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라 어른이 되겠지만
w. 포인

 

 

훗날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열아홉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내년에도 그 내년에도 난 여전히 고등학생일 것만 같은데,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것 같은데. 결국 나는 자라 어른이 된다. 되고야 만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어른이 되어버리면 지금의 나는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열아홉의 박지훈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대부분의 기억을 잊고 산다. 다섯 살의 내가 뭘 좋아했고 싫어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열한 살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 지나가버린 ‘나’는 지나가버린 ‘것’에 불과하게 된다. 잊히고 사라지고 지워진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렇게 죽어버린 나는 과거라는 무덤에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는 다시 죽어 미래의 나를 만든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오늘의 내가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   리   는

자         라

어   른   이

되 겠 지 만

 

 

 

내가 태어난 이래 마을에 외지인이 이사를 오는 건 처음이었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이 소란스러워진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매서운 한파와 함께 눈까지 몰아치던 어느 날, 말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근 5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은 이제 다른 누군가의 집이 되었다. 트럭 한 가득 쌓인 짐을 옮기는 어른들의 움직임이 부지런했다. 차라리 나도 그 짐을 옮기는 일을 도울 수 있다면 퍽 좋았으련만, 엄마는 내 앞에 어떤 남자애 하나를 데리고 오더니 그 애한테 동네 구경 좀 시켜주라며 나와 걜 마당 밖으로 밀어냈다. 얼떨결에 집 밖으로 쫓겨난 나는 당혹스러움에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아 저쪽으로 가자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눈비가 오는 탓에 땅이 딱딱하게 얼어 걸을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얼굴을 할퀼 것처럼 부는 바람에 두르고 있던 목소리를 좀 더 세게 여미며 길을 따라 걸었다. 그 애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걷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멀리 떨어진 채 걷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길가에 나와있던 동네 어르신들은 벌써 둘이 친구가 됐냐며 한 마디씩 하셨지만, 나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친구는 개뿔. 저 아직 얘랑 한 마디도 안 해봤는데요.
 

 
우리 동네는 두 다리만 건너도 다 알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으레 대부분의 시골 마을이 그렇듯 이곳도 아줌마 아저씨들,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젊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동네 꼬마 아이 아니면 나와 같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전부였다. 도시 지천에 깔리고 깔린 편의점도, 마트도, 오락실도 없는 아주 작은 마을. 그런 마을에 대체 누가 이사를 온다고 이사를 오나 싶었는데,
 
 

“여기가 앞으로 네가 다닐 학교.”
 
 

생각보다 젊은 애가 같이 딸려와서 처음엔 좀 놀랐다. 여기에 무슨 공장이 있길 하나, 회사가 있길 하나. 취업하나 할 곳 없는 곳에 이직을 목적으로 왔을 리는 없을 테고. 게다가 요즘 어느 부모가 고등학생이나 되는 자기 자식을 시골에까지 데려와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한단 말인가. 어릴 때야 무슨 친환경 교육이다 뭐다해서 잠깐 있을 수 있다 쳐도, 입시가 곧 전쟁과도 같은 고등학생에겐 별나라 이야기였다.

 

 

중년 남자 하나에 젊은 남자 하나가 이사를 왔다. 분주하게 짐을 옮기는 사람들 틈에서 낯선 얼굴이라곤 고작해야 그 둘 뿐이었다.

 

 

“학교 안 둘러볼래? 아니면 다른 데 갈까?”

“…….”

“어떡할래.”

“됐어.”

“……?”

“아무 데나 가. 그냥.”

 

 

결국 사연이 있다는 거다. 이 황량한 시골 땅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 가족만의 사연이. 구태여 내가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궁금증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이 애에게 ‘너 왜 여기에 이사 온 거야?’라고 대 놓고 물어볼 만큼 오지랖 넓은 사람은 아니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남자애는 나를 지나쳐 도롯가를 걸어갔다. 그쪽으로 가면 아무것도 없는데. 걸어가는 그 애의 등에다 대고 ‘거기로 가면 산 밖에 안 나와’라고 말했더니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려 다시 내게로 걸어왔다.

 

“뭐라도 마시러 갈래? 너 슈퍼 어딨는지 모르지?”

