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사람.
w. 디아망

 

 

모든게 익숙해지는 나이 스물여섯. 흔히들 말하는 ‘문창과’를 졸업했지만 그렇다 할 만한 글을 쓴 적은 없었다. 여러 공모전에 글을 내고 매일 밤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문장을 끄적거려 봐도 항상 같은 문장, 같은 느낌의 글만 공장처럼 찍혀 나왔다. 선배들은 진작에 살길을 찾기 위해 펜을 버렸고,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쓸모 있는 기술을 익히는 것에 더욱 신중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주 먼지만한 희망이 가슴 속 언저리에 작게 구겨진 채 자리 잡혀 있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거라는 털끝 만한 희망.

 

“JR트레인,”

 

입으로 소리를 내며 표지판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꼴에 두번째 방문이라고 앞서 왔던 여행보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익숙한 거리를 눈에 담았다. 삿포로는 여전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寒くないですか”

(많이 춥지 않나요?)

 

인기척을 느낀 주인 할아버지가 오래된 나무 문을 열고 나오시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 할 길이 없다. 그저 웃고 넘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은 이상하리 만치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미리 예약 해놓은 게스트 하우스는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 된건지 예약자가 없다며 연신 sorry만 외쳐 대고 근처 민박, 호텔은 all 예약 완료. 무거운 캐리어를 돌돌돌 이끌며 1시간 쯤 헤매이다 간신히 찾은 허름한 민박집. 하지만 한국어는 커녕 영어 조차 모르시는 주인 할아버지.

5년전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머리 위로 뿌옇게 떠오른다.

 

간신히 찾은 민박집을 향해 올레를 외치던 것도 잠시. 아이 원트 스테이 히얼. 좋지 않은 발음까지 굴려 가며 발을 동동 거리는 내가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나홀로 삿포로 여행을 떠나 온건지 과거의 내가 저주스럽게 느껴졌다. 주인 할아버지는 정말 감사하게도 대충 알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서야 엉켜 있던 여행이 조금씩 해답을 찾아 가는 기분이었다.

 

“一行ですか”

(일행입니까?)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캐리어를 끌어 주던 주인 할아버지가 허공을 향해 곁눈질을 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또래로 보이는 멀건 남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역시나 방을 구하는 것에 지친 탓인지 조금 퀭한 눈빛이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 내렸다.

 

“すいません 部屋がありません”

(죄송합니다. 방이 없습니다.)

 

주인 할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듯 남자를 향해 손을 가로 저었다. 이제 방이 없다는 뜻 같았다. 남자는 아, 탄성을 내뱉으며 절망했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 해진 상태였고 여기서 더 깊이 들어 간다고 한들 남아 있는 방은 없을 것 같았다. 남자는 검은색 캡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사람은 가끔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는 한다. 내게는 이번이 그랬다. 저도 모르게 남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

 

사라져가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봤다. 검은색 모자 밑으로 대조 되는 하얀 얼굴이 잘생겼다. 심지어 눈동자는 밝은 갈색빛이 돌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굳게 다문 입술이 움찔거리기 시작할때 쯤 멈춰 세운 이유를 간신히 토해냈다.

 

“방, 같이 쓰실래요?”

 

또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대답 없는 남자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하는것도 잠시. 삿포로의 차가운 날씨보다 더 얼어 붙어 있던 얼굴이 따뜻하게 히죽 웃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 홀로 삿포로 여행을 떠나겠다! 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를 앞두고 그럴싸한 핑계로는 영감을 얻으러, 봐줄만한 글 하나 정도는 적어 놓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짐을 싸고 노트북을 챙겼다. 혼자 골방에 처박혀 집중력 110%를 발휘해도 한문장을 쓸까 말까 하는 시기에 모르는 남정네랑 일주일을 지내야 하다니. 작은 다다미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후회가 됐다.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해서 어떡해요?”

 

독심술이라도 하는 건가.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걸까봐 금방 마음속에 있던 못된 마음을 없애 버렸다. 괜찮아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충 손을 휘적거렸다.

 

“이름 뭐예요? 나이는? 한국사람? 너무 잘생겨서 바로 한국사람 인 줄 알았어요. 한국에는 잘생긴 사람 너무 많아. 그쵸?”

