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눈 속에 장마가 내릴 때
w. 손상

 

 

빌어먹을 가족. 이게 가족이냐?

 

돈에 눈이 멀어 열일곱 한창 창창할 아들을 정부군 센티널 센터에 맡기듯 버리고 도망친 생모와 생부. 검사 결과지에 센티널라고는 되어 있다지만 그 나이 되도록 발현도 않은 삐꾸를 비싼 돈 주고 사서 뭘 한다는 건지, 멍청한 내 머리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반정부군과 정부군. 정부의 독재에 뿔이 난 군중들이 규합하여 정부군과 싸우기 시작한지도 어언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몇 년 전까지는 비등비등한 힘싸움을 이어가나 싶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전재에 슬슬 두쪽 다 지쳐가고 있을 즈음에 반정부군에 혜성처럼 나타난 소위 `장마` 이라는 이름의 센티널이 정부군과의 ‘이구’ 전투에서 아주 큰 활약을 했다. 이구 전투 이후로 정부군은 자신들의 전투 전략 비중의 구 할을 차지하고 있었던 정부군 핵심 센티널들을 센티널 ‘장마’ 에게 대부분 잃음으로써 쇄락하기 시작했고, 그에 비해 반정부군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구 전투 이후 반정부군의 사상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장마’ 이라는 센티널이 대개 선두에 서서 전투를 이끄는데, 이름에 걸맞게 눈과 얼음과 같은 것들을 날카롭게 얼려내 적들의 살을 그냥 발라버린다. 반짝이는 얼음과 눈의 결정들을 보고 있으면 참 아름다운 능력인데, 그가 휩쓸고 지나간 곳은 그의 발자국조차 남지 못할 정도로 적의 피로 흥건했다. 기자들은 그를 이렇게 칭하곤 했다. 설설(褻雪). 더럽고 추잡한, 하지만 하이얀 눈.

 

궁지에 몰린 정부군은 돈이나 압력을 가해 등급이 낮거나 아직 발현하지 않아 일상 생활을 하고 있던 센티널과 가이드들을 그 곳으로 불러 모아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이런 데에 관심있는 친구한테 이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구라 까지 말라며 웃어넘겼는데. 정작 거기에 그렇게 잡혀 왔던 때엔, 그 애의 얘기를 듣고 해외로 미리 도망갔어야 했다면서 자책도 했지.

난 센터에 처음 왔을 때부터 컴컴하고 넓은 방안 철창에 가두어져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철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며 아무리 소리를 쳐 봐도 메아리 하나 돌아오지 않았다. 일정한 시각마다 들어와 끼니를 놓고 가는 사람들의 팔을 붙잡고 매달려 보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은 내 팔을 더러운 것 털듯이 얼른 쳐내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일주일 간 난 그 암흑 속에서 울고 목청 터져라 소리만 힘껏 질렀다. 나중에는 목이 다 망가져 도저히 소리가 나오지 않기에 그만두었다. 그 일주일 동안 어둠에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앞은 커녕 당장 내 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러다 눈이 머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내 시야는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다. 이젠 눈물샘에도 가뭄이 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콱 죽어버릴까 하고 날카로운 것이 없나 바닥을 더듬거려 봤지만, 손에 잡히는 건 사락거리는 먼지 뿐이었다. 끝없는 허망함을 느끼려는 그때,

 

 

“도와줄까요? 쇠 정도야 부수면 그만이잖아.”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딱 일주일 만에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사람의 온기가 무척이나 고팠던 난 당장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야?”

 

“…”

 

“누구야?”

 

“…”

 

“여기 있어요?”

 

 