 

자기도 민망했는지 여태껏 아무 말 없다가 처음으로 내 말에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는 모습에 나는 슬쩍 올라간 입꼬리를 숨긴 채 다시 앞장서 걸었다. 슈퍼는 다리 건너가야 해. 네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슈퍼가 있긴 있는데 컨테이너 있는 곳은 신익리에 밖에 없어.

 

신익리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자 이 마을에서 가장 큰 리里였다. 신익리는 오원면의 읍내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면사무소나 보건소, 은행과 같은 기관들은 모두 신익리에 밀집되어 있기도 했다. 그에 반해 이 애의 집이 있는 임현리는 산 안쪽에 있는 윤현리, 바다에 있는 해창리와 같은 리와 같이 작은 리에 속한 동네였다.

 

아무튼 학교에서 조금 걷다 보면 임현리와 신익리를 연결하는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아래에 신익슈퍼가 있다. 신익슈퍼는 이 마을에서 나름 만남의 광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손데, 이유는 바로 신익슈퍼 옆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 때문이다. 이 컨테이너 박스는 면사무소에서 오원면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준 휴게실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카페에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는 오원면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애를 데리고 슈퍼 안으로 들어가 음료가 있는 냉장고 앞에서 마시고 싶은 걸 고르라고 얘기했다. 그 애는 한참 진열된 음료를 바라보다가 초코우유 하나를 집었고 나는 알로에 주스를 하나 집어 아저씨에게로 가 계산을 한 뒤 다시 그 애에게 초코우유를 건네주었다.
 
 

“…고마워.”

“근데 너 어디서 왔어?”

 
 
슈퍼를 나와 자연스럽게 컨테이너로 발을 옮기며 넌지시 그 애에게 물었다. 사실 아까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지금 이 타이밍이 아니면 오늘은 못 물어보겠다 싶어 재빨리 입을 연 것이었다.
 
 

“대만.”

“아, 대만. 어?! 대만?”

“어. 대만. 타이페이.”

 
 
그 말에 먹고 있던 알로에가 목에 걸려 나는 기침을 콜록콜록 뱉어 내었다. 그런 내 모습에 놀랐는지 그 애가 내게로 빠르게 걸어왔다.
 
 

“괜찮아?”

“어, 괜찮, 괜찮아.”

 
 
대만 사람이란다. 엄마한테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물론 엄마가 이사 오는 사람의 신상을 알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얘가 열일곱 살이라는 건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나는 입가를 소매로 슥슥 닦으며 눈만 굴려 내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는 그 애를 슬쩍 쳐다보았다. 생긴 건 딱히 나랑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였는데 외국인이었다니. 따지고 보면 같은 아시아 사람이니까 다를 거 없는 게 당연한 건가.
 
 
“이거 휴지.”

“어, 고마워.”

 
 

남자애와 나는 컨테이너 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테이블 자리에 가 앉은 다음 다시 말없이 손에 쥔 음료만 쭉쭉 들이켰다. 아…. 어색한 거 너무 싫다.

 
 

“근데 너 한국말 잘한다.”

“아빠가 한국인이라.”

 
 

아빠‘가’ 한국인이라는 말은 아빠‘만’ 한국인이라는 소리겠지.

 

“그래서 여기 온 거야. 여기 아빠 고향이라서.”

 

어쩐지 엄마가 아무리 오지랖이 넓어도 그렇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집에 가서 밥 해주고 청소해주고 할 사람은 아니다 싶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이라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외지인 이름도 알고, 외지인 아들인 얘 나이도 알고 그랬던 거구나.

 
 

“아빠가 직장을 옮긴 거야? 대만에서 한국으로?”

“아니.”

“그럼?”

“…….”

“…….”

“엄마가 죽어서.”

 
 

아무 감정 없는 눈동자가 바닥을 구른다. 덤덤한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 위로 부유한다. 딱히 알 필요는 없었으나 궁금했던 개인사를 알게 된 값은 꽤 무거웠다. 그 이후에 덧붙여지는 말은 없었다. 그저 엄마가 죽어서. 그래서 한국에 왔단다. 나는 어떠한 대답 대신 침묵을 유지했다. 어줍잖게 건넨 말이 이 애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이 애 또한 굳이 내게 위로받고 싶어 꺼낸 말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손에 쥔 알로에 캔을 만지작 거리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 애의 손을 바라보았다.
“핸드크림 바를래?”