 

남자는 벽에 걸린 옷걸이에 모자를 걸어 놓으며 따발총 처럼 질문들을 쏘아 붙였다. 되게 조용하고 차가운 이목구비인데 생글거리는 얼굴은 또 아이같이 예쁘장하다.

 

“하나씩 물어봐요. 나 어디 안가니까”

“이름 뭐예요?”

“지훈”

“무슨 지훈?”

“김.”

“김지훈?”

 

응. 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양심에 찔려 캐리어 속을 뒤적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굳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니까, 그래서 조금의 여지도 남겨 놓기 싫어서. 하지만 남자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방긋하게 웃어 보일 뿐이다.

 

“이름 되게 예뻐. 저는 라이관린”

“라이, 뭐?”

“어렵죠? 그냥 관린 이렇게 불러요.”

 

웃을 때 꺄르르 소년같은 웃음 소리를 내는구나, 오른쪽 뺨에 깊은 보조개가 패이는구나, 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훈. 나 맥주 사왔는데 같이 마실래요?”

“기린?”

 

그는 대답 대신 하얀색 편의점 봉투에 들어 있는 캔맥주를 꺼내어 흔들어 보였다. 베이지색 바탕의 기린 이치방. 입맛은 어찌 이리 딱 맞고 완벽한지. 감성적인 문장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술이라는게 참 무섭다. 게다가 여행지에서의 술은 더욱 그렇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과 이국적인 삿포로의 풍경. 게다가 시원한 맥주까지. 나는 왜 때문인지 나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눈 앞의 제 스타일인 남자 때문인지 그저 여행지라는 설레는 장소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럼 넌 대만사람이야?”

“국적은 대만. 그래도 엄마는 한국인”

“한국어 되게 잘한다.”

“중국어 더 잘해요.”

 

우와, 입으로 감탄을 내 뱉다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대만은 원래 중국어 쓰지 않나? 맞아요. 그가 아까와 같이 꺄르르 소리를 내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게 어이가 없어서 장난스럽게 밀쳤더니 이번엔 대놓고 엄살을 피웠다.

 

“나 팔 부러진 것 같아.”

“오버 할래?”

“지훈 반응 너무 귀여우니까”

 

귀여우니까, 같은 성별의 남자에게 귀엽다는 말을 듣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주 있는 일이다. 선배들은 대놓고 나를 보며 ‘윙깅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윙크를 하는 모습이 귀엽고 꼭 아기 같다고 했다. 좋은 뜻 임에도 그런 말들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들은 투명했다. 괜히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기분이 들어서 손등으로 뺨을 문질거리며 말을 돌렸다.

 

“넌 삿포로에 왜 온거야?”

“여행. 지훈은?”

“글쓰러”

“무슨 글?”

“좋은 글”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진실 된 것이 없었다. 모든 말이 거짓 투성이다. 눈이 소복히 쌓여 도저히 안을 알수 없는 민박집 지붕처럼, 나는 그렇게 여행이라는 좋은 핑계를 방패 삼아 나를 꽁꽁 숨기고 있었다. 군대가기 한달 전 불안정한 미래가 두려워서 도망친 것이라고, 사실은 좋은 글 따위 알지도 못한다고. 마음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라이관린은 내 말을 곱씹으며 곰곰히 생각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지훈 쓸 수 있어. 좋은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일정 또한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또 다른 방을 구해서 짐을 옮기는 것도 귀찮을 뿐더러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돈. 두번째는 이유도 없이 두근거리는 나의 망할 심장 때문이었다. 왜 자꾸 멀건 얼굴로 눈길이 가는 것이며, 밤만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안고 싶어지는지.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다.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엔 심장이 투명하게 두근거린다. 하지만 그는 그저 아이처럼 웃는 것 외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게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그는 주로 낮시간에 혼자서 밖을 돌아 다녔다. 나는 숙소에 처박혀서 글이나 썼다. 써질리가 만무했지만 쓰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머리에는 생글거리는 그의 얼굴만 떠올랐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며 이불 속으로 틀어 박히고 말았다. 잠에 빠졌다. 꽤 긴 시간 인 듯 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 났을 땐 창문 밖은 진작에 캄캄했다. 그는 여전히 들어 오지 않았다. 꼭 남편을 기다리는 와이프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지훈”

 

12시를 넘기고 나서야 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혀가 잔뜩 꼬불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누구는 언제 들어오나 전전긍긍 하고 있는데 누구는 밖에서 누구랑 마셨는지도 모를 술에 잔뜩 취해서 헤실거렸다. 그제서야 우리의 사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저 같은 방을 쓰는 여행지에서 만난 스쳐갈 사람.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씻고 자. 나 피곤해. 그러고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 묻었다. 라이관린은 답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추운 날씨보다 더 가슴을 시리게 했다.