갈라진 목소리로 애써 소리를 내도 대답은 없었다. 난 앞에 있는 철창으로 다가가 두 손에 하나씩 그 차가운 쇠를 가득 쥐었다. 쇠를 부순다니, 센티널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도통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발현이 안 된 센티널인 나 같은 사람도 일반인이고. 근데 그렇다고 센티널이란 게 흔하느냐? 절대 아니다. 일반인들도 물론 ‘장마’의 얼음 조각에 부딪혀 부서진 시내 건물의 복구 작업이나, 반정부군이 이번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라는 뉴스 속보에서 센티널이란 이름을 접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하급 센티널들의 옷자락 한번 직접 못 보고 죽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상상의 동물과도 맞먹는 희귀하고 신기한 존재들이였으므로 그 이름과 화제성은 배가 되어 갔다. 정부에 소속된 센티널들은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지만, 반정부군에서 활약하는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다. 굳이 가리려고 하지도 않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더러운 정부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편이란 느낌도 영웅의 이미지에 한몫 하고… 이젠 반정부군의 편으로 완전히 치우쳐 버린 언론은 그들을 아주 잘 찬송해주거든. 하지만 무엇보다, 외모가 출중하다. 아까 언급했던 우리의 희망, 피어나는 눈꽃, 일명 `장마` 는 그 입 떡 벌어지는 전투 기술과 능력 만큼이나 외모와 피지컬이 휼륭했다. 그 센티널을 보러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전투를 따라다니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생길 정도였다. 아무튼 머리에 피도 안 말랐으며, 발현 안 한 말만 센티널인 그때의 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성사시키려고 노력했다. 있는 힘껏 그 쇠철창을 잡고, 모든 힘을 그 쪽으로 향했다. 눈에 핏발이 설 때까지,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이젠 너무 꽉 쥐고 있어 아려오는 손 끝에 내 정신을 집중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눈에 힘을 줘 봐도 철창은 부서지지 않았다.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막상 실패를 겪으니 안 그래도 기력이 없는 몸에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 왔다. 그 목소리는 뭐였지. 인기척이 느껴지진 않는 것 같은데… 차가운 바닥에 힘없는 몸을 뉘이고 저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고만 있었다. 어두운 새벽 속에서 튀는 눈꽃처럼, 그 반짝거리는 무언가는 어둠에서도 빛을 냈다. …… 저게 뭐지.

 

 

“그래. 그냥 주무세요. 이제부터 고생할 텐데.”

 

 

아, 아까, 그 목소리…

난 무언가에 저당 잡힌 듯 긴 잠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내가 밝은 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잠에서 깼을 땐, 병원의 수술대 같은 곳에 손목과 발목이 철로 의자에 고정된 채였다. 입엔 가죽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재갈이 물려 있었다, 근 일주일 만에 보는 환한 빛에 기뻐할 틈도 없이 난 버둥거리며 갑갑한 구속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내 손목을 더 꽉 죄어오는 금속의 서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러웠다. 내가 잠잠해지자 곧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내 팔 언저리에 무언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경한 주삿바늘의 느낌에 몸부림쳤다. 이젠 말라 더 이상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내 양 옆으로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첫 번째 주사에 든 약물을 거의 다 주입하기 바로 전에, 누군가 이 방의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열어 재꼈다. 금테의 안경을 쓴 고급스럽게 생긴 남자였다. 다른 연구원들과 같이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포마드로 잘 넘긴 머리는 급하게 뛰어온 듯 살짝 흐트러졌고, 다른 연구원들이 하얀 가운 밑에는 편안한 옷을 입는 데에 비해 언뜻 언뜻 비치는 가운 안엔 적당히 핏되는 네이비색 정장이 눈에 스쳤다. 연구원들은 당황한 듯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홀로 주파수가 다른 라디오 같은 그 남자를 동시에 응시했다. 하지만 내 팔에 꽂힌 주삿바늘이 떨어져 나가기도 전에, 금테 안경을 쓴 그 남자는 뒷 주머니에서 피스톨 한 개를 꺼내 잡고 내게 약물을 주입하던 사람을 비롯해 그 하얀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탕 탕 탕 총으로 쏘기 시작했다. 난 그 남자의 피 튀긴 안경알이 빛에 반사되어 이리저리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어젯밤의 그 작은 불빛이 저 사람의 안경알에 비친 빛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곤 온몸에 힘이 빠져 안도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사실 안전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괜찮아. 안심해. 난 그의 피스톨이 마지막 총알을 뱉어 유리창 너머의 연구원을 처리하는 것을 흐릿한 시야 안에서 훔쳐봄을 끝으로 정신을 놓았다.