 

날이 추워 그런지 마냥 미끈 하기만 할 것 같은 손등이 조금 터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주머니에게 조그만 핸드크림을 꺼내 바르며 그 애에게도 바를 것인지 물어보았다. 괜히 나는 안 바르고 얘한테만 주면 너 손등 텄으니까 좀 발라라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서.

 

“어? 어…. 고마워.”

 

나는 그 애의 손등에 핸드크림을 콩알만큼 짜주고선 다시 뚜껑을 닫아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주변으로 청포도 냄새가 연하게 퍼져 나갔다.

 
 

“너 이름이 뭐야?”

“라이관린.”

“라이관린.”

“근데 아빠가 한국에선 내 이름 이관린이라고 했어.”

“원래 이름에서 라자만 뺀 거네.”

“넌 이름이 뭐야?”

“나는 박지훈.”

“지훈.”

“그리고 너보다 2살 더 많아.”

 
 

…어. 그럼 존댓말… 써야 하는데. 라이관린은 당황한 낯빛을 한 채 내게 말했다. 아냐, 됐어. 안 써도 돼. 우리는 바람이 몰아쳐 덜컹거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컨테이너 안에서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가끔은 내 핸드폰 속 음악을 듣기도 하고, 걔가 재밌다고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하며 그렇게 한참 동안 얼굴을 가까이 한 채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뻐근해진 목과 딱딱해진 어깨를 손으로 주무르며 고개를 든 순간 창문 너머엔 어느새 눈은 그쳐 있었고 캄캄한 저녁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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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관린과는 그 후로도 자주 만났다. 라이관린이 이사를 온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나있었다. 그동안 라이관린과 나는 못 가봤던 다른 동네도 가보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버스를 타러 시내에 나갔다 오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라이관린의 교복을 맞추기 위해 학교에 왔다. 사실 맞춘다기 보단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에 기증하고 간 교복 중 맞는 것을 골라 가져간다는 것이 정확했지만, 내 생각에 라이관린에게 맞는 교복은 학교에 없을 것 같아 개중 다리 길이만 맞는 것을 가지고 와 수선집에서 수선을 해야 할 듯했다.

 

다음 주면 벌써 2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다시 보충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전에 학교는 내부 수리 공사를 한다는 목적 아래 며칠 전부터 학교 안을 통제하고 있었다. 다행히 교복이 있는 음악실은 공사에서 예외 된 곳이라 담당 선생님께 미리 말씀을 드리니 쉽게 교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뿌연 먼지가 요란하게 나부꼈다. 요 몇 주 청소 좀 안 했다고 이렇게 먼지가 많이 있을 일인가. 날이 추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고 환기를 하면서 행거에 걸린 교복도 손으로 탁탁 털어 먼지를 빼냈다.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기침은 교복을 얻기 위한 덤과도 같았다.

 

“야, 이관린. 와서 이거 입어 봐봐.”
나는 흰 와이셔츠 하나를 행거에서 꺼내 라이관린에게 내밀었다. 라이관린은 내가 건넨 와이셔츠를 받아 들더니 클 것 같은데라며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입고나 와 보라며 나는 화장실로 관린의 등을 밀었다. 라이관린이 셔츠를 입고 올 동안 나는 이쯤이면 먼지가 좀 빠졌겠지 싶어 다시 창문을 닫은 다음 히터를 켰다. 타이밍 좋게 라이관린이 교실 앞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때?”

“역시 조금 큰 거 같지 않아?”

“됐어. 앞으로 더 클 건데 큰 거 입어.”

 
 

나는 검지와 중지를 부딪히며 낙찰을 외친 뒤 라이관린이 입은 와이셔츠와 같은 사이즈인 와이셔츠를 하나 더 꺼내 가지고 왔던 종이봉투에 접어 넣었다. 그다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이번엔 조끼가 걸려 있는 행거로 가 라이관린에게 맞을 법한 조끼를 찾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맞으려나?”
“입어 볼게.”
 
라이관린은 내가 건넨 조끼를 바로 와이셔츠 위에 껴 입은 뒤에 옷매무새를 만졌다.

 
 
“괜찮은 거 같은데?”

“안 커 보여?”

“안 커 보여.”

“난 좀 큰 거 같은데.”