 

 

돌아가기 3일 전. 우리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라이관린은 예전처럼 장난을 치지 않았다. 나도 웃지 않는다.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朝食してください”

(아침식사 하세요.)

 

주인 할아버지가 트레이에 조식을 가득 담은 채 작은 다다미방의 문을 열었다. 누워있던 라이관린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할아버지를 도와 테이블 위로 음식들을 올렸다. 싸가지라도 없던가, 정이라도 떨어지게. 하지만 그는 나를 실망시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저 다정함까지 미워지려 한다. 테이블 위로 놓인 아침밥은 작고 정갈한 일본식이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어색해서 소화가 안되는 기분이다.

 

“있잖아”

“응?”

“나 뭐 잘못한거 있어?”

“없어”

“근데 지훈 표정 안 좋아. 나한테 화난 사람 같아”

 

라이관린은 제 앞에 놓인 밥을 한 숟가락도 먹지 않고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표정을 이곳저곳 살폈다. 그 눈길에 심장은 눈치도 없이 또 두근거렸다. 먹지도 않을 간장을 작은 접시에 덜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이 달달 떨려왔다.

 

“나 어제 술 마신거 때문에 그래?”

 

쿵.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들고 있던 간장통과 함께, 아이보리색 트레이닝복 위로 갈색의 자국이 선명하게 물들어 버렸다. 안 다쳤어? 내꺼 입어. 라이관린은 급하게 캐리어를 뒤적이다 자신을 쏙 빼닮은 네이비색 트레이닝복 한벌을 내게 건넸다. 이런 다정함이 원망스럽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려 가시 돋힌 말투로 대답한다.

 

“너나 입어.”

 

 

그는 내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잔뜩 굳어버린 얼굴로 사라져 버렸다. 사과를 하기 위해 따라 나갈까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잡생각이 머리를 잔뜩 어지럽힌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게 다 간장 때문이다.

 

자존심에 거절은 했는데 막상 입고 있을 옷이 없었다. 처음 입고 온 청바지는 불편했다. 애초에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잠옷과 외출복. 단 두벌만 챙겨 온 상황이었다. 절대 입지 않겠다 다짐한 유카타로 눈길이 돌아간다. 저거 추울 것 같은데, 게다가 여자 옷 처럼 밑단은 펄럭거리고. 하지만 간장냄새 보단 나을 것 같다.

 

 

그는 여섯시가 조금 지나고 나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화난듯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떠오르는 문장은 없다. 하지만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 또한 내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무얼 하는지 히죽거리기 바쁘다.

 

“아, 씨”

 

내 마음도 모르고 실실거리는 그를 향해 내 뱉은 짜증이 아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내 머리를 향한 짜증도 아니다. 계속해서 어깨쪽으로 흘러 내리는 유카타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 나왔다. 그는 토끼눈이 되어서 나를 쳐다 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옷깃을 올렸다. 하지만 금방 어깨선을 따라 또 다시 흘러 내려간다. 라이관린의 얼굴이 보기좋게 구겨졌다.

 

“뭐, 너한테 한거 아니니까 네 할일이나 해. 나 신경 쓰지 말고”

 

라이관린의 시선은 계속 해서 나를 향해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가방 위로 놓인 네이비색 트레이닝복을 다시금 쥐고서 성큼성큼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몸이 잔뜩 움츠러 들었다.

