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라바쿠르

W.아란드

 

 

 

 

 

 

불을 켜 새벽을 밝혔다. 오후 5시만 되어도 금세 어두워지는 겨울의 낮은 짧았고 밤을 길었다. 새벽은 밤보다 더 춥고 어두웠다.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차를 끌고 카페로 나와 차게 얼어붙은 이 곳을 녹였다. 장작을 넣어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라디에이터와 난방기를 틀었지만 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파도가 들썩이는 냉혹한 겨울의 바다와 위태로운 산을 등지고 있기에 어쩌면 더 추위가 거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 이정도로 춥진 않았는데. 툰드라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는 바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지 겨울바람이 매섭기도 하다. 문 틈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마치 곡소리 같기도 하며.

 

 

아침 8시 10분이 되면 무거운 어두움이 내려앉았던 이 얼어붙은 항구도시에도 해가 뜬다.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추위를 녹여주려 애썼다. 원두 기계를 닦던 내 눈에 불꽃이 희미해져가는 벽난로가 들어왔다. 발걸음을 옮겨 장작을 몇 개 더 넣어준 뒤, 종이로 부채질을 해주자 다시 불꽃은 살아났다. 노란 전구들이 두둥실 떠있는 카페의 내부는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해는 떠오르고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지평선의 태양이 한 눈에 보인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아침보다 더 푸르고 청량한 항구도시의 해가 떴다.

 

 

손이 시림에도 불구하고 아침의 버릇이 되어버린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매일 오전 8시 15분이면 카페의 아랫골목에 있는 사무실 직원들이 항상 몰려와 수십개의 주문을 넣어 나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은 연중무휴인 악덕 사무실의 워크샵날이었기에 내 아침의 시작은 보다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담배가 반쯤 타올라갈 때, 저 멀리서 화구통을 어깨에 메고 높은 계단을 두 개씩 훌쩍 훌쩍 올라서며 걸어오는 형체가 보였다. 난간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테라스의 문을 닫은 뒤, 다시 나무계단을 내려왔다. 카페 한 가운데에서 열을 내고 있는 난방기와 벽난로 때문인지 찬 기운을 머금었던 이 곳에 어느덧 따뜻함이 내리 앉았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혹여나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지 체크한 뒤, 카페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열린 문의 앞에 서있는 그의 형체와 마주했다. 목도리를 코 아래까지 완전하게 두른 자의 인사에 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좌로 틀어 그가 들어올 수 있게 배려해주자, 화구통과 무거운 이젤을 든 그는 내가 비켜선 문으로 들어와 장작이 타고 있는 벽난로로 향한다.

 

화구통과 이젤을 들고 다니는 기이한 이자가 나의 카페에 들른 것은 시기상으론 얼마 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덮치기 직전인 11월 초겨울의 아침.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9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원두들을 꺼내올 때 카페 문에 달린 종이 딸랑였다. 그리고 나타난 것이 이 사람이었다. 이젤과 화구통을 어깨에 짊어진채로 들어와서는,

 

 

 

커피 되죠?’

 

 

 

라고 말한 뒤, 오늘처럼 벽난로로 가서 얼어붙은 손을 꺼내어 녹였다.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단 한번도 행동이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난 찬 바람이 들어오는 문을 닫은 뒤, 허리에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차가운 원두를 분쇄 기계에 몰아 넣었다. 원두를 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카페 천장을 덮었고 내 눈은 작은 그의 뒷통수로 향했다. 그를 닮아 작은 손은 차갑게 얼어붙어 덜덜 떨리고 있다. 곱게 갈린 원두가 포타필터를 꽉 채웠고, 나는 더 진한 커피를 만들어주기 위해 템퍼로 필터 위를 있는 힘껏 꾹꾹 눌렀다. 난방기 위에 갈아둔 원두를 넣은 주전자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소리만 가득한 고요한 카페 안. 사람이 들어오면 짖어대곤 하는 앞마당의 ‘레피(골든 리트리버)’도 사무실 사람들이 들이닥치지 않았기에 여전히 숙면을 취하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난 포타 필터를 에스프레소 기계에 꽂으며 기계 너머로 벽난로 앞에 앉은 그를 계속해서 훔쳐봤다. 혹여나 삑사리가 나진 않을까하는 걱정에 몇 번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사무실 직원들이 안 오는데 그릴만한 피사체가 없겠네요.”

“왜 안와요?”

“워크샵 갔다던데요.”

 

 

그렇구나, 라고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짧게 끊어진 대화에 아쉬움이 생길 때쯤, 그가 벌떡 일어나 벽난로 근처를 떠났다. 항상 저 곳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였는데. 저 자리에서 매일같이 앉아 이젤을 펴고 사람들을 보며 그림을 그리던 그였는데. 그는 뒷짐을 지고 카페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치 평론가처럼 뜯어보았다. 뜨거운 샷이 모두 떨어졌음에도 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다. 그의 발걸음은 아무것도 없는 나무벽 앞에 섰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두꺼운 나무를 톡톡 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북유럽에 계셨어요?”

 

“예, 폴란드요.”

