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w.period

 

 

열다섯 살의 난 인적이 드문 동네에 살았다. 번화가도 아니었으며, 발달한 것 하나 없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과, 집들을 모두 이어주는 골목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중 파란 지붕 집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 엄마, 아빠. 단촐 하긴 했지만, 어디서 키워도 부족한 것 없이 키우고 싶다는 우리 부모님의 바람대로, 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생활을 해왔다. 그 당시의 난 열여섯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친구들과 컴퓨터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으며, 감자와 초코바를 바꾸어 먹는 것과 게임을 좋아했다. 그때의 난 정말 나이답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11월 25일. 관린이가 이사를 온 날이자, 15살의 나와 14살의 관린이가 처음 만난 날이다. 그날은 날씨가 점점 추워지다 잠시 주춤한 날이었다. 날씨도 적당히 쌀쌀했고, 내기한 족구 경기도 이겼고. 평범하게 기분 좋은 날 이었다. 평소 끔찍하게 여기던 하교 후 타는 버스에도 오늘은 괜찮은 기분으로 올랐다. 언제나 그랬듯 버스 좌석은 넘쳤기 때문에, 난 내가 매일 앉는 카드 인식기 바로 뒤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히터에서 나오는 인조적인 바람에 의해 노곤노곤 해져 버스 창문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가, 우리 동네임을 알리는 정류장 안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난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히터 때문에 건조한 눈을 억지로 반쯤 떠보니, 내 눈 앞에서 웬 흰 알갱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확인하려고 다시 느릿하게 눈을 떠 보았더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난 잠시 눈을 바라보다 옅은 봉숭아물이 남아있는 손톱을 보며 설핏 웃음을 지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 중학교에선 9월 중순 쯤에 봉숭아물들이기 유행이 일었다. ‘첫 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 난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도 없었을 뿐더러, 관심도 무엇도 없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물을 들였었다. 근데 막상 눈 앞에서 눈이 내리고 있으니, 의미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들 뜬 마음으로 골목을 걷고, 집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는 대문을 슬쩍 열어보니 집 앞엔 빨래를 걷고 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문을 닫고 인사를 하려는데, 내가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어머니가 선수를 치셨다. 오늘 우리 동네에 너보다 한 살 어린애가 이사 왔다더라. 저 앞에 주황 지붕 집 인가봐.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난 곧장 그 아이가 이사 왔다는 집으로 갔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여유로이 걸어도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조금 걷다 보니 어머니가 알려주신 그 집이 나왔다. 정말로 색이 쨍한 주황색의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갔지만, 막상 이름도, 성별도,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의 집에 초인종을 누르려니 망설여졌다. 난 그날 이사 온 애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며칠 뒤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다. 난 뒤돌아 걷다가 다시 그 애 집 쪽으로 걷다가를 반복하다가,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서 담 위로 집 외관이라도 보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160cm를 웃돌던 나에게 그 집 담장은 너무 높았다. 그래도 어떻게 하다보면 뭐라도 보일까 해서, 나는 한참 동안 까치발을 들고 그 집 담장에 매달려 있듯이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 때인가 그 집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천천히 그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에는 내 앞에 한 아이가 있었다. 오늘 이사 왔다던 그 애 인 것 같았다.
 
작게나마 사랑을 기대한 내가 무색하게도, 이사 온 애는 남자였다. 아니, 남자보단 소년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얼굴은 아직 애기 티도 못 벗은 주제에 키는 나보다 한 뼘이 더 컸으며,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고동색을 띄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한참 그 아이를 올려보다 보니, 나와 그 애 사이에선 어색한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마주 보았고, 말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애 대신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일단 난 박지훈 이라고 하고, 이 동네에서 살아 그리고 혹시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너희 집을 딱히 훔쳐보려고 한 건 아니구 새로 이사 왔다 길래 인사하러온 거야.”
 
“······”
 
“넌 이름이 뭐야?”
 
“賴冠霖. 라이관린.”
 
그 뒤의 대화는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해댄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끝내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난 그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갔다. 밥도 거절한 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그 아이 머릿속에 있을 나의 첫인상을 걱정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집안을 엿본 애로 보일 거 아냐. 그날 난 애꿎은 이불을 하루 종일 차댔다.
 