 

“그니까 그냥 내꺼 입으라고, 신경 쓰이니까”

 

화난 표정. 감정적인 목소리. 굳어 버린 얼굴을 마주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그냥 밖으로 뛰쳐 나와버렸다. 역시나 유카타는 추운 옷이다. 맨살로 살을 에는 추위가 맞 닿아 왔다. 눈이 소복히 쌓인 민박집 뒤로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이고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엉엉 울었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게 이렇게도 눈물 날 일인가. 아니다. 아마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추위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 울어. 울지마”

 

꿈인가? 한다. 고개를 들어 보니 라이관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긴 몸을 숙이며 문득 나를 안았다. 기다린 팔과 포근한 품이 나를 위로했다. 그게 더 서러워서 목이 메였다.

 

“내 옷은 안 입는다며”

 

추워보여. 무심하게 내뱉는 말투가 다정했다. 그 품에 안겨서 아이처럼 울어 버렸다. 내가 미안해. 라이관린이 능숙하게 나를 달래며 토닥였다. 어차피 군대를 가게 될 미래와 설레는 현재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저 우는것 밖에 하지 못하는 나의 입술 위로 포근히. 그 의 입술이 맞 닿여 왔다. 추운 날씨 따위는 뽐내지도 못할 정도의 따스함이 그의 입술에는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으로 돌아와 키스를 나눴다. 힘은 되게 없어 보였는데 키스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입술은 달고 또 촉촉했다. 어두컴컴한 다다미방 안에서 그의 손이 저돌적으로 내 유카타 속을 더듬거렸다. 나의 첫 경험은 그랬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원나잇 같은 잠자리.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입술들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떼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내 입술을 좇았다.

 

“잠시만. 나 숨 못 쉬겠어”

“괜찮아”

 

숨을 못 쉬겠다는데 뭐가 괜찮다는걸까.

괜찮을수도 있겠다. 이렇게 키스 하다가 죽는다면,

 

 

나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여기까지 본다면 해피엔딩인 이야기는 사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은 채 이별을 했다. 나는 나자신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군대 갈 준비를 하고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입대를 할 것이다. 그렇게 군생활이 끝나면 지옥같은 취업 준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장거리연애. 그 연애는 아마도 금방 끝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다. 그렇게 뻔한 이별을 맞이 할 빠에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 놓는 편이 나았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그저 손을 꼭 잡아보고, 세게 한번 안아 볼 뿐이었다.

 

나는 너 안 잊을게. 평생

거짓말.

다음 12월 28일도, 그 다음 12월 28일도 너 만나러 여기 올게.

내가 안 오면?

나 혼자 추억할게. 이곳에서 있었던 일 전부 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 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 미치도록 그가 보고 싶었지만 바쁜 생활들로 인해 금방 그의 존재는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처음 12월 28일은 군대에 있었다. 그 땐 눈을 퍼는 것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눈을 보면서도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다음 12월 28일은 비행기표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비쌌다. 게다가 그 사람 또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가물하게 잊혀져 가는 추억을 한번 소비하고 깨끗히 잊어버렸다. 그렇게 4번의 12월 28일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삿포로에 올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날의 기억도 그 사람의 얼굴도 웃으며 소비할 수 있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역시나 12월 28일,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여서 오히려 덤덤했다. 혼자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그 사람이 봤을 법한 공원을 거닐었다. 저녁엔 유카타를 입고서 기린 이치방도 마신다. 그가 없는 삿포로의 밤이 지나가고 궁상맞은 추억여행은 끝이 나고 말았다. 여전히 일본어로 말을 건네는 주인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 돌아선다. 이제는 정말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안녕. 머나먼 추억을 향해 건네는 작별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가 나의 눈 앞으로 나타났다. 눈을 비비고 봐도 그가 확실했다. 헥헥거리며 숨을 고르는 모습에 눈이 동그랗게 커져 버렸다. 그를 마주 본 순간 세상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여전히 하얗고 아이 같은 얼굴이, 꿈에서나 보던 그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이제 왔어?”

 

한국에서 글 쓴다는 김지훈 다 찾아 봤어. 근데 너 없었어. 왜 이제야 왔어? 왜 이제야 나 생각 했어? 주인 할아버지한테 너 왔는지 물어보려고 일본어도 배웠어. 너 때문에 눈도 싫고 삿포로도 싫었어. 근데 이제 아니야. 이제 눈 좋고, 삿포로도 좋아.

 

다시 나 생각해줘서 고마워.

 

이제는 버릴 수 있겠다 생각한 추억에게 달려가 안긴다. 보고싶었어.