 

“어쩐지. 나무를 이렇게 통으로 짓는 건 흔치 않잖아요. 안에는 톱밥까지 채워져 있고.”

 

“폴란드 남부 고산지대에 있는 모든 건물은 나무로 지어져 있어요. 근처 다트라산에서 자란 소나무를 재료로 쓰곤 했는데, 그게 차가운 북해바람을 막아준대요.”

 

 

 

 

 

그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뒤를 돌아 벽난로로 돌아갔고 난 뒤늦게 에스프레소샷이 다 나왔다는 걸 눈치채고 부랴부랴 하얀 잔을 가져와 에스프레소를 담았다. 이제 그는 이젤을 피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한다. 오늘은 그림에 등장할 그렇다할 피사체가 없을텐데.

 

난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섞어 잔을 채웠다. 그가 좋아하는 따뜻한 원두 커피. 쟁반에 담아 부산스럽게 준비하는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젤을 펼치고 4B연필을 한 손에 든 채 나를 올려다 봤다. 난 그의 옆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의 옆으로 바싹 붙어 허리를 숙여 예술가의 기운이 물씬 퍼지는 그만의 공간을 훑어봤다. 마치 내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처럼.

 

 

 

 

 

“그림 봐도 될까요?”

“아니요, 안돼요.”

“왜요?”

“사서 보세요. 내 그림엔 완벽한 사람만 담겨있어요. 쉽게 못 보여줘요.”

 

 

 

 

지독하게 자본주의적인 대답에 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IMF며 금모으기 운동이며 난리가 터진 바깥의 상황이 예술가의 주머니를 털어간 것인지.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담배갑 뒤에 그림을 그리던 이중섭도 아무리 가난해도 이 사람처럼 그림을 숨기려 하진 않았을 텐데. 얼마를 줘야 그림을 볼 수 있을까. 난 오늘 지갑에 돈을 얼마나 들고 왔는지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얼마 드려야 해요? 제가 오늘 돈을 많이 안 가져와서요.”

“아무리 그래도 카페 사장님인데 금고에 돈이 없어요?”

“우와, 진심이시구나. 돈주면 그림 보여준다는 말이 나는 장난인 줄 알고 적당하게 받아친건데.”

 

“사장님, 제가 여기에 자주 오는 이유를 아세요?”

“글쎄요. 내가 키도 크고 잘생겨서?”

 

 

 

 

 

이번엔 그가 웃었다. 웃는 모습은 처음본다. 항상 사람들에 집중하며 연필만을 놀리기 바빴으니까. 어쩌면 내일 워크샵을 간 사무실 직원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의 웃음을 보고 나니 정말로 다른 생각은 일체 들지 않고, 밖으로 걸어가 ‘OPEN’이라고 걸린 팻말을 돌려 ‘CLOSED’로 바꾼 뒤, 온종일 그와 대화만 하고 싶단 생각만 들었기 때문에.

 

한 심리학자가 말하였다. 사람을 향한 호감은 1분에서 1분 30초 안에 결정된다고. 난 이 자를 본지 거의 한 달이 되었지만 웃는 얼굴은 처음 보았고 그 웃음을 본 지금. 1분이 되지 않은 시간에 호기심은 또다른 감정으로 바뀌며 내 머릿속 우주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지 못하는 자본주의에 찌든 예술가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유럽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갔어요. 그런데 여기 오면 내가 꼭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카페 이름도 ‘라바쿠르’잖아요. 프랑스에 있는 라바쿠르에서 따온거 맞죠?”

“네, 맞아요.”

 

“지금은 겨울이니 모네의 ‘눈 덮인 라바쿠르’겠네요. 아무튼, 난 그래봤자 모네도 아니고 반 고흐도 아니고 차라도 아닌데 그냥 여기 오면 그런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마치 프랑스 예술의 시대 한 가운데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도취되는 기분도 들고.”

“요약해서 말하자면 유럽스러운 인테리어랑 카페이름 때문에 온다는 말이네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웃음을 거둬내 연필을 잡을 때 마침 손님이 종을 딸랑이며 들어와 나는 그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다. 각설탕을 항상 곁에 놓아두는데, 쓴 맛이 취향인 것인지 얇은 종이에 싸여있는 각설탕은 단 한 번도 뜯기지 않았다. 손님은 라떼에 바닐라 시럽을 넣어달라 요청을 하였고 난 원두를 분쇄기에 넣으며 다시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기 위해 기계 너머를 둘러보았다.

 

그림에 집중하고 있는 그자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심각해보였다. 나는 괜히 신경을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눈을 돌려 내 일에 집중했다. 스팀기에서 끓여낸 따뜻한 우유를 에스프레소가 담긴 컵에 동그란 모양을 내며 뿌린뒤, 달달한 바닐라시럽을 첨가했다. 문 근처에 자리를 잡은 라떼를 주문한 손님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방인이 신기한 듯 연신 힐끗댔다. 보통은 서울 남산이나 대학로에 자리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인데 이런 항구도시에, 거기다가 계단을 수백개를 올라와야 하는 외곽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라니. 내가 봐도 참 이질적이지.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의 테이블에 서빙을 다녀온 뒤, 점심에 몰려올 손님들을 대비하기 위해 박스를 뜯어 어제 들여온 원두봉투들을 꺼내었다. 다방이 즐비한 곳들 사이에서 전문적인 커피를 제공하는 곳은 손에 꼽았고, 그 중 브라질과 코스타리카에서 가져온 원두를 쓰는 곳은 내 카페뿐이였었다. 그리고 항구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도 한 몫했고.