 
그날 뒤로 어쩌다 걔를 마주치면 내가 먼저 도망치거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게 다였다. 내가 그 어색했던 라이관린이라는 애를 꾸준히 보게 된 건 몇 개월 뒤, 새 학년이 시작 되었을 때부터이다. 그 애가 나 보다 한 학년 아래인 2학년으로 우리 학교에 전학 왔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적어 배차 간격이 유난히도 긴 버스 덕분에 그 애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매일 같이 등하교 했다. 첫날엔 대충 인사를 하고 따로 앉아서 갔지만, 그 큰 버스에 둘 밖에 없는데 따로 앉는 게 뻘쭘해진 나는 다음 날부터 관린이 옆에 앉아서 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 우리는 서로의 집, 교실,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갔다. 우리는 버스에서 왕복 한 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과 사생활을 공유했다. 예를 들면 그 애가 대만에서 왔고, 한국 나이는 올해 열다섯 살 되었으며, 한국어가 유창한 이유는 한국에 오랫동안 살았던 고모의 교육 덕이라는 것 등 우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나와 관린이가 같이 등하교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날씨가 평소보다 풀린 날이 있었다. 우린 그 손이 얼 것 같은 날씨에, 뼐 핑계를 다 대면서 1시간 15분을 꼬박 걸어 하교했다. 함께 있으며, 대화를 하고 싶었기에. 그때에 우린 보통 나이 대에 하는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보다는, 서로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매번 달랐지만, 서로 재밌었던 일화를 말해주거나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항상 그 애와의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다. 난 그게 좋았다. 늘 나에게 무언가 남겨주는 관린이와의 대화가, 그 말을 해주는 걔가 좋기도 했고.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라이관린과 나는 단기간에 친해진 것 같다. 나도 그 애도 친구를 많이 사귀기보다는 신중히 사귀는 타입이었는데, 그 애는 어느 순간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래도 큰 이질감이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그 애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취향이던, 말투든 뭐든. 그렇게 거의 일 년을 내내 그 애와 붙어 다녔다. 봄엔 벚꽃 앞에서 셀카를 찍으며, 한여름엔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며, 가을엔 같이 독서실에 다니며. 그렇게 우리는 사계절에 걸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고, 나는 시간의 순리에 따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도 우린 변함없이 그 사이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했다. 다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선 공부를 하느라 좀 더 바빠졌고, 등하교를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뿐이었다. 관린이는 나와 못 만나는 게 내심 서러웠는지 매일 같은 시간에, 내가 고등학교에서 오는 쪽으로 마중을 나왔다. 난 또 관린이를 그냥 보내기 뭐해서 골목길 입구에 있는 슈퍼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골목 사이사이 있는 가로등 아래서 대화를 나눴다. 아 가로등 아래서 하는 대화는 좀 문제가 있는 게, 무슨 주제의 말이든 서로 말을 하고나서 눈을 맞추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부끄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관린이는 쓸데없이 키가 컸기 때문에 매번 나를 따스한 눈빛으로 내려다 봐주었다. 솔직히 나도 그 아래서 많이 망설였지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선홍빛으로 달아오른 내 볼을 가라앉혀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린 그렇게, 애틋한듯 애매해진 1년을 보내고 관린이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해, 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우리 사이는 눈에 띄게 발전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만의 것을 공유했다. 나도 그 때까진 그냥 관린이랑 좀 애매한 사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어쨌든 우린 떳떳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최근에는 좀 복잡한 일이 생겼다. 관린이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난 관린이에게 화법과 작문을, 관린인 나에게 미적분을 알려주고 컴퓨터 게임을 했는데, 내가 게임을 계속 하다 보니 눈이 뻑뻑해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근데 내가 자는 줄 알았던 관린이는 게임을 멈추더니, 나를 침대에 올려 이불을 덮어준 다음, 입을 맞추고 그대로 내 옆에 누워 잤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인데 더 한 것은, 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원래는 바로 눈을 떠서 뭐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양심이 없는 나는, 내심 관린이 나에게 몇 번 더 입 맞춰 주길 바랐다.
 
관린이 나에게 입을 맞춘 뒤에도 자고 있던 척 눈을 감고 그 애에 대한 여러 생각 중에 있었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장난처럼 던진 말들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제일 친한 친구는 물론, 나와 그저 그런 사이인 애들까지 관린이와 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너흰 진짜 사귀어도 되겠다. 라던가, 그 정도면 그냥 사귄다 해라.
 