 

 

 

 

 

 

번뜩 눈을 떴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였다. 곧장 지끈거리는 두를 검지와 중지로 지그시 누르다가, 상체만 살짝 올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방 안을 둘러보니 여느 가정집 같은 포근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이 아주 넓었고, 가구라곤 내가 누워있는 이 넓은 침대와 침대 옆의 하얀 의자, 그리고 침대 옆의 무드 등을 올려둘 만한 크기의 탁자밖에 없었다.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을 아래로 하고 보니 발목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고개를 숙이고 발목을 살폈을 땐 감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하얀 붕대가 있었다. 혹시나 하고 손목을 살펴 봤더니 두 손목에 모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그 수술대 같은 곳에 잡혀 있을 때 발버둥치다가 생긴 멍이지 싶었다. 한숨을 한번 쉬고, 그래도 남의 집에 너무 오래 누워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어나야지 하고 살짝 침대를 짚어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저기요.”

 

“…… 네?”

 

“아직 일어나면 안 돼요.”

 

 

… 맙소사.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그 `장마` 가 맞나? 난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흰 죽을 후후 거리며 식히는 금테 안경의 남자의 움직임을 쭉 바라보았다. 아까도 저 사람 어디선가 낯이 익다 했더니, 작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안경 때문에 못 알아본 거였다. tv를 틀면 언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 얼굴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죽이나 식히고 있다니. 아니 그런데, 날 도와주신 건가? 우선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해야 하나? 그런데 날 왜 구해 주신 거지? 여긴 장마의 집인 건가?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과 상념들이 떠올라 과부하가 되어 버려서 오히려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뭐 이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는데, 장마는 계속 다리를 꼬고 앉아 흰 죽을 식히다가 혼돈에 점철된 날 보고 웃음을 지었다.

 

 

진짜… 잘생겼다…

 

 

실례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선 그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빛나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손목과 발목의 통증 즘이야 예삿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그의 얼굴에 넋을 놓고 있을 동안, 그는 흰 죽이 놓인 트레이를 작은 탁자 위에 놓고, 침대에 걸터앉은 날 친히 침대 헤드에 기대게 한 후 혹여 딱딱할까 등 뒤로는 푹신한 베개까지 받쳐주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보고 있을수록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 자세를 바로 해 주고 난 다음에는 아까 열심히 식혔던 그 죽을 숟가락에 조금 떠 내 입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난 그가 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마치 현대 무용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가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며 숟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 손길에 거부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입을 벌려 죽을 받아 먹었다. 장마는 그런 나를 보고 하얀 눈처럼 웃었다. 난 당장 그 웃음에 내 인생이라도 걸겠다 외치고 싶었다.

 

 

“몸은 좀 어때요?”

 

“고… 괘… 괜찮아요…”

 

 

말은 왜 더듬어 병시나… 푹 숙인 고개에 열이 확 올랐다. 장마는 내 그런 모습에 잠깐 점잖게 소리 내어 웃더니 내 발개진 귀를 한번 건들이곤 엄청 빨개졌어요. 라고 했다. 난 그 말에 더욱더 부끄러워져 고개를 땅굴파고 들어가듯 숙였고, 장마는 그에 하하하 하며 또 웃었다.

 

 

“그… 저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에이, 뭘요.”

 

“아니에요! 진짜로 감사해요!”

 

“이제 지훈이 저 많이 구해줄 건데요 뭐.”

 

 

장마는 약간 미소를 띈 얼굴로 나를 보며 애기했다. 난 그가 날 뚫어져라 보는 것과 말라 뼈가 불거진 그의 날렵한 손가락이 내 오른 손을 살살 쓰다듬는 것에 열이 올라 후덥지근한 상태로, 제가 어떻게요… 라고 답하려다가, 이상한 걸 느꼈다. 장마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분명 교복도 아니었고, 내가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저기… 제 이름을…”

 

“응? 자기 가이드 이름 모르면 바보 아니에요?”

 

 

…… 이게 뭔 소리야.

 

 

“저기,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가이드가 아니고 센티널…”

 

“이름 박지훈. 망상 고등학교 1 학년 7 반. 혈액형 AB형. 키 173 cm. 생일 5 월 29 일. 몸무게 6…”

 

“자, 자, 자, 자, 잠시만요.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 알긴요. 뒷조사했지.”

 

 

너무나도 무해한 얼굴로 맑게 웃으며 하는 말들은 환장스럽기 그지없었다. 난 당연히 그의 얼굴을 그냥 넋 놓고 쳐다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고, 그는 내 그런 반응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내 오른손을 들어 제 볼에 대 본다던가, 그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 사이 사이의 갈퀴에 손깍지를 꼈다 말았다 하면서 손장난이나 치고 있었다. 난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는 그에게 너무나 놀라서,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도 멍청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나 색색 쉬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와 내 손으로 장난을 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들어 내 얼빠진 얼굴을 쳐다봤다. 장마는 잠깐 멈칫하더니, 약간 굳은 얼굴로 내 눈을 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예뻐요, 지훈.”

