷보다 효과가 덜하지만, 부족하지는 않는 것…

 

 

“이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되나요?”

“…..”

“관린, 내 바람에 더한 당신의 바람은 무엇이죠?”

 

 

또 다시 눈이 마주하며 서로에게 얽혔다. 묘한 긴장감이, 기분 좋은 향기로 인해 부드러워졌다.

 

 

“나를 사람들이 못 찾는 이유. 소문만 무성하고 향초를 구매한 사람을 찾기 힘든 이유.”

“…..”

“내가 준 향초를 한 번 사용하면 나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

“내 바람은, 그대가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소.”

 

 

지금 불을 붙인다면 그 바람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관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훈은 불을 붙였다. 먼저 켠 관린의 향과 더불어, 지훈의 향초에서도 좋은 향이 났다. 서로 다른 냄새가 섞이면 맡기 힘들거나, 머리가 아플 텐데 원래 하나의 향인 것처럼 섞여들어 황홀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그 향이 가득한 곳에서, 두 개의 불빛 아래 관린과 지훈이 서 있었다. 부족한 것은 없었다. 덜한 것도 없었다. 지훈은 관린의 향초 옆에 자신의 향초를 내려놓았다.

 

 

“그대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네요.”

 

 

마주보던 눈이 웃고, 맞잡은 손은 따뜻했다. 생각할수록 기묘한 일이지만, 원래 이런 만남이려니 싶었다. 혹시나 향기에 취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뒤로 하고 현재를 느끼기로 했다. 왜냐하면 향기는 깊고, 불빛은 따듯하고, 잡은 손은 부드럽고, 마주한 눈은 떼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향초 상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뭐라고 말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