 
관린이가 나에게 뽀뽀한 다음 날, 난 그 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괜히 찔렸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솔직히 말 해봐, 너희 사귀지.‘
 
자꾸만,
 
‘아님, 아직 썸?’
 
관린이만 보면 이런 말이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난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관린이와 이대로 가다간 정말 위험해질 것 같다는 것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내가 힘들게 그어왔던 선들이 지워질 것만 같다는 것을.
 

 
학교에 다녀온 나는 본격적으로 그 애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 머리가 잘못된 것인지, 내 몸이 잘못된 것인지. 정말로 그 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인지.
 
뽀뽀든 그 더 한 것이든 분명 전에도 했던 장난인 것 같은데 내가 머리가 너무 커버린 건지, 우리가 자꾸 건전하지 못한 사이로 느껴졌다. 나는 솔직히 관린이를 친구 이상으로 본 적이 있다. 걔 얼굴 자체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얼굴인데. 나라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다짐해왔다. 관린이는 아직 어리다. 그저 외국에서 와 개방적인 아이일 뿐이다. 라고. 우리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들은 관린이가 나에게 해주는 행동들, 그 다정한 행동이 문제였다. 난 그 다정의 늪에서 3년째 헤어 나오지 못했고.
 
그래서 난 더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관린이 나에게 해주는 건 나에게만 베푸는 다정이 아닌 모두에게 베푸는, 일종의 매너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의 애정 말고도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관린이와 나는 남자라는 것. 같은 성별이라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입장은, 솔직히 사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세상은 모두 나와 같은 사람이지 않았다. 아무리 전보다 의식이 바뀐 사람이 많다고 해도 동성교제를 하고 있다고 커밍아웃을 하면 사람들의 아니꼬운 시선을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걸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도 있었고, 사례도 많이 찾아봤기 때문에 나는, 내가 그 애와 사귀면 생길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았다.
 
그 말은 즉슨, 만약 그 애도 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서로 죽고 못 산다고 해도 우린 절대 이어질 수 없었다. 난 그저 하찮은 열아홉이며 그 애는 열여덟에 불과했기 때문에.
 
내가 관린이와 만나는 상상을 하며 달콤한 나날들을 꿈꿔도 결국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이런 시대에 애를 데리고 내가 무슨 상상을 하는 건가였다. 내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부정적인 게 아닌 현실적인 것이다. 팩트는 이 나라에서 동성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관린이와 내가 오래도록 함께하며,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관린이와 죽도 밥도 아닌 사이가 되기 전에 적당함을 유지하자.
 
다 컸다고 자부하는 18살의 내가 한 달간 고민하고 낸 최선의 결과였다.
 

 
그 다음부터 나는 라이관린과의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티가 나게 내치진 않았지만 하는 행동 중 조금이라도 오해가 될 만한 것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내가 관린이에게 매정하게 군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의 마음을 눈치 챈 건지 관린이도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내 옆에 있어주었다. 그게 속상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런 관계로라도 우리가 오래 지속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린 이제 버스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정말 형식적으로 같이 앉아 있기만 했다. 내가 보고 싶다고 친구와 함께 올라와 칭얼대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가끔 같이 먹던 급식도 아예 따로 먹었다. 관린이가 나를 피하게 만든 건 내가 자처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게 맞다. 근데 관린이는 나를 다른 방식으로 괴롭게 했다. 책임감 없고 미운 나를 지겹게도 챙기려 들면서. 그것도 대놓고 챙겨주는 게 아니라 내가 졸고 있을 때 몰래. 조금이라도 추운 날엔 내 책상 위에 담요를 놓고 가고, 버스에서 피곤해 보이는 날에는 매점에서 캔 커피를 사다 주었다. 근데 어째서 이 다정함이 이렇게 서러운 건지. 하지만 매우 꿋꿋한 나는, 거의 두개월간 이런 관계를 유지했다.
 

 
평년보다 10일 이나 이르게, 첫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 날도 똑같이 야자를 하고 버스를 타고 평소와 같이 관린의 옆에 형식적으로 앉아, 형식적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관린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원래는 거절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런건데. 그 애가 너무 해사하게 웃으며 말해서,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관린이와 나는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콘을 먹었다.
 