 

 

미친 듯이 복잡한 머리에도 얼굴은 속없이 발개져갔다. 붉어진 얼굴을 보이는 게 싫어 고개를 숙이자, 장마는 솔직한 내 반응에 또 잠깐 소리내 웃었다. 그 하얀 얼굴이 처음으로 얄미워졌다.

 

 

“지훈, 피곤했나 봐요? 침을 흘리면서 자던데……”

 

“아, 조용히 해요!”

 

 

 

 

 

 

장마, 아니, 라이관린은 첫인상과 거의 유사한 사람이었다. 쉴 틈 없이 다정하고, 방심할 수 없게 친절하다. 하지만 따분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벌써 말도 놓았다. 내가 가이드란 것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 보니, 나는 우선 센티널이 아니라 가이드인 게 맞다. 센터 검사를 받았을 어릴 때엔 부모님과 같이 갔기 때문에, 내 능력에 관한 것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들었고, 내겐 그 점에 대해 정확히 얘기해 주신 적이 없어서 난 그냥 스스로 일반인은 아닌 것 같고 발현 못 한 센티널이겠거니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내가 관린한테 내가 어떻게 네 가이드인 걸 알았냐고 물으니까 잠깐 생각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운명. 이라고 대답했다. 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절대 그 웃음에 말문이 막힌 건 아니고, 그냥 그닥 중요한 얘기는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장마, 아니 아니, 라이관린은 아주 많이 바빴다. 그냥 일 년에 세 번 쯤 있는 전투 나가서 싸우고 돌아오면 남은 날은 탱자탱자 노는 줄로만 알았는데, 대외적인 전투 외에도 정부군 센티널 가이드 센터 본부를 찾는다거나 정부군의 잔당들이 모여 있을만한 본거지를 찾으러 직접 뛰어다녔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누워 잠을 자다가 내가 푹 잠들었다 싶으면 다시 일어나서 데스크 탑으로 일을 하다가 동이 트고 나서야 다시 내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 아, 왜 잠을 같이 자냐고?

 

난 가이드나, 가이딩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라 몰랐는데, 센티널은 능력을 쓰는 것 이외에도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도 가이딩을 해 주면 피로가 풀린다고 관린이 그랬다.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일만 하는 관린이 안쓰러워 내가 먼저 잘 때도 가이딩을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관린은 곤란한 표정으로 지훈 힘들 텐데, 하며 걱정했지만, 난 요즘 정말이지 너무나 건강하다. 왜냐하면 넓은 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맛있고 건강한 집밥 먹지, 가이딩 훈련으로 규칙적인 운동도 하지, 학교도 안 가고, 관린은 내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달라 그런다. 이렇게 행복한 삶을 안위하고 있는데, 딱 하나 불안한 것이 있다. 그건… 관린의 상태이다. 보통 센티널과 가이드가 짝을 맺으면 센티널은 자신의 가이드한테 다른 센티널이 집적댈까 봐 노심초사 하는 게 보통이다. 왜냐하면 가이드는 센티널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센티널은 자신의 가이드가 없다면 능력을 쓸 때마다 정신과 육체에 무리가 가 점점 괴멸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다가 일정 수치를 넘기면 폭주하여 목숨을 잃는다. 물론 끔찍한 일이지만 센티널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관린과 나는 아주 늦게 짝을 만난 케이스라서, 그런 스케일 크고 어마무시하게 강한 능력을 쓰면서 지금까지 약으로만 버텼으니 관린의 육체는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이 얘기를 어떻게 할까 십분 고민하다가, 저번 주 주말 자기 전 같이 누워 일상 얘기를 하던 도중에 내가 조심스럽게 관린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옆으로 팔을 괴고 누워 내 앞머리를 매만지며 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 내 이름이 왜 장마인지 알아, 지훈?”

 

“… 아니.”

 

“내 이름, 라이관린, 장마라는 뜻이야.”

 

“아……”

 

“그리고,”

 

“…”

 

“내가 쓰는 능력, 눈이랑 얼음, 짧은 장마에 다 녹아 내리라고.”