“아우, 너 앞으로 더 클 거니까 큰 거 입어도 돼.”

 
 
내가 더 클지 여기서 멈출지 형이 어떻게 알아. 라이관린이 약간은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도 멋 좀 부릴 줄 안다고 몸에 딱 맞는 교복 입고 싶다 이거지.

 
 

“만약에 너 여기서 더 안 크잖아? 그러면 내가 너 대학교 갈 때 원하는 거 하나 사준다.”

“형이 돈이 어딨다고.”

“야, 내가 왜 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형 학생이잖아.”

“네가 고등학교 졸업할 땐 대학생이거든?”

“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그냥 주는 거 입어. 입다가 그래도 영 크다 싶으면 수선집 가서 줄이면 되니까 걱정 말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게 나아.

 
 

“그리고 이것 봐봐. 너 키는 큰데 말라서 네 몸에 맞는 옷 찾아 입으면 손목이랑 발목 다 보인다고. 추워서 옷 입은 느낌은 들겠냐?”

“아, 알았다고.”

“너 지금 나한테 짜증낸 거야?”

“아니야.”

“냈잖아.”

“아니라고.”

“냈잖아!”

“아니라니까 진짜!”

 
 

라이관린과 나는 별것도 아닌 일도 싸우는 일이 잦았다. 19년 인생을 살며 이렇게 상성이 안 맞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콕 집어 라이관린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릴 순 없었지만 아무튼 우린 안 맞았다.

 
 

“짜증낸 거 아니야.”

“알았어. 그럼 이거 입어 봐.”

 
 

웃긴 건 서로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얼굴과 말투를 틱틱 뱉어낼 땐 언제고 화해하는 건 또 금방이었다. 문젠 이제 이런 말다툼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라이관린과의 대화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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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수업이 시작됐다. 1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나서 보는 아이들의 얼굴엔 방학하기 전보다 조금 더 살이 올라 있었다. 사실 오랜만에 본다고 하기에도 뭐한 동네 친구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나는 내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

 

그럼 수업 언제 마치는데? 오전 7:55

늦게 마쳐? 오전 7:55

 

라이관린은 이제 나 없으면 누구랑 노냐고 엊그제부터 징징거리더니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8:46  몰라 한 다섯 시쯤?

오전 8:47 앙아아아아아아ㅏㅏㅏ

오전 8:47 수업 듣기 싫다

 

그렇게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라이관린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라이관린의 메시지는 주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그 밑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식이었다. 오전엔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며 영화의 한 장면과 자신이 인상 깊었던 대사 하나를 찍어 보냈고, 오후엔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보낸 다음 거기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했다. 나는 수업 시간 몰래 잠시 핸드폰을 꺼내 라이관린이 보내온 메시지들을 읽으며 느린 답장을 보냈고 때때론 쉬는 시간에 몰아 읽고서 짧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교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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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이관린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보충 수업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고 중간에 엄마가 방앗간에 들러 참기름 좀 가지고 오라는 말에 방향을 틀어 방앗간으로 가던 중이었다. 라이관린은 방앗간 옆 반찬 가게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골목 틈새에 서 있었던 터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으나 라이관린이라서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 라이관린만큼 키가 큰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라이관린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선 운동화로 비벼 끈 채 내게로 걸어왔다. 형,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러고 나서 한다는 말이 너무도 태연해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라이관린은 나와 만날 때 이렇게 종종 내 앞에서 담배를 피곤했다. 근 며칠 동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어쩐지 오늘은 도저히 못 봐주겠어서 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벌써부터 담배를 피우냐고 걔가 물고 있던  담배를 단박에 뺏어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라이관린은 픽하고 웃더니 ‘머리에 피 마르면 죽어, 형’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손에 쥐고 있던 담뱃갑을 털어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어른들이 보면 뭐라고 해. 이 동네 좁아터져서 소문나는 거 순식간이다?”

“뭐라고 하라 해.”

“아저씨도 너 담배 피우는 거 아셔?”

“모르지.”

 
 

그러니까. 너 이렇게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그러면 소문 나서 아저씨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나는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꺼내 드는 라이관린의 팔을 잡으며 다시 그 애의 입속에 물린 담배를 뺏어 손으로 부서뜨렸다.