 

예술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 내 카페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한 입으로 말하곤 했다. 여기가 동해인지, 발트해 연안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함께 나탈리로 떠나고 싶네요. 스푼을 저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한 쪽손으론 내 손목을 붙잡고 미묘한 뉘앙스의 말을 하는 자들도 여럿 있었고.

 

원두를 정리하다 말고 높은 아일랜드에 팔을 기댄 채 창 너머의 푸른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잠에서 깼는지 밖에서 들려오는 레피의 짖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배가 고프다는 제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의 웅장한 소리에 원두봉투는 잠시 내려두고 커다란 개밥 봉투를 들고 바깥으로 향하기 위해 주방을 나왔다. 문 근처에 있던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과묵하던 예술가의 근처에선 말소리가 들렸다. 가게 문을 열다말고 그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연필을 놀리는 그의 옆으로 손님은 제 턱을 매만지며 말을 하고 있었다.

 

 

 

 

 

“실력이 좋은데 어째서 도시로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무르는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 항구는 돈이 돌고 있으니까요. 도시는 경쟁률이 너무 세고, 적당히 돈이 많이 도는 도시를 찾다가 이곳으로 왔어요. 돈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요. 통영에 이중섭 선생님과 백석, 유강렬이 있었던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였어요. 결국 돈이거든요.”

“아하. 조금 더 로맨틱한 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좋아하는 여자를 따라 왔다던가.”

 

“사랑을 하기엔 여유가 없네요. 그런 말 있잖아요. 사랑이 밥 먹여줘?”

 

 

 

 

 

그렇다면 여유가 생긴다면? 너무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선을 눈치 챈 그가 날 바라보려 고개를 돌리려 할 때, 난 황급히 문을 열고 꼬리를 흔들며 밥을 기다리는 레피에게로 향했다. 텅 비어있어 쓸쓸해보이기 까지 하는 밥그릇이 안타까워 수북하게 밥을 부어주고 리트리버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먹고 살아갈 힘을 주긴 하는데. 삶에 지친 듯 비관적 태도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난 조금 고민에 빠졌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밥을 허겁지겁 먹는 레피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뒤에서 들리는 딸랑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가 가는 것인가 싶어서 돌아본 곳에는 라떼를 다 마셨는지 늦게 들어온 손님이 인사를 하곤 계단을 내려간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종이 한 장. 끝이 너덜너덜한 것을 보니 스케치북을 찢어 받은 것 같은데 그림을 산걸까. 무거운 레피의 밥봉투를 꽉 잡아 들곤 다시 따뜻한 안으로 들어갔다.

 

슥슥삭삭, 연필소리가 가득할 줄 알았던 공간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뒷문으로 나가버렸나? 싶어 바라본 벽난로의 앞은 텅 빈 이젤과 비어있는 커피잔만이 제 존재를 알렸다.

 

 

 

“사장님.”

“깜짝이야.”

 

 

 

 

불린 이름에 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2층 나무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그 사람. 놀랐네, 어디 사라진 줄. 아니, 잠깐만. 왜 놀랐는데? 계산 안 하고 도망갔을까봐? 아니, 뭐 내가 돈때문에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돈 좀 안 내고 갈 수도 있지. 왜 놀라긴 놀라. 2층에서 내려온 그 사람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2층에 있는 내 금고라도 본 것일까. 왜 저렇게 활짝 웃으면서 내려오는 것인지.

 

그는 다다다 작은 몸으로 뛰어와 내 앞에 섰다. 난 그를 내려다 봤고 그는 날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은 바깥에 있는 지평선 위로 올라온 태양보다 빛났다.

 

 

 

 

 

“1층은 북유럽 폴란드인데, 2층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담아놨네요.”

“아, 네.”

 

“이거 두고 갈게요.”

“스케치북을요?”

 

 

 

 

 

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스케치북을 펼치려는 손을 빠르게 잡아 멈춘다. 그리곤 발그레한 얼굴로 이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일은 산토리니에서 봐요.”

 

 

 

 

 

그는 그렇게 말을 한 뒤, 이젤과 화구통을 들고 유유히 종을 딸랑이며 카페를 떠났다. 나는 가만히 서서 창문 너머로 그의 머리가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일 온다는 말인거지? 그림은 돈을 주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한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스케치북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스케치북을 열어보았다. 내 눈은 튀어나올 듯 동그랗게 커졌다.

 

 

 

 

 

사서 보세요. 내 그림엔 완벽한 사람만 담겨있어요. 쉽게 못 보여줘요.’

 

 

 

 

 

그의 스케치북 안엔 나의 겨울이 담겨있었다. 유럽을 가고 싶다던 그의 그림엔 카페의 그 어떠한 물품도 그려져 있지 않고 나의 초상화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