 

“……”

 

“우리 이긴다면, 나 하나 녹는 것 쯤이야… 괜찮아.”

 

 

그러면서 관린은 아주 슬픈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상냥한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그런 그를 보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그리고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서, 내 입술을 그의 입에 가만히 가져다 댔다. 그는 잠깐 멈칫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내 뒷머리를 가만 쓰다듬고 고개를 틀어, 더 깊게, 깊게 다가왔다. 그와의 첫 키스는 눈물 맛이 났다.

 

 

 

 

 

 

그와의 첫 키스 이후로 관린은 날 좀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그 전에도 물론 가이딩을 한다고 입술을 맞대고, 내 여기저기를 만졌던…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서나 가이딩 차원이었던 터라 상관이 없었나 보다. 사실 난 관린을 그냥 가이딩 해 주는 센티널로만 대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관린은 그냥 원체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나한테도 그저 가이드로써의 예의를 지킨 것이었나 보다. 그런 사람인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날 사랑스럽다 바라보는 그 꿀 떨어지는 눈빛에 내심 한편으론 기대감도 있었다. 물론 날 피하는 그를 보고 많이 슬펐지만, 그보다 쪽팔림이 더했다. 그리고 쪽팔림보단 관린에 대한 걱정이 더했다. 저번에 내가 그를 조르고 졸라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의 상태는 내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심각했다. 맨날 허허실실 웃고만 있길래 그 정도로 아플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 했다. 걱정하는 나를 보며 그래도 지훈이가 있어서 나아지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줬다. 지금 관린이는 나와 이틀째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방사형 가이딩을 항상 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간 관린을 병상에서까지 가이딩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관린이 쓰러지는 걸 상상하자 몸이 마음보다 먼저 행동했다. 거실 소파에서 바로 관린의 서재로 직행해, 노크도 안 하고 그냥 문을 벌컥 열어버렸다. 관린은 당연히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금테로 된 안경을 벗곤 지훈,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쓰러져.”

 

“어? 무슨 소리야?”

 

 

난 관린의 말을 무시하고 책상을 빙 둘러 의자에 앉은 관린의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당황스러워 보이는 관린의 입술에 냅다 내 입을 갖다 댔다. 관린은 그냥 그대로 굳어서 가만히 있었다. 난 살짝 오기가 생겨서 혀를 내어 그의 입술을 살짝 살짝 핥고, 또 춉 춉 소리를 내며 그의 콧대, 윗입술, 이마, 볼, 귓불 등등 눈에 보이는 대로 몽땅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관린은 정말 아무 반응도 없었다. 자신도 입안을 내어 주며 허락을 하든가, 아니면 그만 하라거나 하며 저지를 하든가 둘 중에 하나면 참 좋을 텐데 정말 망부석 마냥 가만히 있었다. 그 전의 가이딩에선 주로 내가 가만히 있으면 관린이 먼저 날 만지는 식이였는데, 정말 그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서 숙였던 허리를 펴려고 할 때였다. 그 순간 관린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입술을 부딪혀왔다. 난 당연히 놀라서 입술 새가 벌어졌고, 관린은 작정한 듯 한쪽 팔은 내 허리를 고정하고, 한쪽 손으로는 내 뒷목을 약하게 잡았다. 그리고 입술 새로 살며시 들어왔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목 뒤로 두 팔을 걸었다. 관린은 그런 나에 숨이 찰 정도로 입술을 맞대곤, 바로 내 귓불로 입을 옮겨갔다.

 

“앗, 으… 으.”

 

“…”

 

“으… 하아… 간지러워…”

 

“하아…”

 

“아아… 읏, 으…”

 

“지훈.”

 

“으응…?”

 

“나 진짜 참으려고 했는데…”

 

 

관린은 지훈의 귓불에 잇자국을 잔뜩 남기고, 또 혀를 살짝 내어 핥았다. 지훈은 귀에 민감한 편이었다. 전에 가이딩 할 때도 느꼈던 것이다. 관린은 이제 지훈의 귓불에서, 지훈이 잔뜩 드러내고 있는 목선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 으, 안, 대에…”

 

“뭐가 안 돼.”

 

“흐윽, 목, 목에 자국 남기면…”

 

“어차피 내 건데 뭐 어때서.”