 
 

“형 언제부터 참견쟁이가 됐어.”

“이 보세요, 라이관린씨. 이건 참견이 아니라 걱정이라는 겁니다. 물론 담배 피우는 거 네 자윤데 할 거면 스무 살 넘어서, 성인 되고 나서 해. 학생 때는 안 돼. 너 키 안 큰다?!”

“클 만큼 컸어, 형. 여기서 더 크면 어떡하냐. 농구 선수할까?”

“농구 선수 좋지.”
나 농구 잘 하는데. 다음에 나랑 농구 하자, 형. 라이관린은 담뱃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집으로 가자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추워. 주머니에 손 넣고 가.”

“아, 오늘따라 형 진짜 잔소리 쩐다.”

“쩐다? 너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인터넷 조금만 하면 다 나오던데, 뭐.”

“나중엔 급식체도 배워와서 쓰겠다?”

“어, 인정.”

 
 

아, 뭐야. 라이관린은 웃으며 ‘이거 아니야?’라며 물었고 나는 내 어깨에 올려진 라이관린의 팔을 잡아 내리며 그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린 팔을 다시 라이관린의 코트 주머니 속에 넣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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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진로 상담이 진행됐다.

 
 

“지훈이는 보자. 공무원?”

“네.”

“지훈이 너 진짜 공무원이 하고 싶어서 적은 거 맞아?”

“네.”

“그럼 무슨 공무원이 되고 싶은 지도 생각해 봤니?”

“…어. 저는 그냥 저기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뭐… 그런.”

 
 

하고 싶다는 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학교에서 죄인이 되곤 했다. 위축된 마음은 좀처럼 펴질 줄 모르고 더 쪼그라들기만 할 뿐이다. 한번도 부풀어 본 적 없는 마음은 늘 쭈굴쭈굴하기만 하다. 왜 사람은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하는 걸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인생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나는 내일 죽더라도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죽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고 하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만 하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교실에 앉아 공부나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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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수업이 끝나고 일주일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이틀은 이불속에서 만화책을 읽었고 이틀은 라이관린과 시내로 영화를 보러 가거나 컨테이너 박스에 가서 시답잖은 수다를 떨었다. 방학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편히 노는 나와 달리 엄마는 이제 내가 수험생 아닌 수험생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걸렸는지 오늘 저녁 내게 학원을 한번 다녀보겠느냐고 물어왔다.

 

엄마는 연석이네 엄마처럼 내 성적에 크게 관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가 지금 보단 공부를 조금 더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비치곤 했다. 아빠는 학교 마치고 시내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애가 얼마나 고생하겠냐며 쓸데없는 소리 말라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남들 해보는 거 우리 아들도 다 해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아빠의 말을 딱 잘라 무시하곤 한번 더 내게 물었다. 학원, 다녀볼래?

 

나는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진 채 눈을 감았다. 그런 말들이 조금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난 바로 잠에 들었고 그 사이에 라이관린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형, 밖에 눈 와. 오후 9:45

 

그러나 내가 일어난 후에 창문을 내다봤을 땐 이미 눈이 그친 상태였다.

 

[동영상] 오후 9:51

 

나는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러보았고 재생된 영상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이관린은 동영상 중간중간에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은 처음 본다며 신기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눈 쌓였으면 좋겠다. 그럼 형을 바닥에 놔두고 굴려서 올라프로 만들 거야. 너무 귀여울 거 같아. 라이관린은 자기가 말한 것에 자기가 웃겨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런 라이관린의 터무니없는 얘기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오랫동안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내 손 안에 내리는 눈과 내 귀에 들리는 라이관린의 목소리가 잠시간 나를 아주 고요하고 고요한 어딘가에 숨겨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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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일수록 누군가의 비행은 엄청 커다랗게 부풀려 전달되곤 한다. 언젠가부터 라이관린은 우리 동네의 비행 청소년이 되었다. 쟤는 담배고 피고 술도 마신다고 하더라. 쟤는 대만에서 사람도 팬 적이 있다고 하더라. 쟤는 공부를 원체 안 해 머리가 바보라고 하더라. 고작해야 우리 동네에 대만에서 온 사람이라곤 라이관린과 라이관린네 아저씨 둘 뿐인데 라이관린이 대만에서 사람을 때렸다는 사실은 당최 어떻게 부풀려진 것이고, 라이관린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그게 자기들이랑 무슨 상관이라도 사람 하나를 바보녜 바보가 아니녜하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은 깃털보다 가벼워 퍼지는 건 먼지가 날아가는 속도보다 빠르다. 무게 없는 말들이 마을에 이리저리 나부낀다.