“관린아. 나는 눈이 그렇게 좋다.”
 
“나도.”
 
“내가 열여섯 살 때부터 매년 겨울마다 봉숭아물을 들였잖아. 그것도 다 첫 눈을 더 잘 기다리기 위해서 들인 거야. 네가 좀 더 크고 우리 둘 다 성인이 되면 그 땐, 꼭 같이 들이자.”
 
꼭 일 년 전의 우리 모습과 비슷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웃어본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일어섰는데, 그 애가 오늘은 꼭 날 집 앞에 데려다 줘야 한다면서 굳이 날 집 앞에 데려다 주었다. 그 애는 나를 우리 집 대문 앞에 세우고 내 어깨를 살짝 쥔 다음, 꼭 내일 아침에 열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애는 그제서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그 편지 내용이 무엇일까. 자기 전에 그 편지를 뜯어볼까 말까를 수도 없이 고민하며, 편지를 계속해서 집었다가 놓았다. 난 반복해서 편지를 만지작거리다, 손에 편지를 꼭 쥔 채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난 아침에 일어나 정신도 차리기 전에, 침대에 기대어 라이관린의 편지를 먼저 폈다.
 
 
우리가 만난 지 햇수로만 벌써 3년째인데, 편지는 처음이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편지라도 많이 써둘 걸 그랬다. 아직도 글씨는 잘 못 쓰는데, 많이 연습하고 쓴 거니까 예쁘게 봐줘. 일단 본론부터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예정보다 빠르게 대만으로 가게 됐어. 꼭 얼굴 보고 말하고 싶었는데, 얼굴 보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말 못했어.
 
 
편지를 반쯤 읽었을 때 난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그 애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그 곳에 라이관린은 없었고, 쓸데없이 쨍한 색의 주황색 지붕을 가진 집만 있었다. 난 그 집 앞에 서 있다가,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눈 주위가 빨갛게 틀 때까지 한참을 울고나서야, 난 그 자리에 서 읽던 편지를 마저 읽었다.
 

 
이제 형 얼굴 보는 것도 내일이 마지막이겠네. 형은 어제가 내 마지막 모습이었을거고. 내가 이사 가기 전 날에 눈이 오기 시작해서 다음 날까지 계속 온다고 했는데, 형이 이거 읽고 있을 때에도 꼭 눈이 오고 있으면 좋겠다. 아, 나는 눈 오는 날이 그렇게 좋더라. 한국에 와서 눈을 처음 본 것도 있고, 형을 처음 만난 날 첫 눈이 와서도 그렇고. 그동안 많이 부족한 나랑 있어줘서 고마워. 아, 그리고 요새 형이 나한테 그렇게 행동한 이유 다 알아. 그러니까 자책하지도 말고, 행복하기만 해. 형이 좋은 거면 나도 좋으니까.
 
지훈이 형, 우리 다음 생엔 꼭 이뤄질 수밖에 없는 사이로 만나자.
 

 
진짜 나도 주책이다. 그동안 있었던 별 추억이 다 생각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안 미안한 게 없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고, 매일을 같이 다녔는데 라이관린을 집에 한 번도 데려다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너한테 캔커피도 사주고, 담요도 덮어줄 걸. 아니 그거까진 못하더라도 집에 쌓인 네 담요라도 돌려줄걸.
 
그냥 솔직히 얘기할 걸 그랬다. 나도 버스에서 네가 잘 때 몰래 뽀뽀한적 있다고. 온갖 척은 다했지만 나도 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좋아했다고. 17살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봉숭아를 물들이고 첫 눈을 기다리는 이유가 우리가 이뤄질까 하는 작은 바램이었다고.
 
난 지금까지의 우리를 생각하며 거의 일주일을 내내 울었다. 난 다 큰 척 하며 내 생각을 포장 해왔던 나의 진심은, 사랑으로 인해 라이관린을 잃고 싶지도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근데 막상 라이관린을 잃고 나니 내 세상이 무너졌다. 내 생각보다도 그는 나에게, 참 큰 존재였다.
 
 
*
 
 
라이관린이 나를 떠난 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애의 소식은 커녕 카더라 마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 이젠 라이관린에게 잊혀졌거나,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겨울이면 봉숭아물을 들이며 그 애를 생각한다. 혹시, 그냥 혹시나 해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