 

“… 내가 왜, 응, 아… 네, 거야.”

 

 

관린은 지훈의 예쁜 목선을 따라 혀를 내어 길게 핥다가, 살짝씩 깨물기도 하고, 또 살짝 아프고 끈덕지게 물어 울혈 자욱을 남기다가 지훈의 말에 멈칫했다. 내가 왜 네 거야, 라니. 관린은 괜히 심술이 일어 지훈의 목 옆쪽, 남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강하게 물었다.

 

 

“아! … 왜 이래?”

 

“… 뭐가.”

 

“아읏… 아니이, 잠깐만 가만 있어 봐.”

 

“왜?”

 

“내가 목에 자국 남기지 말라구 그랬잖아. 너 이정도 이해도 못 해 줘?”

 

“자국 왜 남기면 안 되는데, 지훈.”

 

“그건…

 

지훈이 침을 꿀꺽 삼킨다.

 

프… 프라이버시잖아.”

 

 

웬 프라이버시는 프라이버시. 지훈은 그런 건 개밥으로나 줘 버린 지 오래였다. 사실 목에 작국 남으면 그냥 보기도 싫고, 옷 입을 때 불편해서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지훈은 관린이 정말 괘씸했다. 남 다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피해 다니기나 하고. 그래 나도 너 이제 가이딩 해 줘야 하는 그냥 센티널로만 볼 거야! 하고 홧김에 저지른 말이었다. 얼타는 표정인지, 살짝 화가 난 표정인지, 어쨌든 관린의 표정이 평소처럼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약간 굳어 있었다. 이런 관린의 표정을 처음 보는 지훈은 살짝 무서웠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다. 그냥 성난 토끼같은 눈으로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관린은 제가 지금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가이드는 가이드일 뿐,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줘야지, 라고 항상 말하던 것도 자신이었고 (물론 지훈 앞에선 그러지 않았다), 가이드를 구속해 답답하게 하는 센티널들을 보며 혀를 찬 것도 모두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훈의 그 앙증맞은 입술에서 프라이버시라는 말이 나온 순간, 저도 제가 열이 뻗쳤다는 걸 여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났다. 다른 놈이랑? 나랑 하는 것처럼? 지훈의 예쁜 앓는 소리도, 고운 목선도, 판판한 배와 잘록한 허리 등등이 ‘관린’ 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이 정도면 지지 않고 자신을 올려다 보는 토끼의 눈이 밉기도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지훈을 괴롭히고 싶었다. 잔뜩 야하게 만들어서, 관린만을 부르며 울게 하고, 또 빈틈 없이 닿아있고 싶었다.

 

스스로를 인내심이 강한 편이라고 치부했던 옛날이 생각난다. 불과 두 달 전이지만, 이젠 자신이 인내심에 대해 일언반구 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잘 알면서도 자신을 예쁘게 올려다 보는 지훈이 좋았다. 관린은 지훈의 손목을 끌어 그의 체리 우드 색 사무 책상 위로 걸터앉게 했다. 눈높이가 비슷해진 지훈이 관린의 눈과 마주쳤고, 누가 먼저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둘 다 나신인 채로 누워 있는 건 처음이라 지훈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정말 부끄러울 짓은 아까 다 해 놓고선. 관린의 눈동자 속엔 눈이 내린다. 어떤 날은 눈이 녹아 비도 내린다. 오늘 관린의 눈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서 뚫어져라 그 안을 살펴봤다.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 비치는 자신만이 있었다. 관린은 행복해 보였으므로, 지훈은 그의 눈동자 속에 눈과 비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관린의 사랑스럽다는 눈빛에 괜히 열이 올라 새하얀 이불로 제 얼굴 반을 가린다. 관린도, 또 지훈도 웃었다.

 

 

“네 눈 속은 항상 뭐로 가득 차 있어.”

 

“뭔데?”

 

“잘 모르겠어… 그냥 어떤 날은 눈이고, 어떤 날은 비고.”

 

“그래?”

 

“응.”

 

“… 오늘은 뭔데?”

 

“…… 오늘은… 오늘은 내가 있어.”

 

“나는 항상 지훈만 담았는데.”