 

그리고 개학을 하루 앞둔 오늘, 라이관린은 제 아버지와 길 한복판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동네 길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죄다 몰려와 그 모습을 구경했으나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답잖은 일에 오지랖이란 오지랖은 다 떨며 참견하는 사람들이 왜 이런 싸움구경엔 다들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무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제 아버지에게 소리치는 라이관린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우습게도 나 또한 저 싸움을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겁쟁이에 불과했다. 나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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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감 하나를 마음에 지는 일과도 같다고 언젠가 아빠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크면 알게 될 거라고. 어른들은 어떠한 행위를 저지르고 나서 아이에게 ‘너도 크면 다 알게 될 거다’라는 말을 면죄부처럼 사용하곤 하지만 아직 어른이 되어보지 못한 우리에게 그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라이관린의 등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야, 어디까지 갈 거야. 몇 번이나 불러도 라이관린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미 해는 산을 넘어갔고 그나마 있던 해의 온기도 사라지자 온 몸이 달달 거리며 떨려왔다. 이러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자 나는 걸음을 빨리해 라이관린의 옷깃을 잡아 그를 멈춰 세웠다.

 
 

“어디까지 갈 거냐고.”

“…….”

“야, 이관린.”

“형.”

 
 

나를 돌아보지 않는 라이관린을 나는 돌려세울 수 없었다. 고작해야 ‘형’ 하나 부른 목소리 만으로도 나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려놓은 채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라이관린과 라이관린네 아저씨가 싸운 이유를 모른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라이관린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굳이 이유를 따져 물어야겠다면, 내가 라이관린네 아저씨보다 라이관린과 더 친한 것이라고 하자.

 

질풍노도의 시기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날이 서고 좋다고 하는 일엔 마냥 들뜨는 그런 철 모르는 시절이다. 그래서 쉽게 부서질 수 있고 망가질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부푸는 감정을 담아낼 그릇이 없어 기어코 언젠가 한 번은 터지고야 마는 그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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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은 늘 그렇듯 조용하게 치러졌고 다음날부턴 정상수업이 시작되었다. 라이관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이 동네 아이들에게도 일찌감치 퍼졌는지 라이관린은 첫날부터 교무실에 불려 가 선생님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고 했다. 내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길 했냐, 애를 패길 했냐. 진짜 사람들 남한테 관심 쩐다. 라이관린과 나는 학교가 마치면 신익슈퍼에서 컵라면 하나씩을 꼭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근데 형 너 2학년이라고 왜 말 안 했어.”

“학년이 뭐가 중요하냐. 나이가 중요하지.”

“사고 쳤어?”

“내가 넌 줄 아냐?”

“난 사고 친 적 없는데.”

“됐어, 라면이나 먹어.”

 
 

왜 안 말해주는데. 형 왜 2학년인데? 라이관린은 들고 있던 젓가락까지 내려놓고서 내게 물었다.

 
 

“아팠어.”

 
 

나는 봄이 오는 계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계절이 나에겐 버거웠지만 봄은 더욱 그랬다. 꽃가루가 날리는 것도, 피어오르는 녹음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것도.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쓰러지는 것도, 가장 사람이 활동적인 계절에 나 혼자서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지금도 아픈 거야?”

 
 

입원 치료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학년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내게 거는 기대가 커진 것도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공부밖에 없어서. 그것뿐이라서. 그게 가장 쉽대서. 물론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가서 다른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하면 엄마는 두 손 들고 나를 응원해주겠지만, 그 1년 동안 엄마가 나를 위해 울고 울었던 기억을 되새기면 쉽게 나만을 위한 선택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를 통해 느끼곤 한다.

 
 

“아마.”

 
 

오랜만에 낮부터 내린 눈은 소복이 쌓여가는 중이었다. 덮이고 덮여 계절마저도 가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마 저 눈이 녹고 나면 봄이 올 것이다. 곧 봄이 온다.

 

 

 

 

 

 

 

 

다음 계절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