 

“…”

 

“지훈 만나고 난 뒤로 내 인생 눈이야.”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녹는 게 아쉬운 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뉴스에서는 정부군이 신 살상무기를 보급했다, 센티널의 등급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기폭제를 개발했다, 등등 정부군의 반격이 곧 있을 거라는 걸 암시하는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 관린의 핸드폰에도 전화가 쉴 틈 없이 울려댔다. 저번 새벽엔 잠을 자다가 깼는데, 관린이 창틀에 기대서 밖을 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려다가, 그의 표정이 처음 접하는 표정이란 걸 알아챘다. 아주 혼란스럽고 심란한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선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관린은 정말 한 겨울의 함박눈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웃었고,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절대 그에게 어두운 면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줄곧 다정한 눈빛과 상냥한 미소만 띄던 그 얼굴은 그늘이 드리워도 여전히 햇빛 아래의 하얀 눈처럼 반짝였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살며시 벌렸던 아랫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창밖은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는지 커다랗고 네모난 창문엔 온통 하얀 것밖에는 안 보였다. 그 옆에 있는 관린의 말간 눈동자가 눈과 참 잘 어울렸다. 겨울의 투명함과 잘 어울리는 관린은 그 후로도 눈 내리는 창밖만 계속 계속 응시하다가, 낮게 읊조렸다.

 

 

– 장마가 곧 오려나.

 

 

난 더 이상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와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더럽고 질척하고 찝찝한 장마 같은 거, 평생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관린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고, 난 그의 품에 눕듯이 안겨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든, 예능이든, 교양 방송이든 모두 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이번 전투로써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 판가름 날 것이라며 신나했다. 지긋지긋한 내전이 드디어 끝난다는 데에 대한 기쁨인 것 같았다.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차라리 내전 같은 거 백년천년 일어나도 좋으니, 관린이 이대로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제 곁이었으면 더, 더… 좋겠다고. 그때 관린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을 보자마자 예쁜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높은 사람이겠지. 난 관린의 품 안에서 나오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관린은 그런 날 꼭 껴안아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전화를 받았다. 습격이요.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휴대폰과 거리가 멀지 않아 나로선 듣기 괴로운 상황이 자꾸 들려왔다. 지금 좀 불리한 상황이라고, 장마 당신이 오지 않으면 판도가 엎어질 수도 있겠다, 얘기하는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장마…

 

 

“네, ……네. 알겠습니다. 신속히 복귀하겠습니다.”

 

“…… 지금……. 가야 돼?”

 

“응. 가야 될 것 같아…… 미안해. 정부군이 기지를 습격했대.”

 

“…… 응? 뭐가 미안해?”

 

“지훈 혼자 집 있어야 되잖아.”

 

“무슨 소리야. 가이드는 원래 센티널 전투할 때 따라가는 거야.”

 

“…… 안 돼 지훈. 지훈은 가이드 아니고 그냥 지훈이야.”

 

“……”

 

“여기 있어.”

 

 

급히 외투를 챙겨 입던 손이 느려졌다. 관린이 내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 지금 위험해. 나랑 한 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당장 폭주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가만히 있어도 오늘내일 하는 판인데 적이 바글바글한 곳에, 그 위험한 곳에 제 발로 뛰어 들어 간다고? 너 멍청이야? 너 바보야? 당장 내 손목을 잡은 그 하얀 손가락을 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관린에게 상처가 될 만한, 슬프게도 진실인, 그런 말들을 마구 마구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무력하게 푹 숙인 시야에선 혹여나 아플까 내 손목을 약하게 그러쥐곤 애처롭게 덜덜 떨리고 있는 관린의 하얀 손이 보였다. 난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랑 있으면 자꾸만 눈물이 나. 네가 장마, 장마라서 그런 거니. 관린아, 네가 자꾸 날 눈물 젖게 만들어. 너만 녹아 없어지면 되는 게 아니야,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린 나는 어쩌니.

 

 

“흐윽, 가지 마… 안 가면 안 돼? 제발… 흐윽… 관린아……”

 

“… 지훈. 울지 마. 나 안 죽어.”

 

“거짓말… 거짓말…… 흑, 거짓말 하지 마…”

 

“지훈. 나 봐.”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물을 흘려 수직으로 바닥에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지훈의 눈물 소리가 멈췄다. 관린이 지훈의 턱을 살며시 들어 입을 맞댔다. 지훈은 처음엔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눈을 감고 관린의 소맷자락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관린은 그에 답례하듯 고개를 더 틀었고, 이제 둘의 입술 사이에는 빈 공간이라곤 남아있지 않았다. 지훈을 자신의 품에 한가득 끌어안은 관린은, 지훈이 숨이 차 결국 먼저 입술을 뗄 때까지 끊임없이 물어 늘어지는 입맞춤을 계속했다. 마치 대형견이 주인에게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말고 놀아 달라며, 살살 긁어 대는 것 마냥, 지훈의 아랫 입술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서도 살짝 실눈을 떠서 숨이 부족해 발갛게 물든 지훈의 얼굴과 눈물로 부은 눈덩이도 실컷 감상했다.

그렇게 둘의 입술이 떨어지고 그가 살며시 감은 눈을 뜰 때까지 관린은 지훈을 단 일 초의 낭비도 없이 제 눈에 담았다. 눈물이 짓물러 붉어진 눈가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췄다. 지훈은 아까 갑작스러운 관린의 입맞춤에 놀라 쏙 들어갔던 눈물이 다시 나오려고 했다. 우리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우는 모습으로 보내긴 싫은데.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그 눈빛에 아주 소량의 아쉬움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아서, 지훈은 그냥 관린을 꼭 껴안았다. 관린은 눈을 감고 지훈의 목 언저리에 코를 묻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매일, 이 향기를 맡고 살 수만 있다면, 난 목숨이라도 내놓으리. 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됐다. 누군가는 떠날 시간이었고, 또 누군가는 보낼 시간이었다. 현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 다녀, 올게.”

 

“…… 응.”

 

 

누구 할 것 없이 둘 다 목이 매여 인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지훈은 발개진 코를 훌쩍이면서도 애써 웃었고, 관린은 집을 나설 때마다 매번 하던 인사가 어쩌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볍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관린의 눈 안에선 얇은 빛이 반짝이며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빛났다. 그의 눈 속에서 장마가 오는 것처럼……

 

지훈은 관린이 나간 문이 닫히는 순간,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숨이 부족해 끄윽 거리는 소리를 자꾸 내면서도, 지금 터지는 이 울음은 마치 터진 둑 같았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저를 주체할 수 없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데. 관린은 가이딩 수치가 부족해 온몸이 스스로가 뿜어낸 추위로 떨리고, 능력조차도 컨트롤이 잘 안 되어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엉뚱한 곳에 쏘아 댔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려웠을까. 아무것도, 저가 가이드란 것도, 가이딩을 하는 법도 모르던 제 가이드를 처음 만났을 때, 면박을 줄 만도 했을 텐데 관린은 그저 다정했다. 지훈은 관린과 처음 만났던 그때를 상상하며 더욱더 짙은 감정이 저를 흔들도록 놔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울음이 약간 진정되어 고개를 들자, 나무로 된 문앞에는 하얀 편지 봉투가 하나 있었다. 아마도 관린이 나갈 때 놓고 간 것 같았다. 지훈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하얀 양말로 더러운 신발장 안으로 뛰었다. 하얀 편지봉투 앞에는 DEAR, 지훈. 이라는 정갈한 글씨체가 쓰여져 있었다. 아직도 멈추지 못한 눈물 방울이 그 글씨를 번지게 했다. 당장 실링을 튿어 편지를 열었다.

 

 

 

내 눈에는 항상 예쁜 무언가가 비친다고 너는 그랬지. 그건, 내 속이 더러워 그런 거란다. 내 속이 칠흑같이 어두워 웬만한 것들은 다 빛나 보이는 거야. 하지만, 너는, 순백색의 눈, 투명한 얼음, 찬란한 빛, 무엇을 가져다 대어도 모자람이 없을 사람이잖아. 지훈아, 굳이 내 더러운 눈속에서, 빛나고 싶다면, 장마가 내릴 때까지 기다려 줘. 장마의 눈속에 장마가 내릴 때 까지.

 

 

 

지훈은 짧은 편지를 몇 번이나 곱씹어 읽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하얀 눈이 오고 있는 밖을 양말만 신은 채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관린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지훈은 편지를 붙잡고 눈속에 파묻혀 엉엉 울었다. 지훈이 주저앉은 그 아래의 눈이 지훈의 눈물의 따뜻한 온도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장마

눈속

 

장마

내릴

 

 

 

 

 

WRITTEN BY 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